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물든 날...........
(순천작가회의. 길 문학회, 빗살 문학회 공동 주최 토크 시낭송회)
생애 가장 아름답고 멋진 시낭송회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시인들의 지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더 뜻 깊은 시간이었네요.
시낭송회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첫 인사를 나눈 분도 계시지만요.(^^)
어쨌거나 시인과 초대손님과의 이런 멋진 토크 시낭송회는 천지창조 이래,
조금 과하다면 르레상스 이래 처음 일이 아닐까 싶네요.
시낭송회 준비하느라 마음 고생하며 분서주하신 김종숙 사무국장님
이렇게 멋진 토크 시낭송회를 기획하고 잔일까지 맡아 수고하신 박두규 시인님
무대 뒤에서 발을 저리며 스텝노릇하느라 감기까지 걸린 오미옥 시인님을
비롯해서 모든 수고하신 손길을 생각하며 사진과 시를 올립니다.
고마운 마음 조금이나마 갚아보려고요.
아름다운 선율과 노래에 기타반주까지 도맡아서 해주신 한보리 가수님과
바이얼린 연주로 가을남의 심금을 울려주신 이계심님
시낭송회의 별미였던 경숙, 현서, 정욱, 준서님의 컵놀이
그리고 '시월의 멋진 밤에'와 '명태'를 멋지게 불러주신 박두규 시인의 벗님의 명창까지
시월의 마지막날을 수놓은 더 이상은 좋을 수 없는 멋지고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시낭송회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이곳 카페에서나마
2015년 시낭송회, 아름답고 행복했던 밤을 함께 하시길.....
*오늘 시낭송회 참석자 모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심히(불쾌히) 반대합니다!!!!





독수리의
나날
-천장(天葬)
석연경
티베트
라싸의 아침
죽은
식물에서 나온 바싹한 바람 소리가
파르르
마른 흙가루를 날린다
영원을
흐르는 초원의 찰나들
쉼
없는 들숨과 날숨들은
잠시
맨몸을 드러내고
그저
흐르고 지나갈 뿐
오늘
발가벗고 흙 위에 누웠다
단
한 번의 약속도 없이 떠나버린 사람아
기다리다
지쳐 오늘은 너를 찾아 길을 나선다
마른
슬픔에 휘청거리며 부르튼 맨발로 걷는 광야
그리움의
통증이 짓누르면 주저앉아 울면 되고
마른
심해의 회오리바람도 이제 견디는 힘이다
푹푹
쭈그러지는 내 사랑의 심장아
정밀한
태양의 바늘이 툭 끊어지고
벗은
율의律衣의 주름 위에도 흥건한 피비린내난다
독수리의
발톱과 부리에는 수레의 핏자국이 묻어있다
부서지기
쉽게 사라지기 쉽게 잘려진 영혼의 뼈들아
하늘은
빗장문 열고
지상의
한 영혼이 반가 사유에 드는 날
거울을
매단 독수리는 신화의 전언처럼 그늘을 만든다
붉은
즙이 번지는 저물녘
독수리의
불꽃 날개 위로
활활
타오르는 겨울의 눈망울아
너
생의 붉은 열매여
타지
않고 타오르는 무궁의 불꽃
잠시
어둠을 머금은 침묵, 사이
멀리
숲 속에는 초록빛이 유영하고
젖은
새가 뜨거운 첫 숨을 뱉는다

소금창고
김영아
빈털터리가 된 그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원룸 주차장 달방으로 들어간다
부엌 창문 너머 텃밭에 유채꽃이 반가운 걸 보니
가난이란 불편할 뿐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줄 용기가 움트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탕진을 한 그가 야간 일을 나간 한밤중에
보일러가 터져 침대까지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비몽사몽 바닷속에는 암울한 공포가 먼지처럼 떠다닌다
썰물같은 자리에 불가사리처럼 너부러진 잡동사니
모두 버리고 나니 염전처럼 텅 빈 자리엔 젖은 마음들만 남았다
땡볕과 바람에 고슬고슬 말라가는 짜고. 쓴. 단 맛 .......,
돌아보면 아득히 멀리 있고 눈 감으면 가슴속에 있는 소금창고


