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문디야/ 권기호
태백산 돌기로 내려온 지판은 오래전 문경암층 방향 틀어
바람소리 물소리 이곳 음질 되어 영일만 자락까지 퍼져있었다.
어메요 주께지 마소 나는 가니더 미친년 주것다 카고 이자뿌소
부푼 배를 안고 부풀게 한 사내 따라
철없는 딸은 손사래치며 떠나는데
아이고 저문디 우째 살라 카노 아이고 저문디 우째 살키고
인연의 삼배끈 황토길 놓으며 어메는 목젖 세하게 타고 있었다.
호박꽃 벌들 유난스런 유월 느닷없이 남의살 제 몸에 들어와
노을빛 먹구름 아득히 헤맨 딸에게 어메는 연신 눈물 훔치며
맨살 드러낸 산허리 흙더미 내리듯이 마른 갈대소리 갈대가 받듯이
토담에 바랜 정 골짜기에 쌓을 수밖에 없는데
세월 흘러도 신생대 암층 고생대 지층이 받쳐왔듯이
풍화된 마음 먼 훗날 만나게 되면
아이고 이 문디 우째 안죽고 살았노 아이고 어메요
우리 어메요
맨살 부비는 산허리 소리 반갑게 울부짖는 것이다.
- 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 한국시인협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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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101명의 시인들이 각자 자신이 태어나서 성장한 지역의 사투리로 쓴 시를 시인협회가 모아 재작년 현대시 100년을 기념하여 펴낸 방언시집 가운데 한 작품이다. 사라져가는 우리 사투리 보존 운동의 일환으로 출간된 이 시집에는 각 지방 독특한 언어의 정겨움과 리듬감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시인들은 누구보다 우리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보존과 발전에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로서 사투리 또한 보존가치가 충분한 우리말의 일부다.
그런데 현행 표준어 일변도의 어문정책을 폐지해 달라는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문인들 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투리 보호와 육성에 앞장을 선 '탯말두레'란 단체가 있다. 그들은 사투리를 사전에도 없는 ‘탯말‘(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탯줄을 통해 배운 말의 뜻)로 고쳐 부르면서 '서울말'을 표준어로 정한 현행 어문규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비표준어 사용자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현 어문정책은 국민의 기본권과 평등권, 교육권, 행복추구권을 명백히 침해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송은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한 현행 국어기본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지난 5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결국 기각되고 말았다.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지는 못했지만 이런 노력과 관심의 영향으로 국립국어원 등 정부기관에서도 표준말과 사투리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점차 벗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각 지방의 문화 행사 때 마다 ‘사투리 경연대회’가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고, 경북 에서도 ‘경북 민속 문화의 해’를 맞아 지역 사투리 보존 및 전승의 필요성을 일깨우고 사용자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경북 사투리 경연대회’가 개최되어 오는 9월12일 경주엑스포공원에서 그 본선이 열릴 예정이다.
부추와 정구지는 같은 것이지만 경상도 사람에겐 ‘부추 전’보다 ‘정구지 찌짐’이 더 맛있다. 마찬가지로 이 시도 표준말로 번역해서 읽으면 그 맛과 감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께지마소’를 ‘말씀하지 마세요’라 한다면 그 사실성의 실종은 물론이고 시의 맛이 살지 않을 것이다. 지역 말은 지역 고유의 삶과 정서, 역사와 관습이 있다. 표준어라는 명분 하나로 문화적 다양성을 거부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권순진
첫댓글 "아이고~ 문디야~ "
겡상도 출신인 제게도 익숙한 말이네요.^^
세상 정겨운 말 올씨다
"보리문디"
친정엄마의 진정이 나를 울컥하게 만드네 ㆍ지금의 내 심정이라서 ᆢ
세상의 모든 친정 엄마가 그러할 듯합니다
그에 비하면 딸의 손을 잡고 예식장을 걸어들어가는 애비;의 마음은 오히려 가벼울까요...
그나름의 아픔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