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3년 여의 어둡고 기나긴 코로나19 터널을 벗어나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일상을 회복하였다. 그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우리 동서남북산우회도 여기에 발맞춰 지난 5월 첫 산행지로 설악산 신선대를, 6월엔 치악산 향로봉 코스를 보무당당 즐거이 다녀왔다. 5월에도 그렇고, 6월에도 그렇고, 이틀 만에 버스 정원이 꽉 차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매우 고무적(鼓舞的)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막혔던 봇물이 터진 듯,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동서남북 마당에 그야말로 뭉게구름처럼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회원들 너도나도 모두 얼마나 답답했는지 반증(反證)이 되는 대목이다.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데, 고무적인 현상은 우리 동서남북만의 쾌거가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자매(姉妹) 산악회인 '진건산악회'와 '해품산악회'가 더불어 더불어 어울렁 더울렁 늘 함께함으로써 동서남북산우회가 나날이 눈부신 발전 성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자매 산악회에 항상 감사하며 사랑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되면 서로 품앗이 하듯 주거니 받거니 오거니 가거니 자주 왕래하며 사랑하길 이 자리를 빌어 소망한다.
6월 26일, 원주 치악산 산행하는 내내 하늘은 잔뜩 찌푸린 모습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계속되는 장마철이다. 오늘 우리 동서남북산우회는 171회 정기산행 날이다. 2006년 2월에 위풍당당 창립 발족하였으니 벌써 만 16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오늘 이 치악산은 7년 만에 다시 오른다. 치악산은 고봉준령(高峰峻嶺)으로 워낙 높고 험준한 산이라 ‘치’가 떨리고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악명 높은 산이라는 우스갯말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크고 높은 산이면서도 풍광(風光)이 참으로 아름답고, 숲속엔 유서 깊은 고찰(古刹)도 수없이 많으며, 따라서 애틋한 전설(傳說)도 많이 품고 있다. 치악산의 이름은 꿩 치(雉), 큰산 악(岳)이다. 물론 당연히 꿩에 얽힌 전설로 인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 “은혜 갚은 꿩” 전설을 소개한다.
옛날에 활 잘 쏘는 어떤 청년이 큰 뜻을 이루고자 활통을 메고 한양을 향해 길을 떠났다. 깊은 산속을 가는 도중 큰 구렁이가 꿩을 칭칭 감고 잡아먹으려는 위기 상황이었다. 그는 재빨리 활을 쏘아 그 구렁이를 단번에 죽여버렸다. 순간, 위기에서 벗어난 꿩은 푸드득 날갯짓을 하곤 저쪽으로 날아갔다.
청년은 계속 길을 가는데 날이 저물었다. 마침 불빛이 비치는 집으로 찾아들어가 하룻밤 묵어갈 것을 요청하니 예쁜 여주인이 허락했다. 그 여자와 앉아 얘기하는데, 여자 혀가 바늘같이 뾰족하고 계속 흔들리기에, 청년은 직감으로 구렁이가 변신한 여인임을 깨닫고 “달이 밝으니 지금 절까지 가야겠소” 하고 길을 떠나려 했다.
순간, 여인은 “네가 낮에 죽인 내 남편의 원수를 갚으려고 너를 유인했는데, 지금 내 정체를 알았다 하더라도 내게 잡힌 이상 널 살려줄 수 없다” 하기에 청년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미물인 네가 어찌 해친단 말이냐?” 하고 대항하니 여인은 다시, “만물의 영장이라면 뒤쪽 절에 달려있는 종을 저절로 소리나게 울려보아라. 그럼 맹세코 살려주리라” 말했다. 청년은 살아날 길이 없는 불안한 생각이 들면서도 당당하게, “곧 종이 울릴 테니 두고 보라.”고 말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땡땡! 하고 종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여인은 즉시 대성통곡하며 “어찌 저절로 종이 울린단 말이냐?” 한탄하고, 원수 갚지 못함을 원통해하며 큰 구렁이로 변해 사라져 버렸다.
청년이 아침 일찍 뒤쪽 절에 가보니, 꿩 한 마리가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린 채 종 아래 죽어 있었다. 이를 본 청년은 몹시 슬퍼하며 “앞서는 나 때문에 네가 살았는데, 지금은 나 때문에 네가 죽었구나.” 탄식했다.
그 후 과거에 급제한 청년은 꿩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꿩 치(雉)자를 따서 본래 적악산이던 산 이름을 ‘치악산’이라 불렀다. 그리고 꿩이 죽은 그 자리에 절을 세워 불도(佛道)를 닦으니 그 절 이름이 오늘의 상원사(上院寺)이다. 날짐승보다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배은망덕(背恩忘德) 하는 사람을 경계로 삼으라는 좋은 교훈(敎訓)을 주는 전설이다.