풀꽃 친구
김연희
남동생 사업 보증으로
다섯 식구 단칸방으로 쫓겨나
지푸라기라도 잡듯 짚을 엮으며
얼기설기 살아가던 그녀
새끼 꼬느라 부르튼 손으로
두부, 계란 팔러 다녀보지만
단칸방 면치 못해
집주인 구박에 마음이 쫓겨
이판사판씨펄 절로 튀어 나오고
그래도 한 이십 년 허우적거리니
이름 모를 풀꽃처럼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눈에 밟힌다는 그녀



말린다
윤선미
수술 2시간전
언제 다시 감을지 모를 머리 말리려
드라이기를 켠다
옆 환자 보호자 날 향해 쏘아 부친다
수술하고 온거 안보여요
무식하게 병원 에티켓도 몰라
정신이 번쩍 든다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난 무식하다 아니, 금식한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말린다
다시 감을지 모를 젖은 머리를 말린다
오늘따라 내 심장소리 더 커진다
신랑 손이 따뜻하다
한 숨 자고 나와 기다릴게
잡고 있는 손을 놓는다
수술집도의가 내 이름을 또 확인한다
그 순간 빛이 내게로 쏟아진다
피를 말린다

회갑
안준철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 녀석
오줌 누는 소리가 시원하고 우렁차다.
모든 것을 일순간에 쏟아내는
폭포수의 장쾌함이라니!
내 오줌발은 가을 가뭄에 쫄쫄쫄 흐르는 냇물 같아서
여자처럼 좌변기에 앉아서 오줌을 눌 때도 있다.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다, 싶지만
가끔은 반전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소리를 잃은 지 오래인 내 오줌줄기처럼
일순 삶이 고요해지는 것이다.
먼 길을 에돌아 오는 남은 한 방울을 기다리다보면
생이 당도해야할 곳에 이미 와 있는 기분이다.
놓치지 말아야할 것을 놓치고도
하늘에 걸린 낮달처럼 태연자약하던
내 영혼이 발랄했던 때가
한 생애를 돌아 다시 올 기세다.


달이 말을 걸다
정 성 권
외로움이 빈대처럼 몸에 달라붙은 그 밤
아랫장에서 산 잠바 어깨에 걸치듯
막걸리 한 병 마시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환한 보름달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가슴 한구석 텅 비어 있을 때
반달이 말을 걸었고
미움으로 마음이 칼날이 되었을 땐
초승달이 말을 걸었다
나 또한 그러노라고
양털처럼 하얗고 밝은 보름달은
태양에 가려져 아무도 볼 수 없을 때에도
자신을 잃지 않았다며
십오일마다 찾아와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고 간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사랑인줄 알았는데
내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움인줄 알았는데
달빛 속에서 내가 익는다.




움
김명자
작은 물방울들을 붙들고 있는 네가 사랑스럽기까지 한 것은
곧 내 곁에 올 네 안의 생명력을 볼 수 있는 까닭만은 아니다.
어느 해와는 달랐던 비바람 잘 견뎌준 대견함,
꽃 피울 날 기다리며 그 너머 바라본 소망 한 잎 또 한 잎에 새겨
매화라 이름할 날 손꼽은 마음 나를 두드린 까닭이다.
비가 흐른다. 흐르지 못할 길 없다 얘기하며 내 마음길을 흐른다.
비로소 나도 흐른다. 어느 길 흐르지 못할까 나를 다독인다.
매화나무 움이 된다.



