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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손의 출생과 시대 상황
사사시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단지파 가족 중에 마노아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시대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 40년간 통치를 받던 시기였는데, 이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범죄한 결과에 따른 징벌의 세월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원망하다 40년 세월을 보낸 것을 기억합니다. 그 때의 광야 40년이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한 모든 상태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순종 유무에 따라 사막이든 가나안이든 광야는 존재합니다.
삼손의 출생은 아주 극적입니다. 이는 신약의 세례 요한의 탄생과 비견할 정도의 출생이었습니다. 마노아의 아내는 본래 잉태를 하지 못하는 불임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나 삼손의 출생을 예고했고, 아내의 말을 들은 마노아가 여호와께 간구할 때, 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출현하여 출생에 대해 확증해 주었습니다. 마노아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두려움으로 경험하게 되는데, 이로 부모는 삼손이 어릴 때부터 나실인으로서 자라도록 양육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삿13:24)라는 것을 볼때 하나님께서 삼손과 함께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이 자란 고향은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였는데, 그 지역은 단 지파의 거주지로 블레셋과 접경이 맞닿은 곳이었습니다. 그로 두 민족간 정치 군사적 긴장이 있을 때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었고, 또 블레셋 문화와 관습, 물자와 사람들과의 교류가 활발했던 곳입니다. 오늘날로 빗대어 본다면 두 나라 사이의 접경지역 마을이나 도시인 것이지요. 삼손은 그런 환경에서 자라면서 두 가지 양면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당시 오랫동안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블레셋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유대 민족의식 또 반대로 블레셋의 가나안 문화와 관습, 물자, 사람에 대한 매력과 끌림이었습니다. 특히 율법중심의 신앙 문화보다 자유로운 가나안 개방 문화는 그에게 아주 매력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결혼 상대자를 유대인이 아니라 블레셋 여인으로 선택한 이유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나실인이지만 안목대로 사는 인생
1.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삿14:1~3)
삼손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 한 여자를 보았습니다. 여기서 ‘보았다’라는 의미는 단순히 눈으로 보았다라는 의미를 넘어 ‘마음이 빼앗겼다’, ‘관심을 가졌다’라는 원어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의 부모는 그에게 형제들의 딸 중에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여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어찌 할례 받지 못한 이방여자를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며 나무랍니다. 하지만 그는 부모의 책망에도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3)라고 말하며 그녀를 데려오길 강력히 요청합니다. ‘좋아하다’라는 개역개정 번역은 히브리 원어에서는 “그 여자가 내 눈(소견)에 옳습니다”입니다. 이는 사사기의 암울한 영적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문구인 ‘그때에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21:25)를 연상케 합니다. 이는 삼손의 영적 상태인 암시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선택되어 태어났고, 하나님의 복과 부모의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과 부모의 가르침에 벗어나서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부르심(은사)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순종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과 순종에 있습니다. 비록 삼손은 실패와 불순종으로 살지만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을 향한 구원계획을 성취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무책임과 불순종은 삼손처럼 쓰임은 받긴해도 그에 따른 영예를 누리지 못하게 됨을 가르쳐 줍니다.
은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신유의 은사, 방언의 은사, 예언의 은사, 가르침의 은사, 병 고침의 은사, 재물의 은사 등 뛰어난 은사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은사를 받았다 하여 모두 하나님의 영광과 영예를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삼손처럼 큰 은사를 받은 자라도, 충동적, 감정적, 즉흥적이며, 불순종과 무책임으로 삶을 산다면 은사에 대한 영광과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난 이 중에는 큰 교회를 담임하고 교단 총회장을 지낸 사람이지만 불륜으로 하루 아침에 모든 영예를 잃은 자도 있습니다. 은사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은사자 중에는 성품이 거만하고 교활한 자도 있습니다. 은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선물이지, 그 은사가 있다 해서 거룩한 삶을 꼭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알 때 여러분은 미혹되지 않고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은사만 보고 따라가면 언젠가 실망과 영혼의 걸림돌에 부딪힐 것입니다. 은사는 언제든 사라집니다. 반면 성품과 열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은사만 보고 따르지 말고, 성품과 열매를 보고 분별하십시오.
