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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배움, 4월
잘 지내셨어요?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겼어요. 한 달 사이에 힘들기도 했지만 아주 좋은 일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이라는 게 그 자체에서 결정된다기보다는 그것들을 통해서 어떻게 배우고, 그것이 또 하나의 경험이 되어서 그다음 발걸음에 어떤 일종의 성장을 가져오느냐에 의해서 좋은 일은 만들어지는 측면도 있구나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떤 일이 꼭 좋고 나쁘고로 되는 게 아니라 어떨 때는 굉장히 아쉬운 일이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고,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또 어려움을 갖게 되어지는, 그 뒤로 연결되기도 하는 걸 보면 모두 다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일은 분명히 우리가 만들어 가는 측면이 있긴 있다. 이 엄청난 일 앞에서도 그것들이 우리를 더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우리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미처 거기에 깨어 있지 못했던 우리를 좀 보게 하는 그 측면도 있어요. 그러나 이제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조금 더 나아가야 될 부분들이 그걸 통해서 조금 더 드러나게 되고 나아가서는 그것들이 더 진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선 가볍게 움직여 보고 그러고 난 다음에 지난번 만남에 이어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활동 : 손바닥으로 바닥치기, 7박자 4가지 패턴 / 공던지기 서로에게 던지고 주고받기, 공 두개를 연이어 던지고 받기)
[어떤 방식으로 자아가 몸 안으로 들어오도록 할 수 있는가]
오늘은 실은 제가 가지고 온 큰 주제는 말과 언어인데 이 말과 언어를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이 함께 따라붙어 다니는 게 뭐냐 하면 자아예요. 나인데 나아가 나를 스스로 의식할 수 있게 하는 힘, 나를 의식할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하죠. 이 자아가 그 언어에 아주 매우 강력하게 일종의 그게 가능하도록 해준다고 볼 수는 있어요. 그래서 이제 우선은 그런 어떤 개념들을 다 뒤로 하고 이렇게 한번 봐볼까요?
”반의 아이들이 오늘 조금 소란스럽네. 여느 날과는 다르게 약간 좀 떠 있는 것 같아.”
특정의 어떤 사건이, 어떤 일들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떤지는 모르나 평소에 비해서 이렇게 붕 떠 있어요. 내 수업으로 좀 들어가야겠는데 이 아이들을 조금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나는 수업을 좀 시작하고 싶어. 그렇다고 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먼저 떠올라야 될 것은 ‘이 아이들의 자아가 자신 안으로 들어오도록 내가 해야겠네.’ 이렇게 생각을 해요. 그럼 이제 어떻게 들어오게 할까? 이때에 가장 좋은 것은 신체를 이용하는 건데 왜냐하면 신체가 매개가 되어서 그쪽으로 자아가 들어오니까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보면 자아가 밖으로 나갔다가, 우리 자아는 항시 안에 완전히 들어와 있는 게 아니에요. 실은 밖으로 나갔다가 특히나 잠을 잘 때는 완전히 나가버려요. 그러다가 우리가 아침에 깨어 일어난다고 했을 때, 그때 자아가 들어와요. 그 들어오려고 하는 그 순간들. 들어오고 있는 순간들, 얼마간 들어왔는데 그것이 더 온전하게 들어오도록 하기 위해서 몸이 그냥 알아서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게 있어요. 그게 기지개예요. 기지개는 어떻게 캐요? 뻗어요. [뻗기] 내 몸을 쭉 뻗어요. 쭉 뻗어요. 대부분은 기본적으로는 약간 수직의 성질을 띠긴 해요. 쭉. 그러면서 보면 이 뻗기 과정에서 약간 이렇게 구부러져 있었던 것들이 펴지는 과정이 의식이 돼요. 실은 그 실체가 자아예요. 그렇게 들어와요. 들어오게 해요. 여기에 착안해서 보면 이 자아가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신체를 놓고 보면 앞으로도 들어오고 뒤로도 들어오고 위로도 들어오고 아래로도 들어와야겠어요. 그죠? 십자가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자아가 온전히 들어와 있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어요. 그래서 이제 예를 들면 이렇게 해볼 수 있어요.
”선생님 따라 해볼까요?“ 해가지고 하나 둘 셋 넷. 즉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앞으로 뒤로 이걸 이제 10개만 해요. 하나 둘 셋 넷 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이렇게 앞뒤로 했어요.(1. 팔을 쭉 뻗어서. 손바닥을 앞에서 한번 뒤에서 한번 박수치기). 그리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섯 아홉 열(2. 팔을 쭉 뻗어 머리위로 한번, 등 뒤 아래에서 한번) 물론 8만 해도 좋겠군요. 그다음에 하나, 둘, 셋, 넷, 섯, 여섯, 일곱, 여덟 이렇게 해요.(3. 머리위로 한번 배 앞에서 한번) 이번에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이렇게 해요.(4. 머리위로 한번 등뒤에서 한번, 머리위로 한번 배 앞에서 한번) 그렇게 해서 쭉 펴지게 해보는 거 말이에요. 쭉 펴지게 해보는 거. 그런데 그 정도의 시간이 안 되네. 그러면 예를 들어서 숲속에 키 큰 나무가 있어요(팔을 양쪽으로 벌려 어깨높이로 든다). 이 나무가 하늘로 높이 올라가요(팔이 점점 머리 위로). 이 정도로는 안 됐어. 이제는 더 올라가요. 더 올라가요. 더 올라가요. (발끝까지 든다) 내려와요. 이때 자아가 들어와요. 있었던 일들에서 그러면 어느 때 더 극적으로 들어오냐하면 더 쭉(펼칠 때) 더 쭉(뻗을 때) 이때 들어와요. 이 수직 중심선으로 계속, 수평도 마찬가지로 더 넓게 넓게 더 넓게 넓게 넓게 팔이 막 나가려고 하면 그때 실은 바깥으로(머리위로 혹은 몸의 양쪽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몸의 가운데가 의식돼요. 이게 매우 재밌는 사실이에요. 높이 가려고 하면 할수록 한쪽은 저 높은 곳을 원하는데 의식은 그것들의 한계 지점인 여기에(몸통) 의식이 들어와요. 그런 형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가 다 언제나 똑같은 상태로 자아가 들어와 있는 것은 아니에요. 특히나 아이들은 이 유동성들이 굉장히 커요. 그런데 특정의 행위를 통해서 내가 자아가 들어오는 습관들을 들이면 이제 보세요. 선생님이 생각했어. 어디 가서 이야기를 들어봤더니 “그런 게 좀 효과가 있대”하고 교실에서 한번 해봤어요. 그랬더니 “별 효과가 없는데? 그 차이를 모르겠어” 그랬어요. 그런데 어떤 선생님이 아직은 모르겠고 한 달을 해보자 이렇게 했어요. 그럼 한 달 뒤에는 “그러네.” 이럴 거예요. 무슨 이야기냐. 그 동작의 실제 상태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바로 나오지 않아요. 점점 내 몸이 그 동작에 의식적으로 깨어나고 집중이 되게 되게 되면. 그게 반응이 그런데 한 달이 아니라, 한 학기를 했어요. 그러면 그 반 아이들은 그 동작을 하기만 하면 아주 매우 높은 주의력들을 갖고 있는 상태가 만들어질 거예요. 그러니까 항시 몸이라고 하는 것을 매개로 해서 어떤 뭔가 도움을 받는다라고 하는 것은 몸의 성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어요. 몸은 완전히 익숙해진 것이 아니면 아직은 내 것이 아니에요.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서, 뭐에 따라서 이게(다를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몸 안으로 이미 딱 한 번 어느 정도 습관처럼 딱 받아들여져 버리게 되면 나머지 것들을 다 밀어내고 거기로만 딱 집중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아요.
