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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작가들과 어떻게 만날까
강병철(소설가)
들어가면서
초로의 사내 하나가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건널목 앞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여중생 무리들을 만난 겁니다. 비틀거리는 교복들의 모습이 조금은 거슬렸지만 그저 무심할 뿐이었습니다. 그 중 한 소녀가 사내를 보는 순간 화들짝 건물 2층으로 피했는데, 하필 사내가 가려는 그 세탁소 계단이었습니다. 그뿐입니다. 그 엄청난 폭염이 간신히 지나가고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문장처럼 ‘맑고 청량한 초가을 햇살’의 그 계절이었습니다. 이제 아래의 시 한 편을 읽으며 활자에 없는 행간은 그냥 구두로 전달할까 합니다.
아버지의 글은 풀냄새가 없어요
술에 찌든 잉크자국 핵심 찌르던
딸아이가 늦는구나 참을 수 없는 소심증으로
안절부절 거리의 사내로 돌입한다
우산을 들고 정류장에 선 아비
어깨 위로 비행기 굉음이 쏟아지자
그림자에 눌린 모래알 비명으로 아수라장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소스라치는
강박증 사내 달팽이처럼 오그라든다 그때
저만치 생머리 소녀가 아, 달려와 품에 안긴다
아부지 또 헤매시나요
기다림이 너무 힘들어 안개 속에서
나중에는 죽고 싶었어 증말이야
지구가 폭발할 수도 있고
작대기 놓치면 하늘이 무너지는 거야
아비의 이마에서 가마솥 같은 땀이 흐른다
그는 끝까지 인질로 잡고 싶었는데
기실 세포분열이 두려운 것이다
예고된 독립 떠올리며 벌벌 떠는 것이다
「강박증」 전문
2.
이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충남청소년문학상에서 6년째 멘토에 임하는 작가 강병철입니다. 동시에 저는 학교 현장에서 36년 근무를 마치고 이제 정년퇴임한지 4년차에 이르는, 퇴직교사 치고는 풋풋한 초로임도 고백합니다. 처음 발령은 논산의 사립 쌘뽈여고에서 근무를 했고 그 후 신산의 소용돌이를 거치면서 10여 곳의 학교를 전전하며 교편을 잡았습니다.
80년대 초 이른 봄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날이었던가요. 그 학교 교문에 들어서자 종소리 울리는 계단에서 앞치마 입은 여학생들이 청소하는 풍경들이 그리도 아름다워서 문득 ‘훌륭한 교사가 되고 싶다’는 사명감으로 몸이 뜨거워졌답니다. 첫 발령지의 그때는 흰소리도 많이 쳤지요.
“나는 이 학교에서 가장 젊은 선생이다. 음하하.”
여고생들의 소용돌이 눈빛을 느끼면서 펄없이 오버 액션에 취했던 기억들이 지금은 부럽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후 36년 세월이 빛의 속도로 흘렀고 10 여 곳 학교를 전전하다가 서산의 대산고등학교 7년 근무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임을 했습니다. 원래 공립학교는 5년마다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저는 마지막 5년차에 정년이 2년 남아서 그대로 머물러 있게 되었지요. 정년퇴임이라는 세월이 올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는데 이제 그 퇴임식의 기억조차 아득한 과거가 되었네요. 그런데 고희(古稀)를 몇 년 앞둔 지금까지도 꿈속에서는 아주 가끔 현장교사로 등장해서 어리둥절한 혼란을 일으키기도 하지요.
‘아차. 5분 뒤에 국어시험 시간인데 시험문제 출제를 깜빡했냇!’
꿈에서 깬 뒤에도 10분가량 비몽사몽 안절부절하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휴우, 꿈이구나. 살았닷.’ 하고 가슴을 쓸어내기도 합니다. 남자들의 경우, 군에서 제대를 하고 십여 년 세월이 지나도록 입영장정으로 끌려가던 그 가위눌림의 그런 연장이겠지요.
