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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물/고동우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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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스크랩 정민 / 한시미학산책 (펌)
고동우 추천 0 조회 31 10.05.06 23:1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허공 속으로 난 길 
-한시의 언어 미학
 
 
푸른 하늘과 까마귀의 날개빛
 
 
조선 후기의 문호 연암 박지원의 〈답창애(答蒼厓)〉란 글에는 마을의 꼬마가 千字文을 배우는 데 게으름을 부리자, 선생이 이를 야단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자 꼬마가 대답하는 말이 걸작이다. "하늘을 보면 푸르기만 한데, 하늘 `天`字는 푸르지가 않으니 그래서 읽기 싫어요!" 천자문을 펼치면 처음 나오는 말이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했다. 꼬마의 생각에는 암만해도 하늘이 검지 않고 푸른데, 책 첫머리부터 당치도 않은 말을 하고 있으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고 만 것이다.
 
저 까마귀를 보면, 깃이 그보다 더 검은 것은 없지만, 홀연 乳金빛으로 무리지고, 다시 石綠빛으로 반짝인다. 해가 비추면 자주빛이 떠오르고, 눈이 어른어른 하더니 비취빛이 된다. 그렇다면 내가 비록 푸른 까마귀라고 말해도 괜찮고, 다시 붉은 까마귀라고 말해도 또한 괜찮다. 저가 본디 정해진 빛이 없는데, 내가 눈으로 먼저 정해 버린다. 어찌 그 눈으로 정하는 것 뿐이리오. 보지 않고도 그 마음으로 미리 정해 버린다.
 
연암이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에서 한 말이다. 천자문이 푸른 하늘을 검다고 가르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보았던가? 까마귀의 날개빛 속에 숨겨진 여러 가지 빛깔을 관찰한 적이 있었던가? 연암은 이렇듯 시인에게 죽은 지식, 고정된 선입견을 훌훌 털어 버리고, 건강한 눈과 열린 가슴으로 세계와 만날 것을 요구한다. 또 〈답경지(答京之)〉란 글에서는
 
아침에 일어나니 푸른 나무 그늘진 뜨락에서 이따금 새가 지저귄다. 부채를 들어 책상을 치며 외쳐 말하기를, `이것은 내 날아가고 날아오는 글자(飛去飛來之字)이고, 서로 울고 서로 화답하는 글(相鳴相和之書)이로다`하였다. 오색 채색을 문장이라고 말한다면, 문장으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책을 읽었다.
 
라고 하였다. 이른 아침 푸른 녹음이 우거진 가운데 노니는 새들의 날개짓과 지저귀는 소리 속에서, 연암은 글자로 씌여지지 않고 글로 표현되지 않은 살아 숨쉬는 `불자불서지문(不字不書之文)`을 읽고 있다. 푸득이는 새들의 날개짓이 주는 터질듯한 생명력, 조잘대는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주는 약동하는 봄날의 흥취를 어떤 언어가 대신할 수 있겠는가? 옛 사람은 이를 일러 `생취(生趣)` 또는 `생의(生意)`라 하였다. 말 그대로 살아 영동(靈動)하는 운치(韻致)인 것이다. 생취나 생의가 없는 시는 결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사물의 심장부에 곧장 들어가 핵심을 찌르려면 죽은 정신, 몽롱한 시선으로는 안된다. 시인은 천지현황의 나태한 관습을 거부하는 정신을 지녀야 한다. 선입견에 붙박혀 간과하고 마는 까마귀의 날개빛을 살피는 관찰력이 있어야 한다. 생동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포착되는 물상 속에 감춰진 비의(秘儀)를 날카롭게 간파할 수 있어야 한다. 시는 언어(言)의 사원(寺)이다. 시인은 그 사원의 제사장이다. 시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미학이다.
 
 
 
영양(羚羊)이 뿔을 걸듯
 
 
대저 시인은 천기를 누설하는 자이다. 시를 쓰는 능력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 아니고,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송나라의 유명한 평론가 엄우(嚴羽, 약 1290-1364)는 그의 《창랑시화(滄浪詩話)》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저 시에는 별도의 재주가 있으니, 책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시에는 별도의 지취(旨趣)가 있으니 이치와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을 많이 읽고 이치를 많이 궁구하지 않으면 지극한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으니, 이른바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말의 통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윗길이 된다. 시라는 것은 성정(性情)을 읊조리는 것이다. 성당(盛唐)의 여러 시인들은 오직 흥취(興趣)에 주안을 두어, 영양(羚羊)이 뿔을 거는 것과 같아 자취를 찾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그 묘한 곳은 투철하고 영롱하여 꼬집어 말할 수가 없으니, 마치 공중의 소리와 형상 속의 빛깔, 물 속의 달,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다.
 
시에는 별재(別才)와 별취(別趣)가 있어, 책 속에서 얻는 사변적 지식이나 논리적 이치만으로는 시의 비밀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러면 책과 이치를 버려두어도 타고난 재능만 있으면 저절로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엄우의 이 말은 다소 절충적이다. 이런 어정쩡함을 벗어나기 위해 엄우는 `불섭이로(不涉理路) 불락언전(不落言筌)`, 즉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것이야 말로 최상승(最上乘)의 법문이라고 부연한다. 이 말은 시인이 언어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언어를 주재하라는 주문이다. 시인이 한번 사변의 늪에 빠져 들게 되면 생취는 간데 없고 진부한 관념의 시체들만 뒹굴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구호이다. 표현의 기교에 지나치게 빠져도 안된다. 언어를 매만지며 단어들의 질량을 느끼는 일은 시인의 큰 기쁨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시인의 정신을 본질 아닌 말단으로만 쏠리게 한다. 그 결과, 시인의 정신은 간데 없고 가공된 언어만이 판치게 된다. 이것은 시가 아니라 암호이다. 옛 사람은 이를 조충전각(雕蟲篆刻), 즉 벌레를 조각하고 글자의 아로새기는 교묘한 재주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엄우는 시인이 지녀야 할 미덕을 `흥취(興趣)`에서 찾는다. 앞에서 말한 `생취(生趣)`와도 같은 말이다. 영양이 뿔을 건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이는 본래 선가(禪家)의 비유로, 《전등록(傳燈錄)》에 설봉존자(雪峯尊者)의 말로 전해진다. 영양은 뿔이 앞으로 꼬부라진 염소이다. 그런데 이 영양은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꼬부라진 뿔을 나무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잠을 잔다고 한다. 따라서 영양의 발자취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어느 순간 발자취는 끊어져 버리고, 영양은 간 곳이 없다. 시인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단지 영양의 발자취 뿐이다. 발자취가 끝난 곳에서도 영양은 그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정작 시인이 전달하려는 의미는 문면에 있지 않고 글자와 글자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 혹은 아예 그것을 벗어난 공중에 매달려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 또한 영양의 발자취에 지나치게 현혹되거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쳐 놓은 언어의 통발에 걸려 들어서는 안된다.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서도 안된다.
그렇다면 흥취를 지닌 시란 어떤 시인가. 그것은 투철하고도 영롱하여, 무어라고 꼭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엄우는 이를 다시 몇 가지 비유를 통해 가시화 한다. 공중지음(空中之音), 상중지색(相中之色), 수중지월(水中之月), 경중지상(鏡中之象)이 그것이다.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나 형상 속에 깃들어 있는 미묘한 색채, 그리고 물 속에 찍힌 달, 거울 속의 형상은 모두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분명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물 속의 달은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흔들려 사라지고 만다. 달의 실체는 하늘에 떠 있고, 물은 그 실체를 투영할 뿐이다. 물 속에 녹아 있는 소금은 어떤가. 다만 짠 맛으로 소금의 성분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을 뿐, 만지거나 직접적으로 느낄 수는 없다. 흥취 또한 이와 같아서 시인의 정신은 저만치 허공에 떠 있고, 언어를 통해 수면 위에 그 정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한편의 훌륭한 시는 독자로 하여금 느껴서 알게 할 뿐, 따져서 납득시키려 하지 않는다.
 