- 언어의 발달은 직립과 연관이 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굳이 한 것은 언어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거나 그다음에 어려움이 있다라고 하는 것조차를 알아보는 게 중요한데, 그러니까 말을 더듬거나 말을 잘 이렇게 꺼내서 할 수 없거나 아니면 너무 큰 소리로 말하거나 아니면 그 소리가 너무 작거나, 다 이유가 있는거예요. 그것을 우선은 알아보는 것이 1차적으로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안 보여요. 계속 아이는 나한테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내가 몰라 볼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도 그렇고 그다음에는 그게(어려움이 있는 것이) 이제 보였어. 그러면 이제 도와야 될 거 아니에요. 돕는 데 있어서의 어떤 베이스를 두기 위해서 이야기를 시작한 거예요. 이야기는, 말은 발달의 순서상으로 보면 무엇이 있고 난 다음에 말이 발달을 하죠? (옹알이) 말 자체로는 옹알이에서 드디어 구체적인 일종의 우리가 어휘라고 할 수 있는 말로 넘어가요. 그 단어들이 주로 미음 자로 시작되어지는 것들로부터 시작을 해요. 그래서 발음에도 순서가 있긴 하지만 아무튼 옹알이에서 전혀 다른 말로 넘어와요. 한 음절에 불과하겠지만 그렇게 오죠(발달하죠). 그런데 옹알이를 하고 있을 때는 어떤 상태냐 하면 아이가 누워 있는 상태. 그럼 말을 하기 시작한 상태는 드디어 척추를 세운 거예요. 그래서 말은 어떤 것을 조건으로 한 다음에 발달을 하냐면, 인간이 드디어 동물과는 다르게 아주 독특한 수직 중심선을 세운 조건에서 말이 시작돼요. 나를 이렇게 위로 세울 수 있게 되었을 때. 이 세울 수 있게 됐다라고 하는 것은 그 정도만큼 몸 안으로 자아가 들어왔다는 소리예요. 그래서 아이가 발음이 어눌하다라고 놓고 본다면 발음을 연습을 이렇게 많이 하면 교정이 되는 게 아니고 이 아이가 바로 서 있지 못하구나 이렇게 알아봐야 돼요. 이 아이는 실제로 바로 서 있지 않아요, 서 있는데도. 그다음에 특히나 의자에 앉아 있는 상태를 보면 대부분 다 이런 식(눕다시피)이에요. 우리가 가끔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나를 세울 수 있어야 돼요. 딱 받쳐서 세울 수 있어야 돼요. 그것들을 보면 고개 쪽이 안 되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건(몸통은) 이렇게 서 있는데 고개가 안 돼요. 그러면 고개가 안 되면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은 고개를 이렇게하고 있는 경우(한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경우)는 100명 중에 한 명이고 멀쩡히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고개를 계속 (좌우로 돌아가요). (아니면) 고개가 안 돌아가도 눈이 돌아가요. 그러니까 어때요? 이 아이는 세상에 일들이 엄청 많이 생겨요. 선생님 이야기에 주목할 수 없어요. 선생님이 저거 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거, 자기가 이렇게 계속 고개를 안정되게 못 잡아놓고 있는 거예요. 그렇죠? 거기에서부터 와요. 그다음에 이쪽(골반)이 안 잡혀 있는 아이들은 그 앉아 있는 것이 오래 있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계속 움직이게 돼 있어요. 아이들은 일어서는 과정에서 어휘가 드디어 터지기 시작하고, 발을 지면에다 대고 나를 막 이렇게 올려 세우는 과정과 어휘가 터지는 과정이 물려 있어요. 그러면 언어는 서 있는다라고 하는 직립이라고 하는 상태의 조건, 그 과정에서 획득하게 된 그 어떤 성장. 그것을 전제 조건으로 해서 말이 시작되거나 발달된다고 봐야 돼요. 물론 제가 이런 이야기도 했어요. 아직 나는 내 스스로가 척추를 완전히 딱 이렇게 안정되게 앉는 자세를 할 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조적인 기구의 도움을 받아가지고 내가 앉게 돼요. 그럼 앉게 되면 당연히 발바닥이 지면에 닿겠죠. 그죠?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발바닥이 자극이 돼요. 이런 약간의 그 수직의 상태를 경험하면 말이 빨라집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언어 감각이 특별해서 말을 빨리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어떤 일종의 보조적인 조건에 의해서 그 자극을 너무 일찍 받아버린 거예요. 내가 스스로 일으켜 세워서 앉을 수 있는 상태에서 그게 가능해야 되는데, 거기까지 순서상으로는 직립을 조건으로 해서 그걸 토대로 해서 언어가 나옵니다. 이 언어가 터져 나오고서 어휘가 어느 정도로 만들어졌을 때에 이제 시작이 되는 것이, 사고가 시작돼요. 우리가 잘 봐보면 내가 얼마만큼에서 사고를 할 수 있을까요 라고 한다면 그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어휘만큼에서의 (사고를 합니다). 나는 어휘와 상관없이 생각할 수 있어라고 한다면 그 생각을 한번 말해 주세요. 나는 아주 그런 거 상관없이 생각해버리는데. 말을 매개하지 않고 언어를 매개하지 않고 나는 할 수 있는 사고가 있다? 그건 불가능해요. 불가능해요. 그래서 인간은 처음부터 사고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에요. 언어를 가져야만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언어 감각이 있고 난 다음에서야 사고 감각이 피어나요. 발달해요. 우선은 원초적으로 살피기로 한 거니까 말, 언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여기서 지금 문자를 말하고 있지 않아요.
- 말의 세가지 속성 : 1. 나를 드러낸다.
