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하기 / 서경희
누가 내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다. ‘구경하기’ 가 내 대답이었다. 상대는 웃었지만 실제로 나는 뭐든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구경할 때만큼 마음이 편할 때가 잘 없다.
‘강 건너 불구경’ 이라는 말이 있듯이, 구경할 때는 아무런 긴장이 작용하지 않아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느낄 수 있어 좋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 홍수가 나서 산 위에 올라가 흙탕물이 도도히 흐르는 ‘물구경’ 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을 따라 멋모르고 갔는데, 정말로 어마어마한 딴 세상의 풍경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후에도 남들이 떠드는 일이면 꼭 끼어들어 구경을 했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것을 보고 놀라는 기분이 대단했다. 구경을 해야 세상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즈음의 나는 화랑이나 박물관을 즐겨 구경한다.
그곳에 있는 그림이나 유물을 가까이하노라면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밀려온다. 호사가의 취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이 그린 그림. 남이 살아온 흔적을 이쯤에서 바라보며 내 마음의 주소를 알아낸다는 것에 즐거움을 얻는다.
가령 나는 어느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며, 또는 제일 좋은 그림인지, 그리고 내가 갖고자 하면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를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시원한 샘물을 마신다. 그런데 이 모두는 그저 마음 하나로 이루어진다. 누구의 시선도 없이 어떠한 대가와도 상관없이 오로지 순전한 침잠 속에 순수한 해방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구경하기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백화점 구경하기가 있다. 어슬렁거리며 하는 눈요기에서 나는 때로 놀라운 발견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가지고 싶은 좋은 물건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뜻밖에 새로 발견했다는 뜻이다.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가 보면 평소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또 필요 하지도 않았던 희귀한 물건들이 상상 밖으로 많이 있는 것에 놀란다. 나에게는 소용이 없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필요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매우 좋아하고, 그리하여 내 시선의 뒤에서 그것의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내가 발견한 위대한 신세계이다.
이탈리아의 어느 설치미술가가 영국 런던의 한복판에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 라는제목으로 투명 공중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방이 특수유리로 된 이 공중화장실은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어, 볼일을 보면서 거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빠짐없이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상천외한 발상이야말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구경심리를 완벽하게 꿰뚫어 본 예술가의 천부성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구경을 하면서 사람이 되어간다. 구경을 하면서 나를 떠나기도 하고, 나를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도 한다. 구경에는 사람을 즐겁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 발전의 섭리가 들어 있다. 구경을 해야 결국 구경(究竟)의 세계에도 이를 수 있다. 또 늘 구경하는 마음으로 느슨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그 느슨한 마음으로 하는 구경거리에는 그것이 가진 나름대로의 노고가 숨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끙끙대며 수고를 다하는 보잘것없는 한 편의 글이 그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진정한 구경거리가 되도록 기울이는 노력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중' 한 편의 글이 그래도 편안한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진정한 구경거리가 되도록 기울이는 노력' 이라는 문구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