아무튼 여기 오늘 새롭게 멘토로 등장하신 옛 ‘역전의 동지’들을 만나서 반갑구요. 그리고 현장의 젊은 피 스승들을 만나게 되어 가슴이 벅차고 행복합니다.
흔히들 글쟁이는 배고픈 직업이라고들 하지요. 지난 날 –베스트셀러에 진입하지 못한-숱한 선배 작가들이- 경제적 한계에서 헤매곤 했는데 지금은 쬐끔은 몇 개의 시스템으로 도움을 주는 상태이니 세상이 조금은 좋아졌다고 할 수 있지요.
지금 저는 전국의 작가촌을 전전하며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 서울의 <연희문학창작촌> 제주도의 <마라도 창작 스튜디오> 등에 입주한 바가 있으며 현재는 전남 담양의 <글을 낳는 집>에서 집필과 휴식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산보하고 마시는 여유로운 정황이지요. 그건 그렇고.
3.
시가 직관과 감성의 산물이라면 소설은 노가다 근성의 기약 없는 경쟁입니다. 그래서일까, 시인과 소설가는 각자 체질이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시인들은 책을 읽든 산보를 하거나 술자리의 모든 환경들이 시적 자산이 될 수 있지만 소설가들은 비슷한 조건이 공유되면서도 어쨌든 긴 분량의 원고지를 채워야 하는 부담으로 날마다 시간에 쫓기는 트라우마에 익숙해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인들 혹은 현장의 교사들은 대개 소설가 대신 시인을 지망하는 이유가 됩니다. 아무래도 긴 글을 소화해야 하는 산문쟁이들이 조금 더 고달프지요.
구태여 뇌의 구조를 ‘암기력과 기억력’으로 나눈다면 각자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지요. 암기력은 학습과 연관이 되어 노력의 여하나 혹은 환경에 따라 학자가 되고 사업가가 되고 착한 농부나 기획력 있는 CEO가 되지요. 반면에 기억력은 감동의 산물입니다. 어떤 사물을 보거나 상황에 대한 빠른 스캔과 디테일한 정리로 문장화시키니 그게 ‘작가의 몸’이 되는 기반이랍니다.
우리가 소설의 3요소를 ‘주제, 구성, 문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소설 작법은 이 세 가지 색깔의 조화로운 배합입니다. 그 중에서 ‘리얼리즘’은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문장이 되겠지요. 이 허구와 리얼리티의 조합이 소설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낱낱의 사물에 대한 정확한 기억과 자기 소유가 문학적 자산이 됩니다. 심리를 기록하는 것이 ‘모더니즘’이고 그 모더니즘을 비판하며 비역사와 비정치성을 내세우며 주변적인 것들을 부상시키며 탈 장르화 시키는 것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르지요. 마지막으로 사실로부터 탈출하려는 것은 현재 젊은 작가들과 우리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판타지’가 되겠지요. 우리 청소년들의 작품 중에서도 판타지가 많이 등장합니다.
모두 아는 얘기지만 소설의 분량까지 나누어 보겠습니다. 콩트는 20매 내외로 손바닥 소설이라고 해서 장편(掌篇)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단편은 60-80매 정도인데 우리 청소년문학상에서 요구하는 분량이 되겠습니다. 우리 응모자 꿈나무들이 가끔 너무 긴 분량으로 도전해서 난감한 경우가 있었으니 미리 공지를 해주는 게 좋겠네요. 장편(長篇)소설은 800-1000매가 일반적인데 소설가들의 집요한 승부처가 되는 분량입니다. 장편 응모에서는 심사위원들을 위해 시놉시스(줄거리 요약)를 요구하지요. 최근 디지털 시대 이후에는 독자들도 조급해지면서 ‘경장편’이라는 500매 가량의 분량으로 줄이는 경향이 있답니다. 조금 다른 각도이지만 연작소설이 있지요. 같은 주제나 같은 인물들을 이어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그런 경우이구요. 대하소설은 구성과 규모가 큰 역사소설이나 탐정소설 등이 되겠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김성종의 『여명의 눈동자』, 홍명희의 『임꺽정』 등이 그 종류이구요.