말은 세 가지의 일을 해요.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나를 드러내요. 내 상태를 그렇죠. 내 상태를 드러낸 것으로서의 어떤 신호예요. 이것은 동물도 해요. 그런 의미에서 자신 영혼의 내적 상태를 밖에 특정의 소리나 어떤 것으로 드러내는 거 이것이 말이에요. 그러나 그 정도의 것들을 가지고 우리가 말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말은 그것만 갖고 있어서는 안되요. 인간의 말이라고 하려면 나의 내면의 상태를 드러내는 측면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들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름을 갖고 있었을 때예요. 바깥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름을 내가 획득했을 때, 그(것에 대한) 이름이 뭐냐하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신이 세상을 다 창조하고 난 다음에 “이렇게 만들었더니, 창조했더니 너 보기에는 좀 어떠냐?” 하고 물어봐요(아담한테). 그러니까 (아담이) “참 좋아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 그러면 그 창조한 그것들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봐라” 이렇게 했어요, 아담한테. 그랬더니 “알겠어요” 하고 성실하게 이름을 지었어요. 이름을 지었다는 것은 드디어 외적으로 드러난 바깥 사물의 본질적 인식에 이르렀다는 말이에요. 이 사물과 저 사물을 구분할 수 있었다는 말이에요. 이 사물과 저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핵심적인 언어를 갖게 됐다는 말이에요. 언어를 가졌다는 말은 구분했다는 말이에요. 본질을 뚫었다는 말이에요. 아담은 그걸 할 수 있었어요.
- 말의 세가지 속성 : 2. 생각을 대화, 나눈다.
그러고 났더니 갑자기 생뚱맞게 뭐라고 하냐면요. 이름을 다 짓고 난 다음에 뭣이 허전해요. 내가 말을 만들어 놨더니, 이름을 지어놨더니 뭐가 궁핍함이 생겨버렸어. 그전에는 궁핍하지 않았어요. 아담은 그걸 딱 알고 (신에게) “대화를 나눌 짝꿍을 만들어줘요.” 라고 했어요. 하와, 그것이 여성이냐 남성이냐 이 의미보다 훨씬 강력한 것은 대화를 말을 나눈다는 거예요.
- 말의 세가지 속성 : 3. 인식이 명료해진다.
언어가 가지고 있는 첫 번째 속성은 내적인 것들을 드러내기도 하고 외부의 사물에 대한 인식을 이름으로써 명명할 수 있는 것으로서 가져요. 그다음에 언어는 그 명명하는 이름을 갖게 되는 순간 그것을 갖기 전과는 다른 상태의 영향을 받는데 언어 때문에 그에 대한 인식이 더 뚜렷해져요. 여러분 한번 꼭 돌아가서 생각해 보세요. 내가 느낌으로는 있는데 아직 그것을 적당히 표현할 만한 어휘를 아직 못 찾았을 때와 그 어휘를 찾게 되어서 할 때는 인식의 명료함이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어떠냐면 말은 있어도 계속해서 나누어지지 않으면 사라져요. 사라져요. 힘을 못 써요. 그래서 세 번째 기능은 언어 자체가 인간에게 자신이 갖게 된 인식을 그 어휘를 갖게 되는 순간에 보다 질서 있게 만들고 보다 뚜렷하게 만들고 명료하게 만드는 성질이 있어요. 이것들이 있어야 이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그 이야기에서 놓고 봐보면 말 언어는 어떤 성질이 있냐면 거꾸로 가볼게요. 소통을 전제로 해. 그럼 말을 어떻게 배우나요? 아담처럼 저것은 뭐라고 뭐라고 이렇게 못하고 말을 어떻게 배워요? 관계하면서 배워요. 말은 절대 따로 배울 수 없어요.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유일하게 관계하는 사람으로부터만 배울 수 있어요. 그런데 이 관계하는 사람이 말을 어떻게 하느냐라고 하는 것들이 그 아이가 어떻게 말을 배우느냐에 아주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겠죠. 말 중에 참이 아니라 거짓인 말도 있습니다. 거짓인 말이라는 것은 몰라가지고 하는 것을 거짓이라 하지 않습니다. 실제하고는 다른 줄 알면서도 하는 말, 이게 거짓말이에요. 너 거짓말했어라고 하는 이런 말은 실은 참이 뭔지 알아. 그런데 그걸 다르게 말하는 거 이걸 거짓말이라 하죠. 그런데 그게 참인 줄 알고 잘 몰라서 하는 말을 거짓말이라 하지 않고 그건 틀렸어하고 말하죠. 틀린 말과 거짓말은 다르죠. 그래서 아이들이 올 때에는 말 자체를 모르고 왔잖아요. 그러니까 그것이 참말이든 거짓말이든 할 줄 몰라요. 말 자체를 못하니까요. 그럼 거짓말을 어떻게 배울까요? 그 관계된 사람의 거짓말로부터 배워요. 유일하게. 그리고 슈타이너는 그랬어요. 인간은 거짓말을 할 줄 못하는 상태였다. 근데 여기(지상) 와서 거짓말을 보면 배울 수 있다. 첫 번째로 아이가 경험하는 거짓말은 대부분 다 엄마의 과장된 소리다. 기쁨은 요만큼밖에 안 되는데 엄청 기쁜 것처럼 말하는 것. 자신의 내적 상태와 실제로 하고 있는 말이 다른 것이 거짓말이다. 그래서 옳은 것 그런 것에 너무 불안해해서 안 틀리려고 하는 것보다는 모르면 모른다 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참말이죠. 있는 대로.
우리는 이제 거기로 나아갈 게 아니라 일어서서 한번 걸어볼 거예요. 걸어보면서 말을 하면서 뭘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하는 것의 차이들을 조금 경험해 볼 건데 한번 일어나 볼까요?
(활동 : 걷기, 8걸음 앞으로, 7걸음앞으로1걸음뒤로, 6걸음앞으로2걸음뒤로 …. 1걸음앞으로7걸음뒤로)
- 말하기에 대해서 : 빨리 말하거나, 느리게 소리가 작게 말하는.