엄우는 `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란 말로 위 단락을 끝맺었다. 시란 말은 끝났어도, 뜻은 다함이 없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비유컨대 종을 치면 종소리는 긴 파장을 내면서 허공으로 퍼져 나간다. 이렇듯이 시는 독자로 하여금 읽는 행위가 끝나는 순간부터 정말로 읽는 행위를 시작하게 만들어야 한다. 시의 언어는 젓가락으로 냄비 뚜껑을 두드리듯 해서는 안되고, 범종의 소리와 같은 유장한 여운이 있어야 한다.

 
 
허공 속으로 난 길
 
 
시는 시인이 짓는 것이 아니다. 천지만물이 시인으로 하여금 짓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시에서는 사물이 직접 말을 건넨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옥(李鈺)은 〈이언인(俚言引)〉이란 글에서 "시는 만물이 사람에게 가탁하여 짓게 하는 것이다. 물 흐르듯 귀와 눈으로 들어와서 丹田 위를 맴돌다가 끊임 없이 입과 손을 따라 나오니, 시인과는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물은 제 스스로 성색정경(聲色情境)을 갖추고 있어, 단지 시인의 입과 손을 빌어 시가 언어로 형상화 된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이 때 시인은 사물의 몸짓을 언어로 전달하는 매개자일 뿐이다. 따라서 시는 함축을 귀하게 여긴다. 시인이 직접 다 말해서는 안된다.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도록 해야 한다.
 
한편 시에서 말하고 있는 표면적 진술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엄우가 말한대로 영양의 발자취일 뿐이다. 표면적 진술에만 집착하는 독자는 시를 읽을 자격이 없다. 행간에 감춰진 함축, 언어와 언어가 만나 부딪치며 속삭이는 순간순간의 스파크, 그런 충전된 에너지 속에서 살아 숨쉬는 생취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실제 몇 수의 작품을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어제 밤 松堂에 비 내려                             
베개 머리 서편에선 시냇물 소리.                    
새벽녘 뜨락의 나무를 보니                          
자던 새 둥지를 뜨지 않았네.  
                      
昨夜松堂雨  溪聲一枕西
平明看庭樹  宿鳥未離栖
 
고려 때 시인 고조기(高兆基)가 지은 〈산장우야(山莊雨夜)〉란 작품이다. 어찌보면 덤덤하기 짝이 없는 시이다. 간 밤 비가 와서 아침에도 새가 둥지에 틀어 박혀 있다는 것이 시인이 말하고 있는 전부인 셈이다. 그러나 독시(讀詩)를 여기서 그치면 영양의 발자취만을 따라가다 끝내는 눈 앞에서 놓치고 마는 격이다.

제목으로 보아, 시인의 거처는 속세를 떠난 호젓한 산중이다. 시인은 간 밤에 비가 왔다는 사실을 처음엔 알지 못했다. 다만 기억 나는 것은 잠결 베개머리 서편으로 들려오던 시냇물 소리 뿐이다. 시냇물 소리를 새삼스럽게 느낀 것으로 보아 계절은 봄이다. 간밤 시냇물 소리에 잠을 설친 시인은 새벽녘 들창을 연다. 여늬 때 같으면 동 트기가 무섭게 조잘대며 시인의 잠을 깨웠을 새들이 오늘 따라 잠잠한 것이 궁금했던 것이다.  새들은 왜 둥지를 떠나지 않고 있을까? 간밤의 비 때문에 숲이 온통 젖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새들의 하는 양을 보다가, 간밤 꿈결에 어렴풋하던 시냇물 소리가 기실은 비 때문에 물이 불어났기 때문임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산이 있고, 그 속에 집이 있다. 방 안에는 시인이 있고, 둥지 안에는 새들이 있다. 사방은 고요하고, 정신은 해맑다. 이른 새벽 들창을 열어 가만히 밖을 내다 보는 시인의 시선 속에 떠돌고 있는 法悅의 生趣. 이것을 더 이상 무슨 언어로 부연할 수 있겠는가.
 
이웃 집 꼬마가 대추 따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에는 살지도 못할걸요."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위 시는 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李達, 약1539-1612)이 지은 〈박조요(撲棗謠)〉, 즉 대추 따는 노래이다. 파란 하늘 아래 빨갛게 대추가 익어가는 村家의 가을 풍경을 소묘한 것이다. 이웃 집 대추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러 온 아이가 있고, "네 이놈! 게 섰거라."하며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늙은이가 있다. 서슬에 놀라 달아나던 꼬마 녀석도 약이 올랐다. 달아나다 말고 홱 돌아서더니 소리를 지른다. 의미 그대로 번역하면 4구는 "영감! 내년엔 뒈져라"가 된다. 그래야 내년엔 마음 놓고 대추를 따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늙은이가 아무리 잰 걸음으로 쫓아 온다 해도, 꼬마는 얼마든지 붙잡히지 않고 달아날 자신이 있었던 게다.
이달은 이러한 즉물적 풍경의 섬세한 포착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렇다면 이 시의 주제는 무엇일까. 문면에 드러난 것은 대추 서리하다가 들킨 꼬맹이의 버르장머리 없는 말버릇이다. 그렇다고 이 시의 주제를 "젊은 애들 버릇 없다"쯤으로 설정하는 어리석은 독자는 없을 것이다. 파란 가을 하늘과 빨갛게 익은 대추의 색채 대비, 커가는 어린 세대와 살아온 날이 더 많은 늙은 세대의 낙차,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정감 넘치는 시골의 순후한 풍경이, 마치 단원 김홍도의 붓끝에서 생동감 있게 펼쳐지는 듯 하다.
다음은 조선 중기의 시인 백광훈(白光勳)의 <홍경사(弘慶寺)>란 작품이다.
 