4.
저는 문단 경력으로는 원로급 연륜이지만 아직도 철이 없어서 현장에서 뛰는 걸 즐거워하는 작가이며 현재 6년째 충남의 청소년들과 문장의 논법을 아웅다웅 토로하는 멘토 교사입니다. 덕분에 청소년 소설 혹은 젊은 작가들의 문법에 대하여 나름 눈이 뜨는 이력도 터득했지요.
그러니까 청소년 소설은 기성세대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남을 몸으로 체득했답니다. 여기서 기성세대라 하면 1980년 광주항쟁을 몸으로 겪은 소위 ‘586’ 이전의 ‘70-80’들을 말하는데 그들 나름의 체질이 있지요. 격동의 시국을 살아온 기 세대는 결핍, 희생, 순결, 헌신 그리고 나라와 역사를 위해 몸을 투신하려는 정의감 등을 자존감으로 규정하며 살았지요. 주로 개인의 양심과 현재의 휠링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와는 다른 양상이지요. 그러니까 청소년 멘토 작가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젊은 심장으로 변신해야 한답니다.
긴 세월 충남청소년문학상에 참여했던 저로서는 안타까움과 감동의 혼재였음을 고백합니다. 교과서 형태의 틀에 박힌 문장이 나오는가 하면 느닷없는 반전으로 멘토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글도 있었답니다. 도중에서 포기하는 학생들은 견인해야 하고 너무 우쭐한 예비 작가는 다독다독 숨을 고르게 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그 예비 작가들과의 인연이 아직도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서 제 2의 스승으로서 인생을 사는 느낌도 생기구요.
응모작품은 하이틴 소설이 절반 정도였구요. 내용은 사랑과 우정, 학교폭력과 교육제도에 대한 절망과 극복과정을 그린 작품들입니다. 컴퓨터게임과 운동경기 그리고 가족 간의 갈등도 과감하게 펼쳐내며 깜짝 놀라게 하는 반전의 묘미로 보여준답니다. 가끔은 19금에 가까운 소설도 등장해서 고개를 끄떡거리면서도 선생이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메스를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너무 나가면 안 돼’ 하면서요.
또 하나는 외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다는 양상입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사랑과 전쟁도 등장하구요. 제가 예비 작가들에게.
“독일 사람들의 이름, 스페인과 소말리아, 아프카니스탄이나 우크라아나의 지명과 사람 이름들을 어떻게 만드시나요?”
갸우뚱 질문하니까.
“그거 구글 치면 다 나와요.”
간단하게 답변하더라구요. 아, 그렇구나, 하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답니다.
그러나 청소년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로봇이나 AI가 엄청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유년시절에 간신히 만났던 킹콩이나 황금박쥐처럼 두들겨 패는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예상 밖의 섬세한 감성으로 미래 세계에 접근한다는 점입니다. 철가면을 쓴 올드 로봇과 인간의 피부를 가진 후레쉬 로봇의 갈등과 화해가 나오고 더러는 인류를 지배하는 로봇 대통령까지 등장하지만 인간처럼 대를 생명체 잉태를 못해 몰락한다는 설정도 보입니다.
5.
그러면 우리 충남청소년문학상에 실린 작품들을 보겠습니다. 원래는 <충남학생문학상>이었는데 작년부터 그 명칭을 <충남청소년문학상>으로 바꾸었습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는 꿈나무들을 포함시키는 의미이지요. 참스승들은 원래 주어진 교실에서만 꿈나무들을 만나는 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마땅히 그 역할을 맡아야지요.