은혜입은 고삐 풀린 망아지
4.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5. 삼손이 그의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딤나의 포도원에 이른즉 젊은 사자가 그를 보고 소리 지르는지라 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 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14:5~6)
흥미로운 것은 삼손이 아내를 구하러 딤나로 내려갔을 때 포도원에서 사자를 만나 찢어 죽인 사건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포도주와 포도즙, 포도의 과실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 삼손이 포도원에 갔다는 것은 나실인으로서의 경계가 허물어 지고 있음을 암시해줍니다. 또 처음 초인적 힘을 경험한 삼손이 부모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부모와 상의하기 보다,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아가는 자가 되어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 연장선 상에서 부정한 사체를 만지고 거기에서 나온 꿀을 먹을 뿐 아니라 부모에게도 드린 것은 그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불순종과 실수에도 여호와의 구원 계획은 변함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나타내줍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성취되듯이, 사람의 선과 악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 어떠한 장애도 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은 그 행한 대로 상을 받게 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삼손은 자신의 결혼 잔치에서 30벌의 옷을 건 즉흥적인 수수께끼를 냅니다. 이는 당시 문화권에서는 빈번한 풍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삼손이 결혼식 연회에서 낸 수수께기는 아무도 맞출 수 없는 기괴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비밀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수수께끼는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것에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입니다. 쓸데없는 만용과 자신감, 과시력 그리고 즉흥적 충동이 만든 수수께끼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결혼연회 일주일이 갈등과 두려움, 협박으로 바뀌게 됩니다. 친구들은 수수께기의 답을 알아내기 위해서 신부를 살해 협박하고 결국 그녀는 울고불며 삼손에게 간청해 답을 알려주게 됩니다. 협박에 의해 수수께끼에서 지게 된 삼손은 분노하여 그 화풀이로 블레셋 사람 삼십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약속을 지킵니다. 이 결혼 연회식 사건은 삼손과 블레셋의 다툼의 시발점이 되며, 이를 기점으로 블레셋과의 더 강도높고 전면적인 싸움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결혼 연회 후 삼손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본가 집으로 혼자 돌아왔습니다. 부부 싸움 후 화가 나서 친정으로 간 아내처럼 삼손이 그러했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 화가 풀린 삼손은 아내를 데리러 다시 딤나로 갑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아내는 장인이 다른 친구에게 출가시켜 보낸 후였습니다. 삼손은 이 소식에 더욱 분노하여, 블레셋 사람의 밭에 횃불을 묶은 여우 300마리를 풀어 엄청난 재산 손실을 겪게 합니다. 도무지 상식적이지 않고 기괴한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이 일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신부와 장인을 잡아 불태워 죽이는 처형을 합니다. 이처럼 삼손 개인의 미친 것 같은 사랑 싸움이 가정의 문턱을 넘어 블레셋이라는 민족과의 싸움으로 점점 확대 됩니다. 블레셋에 통치받던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런 우발적 방식으로 삼손을 통해 전개되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를 통한 민족 구원
7.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8.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삿15:7~8)
삼손은 기드온이나 입다처럼 구국을 위한 대의적 명분을 갖고 민족을 구원한 사사가 아닙니다. 그의 전쟁은 철저히 개인적 연애사에서 비롯된 분노에서 시작된 싸움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다 민족은 블레셋이 삼손의 범죄로 쳐들어오자 싸우기 보다는, 삼손을 결박하여 블레셋에 넘길 정도로 무력했고 또 삼손의 범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만큼 유다 민족은 블레셋에게 지배받고, 동화되고, 무기력해 있었습니다. 그런 철저한 외적 내적 무능 상태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많은 사람이 아닌, 단 한 사람, 그것도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사적 감정으로 날 뛰는 삼손을 이용하여 블레셋을 쳐 이스라엘을 구원토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삿15:14~20)
가정사에서 일어난 갈등과 다툼이, 친구와 이웃들로 번지게 되고, 그것이 또 마을로 번지고, 결국 국가 간의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삼손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자 나귀 턱 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이는 엄청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 일로 삼손은 사사로 급부상하게 되고 이스라엘은 40년간의 블레셋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됩니다. 삼손이 승리한 후, 심히 목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레히의 한 우묵한 곳에서 물샘을 터뜨리시고 그 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그 물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블레셋인 천 명을 죽인 초인적 삼손도, 물 한 모금 없이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는 그런 연약한 인간 삼손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