가을 풀, 전조(前朝)의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보네.         
          
秋草前朝寺   殘碑學士文 
千年有流水   落日見歸雲 
 
이 작품을 다시 이렇게 배열해 보면 어떨까.
 
가을 풀 
고려 때 절.
남은 비 
학사의 글.
천년을
흐르는
물이 있어서,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을 본다.
 
이미지의 배열이 박목월의 <불국사>를 연상시킨다. 처음 1.2구에서 시인은 돌올하게 가을 풀과 고려 때의 절, 남은 비석과 학사의 글을 제시한다. 각 단어의 사이에는 일체의 서술어가 생략되어 있어, 1구에서 시인이 가을 풀에 묻혀 버린 퇴락한 고려 때의 절을 말하려 한 것인지, 가을 풀처럼 보잘 것 없이 영락해버린 고려 때의 절을 말하려 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전자라면 `추초(秋草)`는 `전조사(前朝寺)`의 배경을 이루고, 후자라면 등가적 심상이 된다.
 
2구의 `잔비(殘碑)`와 `학사문(學士文)`의 관계도 그렇다. `잔비`는 동강나 굴러다니는 비석인데, 거기에 예전 이름난 학사의 글이 새겨져 있다고 했다. 시인의 의도는 퇴락한 절과 굴러다니는 비석처럼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예전 명문의 허망함을 일깨우려는 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그 긴 세월 문장 만은 아직도 빗돌에 남아 전함을 말하려는 것인가? 이 또한 명확치 않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시시콜콜히 갈라 따지는 것은 오히려 시의 총체적 이해에 장애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다. 1.2구의 조응관계를 본다면 `추초`와 `잔비`, `전조사`와 `학사문`이 각각 대응을 이룬다.
 
다시 여기에 3.4구가 이어진다. 천년을 흘러가는 물이 있고 지는 해에 돌아가는 구름이 있다. 이번엔 1.2구와는 달리 천년의 긴 세월과 저물녘의 한 때가 나란히 놓여짐으로써 1.2구의 대응관계는 3.4구에서는 대조의 관계로 전이된다. 물은 천년을 한결 같이 그렇게 변함 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구름은 어떠한가. 그것은 언제나 잠시도 그대로 있지 못하고 변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닌가. 즉 3.4구는 천년과 하루에서 만이 아니라 물과 구름을 통해서도 대립의 관계가 형성된다. 4구의 `견(見)`의 주체는 누구인가. 시인 자신으로 볼 수도 있고, 천년을 흘러가는 물일 수도 있다. 주체를 시인으로 이해한다면 3.4구는 자연을 통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착잡한 심회를 노래한 것이 된다. 또 주체를 물로 이해한다면, 천년을 의연히 변치 않고 흐르는 물이 온갖 덧 없이 변화해가는 것들을 묵묵히 지켜 보고 있음을 뜻하게 된다.

가을 풀은 여름 날의 번화를 뒤로 하고 시어져 간다. 그 풀과 같이 예전의 영화를 뒤로 하고 퇴락한 절. 예전 학사의 명문을 새긴 비석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상처만 남았다. 그 글을 쓴 사람은 이미 가고 없는데 그래도 글만은 아직 남았다. 천년을 쉬임 없이 흐르는 물, 물은 흘러 갔건만 언제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 위에 해는 지고 구름은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간다. 한 해가 가고, 하루도 가고, 구름도 왔던 자리로 돌아가고, 인간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비석에 새겨진 글씨처럼, 흘러도 흘러도 그 자리에서 넘치는 강물처럼 모든 것은 또 그대로가 아니었던가.

위 시에서 서술관계가 생략됨으로 해서 발생되는 모호성Ambiguity은 일상적 언어에서처럼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 되는 양작 택일의 성격을 띠지는 않는다.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결과적으로 시의 함축과 내포를 더욱 유장한 것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다. 20자에 불과한 짧은 시인데 담긴 함축은 참으로 심장하다. 한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대목이다.

이상 세 편의 감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듯, 시인이 글자로 말하고 있는 지시적 사실은 시에서는 별로 큰 의미가 없다. 그 행간에 감춰진 울림, 언어의 발자취를 벗어나 허공에 매달려 있는 떨림이 중요하다. 그런 울림이 아예 없거나 그런 떨림을 외면한 시는, 단청(丹靑)의 수식과 대중의 기호에만 영합하는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지나지 않는다. 천진(天眞)에서 우러나오는 흥취가 결여된 시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짜증나게 만든다.
 

 
눈과 귀가 있다 말하지 말라
 
 
이미지의 구성이 이렇게 탄탄하고, 언외의 함축이 이렇듯 유장하다 보니, 한시의 감상은 매우 지적이고 감성적인 바탕이 요구된다. 그 비밀은 아무에게나 알려줄 수도 없고, 아무나 알 수도 없다. 조선 후기의 문인 홍양호(洪良浩, 1724-1802)는 <질뢰(疾雷)>란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레 소리에 산이 무너져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해가 중천에 솟아도 소경은 보지 못한다. 도덕과 문장의 아름다움을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며, 왕도와 패도, 의(義)와 리(理)의 구분을 속인은 변별하지 못한다. 아아! 세상의 남아들이여. 눈과 귀가 있다고 말하지 말라. 총명은 눈과 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조각 영각(靈覺)에 있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있는 귀, 바라 볼 수 있는 눈 앞에서만 예술은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 눈과 귀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다. 정신의 심층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을 일러 영각(靈覺)이라고 한다. 또 《채근담》에서는 "세상 사람들은 고작 유자서(有字書)나 읽을 줄 알았지 무자서(無字書)를 읽을 줄은 모르며, 유현금(有絃琴)이나 뜯을 줄 알았지 무현금(無絃琴)은 뜯을 줄을 모른다. 그 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고 껍데기만 쫓아 다니는데 어찌 琴書의 참 맛을 알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좀 길지만 이규보(李奎報)가 시로써 시를 논한 <논시(論詩)> 한 수를 읽어 보기로 하자.
 