문득 70-80세대들의 야학 출강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대학시절부터 야학의 공간에서 또래의 학교 밖 노동자 청년들과 알전구 아래에서 이맛살 맞대고 향학의 열기를 나누던 그 기억이랍니다. 그래요. 안면도의 누동학원이나 대전의 민중야학들을 꾸려가기가 그리도 신산의 고초였답니다. 심훈의 『상록수』보다 더 억압이 심했던 암흑의 시대도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교사들이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합체할 공간이 마땅치 않습니다. 이차구차 상황을 차치하고라도 현장의 교사로선 특별히 시간을 쪼개기가 만만치 않답니다. 우리 충남청소년문학상 모임에서는 교육청 쪽에서 외부 단체의 지원을 받아 공간을 만들어주면 거기에 결합하는 형태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응모에 도전한 꿈나무들의 작품은 응모방이 아닌 멘토방에서 발췌한 거라 제대로 전달이 어려울 수도 있답니다. 특히 금상 이상 주로 대상(大賞)의 그랑프리 학생들 작품으로만 멘토 문장을 소개하게 됨을 죄송하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아래의 멘토 작가의 첨삭 내용들이 엄청 길지만 실제로는 분량 조절이 가능하니 너무 걱정하지는 마시구요. 그리고 또 하나, 각자의 멘토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넘나들면서 서로 도와주는 유연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시의 경우 한 학생이 같은 공간에 동시에 많은 작품을 올리는 바람에 멘토 교사가 비슷한 답변을 열거하는 불편함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다른 장르의 작가와 교사들이 원군으로 도와주는 운영이 필요할 것입니다.
먼저 중학생이 쓴 「The impossible dream」라는 꽤 긴 소설입니다. 너무 길어서 조금 늘어지는데 당시 중학생 멘토였던 김종광 작가와 이 글의 지은이인 곽예령 학생의 멘토 내용만 보여드리겠습니다. 혹시 멘토에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에게 맛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의 글이 곽예령 학생의 창작 소감이고 그 다음이 김 작가의 멘토이구요. 중학생의 문장이 너무 어른스럽답니다. 원문은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고 일단 보시지요.
곽예령 학생: 소설의 제목은 <맨 오브 라만차>라는 뮤지컬 중에 한 넘버인 소설 중에도 나오는 ‘The impossible dream’이라는 곡입니다. 제가 평상시 좋아하는 배우님이 이 뮤지컬을 하셨는데 이 노래를 듣던 중에 너무나 슬프고 아름다워서 소설에 넣게 되었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한이슬이라는 친구는 저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리고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는 저의 아버지의 인생과 정말 흡사합니다. 꿈이 있는 저의 아버지를 응원하기 위해 쓴 글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꿈과는 많이 다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몇 년 간 그 꿈을 향해 노력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쓰게 되었습니다. 젊은 청춘의 아픔과 나이가 많은 청춘의 아픔 둘다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게 두 번(?)째 소설이라 많이 엉성합니다. 전에 썼던 소설과는 다르게 조금 더 희망 있고 긍정적인 소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책을 보면 인물에 대한 서술을 상세히 해주던데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군가의 아빠가 될 수 있고 혹은 누군가의 오빠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평상시 책을 읽을 때 주인공들을 상상하며 읽는 편입니다. 하지만 제 소설은 각자의 상상으로 읽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렇게 해보았으나 잘못(?)되었다면 고치겠습니다. 작년보다 더 시스템이 나아져서 신기합니다. 많이 충고 해주시고 부족한 점은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종광 작가: 맨 앞부분, ‘프롤로그’ 같은 부분이 끝내주네요. 정말이지 가족에 버림받은 52세 아저씨의 회한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중학생이 이런 표현들로 이런 정서를 이토록 예리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명작을 보게 되는구나, 기대했습니다.
