1992년 3월, 광주 모 실업계 고등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아직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첫날 출근하면서 느꼈던 설렘, 그 느낌이 휘발되면서 들이닥친 당혹스러움! 조회 시간에 5명 정도 앉아 있었고, 그마저도 엎드려 자고 있었다. 1교시 끝나니까 몇몇 학생이 자리를 채웠다. 2, 3, 4교시 끝날 때마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동시에 그만큼 하교했다. 그러니까 하루 종일 등교하고, 하교하는 것이다.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 분위기는 심각했다. 가정이 깨진 학생들, 빈곤층 아이들도 많았다. 다른 선생님들이 “박 선생, 무관심이 답이야.” 라고 말했다. 방관하는 선생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곧 그 말이 이해되었다. 아이들에게 교과서를 나눠 주니 그대로 소각장에 버렸다. 교실에서 함부로 침을 뱉었다. 이 사이로 물총 쏘듯, 찍찍 소리를 내며 시도 때도 없이. 아무리 어르고 달래고 말려도 소용없었다. 쉬는 시간만 되면 밀걸레로 침을 닦았다. ‘사제 간에 격의 없는 정? 아, 이건 너무 큰 사치였구나. 고작 쉬는 시간에 밀걸레 들고 침이나 닦고 있다니.’ 밀물이 밀려오듯 자괴감이 밀려왔다. 우물가에 고이는 물처럼 초라함이 고여 들었다. 12월 말 즈음 사표를 제출한 이유이다. 이후 다시 임용고시를 봤고, 감사하게도 합격했다. 그리고 다시 발령받았다. 어디로? 그만둔 그 학교로. 광주 시내에 고등학교도 많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교사로서 처음 품었던 마음은 내려놓았다. 현실에 적응하니 몸은 편했다. 그런데 마음이 허전했다. ‘내가 교사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어도 아무런 반응 없는 곳에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월급 받고 생계만 유지하는 교직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8명의 아이가 찾아왔다.
1993년 6월 어느 날 밤, 계절은 초여름이었지만 날씨는 난숙한 여름처럼 더웠다. 에어컨도 없는 10평 집 현관문을 누군가 사정없이 두드렸다. 문을 열어 보니 8명의 학생이 서 있었다. 술 냄새가 훅 풍겨 왔다. 나는 놀란 표정을 짓고 물었다. “이 밤중에 무슨 일이니?” 천연덕스럽게 아이들이 말했다. “놀러 왔어요.” 뜬금없이 찾아온 아이들을 보낼 수 없어 나는 일단 문 옆으로 비켜섰다. 좁디좁은 거실 바닥에 콩나물 꽂아 놓은 것처럼 아이들이 앉았다. 몸의 열기가 더해져 집은 사우나가 되어 갔다. 나는 반쪽 남은 수박을 썰어서 나눠 주었다. 소가 여물을 씹듯 우적거리며 먹던 아이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수박씨를 쏘아댔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집에 가야지.” 그런데 아이들은 자고 가겠단다. 눈치도 보지 않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찌푸린 아내의 얼굴을 보며 진땀을 흘렸다. 콘크리트 바닥에 단단히 박은 못처럼 아이들은 꼼짝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허락했다. 이후 아이들은 그 집에 아예 뿌리를 내렸다. 8명의 학생은 그 집에서 9개월 동안 살았다. 아침마다 8개의 도시락을 쌌다.
“사람들이 그래요. 왜 부모에게 연락해서 돌려보내지 않았느냐고. 부모들도 내놓은 자식들이었으니까요. 전화를 받지도 않을뿐더러 연락 한번 없었으니까요. 그런데요. 가족마저 방치한 이 아이들이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같이 살면서 한 가지 확신하게 되었어요. 아이들은요, 작은 것 하나라도 무언가를 이루잖아요. 그러면 다음 걸음은 자기들이 개척하며 걸어가요. 어느 날, 아이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하더군요. 놀랐죠. 그러더니 8명 중 7명이 전교 1등부터 7등까지 했어요. 너무 놀랐죠. 그다음에는 대학에 가겠대요. 더욱 놀랐죠. 아이들은 침도 몰래 뱉기 시작했어요. 담배도 숨어서 피웠고요. 이웃들에게 공손하게 인사도 잘했어요. 전교 1~7등이라는 자부심이 생긴 거죠. 9개월 뒤 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집을 나갔어요. 대신 다른 사고를 친 8명이 바통을 이어받았어요.” ”쌤, 저희는 이제 사람 되었잖아요. 이제 쟤네들한테 기회 줘야죠.”