시 지음에 특히 어려운 것은                          
말과 뜻이 아울러 아름다움을 얻는 것.                
머금어 쌓인 뜻이 진실로 깊어야                      
씹을 수록 그 맛이 더욱 순수하나니.                  
뜻만 서고 말이 원활치 못하면                        
껄끄러워 그 뜻이 전달되지 못한다.                   
그 중에서도 나중으로 할 바의 것은                  
아로새겨 아름답게 꾸미는 것뿐.                      
아름다움을 어찌 반드시 배척하랴만                   
또한 자못 곰곰히 생각해 볼 일.                      
꽃만 따고 그 열매를 버리게 되면                     
시의 참 뜻을 잃게 되느니.                           
지금껏 시를 쓰는 무리들은                           
풍아(風雅)의 참 뜻은 생각지 않고,                         
밖으로 빌려서 단청을 꾸며                           
한 때의 기호에 맞기만을 구하고 있다.                
뜻은 본시 하늘에서 얻는 것이라                      
갑작스레 이루기는 어려운 법.                        
스스로 헤아려선 얻기 어려워                         
인하여 화려함만 일삼는구나.                         
이로써 여러 사람 현혹하여서                         
뜻의 궁핍한 바를 가리려 한다.                       
이런 버릇이 이미 습성이 되어                        
문학의 정신은 땅에 떨어졌도다.                      
이백과 두보는 다시 나오지 않으니                    
뉘와 더불어 진짜와 가짜 가려낼까.                   
내가 무너진 터를 쌓고자 해도                        
한 삼태기 흙도 돕는 이 없네.                        
시 삼 백 편을 외운다 한들                           
어디에다 풍자함을 보탠단 말가.                      
홀로 걸어감도 또한 괜찮겠지만                       
외로운 노래를 사람들은 비웃겠지.               
     
作詩尤所難  語意得雙美
含蓄意苟深  咀嚼味愈粹
意立語不圓  澁莫行其意
就中所可後  彫刻華艶耳
華艶豈必排  頗亦費精思
攬華遺其實  所以失詩眞
爾來作者輩  不思風雅義
外飾假丹靑  求中一時耆
意本得於天  難可率爾致
自천得之難  因之事綺靡 (헤아릴 천)
以此眩諸人  欲掩意所궤(다할 궤) 
此俗寢已成  斯文垂墮地
李杜不復生  誰與辨眞僞
我欲築頹基  無人助一궤(竹 아래 貴) 
誦詩三百篇  何處補諷刺
自行亦云可  孤唱人必戱
 
모두 32구에 달하는 긴 시이다. 詩의 참 뜻을 벗어난, 알맹이 없는 화려한 수식만 일삼는 당대 사단(詞壇)의 통폐를 날카롭게 통매한 내용이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 현란한 기교로 대중의 기호에만 영합하는 시인들, 그들은 눈속임에만 급급하여 함축함양(含蓄涵養)하는 공부는 내팽개친 지 오래다. 참다운 시정신은 이미 땅에 떨어져 회복의 희망도 찾을 길 없다. 어찌할 것인가. 이규보의 이러한 한탄은 오늘의 시단에도 여전히 유효할듯 싶다.
 
 
 
이명(耳鳴)과 코골기
 
 
다시 연암에게로 돌아가자. <공작관문고자서(孔雀館文稿自序)>의 한 도막이다.
 
어린 아이가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그 귀가 갑자기 우는지라 놀라 기뻐하며 가만히 옆에 아이에게 말하였다. `얘! 너 이 소리를 들어보아라. 내 귀가 우는구나. 피리를 부는 듯, 생황을 부는 듯, 마치 별처럼 동그랗게 들려!` 옆에 아이가 서로 맞대고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마침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이명이 난 아이는 답답해 소리 지르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하였다.
일찍이 시골 사람과 함께 자는데, 코를 드르렁 드르렁 고는 것이 게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휘파람 소리 같기도 하고, 탄식하거나 한숨 쉬는 소리 같기도 하며, 불을 부는 듯, 솥이 부글부글 끓는듯, 빈 수레가 덜그덕 거리는 듯 하였다. 들이마실 때에는 톱을 켜는 것만 같고, 내쉴 때에는 돼지가 꽥꽥거리는 듯 하였다. 남이 흔들어 깨우자, 발끈 성을 내면서 말하기를, `내가 언제 코를 골았는가?`하는 것이었다.
 
왜 연암은 난데 없이 이명과 코골기를 들고 나왔을까. 이명은 자기만 알고 남은 결코 알 수가 없다. 코골기는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만 모른다. 사람들이 안목이 없어 나의 이 훌륭한 작품을 알아 보지 못한다고 탄식하고 원망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는 자아도취의 이명증(耳鳴症)에 걸린 꼬마이다. 남의 적절한 지적에도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사람은 코고는 버릇이 있는 시골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시인들이 자신의 이명에는 쉽게 도취되면서, 자기의 코고는 습관만은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말을 더 흉내내면,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화이니, 만약 그가 병 아닌 어떤 것을 지니고 있다면 그 으스대는 양을 어찌 볼 것이며, 코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발끈하니, 만약 그의 병통을 지적해 준다면 그 성내는 꼴을 또 어찌 차마 볼 것이랴.
 
 
예전 요동 땅에 정령위(丁令威)란 사람이 있었는데, 신선술을 익혀 신선이 되었다. 그뒤 800년 만에 학이 되어 돌아왔으나 아무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또 한나라 때 양웅(揚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초할 적에 뒷날 자신의 저술을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어 장독대의 덮개로나 쓰일 것을 생각하며 탄식하였다. 막상 그가 죽고 나자 《태현경》은 세상에서 귀히 여기는 유명한 저술이 되어 낙양의 종이값을 올렸다. 그런데 당사자인 양웅 자신은 이를 보지 못하고 불우하게 세상을 떴다.
 
세상의 시인들이여! 그대들의 시는 정령위의 불로장생을 원하는가. 양웅의 기림을 받고 싶은가. 양웅의 성예(聲譽)를, 살아 정령위처럼 누리고 싶다면 그것은 아마도 지나친 욕심일 것이다. □
 
 
 
 
 
 

 2. 그림과 시

 


 그리지 않고 그리기

 
 

전통적으로 시와 그림은 서로 깊은 연관을 맺어 왔다. 옛 말에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 하였다. 특히 한시는 경물의 묘사를 통한 정의(情意)의 포착을 중시하는데, 이는 마치 화가가 화폭 위에 경물을 그리면서 그 속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는 것과 같다. 경물은 객관적 물상에 지나지 않는데, 여기에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얹을 수 있는가. 화가는 말을 할 수 없으므로 경물이 직접 말하게 해야 한다. 이를 `사의전신(寫意傳神)`이라 한다. 말 그대로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은 `입상진의(立象盡意)`이니, 상세한 설명 대신 형상을 세워 이를 통해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제 그 몇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송나라 휘종 황제는 그림을 몹시 좋아하는 임금이었다. 그는 곧잘 유명한 시 가운데 한두 구절을 골라 이를 화제(畵題)로 내놓곤 했다. 한 번은 "어지러운 산, 옛 절을 감추었네. 亂山藏古寺"란 제목이 출제되었다. 화가들은 무수한 어지러운 봉우리와 계곡, 그리고 그 구석에 자리 잡은 고색창연한 퇴락한 절의 모습을 그리는데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를 둘러 보아도 절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숲 속에 조그만 길이 나 있고, 그 길로 중이 물을 길어 올라가는 장면을 그렸다. 중이 물을 길러 나왔으니 그 안 어디엔가 분명히 절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산이 이를 감추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절을 그리라고 했는데, 화가는 물 길러 나온 중을 그렸다. 화제에서 요구하고 있는 `장(藏)`의 의미를 이 화가는 이렇게 포착했던 것이다.