아쉽게도 이후의 본 이야기는 서투르고 어색하네요. 효과적이지 못한 대화들이 지나치게 많네요. 대화 위주로 가다보니 이야기로 모아지지 않은 듯. 세대 간의 우정을 나누게 되는 세 사람의 만남과 교류에 설득력이 없는 듯. 군데군데 ‘프롤로그’에 준하는 멋진 문장들이 간간히 나오기는 합니다만, 어쩌면 프롤로그 부분이 워낙 뛰어나서, 뒤에 부분들이 부족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100매가 넘는데, 제가 계속 다른 분들에게는 늘려 쓰라고 권했었는데, 처음으로 줄여보자고 권합니다. 대화문을 최대한 줄여보는 것만으로도 훨씬 나아보일 거예요. 사소한 지적이지만, 본문에는 문장정렬을 왼쪽정렬로 했는데, 보통정렬로 통일하는 게 보기 좋을 듯해요. 그리고 대화행 행 비움이 까닭 없이 잦은 듯해요. 어떻게 본문 이하도 프롤로그처럼 될 수 없을까요? 괜히 막 안타깝습니다.
곽예령 학생: 평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 보니까 조금 늘려 보라는 평가를 보고 일부러 늘렸더니 들켰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수정해보겠습니다. 프롤로그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첫 해에 대상을 수상하고 이듬해에 금상을 탄 고등부 이규환이란 학생의 소설 「아무리 고쳐도 그런 것」에 대한 멘토와 답변 내용입니다. 응모자의 경우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학생 역시 외국을 무대로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식으로 전개했습니다. 본문을 보여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강병철 작가: 이규환 학생, 반갑습니다. 지난해에 이어서 외국 배경과 이름을 등장시켜서, 같은 주방에서 함께 아침 식사를 하는 빌라촌 사람들의 소소한 사건을 흥미 있게 이끌어가고 있군요. 낯선 단어들을 사용하여 활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흥미를 만드는 작법이 특이합니다. 의식이 자유롭고 단조로운 사건을 흥미있게 엮어나가는 솜씨가 있습니다. 라디에이터 같은 소품의 역할도 놓치지 않고.....사람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 남편이 떠오르는 행복으로 운다는 캐서린, 토스트를 음미하며 빌라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레이스, 남들이 한 말을 뒤늦게 빼았겼다고 생각하는 프랭크 등 저마다 역할이 보이네요. 이규환 학생의 글을 보면 리얼리티는 아니지만 소설 문장 내에서 문자끼리의 소통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부족하고 특히 문장 성분의 배치가 자꾸 걸리네요. 가령 -추운 자신의 집-같은 ,추운,의 어긋나는 위치가 불안하니 국어 선생님에게 여쭤보시지요. 반갑습니다.
이규환 학생 : 안녕하세요 작가님. 호흡이 길수도 있겠지만 원고지 분량에 맞게 최대한 줄여서 써봤습니다. 중간 중간 내용이 띄엄띄엄 하는 기분이 드신다면 꼭 적어주세요! 길게 써서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분량에 어긋나더라고요
아래의 글은 손예윤 학생의 「가족놀이」란 작품이 대상을 탔는데 문장의 내공이 대단했습니다. 충남청소년문학상 홈페이지에 응모방이 삭제되어 찾을 수가 없네요. 그냥 다른 작품의 멘토 내용만 올려보겠습니다.
강병철 작가: 숲속의 통나무집에서 마을로 내려왔다가 갑자기 마녀마냥처럼 잡혀가네요. 특이한 소설입니다. 긴 소설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보이고 깜짝 놀라게 하는 문체도 있어요. 구체성이 약한 게 단점입니다. 꽃차의 이름이 무엇인지-돼지풀, 고양이풀처럼-, 돈에 여유가 있는 계층의 부인들은 남편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시장 바닥의 배경은 어떤 모습인지, 호신용 도끼는 어떻게 생겼는지가 감이 잡히질 않네요. 응모 날짜가 임박해서 어떨지 모르지만 다음 소설에서는 그런 기대를 해보겠습니다. 시적 문체와 작가적 상상력이 보이기 때문에 능력이 충분하다는 전제에서 보강 말씀을 드린 겁니다. 반갑습니다.