그럼 이 이야기로 시작을 해볼게요. 성인을 기준으로 해서 두 유형의 어떤 언어를 볼 수 있는데. 한 언어는 그 사람이 낱말로 치자면 명성이라고 이야기하는지 그것이 명산인지 명선인지. 이 뒷말이 보통 때는 괜찮다가 가끔씩 그 말을 좀 다르게 발음을 해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걸 볼 수 있어요.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는 말이 나와버린 게 아니라 약간 좀 다른 말을 쓴 거예요. 근데 큰 차이는 없어요. 큰 차이는. 그 사람의 말의 특징을 잘보면 일단 진행 속도는 빠르지 않은데 말 자체는 빨라요. 그래서 뒤에 나와야 되는 말이 앞에 지금 해야 될 말을 쳐요. 그래서 실은 그 발음을 내가 어떻게 정확히 딱 마무리를 지었는지 구분이 안 된 상태에서 해버릴 때들이 있어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말을 하냐면 말 하는 게 어떤 뭐랄까 능숙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고 생각이 어떤 정돈이 안 돼서 그런 게 아니고 1차적으로는 혈류의 속도가 굉장히 빠른 겁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감정에 영향을 엄청 많이 받아요. 그러니까 금방 옥타브가 올라가 버려요. 그 사람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이랑 하다보면, 식당 같은데서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이야기의 내용이 어떤 거냐에 따라서 옥타브가 올라가(는데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몰라요. 그것은 상대적으로 빨리 혈류 속도의 변화가 와버리는 거예요.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게 호흡인데, 호흡은 감정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죠. 그러니까 아이가 발음을 똑 떨어지게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일단 교사가 생각을 해야 될 것은 뭐냐 하면 맞는 말을 하느냐가 지금 관심사가 아니라 그가 준비된 말을 하느냐예요. 여기(입)에서 소리가 나올 때 그렇죠. 근데 혈류 속도가 빠르면 준비가 아직 미처 다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꺼내버려요. 그게 1차적으로 봐줘야 될 문제예요.
그다음에는 그 혈류 속도가 너무 느려서 잘 안 들리네. 소리도 작기도 하지만 확실감이 없어요. 그래서 진짜 그래?라고 하면 물러서 버려요. 이것은 여기서 이렇게 만들어질 때 실제로 완전히 안 만들어진 상태들이 지금 반복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면 인식을 할 때에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해요. 살짝 대보고 확실히 확신을 가질 때까지 안 가요. 그게 습관처럼 언어로 사용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아이들을 도와야 돼요. 왜냐하면 그건 습관이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이렇게 강하게(손을 맞부딪히며) 어딘가를 닫고 딛고 그때 발음은 그렇게(강하게 맞부딪히는만큼) 소리를 내고 해봐요. 지금 후자의 경우 위에 아이 같은 경우에 있어서는.
그다음에 전자의 아이는 굉장히 몸도 민첩하고 잘 돼요. 근데 너무 덮치듯이 진행돼 가잖아요. 그럼 그 아이는 자꾸 부딪히고 떨어뜨리고 이런 의도치 않은 실수를 매우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조건 자체가. 그럼 그 아이를 도와야겠어요. 근데 말이라는, 언어라는 그 매개를 통해서 좀 돕고 싶어요. 그러면 아까 후자의 인식을 할 때 정말 그 땅에까지 가서 진짜인지 아닌지 내가 풀 수 없는 것들 중에서. (예를들어) 잡초를 뽑을 때 보면 막 섞여 있고 내가 살려놔야 될 것들은 거기에 몇 개가 있어요. 그러면은 이것을 하나씩 내가 확신감을 가지고 딱 이건(안 뽑아야하는건) 진짜 안 뽑을거야. 내가 뽑아야 될 거 말고, 얘는 확실해. 이렇게 뽑을 때 하고 그냥 그런지어쩐지 모르는데 뽑을 때 이 손의 상태는 완전히 달라요. 딱 잡아서 이건 확실해라고 이렇게 딱 뽑는 것하고 같은데, 그것을 소리를 낼 때의 방식을 확실한 동작과 확실한 소리로 내게 하는 연습으로 충분히 배울 수 있어요.
그다음에 아까 뒷말에 앞말을 덮치듯이 (하는 사람은) 생각이 워낙 빠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을 완전히 조형을 해가지고 소리가 나올 때 여기서 완전히 만들어진 다음에 나와야 되는데 안에서 나온 느낌보다는 이 사람이 밖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든단 말이에요. 아이들이 말하는 걸 보면 안에서 준비돼서 똑 나오는 아이가 있고 말을 하는 중에 조형을 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거 잘 봐야 돼요. 그러니까 행동도 사고도 마찬가지로 생각이 확실히 정리되고 난 다음에 그 생각에 의해서 행동이 결정이 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하면서 이것을 조정을 하는 그 현상들이 있단 말이죠. 그와 같은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뭐가 필요했냐면 자기 호흡에 대한 일종의 인식이 필요해요. 그건 천천히 느리게. 동작을 천천히 느리게 확실하게 이걸 지속적으로 연습해야 돼요. 민첩성은 아주 잘 쓰기 때문에 천천히, 천천히. 그래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여기서는 동작을 천천히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동작에 어울리는 말을 천천히, 천천히. 그래서 하나 둘(소리 하나할 때마다 한 동작을) 이렇게 해서 하도록 접근해 볼 수 있어요.
- 언어와 눈마주침, 초점 맞추기
그래서 언어는 이제 내가 어떤 바깥에 있는 또 내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에 대한 것들을 포착을 했고 그 포착된 것들을 이름 지었어요. 그렇게 해서 나아간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첫 번째 언어가 언어다워지려면, 즉 소리가 아니라 내(자아)가 모아져서 내 것으로 자아가 딱 투영된 말이 되려면 첫 번째로 작업해야 될 게 뭐예요? 눈 마주침이에요. 거기에 완전히 눈 마주치는 거 말이에요. 그러면 아까 빠르게 말한다는 그 아이 눈을 어떻게 돌리는지가 이제 보이겠죠. 매우 빨리(굴리고 있는 것이) 보여요. 포착하는 방식이 아주 천천히- 천천히- 따라가면서 이걸(한이나 초점을) 보게 하는 거. 눈이 초기에 이걸 할 때, 그래서 저희들 첫 이야기 또 초기 이야기에서 항시 거론했던 것이 화면은 내용과 상관없이 자아적 초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매우 불리한 조건이다. 천천히 내가 시선을 따라가면서 그 주의력을 감각 기능에 갖게 해야 되는데 (화면은) 매우 불리하죠. 그래서 건너 뛰어요. 툭툭툭툭 건너뛰어요. 이걸 한번 해보시면 연습이 꽤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사람 눈이 동물들하고는 다르게 어떤다고 했어요? (우세, 초점) 그렇죠, 우리는 세상을 하나로 볼 수 있어요. 하나로 눈만 놓고 보면요. 그런데 동물은 그렇게 안 된다 했죠. 그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눈의 형식을 갖지 않고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어버리기(세상이) 때문에 진리를 탐구할 수가 없어요. 