 

유성(兪成)의 《형설총설(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 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라는 화제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 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유성(兪成)의 《형설총설(螢雪叢說)》에도 이런 이야기가 보인다. 한번은 "꽃 밟으며 돌아가니 말 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라는 화제가 주어졌다. 말발굽에서 나는 꽃 향기를 그림으로 그리라는 주문이다. 모두 손대지 못하고 끙끙대고 있을 때, 한 화가가 그림을 그려 제출하였다. 달리는 말의 꽁무니를 따라 나비 떼가 뒤쫓아 가는 그림이었다. 말발굽에 향기가 나므로 나비는 꽃인 줄 오인하여 말의 꽁무니를 따라간 것이다.
 
"여린 초록 가지 끝에 붉은 한 점, 설레이는 봄 빛은 많다고 좋은 것 아닐세. 嫩綠枝頭紅一點, 動人春色不須多"라는 시가 출제된 적도 있었다. 화가들은 일제히 초록빛 가지 끝에 붉은 하나의 꽃잎을 그렸다. 모두 등수에는 들지 못했다. 어떤 사람은 푸른 산과 푸른 강이 화면 가득한 중에, 그 산 허리를 학 한 마리가 가르고 지나가는데, 그 학의 이마 위에 붉은 점 하나를 찍어 `홍일점`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정작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화면 어디에서도 붉은 색을 쓰지 않았다. 다만 버드나무 그림자 은은한 곳에 자리잡은 아슬한 정자 위에 한 소녀가 난간에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그렸을 뿐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흔히 여성을 `홍(紅)`으로 표현하곤 하였으므로, 결국 그 소녀로써 `홍일점`을 표현했던 것이다. 진선(陳善)의 《문슬신어( 蝨新語)》에 나오는 이야기다.
 
"들 물엔 건너는 사람이 없어, 외로운 배 하루 종일 가로 걸렸네. 野水無人渡, 孤舟盡日橫." 적막한 강나루엔 하루 종일 건너는 사람이 없고, 빈 배만 버려진채로 가로 놓여 강물에 흔들리고 있다. 이 제목이 주어졌을 때, 2등 이하로 뽑힌 사람 가운데 어떤 이는 물 가에 매여 있는 빈 배의 뱃전에 백로가 한 쪽 다리로 서서 잠자고 있는 장면을 그렸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배의 봉창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튼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1등 한 그림은 그렇지가 않았다. 사공이 뱃 머리에 누워 피리를 빗겨 불고 있었다. 시는 어디까지나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 사공이 없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예 사공도 없이 텅 빈 배보다는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사공이 드러누워 있는 배가 오히려 이 시의 무료하고 적막한 분위기를 드러내기에는 제 격일 듯 싶다. 이 화가는 의표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등춘(鄧椿)의 《화계(畵繼)》에 나오는 이야기다.
 
또 가령 "호랑나비 꿈 속에 집은 만 리 밖 胡蝶夢中家萬里"라는 화제가 제출되었다면, 화가는 꿈 속에 향수에 젖어 있는 나그네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화면에는 잠든 사람이 있어야 하고, 또 그가 지금 고향 꿈을 꾸고 있음을 나타내 보여주어야 한다. 1등에 뽑힌 화가는 소무(蘇武)가 양을 치다가 선잠이 든 모습을 그렸다. 소무는 한 무제 때 흉노에 사신 갔다가 억류되어 흉노의 회유를 거부하여 사막에서 들쥐를 잡아 먹으며 짐승처럼 살다가, 무려 20년 만에야 고국으로 돌아왔던 인물이다. 황제의 사신으로 왔다가 어처구니 없이 포로로 억류되어 아무도 없는 사막 가운데 버려진 채 양을 치던 소무가 꾸는 꿈은 과연 만리 밖 고향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구한말의 유명한 화가 허소치(許小痴)가 고종 앞에 불려 갔는데, 고종은 그를 골탕 먹이려고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춘화도(春畵圖)를 한 장 그려 바칠 것을 명하였다. 얼마 후 소치가 그려 바친 것은, 깊은 산 속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이 한 켤레 씩 놓여진 그림이었다. 환한 대낮, 닫혀진 방 안에서의 진진한 일은 알아서 상상하시라는 재치였다.
이상 살펴 본 여러 예화는 모두 같은 원리를 전달한다. 즉 그리려는 대상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물 길러 나온 중, 말을 쫓아가는 나비, 난간에 기댄 소녀, 피리 부는 뱃사공, 양치는 소무의 선잠, 남녀의 신발 한 켤레로 대신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동양화의 화법 가운데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이란 것이 있다. 수묵으로 달을 그리려 할 때 달은 희므로 색칠할 수 없다. 달을 그리기 위해 화가는 달만 남겨 둔 채 그 나머지 부분을 채색한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 저것을 감추는 방법이다. 시에서 시인이 말하는 법도 이와 같다.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처럼 소리는 이쪽에서 지르면서 정작은 저편을 치는 수법이다. 나타내려는 본질을 감춰 두거나 비워 둠으로써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그 본질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화가가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그리는 방법과, 시인이 말하지 않고 말하는 수법 사이에는 공통으로 관류하는 정신이 있다. 구름 속을 지나가는 신룡(神龍)은 머리만 보일 뿐 꼬리는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 글자도 나타내지 않았으나 풍류를 다 얻었다. 不著一字, 盡得風流"는 말이 있다. 또 "단지 경물을 묘사할 뿐이나 정의(情意)가 저절로 드러난다. 只須述景, 情意自出"고도 한다. 요컨대 훌륭한 한 편의 시는 시인의 독백으로써가 아니라 대상을 통한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iative의 원리로써 독자에게 전달된다. 즉 시인은 자신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대상 속에 응축시켜 표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은 끊어져도 봉우리는 이어진다. 山斷雲連"는 말이 나왔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구름 위에 삐죽 솟은 봉우리의 끝 뿐이다. 그렇다고 구름 아래에 봉우리가 없는가. 다만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진다. 辭斷意屬." 시 속에서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구름 위에 솟은 봉우리의 끝 뿐이지만, 그것이 결코 전부는 아니다. 시인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은 구름 아래 감춰져 있다.
 