용수동 가는 길
김 현 주
아야 내가 이 길은 눈을 감고도 간다
허리띠 졸라매 하늘이 누렇게 떠도
비탈길 두 시간 파랗기만 하더라
보따리 이고 지고 웃장에 펼치면
삼십 분 만에 동이 나
하루에 두 번을 내달렸던 그 길
술심으로 농사지은 시아버지
술심을 못 이겨 주저앉아
중환자실 새까만 얼굴로
어이 피꼬막 먹고 싶네
꿈일까 생시일까
피눈물로 내달리던
용수동 가는 길

편지 2
김해화
고추씨 뿌렸으니
이 작은 밭은 고추 밭이네
거름 주는 일 물 주는 일 서투르고
몸도 마음도 상해 밭으로 오는 길 자주 잃겠지
마음 바쳐 씨 뿌렸으니
저 혼자 자라라고 내버려 둘 참이야
씨 뿌리지 않았지만 지 맘대로 돋는 풀들
맘대로 우거지라고 놓아두고
푸른 깃발 같은 이름이나 불러주지 뭐
바랭이 쇠비름 명아주 강아지풀
고추가 이겨내지 못할거라고?
괜찮아
이 밭은 이기고 지는 싸움판이 아니니까
풀고 고추도 알맞게 자라면 좋겠어
풀 무성해서 고추는 하나도 못 자랄지 몰라
고추만 자라고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벗이여 중요한 것은
이 밭에 고추씨를 뿌렸다는 것
고추씨 뿌렸으니 고추 한 포기 자라지 않아도
내가 끝끝내
고추밭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네

향나무
임현정
음지의 향나무는 바늘잎과 비늘잎이 함께다
가지에 돌아가며 촘촘하게 바늘을 세운다
불규칙한 흰선이 오목하게 두드러진다
날카로운 각으로 태양을 조율하며
집게벌레 꼬리같은 가시로 멋모르는 것들 무조건 찌른다
왜 찔렀는지 모른다
바늘잎 너덧 개 모여 둥근 마름모의 비늘잎이 된다
어떻게 비늘잎이 되었을까
고민 깊은 향 곧은 결로 윤이 난다
지금도 바늘잎은 돋아나고 있다



소록도 비가
-서동인
당신을 만났다
땅 속에 묻히지 못하고
관처럼 누워 하늘 바라보는
귓가에
보리피리 들리는가
살아서 쓰라리게 밟은 길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고
황톳길 돌고 돌아
뭉툭해진 손마디로 시를 쓰던
당신이 누운
소록도 중앙 공원
한센병 환자들이 가꾼
정갈하게 서 있는 나무들
가지 끝에 손가락이 자란다
허공에 시를 쓰는 잎새들
갯바람이 시를 읊는다
편히 잠드서서
묵념을 하는 동안
소록도 파도소리 행을 가른다


봄눈 내리는 사성암
오미숙
생강나무 새싹이 움트는 산
겨울이 아쉬운 눈이
목화송이로 피었다
흰 바람을 몰고 점점이 날아가
햇빛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더디게도 오고 장엄하게도 오는 삶
아슬아슬 외줄 타듯 반생을 살아냈고
나머지 반생은 의구심없이 살아야 한다고
지난 것들은 덜어내고 비워야 봄은 온다고
나무는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
버들강아지 문안 인사 나왔다
어느새 바람의 사선을 따라
봄꽃을 피우러 간다


늦 가을과의 조우
문경화
이미 가을이 옆에 와 있어도 몰랐던
내 귓전
따르르 낙엽 구르는 인기척에
걸음을 멈춘다
들풀 사이 다소곳이 고개 내밀고
나만 바라보는 코스모스
가을의 무게로 고개 숙인 들국화
비에 젖은 채 신음하는 낙엽들
이리저리 몸 흔들며
어루만져 달라 보채는 눈빛을
왜 난 몰랐을까
가을의 설레임을 한줄 한줄 오려 붙이며
할 일 다 한 농부의
그을린 피부와 주름에 피어난 미소인 양
감나무 끝 햇살 타고 온
가을 맞으러
쪽배 타고 갈까
당신 손 잡고 함께 갈까