실은 사고를 할 수가 없어요. 우리는 하나로 볼 수 있는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초기에 6개월 사이에 있는 아이들은 사물이 어떻게 보이냐면요. 하나로 초점이 맞춰서 보이는 게 아니에요. 다 열려져서 보여요. 그러다가 (동물 중) 유일하게 오른쪽 눈이 우세이든 왼쪽 눈이 우세이든 해가지고 사물을 단일하게 보는 눈과 눈마주침을 하면서 배워요. 그 눈마주침을 만약에 하지 않았다면 아이는 절대로 우리처럼 볼 수 없어요. 그 능력은 여기에 와서 문화적으로 자아를 가진 눈을 보면서 만들어졌어요. 자아를 가진 눈이 아닌 그 경험 없이, 그걸 획득한 사람은 없어요. 그런 것처럼 눈이 그렇게 해서 하나로 (촛점을) 만들잖아요. 하나로 써요. 효과적으로 두 개지만 하나가 주가 되고 하나가 보조가 되면서 어쩔 때는 이게 주가 되고 어쩔 때는 이게 보조가 되면서 말이죠. 그러고 난 다음에 소리도 그렇게 해요. 위에서(눈에서) 여기(귀) 왔죠. 여기도 마찬가지로 다 들려요. 다 들리다가 이제 그 소리에 이렇게 하나로 맞추기 시작해요. 이 맞추는 것은 이게(눈맞춤) 되기 시작해야 돼요. 눈이 그 초점을 못 맞추는 아이들은 사방의 소리에 너무너무 힘들어 합니다. 다 들려요. 우리도 다 들리지만 왜 우리가 안 힘든지 아세요? 다른 부분을 일종의 눌러버려요. 그걸 삭제해 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다 열려 있어요. 그러니 다 반응해야 돼. 그렇게 소리들의 반응이 너무 예민해서 그 소리들에 다 반응을 하려고 한다. 그러면 먼저 어디를 봐야 된다? 그 아이의 눈을 봐야 된다. 눈이 차분하게 그 초점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을 생각해야 돼요. 그다음에 이제 눈에서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여기 있고 여기(귀) 있죠. 실은 이거(귀)하고 거의 같은 선상에 여기(코)가 있어요. 이게 양쪽으로 들어오죠. 그렇죠. 그런데 이것은 실은 거의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여기에 우세가 있는 게 아니에요. 이건 하나로 들어가니까 그래서 여기 눈이 있고 귀가 있어요. 그리고 양쪽에 있는 게 뭐가 있어요? 어깨가 있죠. 손이 있어요. 그래서 우세가 눈에서 귀하고는 거의 물려 있어요. 그다음에 이제 이 우세가 확정되는 것은 18개월 안이예요. 그다음에 그러고 나면 이제 손의 우세가 이제 서서히 시작돼요. 그렇게 하다가 이제는 어때요? 발의 우세로 넘어가요. 인간은 이렇게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거, 어느 하나가 주가 돼서 단일하게 이렇게 세울 수 있는 과정으로 점점 인간적인 능력이 그 신체를 매개로 해서 연결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잘 안 돼서 곤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여러 가지 일종의 도움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가장 1차적으로 강력한 것은 그의 신체적인 움직임을 아주 건강하게 또 필요하게 생각해 봐야 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 좋은 말하기란 : 표현하고자 하는 성질과 상황과 조건들에 어울리게 말하기
언어도 마찬가지로 연습을 해볼 수 있는 건데 움직임 하면서 말하면서 하는 것, 말하면서 하는 거 아까 제가 그렇게 했어요. 오른손(공을 던지고 손에 다시 받을 때 오른손하고 말하는) 했어요. 여기(손바닥)에 닿을 때 소리 나는가 아니면 거의 닿으려고 할 때 먼저 말해버리는가 아직 떠나기 전에 말해버리는가 떠나고 난 다음에 말이 나오는가. 이건 완전히 다른 문제예요. 말과 바깥 대상에 그 어떤 것과도 초점을 맞춰서 시간의 순위를 같이 한다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주의력이에요. 그냥 그럴 거다라고 예상해서 될 수 없는 문제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이쪽(손)에서 촉각적으로 느껴지는 그다음에 근육과 신경이 느끼는 여기서 막 떠나려고 하는 그 어떤 것과 이것들은 다 지금 일종의 뇌인데, 그것들에 대한 것들이 오고 그에 입각해서 그것이 온 다음에 여기서 그 0점 몇 초 사이지만 소리가 나간다. 그다음에 여기서 딱 닿는 것이 딱 느껴지는 순간에 ‘손’ 하고 한다고요. 오른손 왼손. 그저 말을 어디에 맞게 특정이 진행되어지는 그 어떤 것에 맞게. 그러면 어떻게 맞혔을까요? 보세요. 여기서(손) 떠나는 순간에 그 어떤 것과 그 감각과 그 감각에서 생성된 내 생각. 그것들을 말로 내놨어요. 여기 하나가 있어요. 그다음에 내 말의 속도 속도가 뭐에 의해서 결정됐어요? 콩주머니 속도에 의해서 결정됐어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에요. 표현하고자 하는 그것에 어울리는 소리 값과 속도 값을 가져야 돼요. 좋은 말을 하고 철학적인 말을 하고 무슨 의미 깊은 말이 전혀 (좋은 말이) 아니에요. 말을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성질에 어울리게 하는 습관, 그게 좋은 말이다. 그러니까 고운 말 바른 말, 그것도 말의 좋은 연습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말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성질과 상황과 조건들에 어울리게 말하게 하는 거 이게 좋은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이 실은 자아가 깨어나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줄넘기를 띄워줘요. 그럼 이 아이가 하나(몸을 웅크리고 놀란듯이 뛰면서)둘 셋, 넷 어떻게 하고 있어요? (몸을 편 채로 가볍게 뛰면서) 이 줄 어떤 아이가 하나 둘 셋. 말을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저 줄에 관계되어서 내가 동작을 하고 그 동작에 어울리는 값으로 소리를 내고 이게 말연습이라고요. 이제 말연습을 고운 말 바른 말 이렇게 해가지고 나쁜 말 안 쓰기 욕 안 하기 이렇게 우리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원초적으로 말은 바깥에 있는 내지는 내 내면은 나중에는 이제 내면으로까지 나가겠지만 대체적으로 다 바깥이에요. 바깥에 있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것에 어울리게 말하는 거야. 그런데 그것을 어울리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느냐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냥 습관을 들이는 거예요. 습관을 그렇죠. 그렇게 해서 한 아이가 (줄을) 뛰고 그것을 숫자를 반 아이들이 세줘요. 그러면 셀 때 선생님이 이야기해요. 아이가 뛰는 순간 말하라고. 그게 이제 처음에는 처음부터 그것을 말하면 아이들이 긴장해버려요. 그러니까 같이 이제 선생님이 하면 우리가 같이 수를 세 줄까 이제 이렇게 해요. 그러다가 그게 하다 보면 이게 어느 정도 돼요. 이제 그 지점이 됐을 때 “야 우리 그러면 이게 뭔가 되는 것 같아.”하면서 그 소리를 어떤 순간에 딱 내기로 그렇게 해요. 그럼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잘 뛰어버려. 소리값과 소리와 움직임이 이렇게 관계된다는 것을 딱 만나는 순간 이 아이의 운동 능력이 차분해져버린다고요. 하나 둘(놀란듯이, 급하게 말하는) 소리도 어떻게 나가요? 완전히 다르게 나가요.