1920년대 이미지즘 시인 아치볼트 매클리쉬는 〈시의 작법 Ars Poetica〉이란 시에서 "시는 의미해서는 안된다. 다만 존재할 뿐이다.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고 하고, 또 "시는 사실 그 자체를 말해서는 안되고 등가적이어야 한다. A Poem shuold be equal to: Not true"고 말하였는데, 이 말은 시의 언어는 직접 의미를 지시하는 대신 이미지를 통해 간접화된 방식으로 의경을 전달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한시에서 이러한 원칙은 이미 천 년이 넘는 문학적 전통 속에서 불변의 준칙으로 엄격하게 지켜져 왔다. 이는 다시 말해 시인은 할 말이 있어도 직접 말하지 말고 사물을 통해 말하라는 것이다. 아니 사물이 제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것이다. 시는 어떤 사실이나 사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시는 언어 그 자체로 살아 숨쉬는 생물체여야 한다. 시인은 외롭다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서 독자를 외롭게 만들어야 한다. 괴롭다는 말을 해서도 안된다. 그래도 독자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 시인이 나서서 직접 시시콜콜한 자기 감정을 주욱 늘어 놓는다면, 그것은 넋두리나 푸념일 뿐 시일 수는 없다. 
 
돌아가던 개미가 구멍 찾기 어렵겠고         
돌아오던 새는 둥지 찾기 쉽겠구나.              
복도에 가득해도 스님네 싫어 않고             
하나로도 속객은 많다고 싫어하네.      
         

返蟻難尋穴   歸禽易見巢
滿廊僧不厭   一個俗嫌多
 
 
위 시는 무엇을 노래한 것인가. 개미는 왜 구멍을 찾지 못하며, 새는 둥지를 왜 쉽게 찾는가. 복도에 가득한데도 스님네가 싫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속객은 왜 이것이 많음을 싫어할까. 이것은 鄭谷이란 이가 낙엽을 노래한 시이다. 낙엽이 쌓이는 형상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시의 모든 상황은 석연해 진다. 그러나 스물 여덟 자 어디에도 낙엽과 관계되는 말은 조금도 비치지 않았다. 落葉歸根이라 했다. 한 인연이 끝나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낙엽만이 아니다. 우리네 인생도 또한 그러하지 아니한가. 그러므로 스님네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함은 담긴 뜻이 유장하다. 그러나 한 잎 낙엽조차 속객이 싫어하는 까닭은 세시이변歲時移變에 초조한 상정常情의 속태俗態를 내보임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정황 속에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이 어느덧 가슴을 가득 메운다.
 
흔히 시인이 시를 짓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 가운데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한다. 시인이 200자의 할 말이 있다면, 그는 이것을 어떻게 20자로 줄여 말할 것인가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180자를 걷어 낼 것인가로 고민한다는 말이다. 반대로, 독자는 시인이 하고 싶었지만 절제하고 걷어 낸 말, 즉 행간에 감추어 둔 뜻을 어떻게 충분히 이해하고 깨닫느냐의 문제가 주요한 관심사가 된다. 다음은 두보의 유명한 〈春望〉이란 시이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남아            
봄날 성엔 잡초만이 우거졌구나.            
시절을 느끼매 꽃 보아도 눈물 나고              
이별을 한하니 새 소리에 마음 놀라네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천淚   恨別鳥驚心 (水+賤) 
 
이 시를 지을 당시 두보는 안록산의 난리 중에 반군의 손에 사로잡혀 경성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만신창이가 된 종묘사직과 도탄에 빠진 백성의 생활은 그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에 젖어들게 했다. 그는 이러한 감개를 흐드러진 봄날의 경물에 얹어 노래하고 있다. 사마광(司馬光)은 이 시를 평하여 《온공속시화(溫公續詩話)》에서 이렇게 적었다. "산하가 남아 있다고 했으니 나머지 물건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초목이 우거졌다 했으니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꽃과 새는 평상시에는 즐길만한 것인데, 이를 보면 눈물 나고, 이를 들으면 슬프다 하였으니 그 시절을 알 수 있겠다." 즉 시인의 가슴 속에 남아 있던 태평성대에의 기억은 무참히 사라지고, 세상은 어느 새 폐허로 변하여 시인으로 하여금 무한한 감개와 슬픔 속으로 젖어 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나라는 망했지만 산하만은 남아 있다`는 것인데, 시인이 말하려 한 것은 `나라가 망하고 보니 남은 것은 산하 뿐이다`이며,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은 `봄날 성에는 풀과 나무가 우거졌다`는 것이지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전 사람들로 붐비던 성에는 사람의 자취를 찾을 길 없고, 단지 잡초만이 우거져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것들을 일일이 다 언어로 설명한다면 여기에 무슨 여운이 남겠는가. 그래서 사마광은 윗 글에 이어 "옛 사람은 시를 지음에 뜻이 말 밖에 있는 것을 귀하게 여겨,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여 이를 얻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다 말해 버려, 독자가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은 시가 아니다.
 
기왕의 집에서 늘상 보더니                     
최구의 집 앞에서 몇 번을 들었던고.                   
정히 강남 땅에 풍경이 좋으니                        
꽃 지는 시절에 또 그대를 만났네.  
       
            
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유명한 두보의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란 시이다. 필자는 이 시를 고등학교 시절 《두시언해》를 배우면서 처음 접했다. 그 당시 이 시를 읽고 난 느낌은 무슨 시가 이렇게 싱거운가 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왕(岐王)과 최구(崔九)의 집에서 익히 만나 알던 이구년이란 가수를 강남에서 좋은 봄날 또 만났다는 것이 이 시가 전달하고 있는 의미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무슨 시적인 표현이 있는가.
 
안사(安史)의 난리를 겪은 당나라는 이미 전날 태평성대의 자취는 찾아 볼 길 없었고, 당시 두보는 "서남의 천지 사이를 떠돌며 漂泊西南天地間" 지내다가 강남 땅에 다달았을 때였다. 꽃이 분분히 지는 모춘(暮春)의 때에,  그는 길에서 우연히 장안 시절 알고 지내던 당대의 유명한 가수, 그러나 이제는 생계를 위해 거리의 악사로 전락해 버린 이구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안 시절에는 두보나 이구년이나 모두 당대의 귀족이었던 기왕과 최구의 파티에 초대받을 정도로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 일은 한꺼번에 변하여 버려, 이제 두 사람은 지친 피난민의 신세로 하늘 가를 떠돌다 낯선 거리에서 서글픈 상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4구는 그저 평담(平淡)한듯 하지만 그 가운데에는 실로 침통하고도 무한한 감개가 서리어 있다. 3구는 앞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의 독법으로 헤아릴 수 있으려니와, 4구의 `낙화시절`은 그 담긴 뜻이 참으로 심장하다. 우선은 두 사람이 만날 당시가 `낙화시절`이라는 의미일 것이고, 이는 다시 좋은 시절을 다 보내고 난 두 사람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며, 동시에 성세(盛世)의 번화(繁華)를 뒤로 보낸 당나라의 `낙화시절`이기도 한 것이다. 한 층 한 층 의미가 확장되면서 울리는 여운이 길고 가녀린 파장을 남기고 있다.
 