첫댓글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멋지고 감동적인 밤이었습니다!!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초대 고마웠어요 선생님!!
초대에 응해주셔서 제가 더.....감사해요!! 무대에서 한 약속 꼭 지킬게요.
샘 아침에 일어나자마 어제 뒤풀이는 또 얼매나 재미졌을꼬 궁금하던 차에 들어와 보니 부지런한 샘 요렇게 이삐게도 올려 놓으셨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시월의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된 사진속 환한 모습들 속에서 그 순간을 포착하느라 한 눈을 감고 숨죽였을 샘의 모습도 오버랩되네요. 빗살 식구들을 대신해 온 맘으로 감사의 절 드립니다.
맞절 올립니다!! 감사해용^^
늦게까지 애쓰셨습니다
역시 멋져요 사진들이...
잘 간직하겠습니다 선생님^^
항상 이 맘 때가 되면
안아들이는 행복이 남다릅니다
그래서 그 자리가 늘 그립습니다
좋은 사람들 곁,
그 곁 제가 있음이 큰 기쁨입니다
아름다운 밤을 위해 애써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댓글이 시 수준이당!!! 감사해요!!
너무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27년만에 절친과 한 무대에 서 봤구요. 뒷풀이에 김남주의 노래를 부른게 몇년만의 일인지 모르겠다고 제 친구 경화는 감격해 했답니다.
샘의 친절한 후기와 사진을 보니 어제의 찐한 밤이 아직도 새록새록.
너무 감사합니다. 소중한 시간, 소중한 기억 만들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친구까지 모셔와서 찐한 밤을 만들어주셔서요.^^
뒷풀이 끝나자마자 가셔서 시낭송회 장면과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신 형님의 노고에
깊이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3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뒷풀이도 성황리에 진행되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였습니다.
저 컴퓨터상에는 시 빈공간에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뺄수 있는지요?
어..욘석들 삭 없애주려고 들어와보니 암시랑토않네?? 성권 아우님의 컴퓨터에만 나타나는 현상인듯...어쩔고?
@안준철 집에껀 그렇게 나타나고, 회사컴퓨터는 깨끗하게 나오네요
감사해요. 안선생님, 밤사이 이런 변주곡을 완성해 우리를 놀라게 하시네요. ^^ ㅎㅎ
지난밤 우리는 고운 화성,화음을 맞춘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모습들 내내 마음에 새겨 놓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구요. 함께하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종숙씨 저도 일을 해봐서 알지요. 얼마나 많은 데에 손이 가는지를요. 그걸 알면서도 모른척했네요. 미안해요. 앞으로는 함께 해요. 다를 행복해하시니 좋지요?
@안준철 모두가 좋으면 다 좋은 겁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으닌까요.
@김종숙 그러지라이♡♡
어떻게 모든 분들 하나도 안 늙었샤........ 나만 팍삭 늙었네..........
그럴리가... 내가 좀 젊게 찍어드렸다. 그래도 건강 챙기거라^^
어제는 제 차례 기다리며 달달 떠느라 아름다운 밤이었는지 어쨌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정말 행복한 밤이었네요~10월의 마지막날은 저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밤으로 기억될 거 같습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그랬겠네 하필 마지막 순서라^ 사진사는 피사체가 예쁘면 좋지 내가 땡큐^^
원래도 이쁘지만 어젠 유난히 더 예쁘데나. 회색 팔부 바지허고 그 꺼먼 우떠리 어디가야 산당가. 나가 몸을 맹그라가꼬 한번 덤벼볼라네. 불근 립스틱도 환상이데야. 토크도 좋고. 비밀병기로 오래 지다리게 헌 것도 좋고..
@양미자 ㅋㅋ 이쁘시긴 이쁜가 봅니다 제 눈에도 제일 이쁜 걸 보면요 ㅋㅋㅋ
흐르는 대로 덮개 벗어 던지고 자기을 활짝 열어 젖히는 무서운 집단에 제가 들어 간거죠? 겁없이... 감동적인 밤이었어요~~ 저도 너울너울 함께 노래하고 춤추겠어요♡♡♡
너울너울 춤 추며 한 세상 멋드러지게 삽시다요.
안시인님의 아름다운 마음 잘 봤어요.
감사해요. 연경 시인!!!
아주 보기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