오늘 우리의 출발지점인 곧은재 탐방지원센터 근처엔 천년고찰 관음사(觀音寺)가 있다. 관음사는 한국 불교 태고종 사찰로 1971년 창건하여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절이지만, 통일을 기원하면서 만든 세계 최대 108 대염주를 봉안한 곳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염주 하나의 크기는 자그마치 지름 45cm, 무게 60kg으로 어마어마하게 큰 염주라 한다.
또 이 관음사에서 10분 거리에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의 묘역이 있다. 고려 말 선비로, 혼란스러운 정치를 개탄하며 치악산 깊은 곳에 들어가 은거했던 운곡 원천석(元天錫, 1330~ ?)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李穡) 등과 함께 성리학(性理學)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 조선 개국 후 벼슬이 내려졌으나 끝내 거절하고 태종이 직접 찾아왔어도 끝내 만나지 않으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굳게 지킨 훌륭한 인물이다.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忠節)을 다짐하는 노래로 만고에 빛나는 그의 시조(時調) 한 수를 소개한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節)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아쉽게도 이번엔 관음사와 원천석 묘역을 탐방하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엔 반드시 찾아보리라.
요즘 치악산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초록 잔치 풍성한 가운데 풋풋한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기화요초(琪花瑤草) 아름답고, 녹음방초(綠陰芳草) 싱그러운 여름철을 맞이하여 푸른 기운이 감돌고 여기저기 낭만과 풍류가 넘치고 있다. 지천으로 노랗게 피어있는 원추리꽃, 노루오줌꽃, 동자꽃, 말나리꽃, 형형색색 예쁜 꽃들이 제각각 자태 뽐내며 피어있다.
초록물 뚝뚝 떨어지는 짙푸른 숲 터널로 들어선다. 녹색 향연이 끝없이 펼쳐지는 솔바람의 속삭임, 나무숲 사이로 솔솔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맑은 솔향을 가슴 깊이 들이마신다.
울울창창 무성한 숲, 특히 하늘 향해 쭉쭉 뻗은 소나무 숲, 골짜기엔 환상적인 비경(秘景)을 자랑하며 물소리가 한결 시원스레 들린다. 곳곳에 소(沼)와 폭포(瀑布)가 참 많기도 하다.
옛날 그 옛날에 넘나드는 나그네들 쉬어가며 시원한 막걸리 한 잔씩 마시던 곳 ‘주막거리 쉼터’ 흔적도 남아있네. 우리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법, 들꽃님표 도토리묵에 막걸리 한 사발씩~~ 한결 시원하여라.
옛날 횡성 ↔ 원주를 걸어서 넘나들던 곧은재(889m)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길 시작~
삼거리를 지나 갈림길에서 다시 향로봉 쪽으로 계속 올라간다.
30분 정도 올라 마침내 오늘의 최종 목적지 향로봉(香爐峯, 1043m) 접수...멀리 구름모자 쓴 비로봉(毗盧峯)도 보이네.
인증샷 찍고 둥그렇게 빙 둘러앉아 냠냠 점심 식사~
이제 하산 시작, 다시 향로봉 삼거리로 내려와 부곡폭포 쪽으로 방향 전환하여 계속 내려온다. 기나긴 하산길이다. 온갖 새들이 반가워하며 일제히 소리 높여 합창을 한다. 이 기분 최고....‘아리랑 처녀’ 노래가 절로 나온다.
♪~깊고 깊은 숲속에 온갖 산새가
저마다 흥에 겨워 노래 부르건만
천년만년 살자하던 그 님의 목소리는
어이해 안 들리나 나를 울리나
아리아리 아라리요 아리랑고개 위에서
오늘도 님 기다리는 아리랑 처녀~♬
한참을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와 함께 시원한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고 했던가. 수량이 풍부하여 물소리 또한 시원스럽다.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瀑布)가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문득 우암 송시열의 재밌는 시조(時調)를 읊조린다.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錄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절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물속으로 들어간다. 첨벙첨벙~~ 족탕에 알탕에 한바탕 웃음보따리~♬
하산하는 길에 오늘 우리 동서남북 처음 나온 분과 도란도란 얘기하던 중, 동서남북 첫인상에 대해 물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 모두들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점심시간에 술도 몇 잔 마셨는데, 참 좋다. 앞으로 자주 나와야겠다.”
오늘도 치악산 명품 보약(補藥) 한 첩 섭취하였다.
7월 24일, 명성산(鳴聲山) 산행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첫댓글 우리 자매(姉妹) 산악회인 '진건' '해품'과 더불어 더불어 어울렁 더울렁 함께 즐거운 산행을~♬
맛깔난 산행후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