- 자아가 신체로 들어오는 방식 : 뻗기와 들어올리기
제가 굳이 제가 이 동작을 한 이유는 뭐였을까요? 이 동작(웅크리고 뛰는 동작)에는 자아가 훨씬 적게 있다고요. 자아는 뻗는 데 있어요. 구부렸다가 뻗는 데 있어요. 첫 번째예요. 그다음에 들어올리는 데 있어요. 자아는 두 가지 방식으로 들어간다. 하나는 뻗기 하나는 들어올리기.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식의 철봉에 매달려서 놀고. 이런 뛰기를 하고 이것도 아주 좋은, 자아가 그 순간순간에 그 아이 속으로 연결돼 들어가는 길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서 도움이 되고. 또 하나가 있다면 리어카를 끌고 무거운 돌을 들어서 옮기고 들어올리는 거 말이에요. 이 순간 다 들어가요.
그러니까 교사들은 생각해야 돼요. 우리 아이들이 어때요? 충분히 감당해서 애써 감당할 무게를 들어올리는 거(가 필요해요.) 역도가 왜 생겼을까요? 올림픽에서 왜 역도를 할까요? 지금은 올림픽이라고 하는 게 그 움직임, 그 운동이 가지고 있는 물질 육체의 측면만 남아버렸기 때문에 그 본질을 볼 수 없는데 원래 영혼적이고 정신적인 측면까지를 함께 보게 되면 왜 수천 년 전에 저것을 했는지를 얼마간 알 수 있는데. 근대 올림픽이 되기 전에 실은 근대 올림픽을 창시했던 그 쿠베르텐 역시도 그 고대 올림픽의 정신에 착안했어요. 그런데 그 뒤로 이제 완전히 육체적 의미에서 근육의 문제로만 가버리긴 했는데 예를 들어보면 그런 거였다고 했어요. 달리기를 어떤 사람한테 월계관을 씌웠냐. 달리기를 해요. 그러면 지금은 일종의 거리를 만들어 놓고 거기를 제일 빨리 달린 사람한테 월계관을 주죠. 금메달을 준단 말이에요. 오직 근육이 해낼 수 있는 최대치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것에만 그런데 고대 올림픽은 어떻게 했느냐. 얼마나 우아하게 뛰는가 했어요. 자세로서도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 사람들은 그 뛰고 있는 사람의 내적 상태를 감지하는 그것들이 있었어요. 그가 얼마나 자유롭고 얼마나 우아한 내적 상태와 그에 어울리는 뛰기를 하느냐 이 사람한테 월계관을 줬어요. 우리의 지금 달리기하고는 달라요. 그럼 역도를 어떻게 해석해요? 창 던지기를 어떻게 했을까요? 원반 던지기를 어떻게 했을까요? 그것은 완전히 다른 육체적 의미에서의 어떤 것만이 아니라 그 움직임 안에서 함께 가져야 되는 영혼적이고 정신적인 것까지가 함께 얼마나 잘 어우러져서 되어지느냐였단 말이에요. 그랬을 때 역도를 생각해 보면 일종의 형벌을 받은, 이제 너는 벌 받아 갖고 계속 지구를 받치고 있어(무거운 것을 들고 있는 시늉) 이게 누군지 아세요? 우리예요. 우리라고요. 우리는 그렇게 이 무거운 것들을 들어서 위로 올려야만 되는 숙명이라고요. 죽을 때까지도. 그런데 그 과정, 그러고 있을 때 그러고 있어야 그걸 해야 자아가 들어옵니다. 무거운 걸 들어서 올리는, 들어올리는 과정에서 자아가 들어오고, 뻗치는 과정에서 자아가 들어온다 교사들은 꼭 생각해 놔야 돼요.
아이가 아직 덜 깼어요. 약간 맹해요.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깨울 건가? 어떻게 그 아이 안에 자아 안에. (눈 앞에서 박수치는 시늉) 물론 그것도 깨우는 거지만 저는 어떻게 지금 말하고 있는 거냐면, 그의 신경 체계와 근육 체계와 그 골격 체계. 그 체계 안으로 자아가 어떻게 들어가게 할거냐의 문제로 봐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은 체질과 관련된 소화기관이나 혈액 순환과 관련된 이건 다른 어떤 차원이에요. 그런데 근육 신경 뼈 골격 이것들은 완전히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안에 어떻게 이걸 매개로 해서 깨어날 건가. 그 속으로 들어오니까요. 유일한 그걸 안내받는 어떤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신경체계 쪽 정도에만 와요. 비유를 하자면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신경체계에만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면 그 사람은 까칠해가지고 살 수가 없어요. 어찌나 번개처럼 막 이게 돼버리는지 그럴 수 없죠.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서서히 이 신경계와 그다음에 근육 골격계 속으로 (자아가) 들어오거든요. 무엇을 매개로 해서? 움직임을 매개로 해서. 특정의 움직임을 매개로 해서 들어와요.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이 점점 자신의 주인 된 의식들이 자기 삶 속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몸을 이제는 조금 더 세부적으로 봐야 돼요. 저 아이의 근육 속으로 들어오게 해야겠어, 저아이 뼛속으로 들어오게 해야겠어. 이렇게 생각하시라고. 훨씬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러면 신경계에 도움을 주지? 어떻게 하면 근육을 쓰게 하지? 어떻게 하면 그 근육과 실은 뼈를 사용한다라고 하는 것은 거의 불가분 정도로 깊이 되어 있는데, 그렇게 생각해 봐요.