'엔학고레'. 그 뜻은 ‘부르짖는 자의 샘’입니다. 삼손은 이전에 하나님께 부르짖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초인적 힘을 떨쳤지만, 여호와께 부르짖고 구한 적이 없습니다. 엔학고레는 삼손이 간절히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는 첫 기도였습니다. 그는 응답 받았고, 엔학고레의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요7:37)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근원 되시는 주님은 삼손 같은 불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모든 자들 '엔학고레'입니다. 잠언은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고 합니다. 삼손 같이 망나니 삶을 살아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만 하면,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엔학고레의 은혜를 주십니다. 여러분도 엔학고레(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의 샘에서 목을 축여야 합니다. 생명수를 마셔야 합니다. 사사기 15장 20절은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손에 대한 총평으로 마무리됩니다.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삼손처럼 자기 소견에 따라 살았던 자를 통해서도 '온전히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결말입니다.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16장은 에필로그입니다. 삼손의 인생 후반부이며 그가 어떻게 인생의 말년을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는 블레셋 접경 지역, 소라와 에스다골 사이에 살았으며 가나안 문화와 풍습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실인로서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그의 삶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블레셋에 대한 적개심과 동시에 금지된 블레셋 문화에 대한 연모와 끌림입니다. 특히 그의 눈은 블레셋 여성에 있었습니다. 딤나에 블레셋 여인, 가사의 기생, 그리고 소렉 골짜기의 드릴라.. 모두 그의 눈에 보이는 욕망의 대상들이었습니다. 최후에 그는 블레셋에게 잡혀 눈이 뽑히게 되는데, 이는 눈에 보이는 욕망으로 살았던 그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마18:9). 삼손은 그렇게 눈이 뽑힘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부르심을 받아 영적 나실인이 된 여러분들도 삼손같이 금지된 것에 끌리는 성향이 있습니다. 삼손의 눈은 보이는 안목의 정욕이었습니다. 딤나의 블레셋 여인의 모습에 끌렸습니다. 그 끌림은 그가 초인적인 힘을 가진 사사가 된 후에도 절제되지 못하고 자신을 장악했습니다. 가사의 기생에게 들어가 하룻밤을 지내고 도망쳐 나올 때, 그는 여호와의 힘을 사용하여 유유히 빠져나옵니다. 거룩한 은사와 능력을 그는 욕망의 해소와 안목의 정욕을 위해 오용하며 영적 경계를 들락날락거립니다. 그러다 더 악화되어 결국 소렉 골짜기의 드릴라를 만난 때에는, 아예 경계를 넘어가 버립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의 초인적 은사를 거두어 가십니다.
이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하는 여인을 사랑하매(삿16:1)
들릴라는 아내도 아니고 기생도 아닌 삼손에게 ‘사랑하는 여자’입니다. 이는 단순한 육체적 욕망을 넘어, 감정적으로 정신적으로 깊이 얽히게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정신적 감정적으로 지배하며 그 힘의 근원을 세 차례나 교활하게 묻습니다. 영적 눈이 먼 삼손은 결국 나실인으로서 비밀을 고백하게 되고 블레셋에게 잡혀가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로 자신의 은사(초인적 능력)을 잃게 됩니다.
삼손은 오래전 부모에게 딤나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하게 될 때 ‘내 눈(소견)이 옳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여호와의 기준보다 자신의 소견을 따라 평생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는 눈(소견)이 뽑혔습니다. 은사인 능력을 상징하는 머리 카락까지 잘렸습니다. 삼손은 머리가 빡빡 밀린 눈 먼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상상하면, 자기의 소견대로 살다 하나님의 은혜까지 모두 잃어버려 비참한 죄인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삼손의 틀린 눈(소견)을 뽑으시고, 머리를 다시 자라게 하십니다. 욕망의 배신으로 눈이 뽑히고, 원수들에게 조롱과 멸시, 비참한 삶을 살아가며 그는 다시 하나님을 찾습니다. 뽑힌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는 영의 눈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삼손을 나실인으로 선택하신 그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레히에서 블레셋인 천명을 죽이고 목이 말라 죽을 때에 간절히 부르짖은 것 같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 간절한 부르짖음 속에 잘렸던 머리가 서서히 자랍니다.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다시 돌아오는 복선이었습니다.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기도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16:28)
삼손의 최후는 엔학고레의 부르짖는 기도로 끝나게 됩니다. 안목의 정욕에 가려 거룩한 은사조차 잘 사용하지 못한 삼손이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간절히 기도, 엔학고레의 기도 가운데 응답하시고, 그가 이스라엘의 영적 사사로서 장렬한 최후를 맞게 하셨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16:30)
사랑하는 여러분. 삼손의 생애를 통해 영적 나실인인 여러분의 삶도 삼손처럼 자가 눈(소견)에 옳은 대로 살다 실패하지 않도록 결단하는 교훈이 있길 바랍니다. 그런 삼손조차 기억하시고 엔학고레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마지막 순간까지 택한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