홀로 앉아 오는 손님도 없고                          
빈 뜰엔 빗 기운만 어둑하구나.                        
물고기 흔드는지 연잎이 움직이고                       
까치가 밟았는가 나무가지 흔들리네.                   
거문고 젖었어도 줄은 울리고                           
화로는 싸늘한데 불씨는 남아 있네.                    
진흙길이 출입을 가로 막으니                           
하루 종일 문을 닫아 걸고 있으리.    
     
          
獨坐無來客  空庭雨氣昏
魚搖荷葉動  鵲踏樹梢飜 
琴潤絃猶響  爐寒火尙存
泥途妨出入  終日可關門
 
서거정(徐居正)의 〈독좌(獨坐)〉란 작품이다. 일견 속세를 떠나 칩거하고 있는 은사의 유유한 생활을 노래한 작품인듯 하지만, 속사정을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찾아오는 손님 없이 혼자 앉아 있다는 1구는, 아무도 나를 찾아올 리가 없다는 체념과, 그래도 혹시 누군가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다림의 마음이 뒤섞인 모순된 심리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아무도 오지 않고, 시인은 찌푸려 흐린 날씨에 빈 뜰을 그저 허허롭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3.4구에서 시인의 시선은 물고기가 흔들어 움직이는 연잎의 살랑거림, 까치가 앉았다 날아간 자리에 나뭇가지의 일렁거림을 포착하고 있다. 주변의 사소한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는 그의 반응을 통해 우리는 변화에 대한 그의 강렬한 희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지금 서재나 마루에서 빈 뜨락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니 마당 연못, 그것도 연꽃 아래 물고기의 모습이 보일 까닭이 없다. 그러니까 `물고기가 흔들었다`는 진술은 시인의 추정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까치도 보지 못했으나 나뭇가지의 일렁임을 통해 상황을 짐작하고 있다. 이렇듯 전 4구는 시인이 매우 고독할 뿐 아니라 권태롭고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5.6구를 보자. 이번에는 습기를 잔뜩 머금어 눅눅한 거문고와 싸늘하게 식은 화로가 등장한다. 거문고는 비 기운에 습기를 잔뜩 머금어 소리가 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뚱겨 보니 뜻밖에 소리가 난다. 화로는 손을 대어 보니 싸늘하여 불씨가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헤집어 보니 불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왜 갑자기 거문고와 화로로 화제를 돌렸을까. 소리가 안나는 거문고와 불씨가 꺼진 화로는 제 기능을 상실해 버린 상태를 의미하고, 소리가 안날 줄 알았는데 소리가 나고, 불씨가 없을 줄 알았는데 불씨가 있다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쓸모 없이 보여도 그 안에는 아직 쓸모를 간직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 거문고와 화로의 원관념은 바로 시인 자신인 것을 알 수 있겠다. 시인은 결국 지금 세상이 쓸모 없다고 자신을 버려도, 나는 아직 가슴 속에 경국제세(經國濟世)에의 포부를 간직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비로소 7.8구의 문맥이 소연해진다. 진흙탕 길이 정상적인 출입을 가로 막고 있으니 나가지 않고 문을 닫아 걸고 있겠노라는 것이다. 진흙탕 길은 곧 뜻있는 인사로 하여금 자신의 경륜과 포부를 펼칠 수 없도록 억압하고 제한하는 현실의 상황을 말한다. 대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야 우리는 서거정의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홀로 앉아 있음`의 참 의미는 하수상한 시절에 때를 기다리는 오롯한 몸가짐과 기다림이었던 것이다.
 
 
송나라 때 유명한 화가 이공린(李公麟)이, 한나라 때 장수 이광(李廣)이 오랑캐 아이와 말을 빼앗아 적지에서 탈출하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이광은 아이를 옆에 낀 채 말을 몰아 남으로 달리면서 오랑캐 아이의 활을 빼앗아, 힘껏 당겨 추격해오는 기병을 겨누고 있었다. 화살이 곧바로 발사될 곳을 보니 사람과 말이 모두 활에 응하고 있었다. 이공린은 함께 그림을 보던 황산곡(黃山谷)에게 웃으며 말하였다. "속된 자로 하여금 이를 그리게 한다면 마땅히 추격하는 기병이 화살에 맞은 모습으로 그렸겠지요." 황산곡은 그의 이 말을 듣고 그림의 격에 대해 크게 깨달았을 뿐 아니라, 시의 원리 또한 한 가지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제모연곽상보도(題摹燕郭尙父圖)〉에 나오는 이야기다. 꼭 이광의 화살이 추격병의 가슴을 꿰뚫어야만이 그의 용맹한 정신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의전신(寫意傳神)`의 본질을 해칠 뿐이다. 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 시와 그림은 이러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장수는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
 
 
이왕 그림 이야기가 나왔으니, 몇 가지 더 보기로 하자. 형호(荊浩)의 〈화론(畵論)〉을 보면 "장수는 목이 없고, 여인은 어깨가 없다. 將無項, 女無肩"이란 말이 나온다. 무슨 말일까? 목이 없는 장수가 어디 있는가. 여인은 어째 어깨가 없을까. 없어서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림을 그릴 때, 장수의 기상은 목을 없은 듯 짧게 그리는데서 드러나고, 미인의 가녀린 모습은 어깨 없이 부드럽게 흘러내린 곡선을 통해 강조된다는 말이다.
 
또 왕유(王維)가 〈원안와설도(袁安臥雪圖)〉를 그렸는데, 고사(高士) 원안(袁安)이 눈 쌓인 파초 아래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실제 파초는 남국의 식물이므로, 눈 내리는 추위 속에서는 시들고 만다. 그러니까 왕유의 그림은 사리에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왕유는 사리에 어긋남을 감수하면서 푸른 파초 위에 흰 눈을 그려 넣음으로써 원안의 맑고 시원한 정신의 풍격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당나라의 유명한 화가 고개지(顧愷之)가 은중감(殷仲堪)의 초상화를 그리려 하였는데, 은중감은 평소 눈병이 있었으므로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러자 고개지는 눈동자를 또렷히 그린 다음 그 위에 흰 색을 흩날려, 마치 엷은 구름이 달을 가린듯 하게 하여 은중감의 눈에 낀 백태를 처리하였다. 이는 사실에 대한 미화이기는 하지만 그의 눈병을 은폐한 것은 아니었다. 또 그가 배해(裵楷)의 초상화를 그리는데, 그림을 다 그린 후 뺨 위에 터럭 세 개를 덧 그렸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배해는 명철하여 식견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식견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신채가 아연 살아났다.
 