- 자아의 속성과 노작의 효과
다시 한 번 아이들이 일을 하는 거. 무겁게 무엇을 나르고 끌고 밀고. 위 앞 뒤 아래. 여기 가운데 인간이 산다고요. 자아는 어떤 속성이 있냐 하면 응집하는 속성이 있어요. 제가 아까 이야기했어요. 이렇게 쭉 (팔을 위로나 양쪽으로 펼치게)하게 되면 이쪽으로(몸통으로) 강하게 응집되어지는 상태, 이 성질로 들어와요. 이거(양팔을) 쭉 펴봐요. 쭉 펴봐요. 나중에 쭉 펴봐요. 그러면 이쪽으로(몸통) 여기에 그 한계선에서 강하게 강하게 들어온다고요. 그것을 앞뒤 좌우로. 그러니까 아이들이 힘을 쓰게 하는 거. 그래서 일종의 노작이 의미가 있는 것은, 매우 또 중요한 것은 그런 거예요. 그런데 그냥 노작이라고 하는 큰 덩어리이기 전에 구체적인 오늘 일을 뭘로 줄까? 그다음에 누구한테는 뭘 해줄까? 돌 나르는 것은 누구한테 하면 더 좋을까? 이렇게 하면은 예를 들어서, 그런 것들을(무거운 것을 잘 드는) 아주 잘 하는 아이가 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무거워 가지고 쉽지 않은 아이가 있어요. 그러면 일단 일은 누구한테 줘야 돼요? 잘 하는 아이한테 줘야 돼 일단. 그러면 그 아이는 신나요. 그러고 나서 이 아이가 잘 안 되는 일을 시켜야 돼. 일단 내가 잘하는 것을 해요. 그런데 실제로 그 일이 진짜 필요한 아이는 이걸 잘 못 드는 아이죠. 그런데 그 아이한테는 그 무게감이. 그 아이는 오히려 약간 수공예나 이렇게 손으로 꼬물꼬물꼬물 해가지고 이런 것은 더 잘해요. 그렇죠. 그런 일이 1차적으로 주어지겠죠. 같은 텃밭 일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그러나 종국적으로 계속 교사는 생각하죠. 너 이것도(무거운 것을 드는 것) 해볼 수 있겠어? 라고 그다음에 이 아이(무거운 것을 들었던 아이)는 이것(작고 세심한 작업)을 해야 되지만. 어떻든 중요한 것은 방법적으로 어떤 식으로 서서히 갈 거냐라고 하는 것은 그 상황들 안에서 이제 탄력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뼛 속으로 그 근육 속으로 협응해 가지고 그 무거운 것들을 들어서 올리고 이걸 끌고 밀고 라고 하는 과정. 그다음에 집단으로 같이 밀고 집단으로 같이 땡기고. 혹시 우리 가끔 운동회나 이럴 때 보면 줄다리기를 하잖아요. 줄다리기 보면 이제 승부에 너무 영향을 받아서 실은 그걸 섬세하게 잘못 느끼는데 만약에 줄다리기를 그런 걸 하지 않고요. 큰 돌이 있어요. 이것을 밧줄로 이렇게 딱 묶어요. 그래 갖고 마을 사람들이 다 와가지고 이것을 지금 이 돌을 옮겨야겠어요. 이렇게 막 해서 옮겼어요. 그러면 모두가 박수 치잖아요.다음에 와 드디어 저 돌 치웠다! 그런데 이 줄다리기는 하고 나면 한쪽에서는 별로 기분은 안 좋잖아, 한쪽에서는 막 만세하고. 물론 그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지만 일이면 더 좋다. 하고 난 다음에 그 성취감들이 모두 함께 가니까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야 안 되겠어 너희들이 다 필요해. 이렇게 해가지고 선생님을 도와야 되는데 다 필요해. 그렇게 해가지고 뭘 옮기고 들고 밀고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 어떤 과정들이라고 볼 수 있겠죠.
[질문1]
저희 집 9살 첫째 아이가 야경증이 있었어요. 지금도 뭐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 것 같고요. (야경증?) 자다가 깨서 울고 소리 지르고 근데 이게 낮에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고. 네 그게 있었는데 지금 이제 2학년 올라갔고 올해 이제 2월에 자기가 잠을 분리해서 자겠다라고 의사를 표현해서 잤거든요. 근데 이제 한 달쯤 자니까 잠이 계속 조각 나는 거죠. 자꾸 깨고 왔다가 또 가고 그걸 이렇게 계속 했어요. 그러면서 아직 때가 아닌가 이런 고민도 들고 그래서 와서 자도 된다고 했는데 이제 요즘은 자기가 선택해서 자다가 어떤 날은 와서 자고 이렇게 하거든요. 근데 이제 그러면서 이제 많이 좋아졌고 요새는 거의 증상이 없어서 그것을 이제 그냥 잊고 있었는데 이런 증상을 보이는 아이들이 가진 어떤 특징, 그리고 이 수면과 관련해서 계속 좀 어떻게 챙겨야 할지 그런 고민이 됩니다.(혹시 음식을 먹는 데 있어서의 그 아이의 특징이 있나요?) 엄청 천천히 먹고요. 많이 먹기도 하고 그다음에 가장 특징적으로 밥을 안 좋아해요. 반찬 짜고 맵고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밥을 거의 잘 안 먹으려고 해서 엄청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고 요즘은 이제 좀 먹기는 하지만, 그리고 욕심이 많아요.
- 일단은 소화와 관련이 있어요. 소화와 관련이 있어요. 그것이 이제 생리학적인 의미에서의 소화도 물론 그렇지만 정신적 소화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그래서 중간에 깨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음식이 소화가 되면 그것들이 이제는 몸 전체로 혈액의 수레에 실려서 몸 전체로 이렇게 퍼져 나가요. 그쪽으로 딱 치환되는 순간, 이 순간이 인간에게는 잠으로 놓고 보면 숙면인데 그리(깊이) 못 가는 거예요. 다시 밖으로 나와버리는 거예요. 우선은 그 이야기한 대로 아마도 제가 전에 제안드렸던 자기 전에 등 두드려주고 쓸어주는 것이 지속적으로 효과를 가질 거라 1차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계속 꾸준히 그래주시면 좋아요. 특히나 이쪽 뒤에 보면, 이제 소화가 안 된다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몸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거 나를 놀라게 하거나 불편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거예요. 실은 다른 사람들은 그게 그렇게 불편하게 안 느끼는데 그런데 어떻든 그렇게 느끼는 것들이 1차적으로 쌓여 있는 곳이 이쪽(목뒤 등과 연결부분)이에요. 그래서 이제 쓸어줄 때에도 거기를 조금씩 부드럽게 두드려서 그쪽에서 얘가 받았던 일종의 긴장들이 여기에 많이 모아져 있어,라는 생각을 하시면서 이제 조금 두드려 주셔야 되고. 그다음에 하나는 배가 차게 하는 것을 주의해야 돼요. 그래서 배를 어떻게 따뜻하게 해서 재울건가 그래서 조금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까 계속 자면서 그렇게 있을 수는 없지만 자기 전에 여기다가 뭔가 따뜻한 것을 놓고서 있고 난 다음에 이제 어느 정도 따뜻해졌으면 놔두고라도. 아무튼 생각해 보세요. 여기가 차가울 수 있어요. 우선은 그렇게 봐야 돼. 근데 나중에 음식은 봐봐야 될 것 같아요. 음식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봐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걸 조금 먹여보면 이렇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는 지금 이야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음식으로도 약간은 도움을 줄 수는 있어요.
얼마 남지 않은 이후 시간은 아이들 관련한 서로 이야기들을 좀 주고받는 시간들을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질문이어도 좋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 같이 좀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는데요. 혹시 같이 이야기해 봤으면 하는 것.
