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엄마 다니던 학교야?"...
내 오랜 기억속에 아주 넓게만 느껴지던 초등학교를
어느 해 여름방학때 아이들과 가보았습니다.
왜 그리 초라했는지. 몇 십년 된 수영장은 녹이 슬었고 풀잎만 가득했지요.
수 없이 발을 디뎠을 운동장, 내 작은 발자국, 그 흙들을 다시 밟았습니다.
철봉, 정글짐, 그네에서 노는 천진한 아이들 속에 얼핏 내 유년의 몸짓들도 보았습니다.
나의 교실, 앉았던 의자, 계절이 그려지던 창문, 환하고 투명한 유리창에 비추던
플라타너스 이파리들, 아이들의 청아한 웃음소리가 밀려옵니다.
어떤 기쁨과 슬픔들이 어우러져 날 성장게 했는지, 마음들이 무슨 색이었을지..
학교를 나오니 문구점이 보입니다.
코흘리개들과 함께 무수히 진화하고 발전했을 불량식품도 먹었지요.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맛 본 듯 신비하게 녹아들던 그 느낌들은
희미했지만 추억의 맛이었습니다.
교정을 메운 푸르른 나무들처럼 우리들의 버팀목이 되주시던 선생님들을 떠올립니다.
이숙희선생님, 활발하지 못하고 내성적인 나의 성격을 이해하시고
잘 어울리도록 노력하신 분이었지요.
그 이듬해는 갓 제대하신 초임교사였는데 나와 얼굴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악동들은 '너의 아빠 선생님'이라고 놀렸습니다.
따뜻하고 자상한 배려는 무언의 항변으로 내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셨지요.
소녀시절의 은사님들.. 일 년 똑같은 검은 양복에 넥타이로 목을 조이며
클래식을 고집하시던 괴팍하던 음악선생님. 폭풍우가 치던 날이었을까.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 기타를 액세서리로 장착하고는
엘비스 플레스리의 "Love me tender"를 부르신 겁니다.
모두 적응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지요. 흑백건반의 이미지가 더 낫거든요.
선생님의 일탈에 소녀들은 경악했지만 시선을 끌려고 자신의 색채를 잠깐
바꿔본 듯 합니다. 학생들이 떠들면 목소리를 더 낮추어 조용할 수 밖에 없던..낮은 톤의 목소리
그 선생님의 지혜는 시간이 지나도 맑고 정갈한 시냇물이 되어 내 가슴에 흐릅니다.
깡마른 체구에 안경을 쓴 노처녀 영어선생님. 아, 기억이 너무 선명해요.
정말 이유도 없이 방어태세를 지니신 그 눈빛과 입 매무새.
히스테리컬하고 결벽성이 내포된 발음.. 스타카토의 분위기로 우리를 긴장하게
하던 그 장면들도 오늘은 입가에 살짝 웃음짓게합니다.
그들은 우리들의 눈높이를 맞추려 했을까요. 부모가 되고보니 생각이 더해집니다.
아이들에게 진정 마음을 열었을까. 지식을 가르치며 자유로운 정신,
자신이 원하는 삶, 꿈도 카워주셨을까. 평생 가지고 갈 지혜도,
스스로의 개성과 창의력도 알게 하셨을까..욕심을 품어봅니다.
세상은 변해가고 사제간의 도(道)는 허물어지고 힘든 날들이지만..
제자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 주변 이야기들엔 숙연해집니다.
어버이 같은 선생님. 늘 존경스럽고 고개 숙여지며 그림자도 못 밟게 되는 거지요.
스승의 인연은 전세(前世), 현세(現世), 내세(來世)에 까지 계속 된다는
사제삼세(師弟三世)의 깊은 의미를 되새깁니다.
운명으로 맺어진 깊고 밀접한 인연, 하늘처럼 높은 스승의 은혜.
그 뜻을 헤아리는 마음이 푸르른 상록수처럼 영원하길 꿈 꿔 봅니다.
세상의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To sir, with iove ♡
첫댓글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입니다. 잠시 학창시절의 그만그만한 추억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미소짓게 했습니다.
묘사와 표현력이 좋네요.유년의 몸짓, 계절이 그려지던 창문,사제삼세의 의미,멋져요. 그리고 영어선생님의 눈빛과 입매무새, 재미있어요. 다음글도 기대되네용
우리네들 초등학교 다닐적 에는 선생님들은 화장실 안다니시는 줄 알았어요.그정도로 선생님은 저 높은곳에 계시는 고귀한 분들이라 생각했죠. 요즘 풍속도를 보면 학생들이 선생님한테 하는 행태는 가관이라 이해하기 힘듭니다.이러할진대 스텔라님의 글을 읽으며 학창시절 선생님의 대한 향수를 물씬 느끼게 하네요..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두통의 편지를 통해 이미 섬세하고 탁월한 언어 구사력과 절제된,그래서 어쩐지 알싸한 아픔도 묻어나는 스텔라님의 표현력은 알고있지요.거기다가 기억력까지 갖추었네요.엎어지면 코닿을 곳의 내 유년의 6년을 책임진 그곳은 운동장을 삥 둘러싼 플라타나스는 댕강 잘리우고 한없이 넓었던 운동장은 야구부가 절반을 차지하고있어 어쩐지 휑하고 어수선하고 기억도 가물거려 6년을 통째로 도둑맞은듯 씁쓸합니다.노처녀 영어선생님의 눈빛과말투,입매무새까지 기억할만큼 선명한 기억력과 소중한 자산일 어린시절에 부러움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