상식과 등식을 배제한 단순한 사랑의 감정이 부풀면서, 나와 아내는 아이들을 힘껏 끌어안았다. 함께 살기 위해서는 좀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하여 사재를 털어 산 밑 창고를 임대해 개조했다. 1994년 3월 ‘공동학습장’이라고 이름 지은 학습 공동체가 시작되었다. 넓은 농장에서 닭과 토끼와 개를 키우고, 가지, 수박, 참외, 감자, 고구마 등 온갖 채소를 심으면서, 독서와 서예를 하면서, ‘명상의 시간’이나 ‘역할극’ 등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면서, 아이들은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되어 갔다. 콩나물이 자라듯이. 공동학습장에서 2002년까지, 9년 동안 총 707명의 학생과 동고동락했다. 술 담배는 기본이요, 삶의 모든 순간 속에 욕설과 폭력이 흥건한 아이들, 곪을 대로 곪은 상처 안고 사는 아이들, 이 아이들을 돌보면서 마음 한복판에 수시로 칼끝이 스쳤지만, 그럼에도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20년 전 선생님 시절을 잠시 회고하고 쓴 글이다. 그 시절은 교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며 교사가 존경받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을 서비스받는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다. 시설 환경은 더 좋아지고 있는데, 경쟁이라는 테두리에 묶인 학교 안에서 마음 아픈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고, 이를 지도하고 상담하는 교사도 마음을 많이 다치고 있다. 학교폭력과 일부 무분별한 학부모의 민원으로 인한 교권침해가 늘어나며 긍지를 가지고 살았던 교사들의 위상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 현직에 계신 많은 교사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선생님과 제자로서 연결되어 서로 삶을 나누었던 추억 대신 교사를 평가하고 존경하지 않는 풍토가 만연해졌기 때문이다.
교권 하락으로 인해 명예퇴직교사가 늘어나고 있는 어려운 교육환경과, 학령기 인구 감소가 겹치며 교원 임용도 어려워지면서 교육대학교와 사범대학의 인기도 점점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는 우수한 인재가 교사가 되는 길을 제한하게 되어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교사로서 학생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기에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이해되고 역설적으로 상처 준 학생과 함께 교육을 만들어 가 본 경험이 있기에 이 시대 교육에 대한 희망도 가지게 된다. 지금부터 교사로 자긍심을 가지고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첫째, 학교의 교육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사회가 교육을 바라보는 눈이 따뜻해지도록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교사와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교사와 학부모 모두 학생들이 행복한 교육을 위해 고민하고 있는데,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해 오해와 반목이 생기는 것이다.
교육청, 학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행정 지시, 통제, 공문 같은 것이 아니라 4차산업혁명 선도, 코로나19 팬데믹을 넘어서는 교육, 사회 통합과 선도 등의 이미지가 되어야 한다. 교육청은 학교를 지원하고, 학교는 학생이 잘되도록 지원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학부모 인식개선, 학부모 캠페인 등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둘째, 교사가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2015년 광주시교육청에서 민주인권생활지원과장을 맡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중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명이 위독하다는 긴급전화가 걸려 왔다. 이 날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로 시간이 낭비되는 것을 보고 긴급현안 회의를 열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이유를 따지지 말고, 공문이나 형식적인 절차 없이 즉시 현장으로 달려가자고 제안했다. 위기 학생 신속 대응팀은 ‘부르면 즉시 달려간다’는 의미에서 ‘부르미’라고 명명했다. 학교든, 어디든 위기상황에서 전화 한 통으로 부르미를 요청하면 ‘24시간 언제든지 30분 안에 긴급 출동’하는 ‘2430 부르미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부르미는 자살 사건만 다루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 간의 폭력, 학생 사고, 학생과 교사와의 다툼,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갈등, 안전사고 등 다양한 사건으로 출동했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산업현장 인명 피해는 우리나라의 1/15에 불과하다. 이 비결은 사고 예방부터 사고 처리까지 예방시스템과 정책에 있다. 교사와 학생 문제로 학교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의 상황에서 행복한 교육을 위해 지원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교육청은 학생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고, 학생에게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 셋째, 교원 전문성 신장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학교는 교실에서 교사가 수업에 대한 고민과 문제행동을 하는 부적응 학생에 대해 상담하고 지원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수업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학생 지도를 협의하며 해결할 교원전문학습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곳에서 교사는 수업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학생을 잘 지도하게 될 것이다. 전문성을 갖춘 교사는 학생들을 교육목표에 참여시키고 수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교사는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학급경영을 함으로써 민주적 학교문화의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교사는 매력적인 직업인가를 물으면, 그렇다고 말하고 싶다. 매력적이란 말은 힘들지 않다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학생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극심한 우울증에도 걸렸고 힘들 때가 많았다. 다행히 좋은 조력자를 만나서 이를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교사는 매력적인 직업이다”라고 말하게 하려면 매력적이고 의미 있는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과 친구가 필요하고, 선생님들이 마음껏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도록 교육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생기는 문제를 교사 개인이 아니라 학교와 교육청이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교사가 학생들을 더 신나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박주정 교장은 현재 광주진남중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교사시절에는 학교부적응학생을 위한 공동학습장을 개설하여 10년간 707명과 숙식하였다. 광주광역시교육청 민주인권생활지원과장과 광주서부교육장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