[질문2]
저희 집의 아이들은 천지인이거든요. 다름이 있는 친구들하고 이 친구들이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을 해요. 학교 생활도 같이 하고. 근데 이런 다름이 있는 친구들이 만약에 예를 들어 본인들은 같이 살기 위해서 10가지를 해요. 근데 그 다름이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우리 어른들의 눈에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범위와 얘가 할 수 없는 영역을 어느 정도 판단하고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청소년기에 있는 아이들이 그 친구들을 (이해할 때) 자기와 같은 똑같은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하는데 같이 살면서 일을 나누었고 생활을 해야 되는데, 이제 그런 부분에서 어른들이 다르게 적용하고 있는 그런 규칙들을 본인들이 여기 배움터에 있으면서 경험을 했어요.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과 어려움들이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걸 마음 안에, 내적으로. 그래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부모나 학교(에 어떤 것이 있을지) 이 아이들의 힘겨움도 있어요. 그러니까 그것이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는 불합리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피해를 보는 것 같고 무한히 희생하고 있는 것 같고. 그런 것들을 이제 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어려움들, 이런 것들을 어른들이 이 청소년 시기에 있는 이 친구들한테 어떤 시선을 가지고 어떤 말을 해주는 게 좀 도움이 될까. 그게 좀 고민이에요.
- 맞아요. 그 아이들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 아주 간단치 않아요. 맞아요. 거기다가 어른들이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요. 맞아요. 어른들은 자기들은 어쩌는지는 모르나 우리한테 아무튼 좋은 이야기만 해요. 나는 동의할 수 없는 순간들이 너무 많은데 그게 앞에 있는 거잖아요. 그걸 정말 실제로 이해해 주고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어야 돼요. 따로 어떤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말이예요. 그걸 실제로 이해해야 돼 하려고 해야 되고 그래서 이제 그 시간은 매우 중요한데 그건 함께 있으면서 살 수는 없어요. 함께 있으면서, 그러나 우리의 그 아이를 따로 우리가 돌보듯이 이 아이들을 따로 돌봐야 돼요. 1 대 1로. 그룹으로 하면 안 돼요. 1 대 1로. 그래서 1차적으로는 충분히 같이 그 답답함 억울함을 “나도 그래 진짜 힘들 때 많아” (라고) 실제로 그렇잖아요. 그건 있는 것이고 선생님도 그렇구나. 그리고 우리가 그렇다는 거 알고 있구나. 그리고 그게 나쁜 게 아니라 현실로 있는 우리의 힘듦 자체로 받아들여지는구나. 이게 여러 그렇게 해내야만 되는 거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긴 한데 그래서 그냥 참고 이상으로 선생님이 말할 수 없긴 한데 하면서 여러 어떤 접근들은 좀 해야죠. 그러니까 이렇게 봐보면 우리 화단에 이제 철별로 꽃들도 피고 또 싹도 내고 그러잖아요. 그랬을 때 보면 4월 돼야 피는 꽃도 있고요. 또 한참 6월 지나야 피는 꽃도 있고요.
- 제가 알고 있는 버찌 이야기가 있습니다. 벚꽃이 봄이 되자 아주 활짝 피었어요. 그런데 옆에 사과나무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벚꽃나무가 그러죠. 야 봄이 됐는데 넌 뭐 하고 있어? 얼른 일어나. 그런데 사과는 조금만 기다려줘 이렇게 해요. 이제는 벚꽃이 만개하니까 사람들이 막 와서 찾아왔어요. 그러니까 벚꽃이 봐봐, 내가 이렇게 꽃을 피우니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이렇게 찾아오잖아 너도 좀 서둘러 봐봐 그랬더니 사과가 조금만 기다려줘 그랬어요. 그리고 꽃이 다 지고 나니까 그 꽃 사이에서 열매가 쏙 나왔고 버찌가 익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때에도 아직 사과는 꽃도 피지 않았어요. 그런 어떤 이야기들을 쭉 가서 그런데 버찌는 일찍 꽃피고 열매 맺어서 이제 떨어지게 되었죠. 근데 버찌는 오랫동안 저장을 할 수가 없어요. 그때에만 딱 먹어야 돼요. 근데 나중에 그렇게 꽃 피고 열매 맺게 된 사과는 겨울 내내 저장해서 먹을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어요. 버찌가 나은 것도 아니고 사과가 나은 것도 실은 아니에요. 각각 그렇게 시기별로 차이가 있는 건데 그렇게 이걸 이해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 그래도 솔직하게 그럴 때마다 기다려줘야 되는 조건이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아요. 그래서 속상하고 어쩔 때는 억울하기도 하고 이럴 수 있지만 그래도 그 외에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다려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그렇게 아주 개별적으로, 개별적으로 같이 이야기를 해 봐야 돼요. 그래서 그러니까 내 안에 우선 그런 것들이 받아들여져야 내 안에 더 큰 나가 작동될 어떤 힘을 조금 얻잖아요. 근데 그거를 우선 눌러놓고 이놈을 막 하라고 하면 항시 억울함을 주장하게 돼 있죠. 안에서 어떻든 제가 다른 어떤 말씀을 드릴 수는 없는데 개별적으로 지속적으로 그에 관련된 어떤 것들은 아이들에게 살펴져야 됩니다. 그리고 굉장히 그 내적인 성질이어서 집단으로서 이렇게 규정하는 식으로는 실은 안에서 굉장히 분노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아이를 훨씬 더 많이 공격해요. 마음에서.
- 제가 이제 빛담아이들 과정에 한 아이가 그렇게 조금 어떤 의미에서는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굉장히 예민해져 있는 나이 때, 여학생들이 얼마나 막 그 원성이. 거기에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했을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어쨌든 지속적으로 들어야 된다고 생각했고 그리고 그걸 꼭 해내야만(한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결론이 안 난 상태로 대화가 끝나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스트레스가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상대적으로. 지금도 그 동창회 안에서 봐보면 그때 이야기를 할 때에 그들의 눈빛과 표정들을 자기들끼리 그냥 표정이 이렇게 되면서 그러죠. 그럴 수 있죠. 그런데 한쪽에서는 돌아봐지는 측면들이 많이 있나 봐요. 그때 내가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조금 그랬네, 이런 게. 그러나 여전히 그래도 그때 그랬던 것은 나는 진짜 아니여, 이런 게 여전히 있지만. 그건 누군가가 들어줘야만, 누군가가 개선된 그 아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자꾸 들어줘서 그 아이 스스로가 그 시간들을, 그 알을 깨는 시간들을 갖도록 기회를 줘야 되는데 우리가 먹여버리면 안 돼요. 진짜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줘야 돼요. 그래서 모두 이제부터 이렇게 하자 이렇게 결론 내기가 아주 쉽지 않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점심시간도 잊고 열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두손 모아.
첫댓글 세상에 세상에 ..어찌 그리 긴 얘기를 또박또박 !
시간내어 단편소설 읽는 마음으로 꼭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
ㅎ ㅎ 오늘도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