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리집 큰 대문과 윗채 큰방 작은방 가운데방 방이 세개 아랫채는 큰 사랑채도 있고 거기는 머슴 방 작은 사랑채 와 오빠들방 할아버지방이 있었는데 돌아가시고 난후 창고로 쓰였고 또하나 작은 방은 영우(돌아가시고나면 삼년상 모시는곳) 총 5개 좀 방이 많은 집 이었네요 앞마당과 둣마당 동산도 있고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그중 감나무가 12나무 여서 감 푸짐하게 먹고 이웃집에 많이 나눠 주셨습니다 그때 그시절엔 판매 라는게 없었어요 다 나눠 먹었습니다 어릴때 보릿고개 모르고 살았기에 그시절이 너무 그립고 부모님께 존경과 고마움 많이 느낍니다
마당 한쪽에는 개인우물 펌프 가 있었네요 냉장고가 없어 긴 줄에 매달아 우물속에 김치통과 생선 넣어두고 꺼내서 먹었던 ㅎㅎ
저 정도 초가집은 85호가 모여살던 저희동네에서도 두어집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도 제가 한살 때 새로 안채와 사랑채를 지어 일곱살 때 쯤 지붕개량들을 한다고 기술자들이 와서 기와를 만들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집이 크고 마당이 넓으니 외부에서 온 행상들은 꼭 하루밤만 재워달라 사정을 했었지요 언제가는 초입에 있는 부잣집앞에서 재워달라 사정하는 보부상부부을 보고 제가 우리집에 할아버지 혼자잔다고 데리고 왔다가 엄마한테 우리식구도 많은데 속없는년이라고 타박을 받았네요 자고가면 공짜로 밥도 먹여서 보냈거든요 나중에 그 보부상이 아홉살의 제 몸빼바지를 선물로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첫댓글 저는 대문이 있고
중문이 또 있는
집에서
살았답니다.
마당이 넓고
앞마당도 있고
뒤뜰도 넓은곳
그곳이 그립네요.
부자집 아가씨입니다
예 저도어릴때 동네 한복판에 초가집인데 부억이가 운데있는집
좌측은 우리들방 우측은. 부모님방
마당은넒은거로기억이나네요. 마당에서. 벼통갈이 벼타작 작곡다 마당에서 털엇던 기억이 나네요
저싀집은 4남매부모님 딘칸방에 부억하나입니다
저는 우리집 큰 대문과
윗채
큰방 작은방 가운데방 방이 세개
아랫채는
큰 사랑채도 있고 거기는 머슴 방
작은 사랑채 와 오빠들방 할아버지방이 있었는데 돌아가시고 난후 창고로 쓰였고 또하나 작은 방은 영우(돌아가시고나면 삼년상 모시는곳) 총 5개
좀 방이 많은 집 이었네요
앞마당과 둣마당 동산도 있고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그중 감나무가 12나무 여서 감 푸짐하게 먹고 이웃집에 많이 나눠 주셨습니다
그때 그시절엔 판매 라는게 없었어요
다 나눠 먹었습니다
어릴때 보릿고개 모르고 살았기에 그시절이 너무 그립고 부모님께 존경과 고마움 많이 느낍니다
마당 한쪽에는 개인우물 펌프 가 있었네요
냉장고가 없어 긴 줄에 매달아 우물속에 김치통과 생선 넣어두고 꺼내서 먹었던 ㅎㅎ
억수로 잘사셨내요
국민학교입학하고 워낙 못살아서 2학년때부터 김천부자집인 외갓집에서 외조모부님 의구박의 온갖 구박을 받으면 국민학교 졸업했습니다
우리집은 부산의 이층집 이였어요
뒷채도 있어서 세를 줬지요
저런 초가집은 못 보고 자랐지요
부자집입니다
장독대가 있고 감이 붉게읶어가는 5,60년대의 정겨운 시골집 모습이네요!
저 정도 초가집은 85호가 모여살던 저희동네에서도 두어집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도 제가 한살 때 새로 안채와 사랑채를 지어 일곱살 때 쯤 지붕개량들을 한다고 기술자들이 와서 기와를 만들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집이 크고 마당이 넓으니 외부에서 온 행상들은 꼭 하루밤만 재워달라 사정을
했었지요
언제가는 초입에 있는 부잣집앞에서
재워달라 사정하는 보부상부부을 보고 제가 우리집에 할아버지 혼자잔다고
데리고 왔다가 엄마한테 우리식구도 많은데 속없는년이라고 타박을 받았네요
자고가면 공짜로 밥도 먹여서 보냈거든요
나중에 그 보부상이 아홉살의
제 몸빼바지를 선물로 가져왔던
기억이 납니다~ㅎㅎ
착한 어린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