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용유회 (亢龍有悔) (적선인)
항용유회(亢龍有悔), ‘높이 나른 용은 후회한다’ 고 한다
주역에도 나와 있다 하고,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 상군열전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인간과 권력 사이에 잠재된 무서운 관계를 지적하고 있는 이 명제는 사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사마천은 상군열전에서 무명의 유세객 상앙이 변법으로 진나라 군주(君主)를 설득하여 재상으로 전격 발탁되어 낙후된 진나라를 부국강병시켜 전국(戰國)의 강자로 부상시키고 천하통일의 기틀을 다지는 불후의 대업적을 남기지만 결국 자신이 도취된 권력에 벗어나지 못한 채 권력투쟁의 재물로 처형당하고 마는 비극적인 삶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사마천은 권력으로 출세한 자 권력으로 망하고 만다는 명제를 상앙의 사례를 통해 통해 엄중하게 밝히고 있다.
어제 새벽 박근혜 전대통령이 결국 구속되었다.
서울 구치소로 실려가는 박전대통령의 초췌한 얼굴이 차창너머로 찍혀 나오고, 하루종일 언론에서도 호재(好材)를 만난듯 뭇 사람이 말과 글로 온갖 이야기를 시끄럽게 늘어놓고 있다.
정작 박전대통령 본인의 말이 들려나오지 않으니 그 구체적인 심정을 알 수 없으나 감옥에 가본 사람이면 구치소에 입감되는 그 순간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과도 같은 그 순간을 저너머 딴 세계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던 공주(公主)님이 직접 겪는 모습을 보다니 우습게 보았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매운 맛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 역사이래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나타난 수많은 항용유회의 사례에 박전대통령이 몸소 하나를 더 첨가시켰다.
敗家亡身까지 감수하면서 박전대통령이 수고롭게 저지른 이번 항용유회의 사례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눈여겨 보고 배워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어느 하나 자기 것이 없듯이 권력 또한 자기 것이 아니라는 너무나 평범하지만 너무나 권력자가 깨닫기 어려운 진리이다.
또 권력자가 사라지면 바로 그 순간 이를 대신할 권력을 향한 또다른 무리들이 이 잘못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철칙(鐵則)같은 현실이다.
우리는 이 어수선한 사태속에서도 이 진리와 현실을 직시하고 곰곰이 되새겨야 한다.
박전대통령 또한 이 진리와 현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난 정권을 경계삼아 가족을 멀리 하면서까지 주의와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어느새 도취된 권력의 불가사리같은 욕망에 휩쓸려버린 채 항용유회의 길로 가고만 것이다.
박전대통령이 가버린 바로 그 순간 또다른 누군가에게 그 진리와 현실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고 대선후 또다시 항용유회의 사례를 첨가시킬 무리들이 권력을 둘러싸고 노골적인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머잖아 우리는 또다시 주인공만 바뀐 이런 똑같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게 될 것이다.
항용유회의 역사는 권력이란 가까이 않는 것이 최선임을 가르치고 있다.
또 부득이하게 가까이 하더라도 물러날 타이밍을 정확히 찾아 신속하게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현명한 선인(先人)들은 안빈낙도로 수신(修身)을 하고 또 출사(出仕)하면 공수신퇴(功遂身退)의 도를 익혀 자신을 보존하는 명철(明哲)의 처세술을 발휘했던 것이다.
사마천은 상앙의 항용유회의 대척점에 월나라 패권의 공신(功臣)인 범려의 공수신퇴를 대비시켜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공을 이루면 몸을 물러간다는 공수신퇴의 도(道)를 철저하게 지켜 천수(天壽)를 다한 범려를 통해 권력에 집착하는 무리들에게 던지는 사마천의 경고는 오늘날의 박전대통령 구속 사태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하게 되었다.
[출처] 항용유회 (亢龍有悔)|작성자 적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