손예윤 학생 : 아직 부분부분 마무리되지 않은 데가 있어 완전히 정리된 부분만 올리게 되었습니다. 응모 시에는 완성된 글로 올리겠습니다. 이야기는 다 보여드리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 글은 문장이 매끄러운지를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김은빈 학생의 Devil이란 작품의 멘토 내용입니다. 청초한 외모의 어린 소년을 악마로 등장시킨 반전이 나타나는 소설이지요.
강병철 작가: 판타지를 보는 것 같지만 문장에 긴장감이 있고 문법도 맞는군요. 짧은 대화체가 보이고 섬세한 감성도 보입니다. 서두 부분에서 어설프지만 데드와 트레시의 대조적인 외양묘사도 보이고요. 3쪽 마지막 부분 ‘그 아이’를 떠올리는 복선도 돋보입니다. 5쪽 28행 “아저씨의 아들도 더러웠나요?”가 주는 복선도 조마조마하지요. 그러나 인과관계가 약합니다. ‘천사의 날개’가 주는 치유와 살인의 의미도 완성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원죄 같은 업을 지고 태어난 트레시가 데드를 죽인 다음 결미를 만드는 게 왠지 마무리 안 된 글을 보는 것 같습니다. ‘나쁜 피’를 모델로 삼는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글을 고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들에게 친절한 소설을 쓰려는 마음으로 퇴고한다면 만만찮은 소설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은빈 학생: 피드백 감사합니다. 제가 혼자 읽어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빈틈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쁜 피’가 무엇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강병철 작가: 글을 쓰면서 '착한 마음'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흥부나 심청, 춘향, 신데렐라처럼 권선징악적인 요소들......그런데 '악마적 심성'를 주인공으로 삼는 과감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영화에서 많이 등장하잖아요. 특히 젊은 세대들은.....그런 의미에서 '나뿐 피'라고 조합한 단어인데 마음에 안 들 수도 있습니다.
다음은 중등부에서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한 학생의 작품입니다. 대상 작품은 여기에서 두어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훨씬 단단한 문장으로 변신했지요.
자는 듯이 죽은 내가 있었다
슬픈 것들은 발설하는 순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다
또다시 침묵하게 된다
고요한 폭력과 적적한 모멸
생애에 붙박여 찬란할 줄 모르는
유년에는 사람을 죽였고
하루는 멀쩡할 수 있는 재주를 지녔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뜨인다고 했다
희미한 억겁을 산다고 했다
억겁을 살기 위해
밤하늘을 찢고 떠내려 오는 난색의 사체
어느 날
자는 듯이 죽은 내가 있었다
불멸의 일부가 되었다
김창아 「자는 듯이 죽은 내가」
이정록 시인: 의젓하군요. 사색과 철학이 나름 뼈대를 잡았어요. 그 생각을 풀어야지요. 그 뼈대를 자랑하거나 내보이려고 하지 말고 시 안에 숨겨서 짱짱한 시로 만들어야지요. 골격은 숨기고 부드러운 묘사로.
마지막으로 이수빈 학생의 소설 결말 부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연예계의 톱스타가 갑자기 행방불명되면서 AI로 대체했다가 악플에 시달리며 비극을 맞이하는 줄거리이지요.
이수희는 눈을 감았다. 온몸이 휘청거렸다. 안드로이드 유나린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나린으로 살아가게 된 자신에게 쏟아지는 칼과 화살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봇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멈출 수 있는가?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수희는 도무지 답을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흐려졌다. 눈앞에 쓰러진 안드로이드의 시체가 뿌옇게 보였다. 순간 이수희의 머릿속에 진짜 유나린이 생각났다. 지금 진짜 유나린은 살아있긴 한 걸까. 대체 어디 있는 걸까. 그동안 들리지 않았던 유나린의 목소리가 폐부 깊은 곳을 찔렀다. 그것은 고통에 찬 아우성이었다. 유나린의 절망과 고통이 눈앞의 안드로이드 시체로 물질화되어 있었다. 이수희의 심장이 불안함으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당장 유나린을 찾아야 한다. 자신의 온 몸을 태워서라도 그를 찾아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해줘야 한다. 옆에서 대표의 당황한 숨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수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급하게 방을 뛰쳐나간다. 이수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속죄는 그게 다였다.
-이다빈 「들리지 않는 아우성」 결말 부분
강병철 작가: 안녕하세요. 이다빈 예비 작가님 좋은 글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드로이드를 등장시켜 대중 스타들의 고뇌와 여론뭇매에 대한 방황을 그렸네요. 그래요. 실제로도 많은 연예인들이 비방 댓글이나 매스컴의 융단 폭격에 힘들어하고 있지요. 우선 참신한 소재와 인간 심리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보입니다. 유나린이 증발된 이유, 안드로이드 유나린이 자살을 하게 된 연결구조까지 독자들의 눈길을 흡입하는 능력도 보입니다. 쉽게 쓴 것 같지만 심리묘사가 디테일합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진짜 유나린은 어디에 있을까? 살아있다면 로봇 유나린의 실체를 알았을 텐데, 나중에 돌아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단편소설이 독자의 눈을 자기 위해서는 글의 처음 부분이 중요합니다. 첫 부분을 놓치면 좋은 글도 그냥 날려버리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도입 부분 두 개의 단락 정도는 차분한 수정이 필요할 듯합니다.
단락의 내용이 바뀔 때마다 행을 한 줄씩 띄웠으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웠을 겁니다. 가령 5쪽 33줄 즈음처럼 시점이 안드로이드로 바뀔 때는 단락이 바뀌어야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이 된답니다. 4쪽 1행 ‘안녕하세요’에서도 누구의 인사인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음도 참고해주세요, 문장의 ‘주어 서술어’의 관계도 정확했으면 하고요. 독자들을 여유 있게 이해시키면 더 좋았겠지요. 기왕지사 독자에게 친절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튼 21세기 청소년다운 상상력이 담긴 글을 보았네요. 글을 다듬는 기쁨을 느껴도 되고요, 아니면 새로운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6. 나가면서
여기 수상의 영광을 얻은 학생들 중에는 장차 한국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더러는 문학보다 더 재미있는 상황을 만나게 되어 다른 길을 가면서 ‘나, 중고딩 때 문학상도 탔어’ 하면서 그냥 학창시절의 행복한 추억으로만 남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비록 여기 문학상에서는 미끄러졌지만 조금 늦게 필봉을 혁혁하게 날리는 경우도 수도 없이 많답니다. 박경리나 박완서 같은 대가들도 중년 이후 대가(大家)의 위상에 오르셨구요.
질풍노도들의 무수한 스크린이 질주할 때 스승은 그 길잡이 역할을 하는 거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무수한 꿈나무들의 성장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끼어들어 동참도 하면서 입김을 불어넣어주는 거지요. 기왕지사 운이 좋아서 함께 가는 동지가 될 수 있다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모두들 문장 속에서 만나 토로할 수 있는 행복을 기도합니다. 반갑습니다.
강병철
성장소설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토메이토와 포테이토(작은숲)』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천년의 시작)』 『나팔꽃(삶창)』 시집 『유년일기』 『하이네나는 썩은 고기를 찾는다』 『꽃이 눈물이다』 『호모중딩사핀엔스(봉구네 책방)』 『사랑해요 바보몽땅(삶창)』 산문집 『어머니의 밥상(작은숲)』 『선생님 울지 마세요』 『작가의 객석(삶창)』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살림터)』 『우리들의 일그러진 성적표(작은숲)』 『쓰뭉선생의 좌충우돌기』 등을 발간했으며 교육산문집 『넌, 아름다운 나비야』 『난, 너의 바람이고 싶어』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등을 편집했으며 청소년 잡지 『미루』의 발행인으로 10여 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