이런 몇 예화는 화가가 살아 있는 정신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일부 과장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설사 사실을 일부 왜곡했다 하더라도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화가는 사실을 무시해도 좋은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이러한 과장과 변형은 의경의 함축에 목적이 있다.
 
고시에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 한 것이 있다. 도대체 삼천장이나 되는 백발이 어디 있는가. 어느 날 시인은 거울을 보다가 어느덧 세어 버린 자신의 백발을 보고 놀란 마음을 삼천장이라는 길이의 개념으로 환치해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라니, 삼천척이나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여산폭포(廬山瀑布) 아래서 귀가 멍멍할 정도로 쏟어져 내리는 물소리가 주는 압도감은 삼천장의 길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방불하게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시가 언어의 과장과 함축이다. 그러고 보면 의자왕의 삼천 궁녀도 많은 수효의 범칭이지 꼭 세어 삼천명은 아닌 것이며, 천리마란 빨리 달리는 말이라는 뜻이지 정말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은 아닌 것이다. 무슨 말이 하루에 서울서 진주까지 달려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시를 읽는 독자는 시인이 쳐 놓은 언어의 그물에 걸려 들어서는 안된다. 그 대신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식견을 길러야 한다. 
그래서 연암 박지원은 〈능양시집서(菱陽詩集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미인을 보면 시를 알 수 있다. 그녀가 고개를 숙임은 부끄러운 것이다. 턱을 괸 것은 한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홀로 서 있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눈썹을 찌푸림은 근심스러운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림이 있을 때에는 난간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원망하는 바가 있을 때엔 파초 아래 서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화가가 굳이 미인의 심리를 묘사하지 않더라도, 동작 하나만 보면 그녀의 심리 상태는 다 알 수가 있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이런 시가 실려 전한다.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가 나귀를 타고 가는 미인을 만났다. 선녀가 적강한 듯 아름다운 모습에 그는 그만 발길이 얼어 붙었다. 연정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는 즉석에서 시를 써서 그녀에게 보냈다.
 
마음은 미인 따라 가고 있는데    
이 몸은 부질 없이 문 기대 섰소.  
 

心逐紅粧去  身空獨倚門
 
넋은 이미 그대에게 빼앗겨 버리고 나는 빈 몸뚱이만 남아 문에 기대 섰노라는 애교 섞인 푸념이었다. 그녀가 답장을 보내왔다.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驢嗔車載重  却添一人魂
 
그녀의 대답은 도무지 뚱딴지 같다. 당신이 내 마음을 온통 다 가져 가 버렸으니 책임지라는 말에 그녀는 나귀 걱정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늙은 나귀는 등에 태운 미인도 무겁다고 연신 가뿐 숨을 씩씩대며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 사람의 넋을 더 얹었으니 나귀만 더 죽어나게 생겼다는 말이다. 사랑하는 마음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사나이의 발길을 묶어 꼼짝도 못하고 서게 만들었으니 대단한 무게가 아닐 수 없다. 그녀의 이 답장은 기실, `나를 향한 그대의 마음을 내 마음 속에 접수 했노라`는 대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의 눈길에 내 마음도 철렁 내려 앉았고, 그 내려앉은 무게만큼 노새만 더 괴롭겠다는 멋들어진 응수이다. 일상적인 예상을 빗겨가는 이러한 비약에는 참으로 사람을 미혹케 하는 예술적 매력이 넘쳐 흐른다. 글자는 스무자에 지나지 않는데,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의 감정과 씩씩대는 나귀의 숨소리, 그와 함께 커져 가는 두 사람의 맥박 소리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전달되고 있지 않은가.
 
푸른 치마 아가씨 목화 따러 나왔다가     
길손과 마주 치자 길가로 돌아섰네.   
흰둥인 누렁이의 뒤를 따라 달리더니   
주인 아씨 앞으로 짝 지어 돌아오네. 
  

靑裙女出木花田   見客回身立路邊
白犬遠隨黃犬去   雙還却走主人前
 
신광수(申光洙)의 〈협구소견(峽口所見)〉이란 시이다. 푸른 치마 아가씨가 목화밭에 목화 따러 나왔다. 목화 바구니를 들고 가다가 저만치서 오는 낯선 남정네를 본 그녀는 부끄러워 내외를 하느라 길 가로 다소곳이 몸을 돌리고 서 있다. 그 때 그녀가 함께 데리고 나온 누렁이란 녀석이 컹컹 짖으며 앞으로 달려 나오고, 흰둥이란 녀석도 질세라 누렁이를 뒤쫓아 간다. 그리고는 두 놈이 어우러져 뒹굴며 장난 치다가 깜빡 생각났다는 듯이 주인 아가씨 앞으로 짝을 지어 달려들고 있다.
 
1.2구에는 푸른 치마와 흰 목화밭, 부끄러워 돌아선 그녀의 붉은 홍조가 빚어내는 색채의 선명한 대비 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시인이 만일 `너무나 수줍은 아름다운 그 모습, 다정하게 사랑을 속삭이고 싶네`와 같이 표현했다면, 이것은 시가 아니라 유행가의 가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말하는 대신 돌연하게도 두 마리의 개를 등장시켰다. 멀리 떨어져 있던 누렁이를 흰둥이가 쫓아가서는 어느새 어우러져 이 보란 듯이 제 주인에게 돌아오듯, 멀리서 조금씩 가까워지며 설레어버린 마음을, 그 아가씨와 다정히 앉아 정겨운 대화라도 나누고픈 마음을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 그녀는 흰둥이와 누렁이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나그네에게 들켜 버린 것만 같아 부끄러워 얼굴이 더욱 붉어졌을 테고, 가슴은 두방망이질 쳤을 게다. 2구와 3구 사이에 생긴 시상의 단절과 비약, 이 의도적인 의미의 단절과 암시적 결합 속에 바로 이 시의 참 묘미가 있다.
 
 
 
정오의 고양이 눈
 
 
옛날에 절묘하다고 세상에 전하는 그림이 있었다. 장송(長松) 아래 한 사람이 고개를 들어 소나무를 보는 모습을 그렸는데 신채가 마치 살아 있는 듯 하여, 천하의 명화로 일컬어졌다. 처사 안견(安堅)이 말하기를, "이 그림이 비록 묘하기는 하지만, 사람이 고개를 올려 보면 목 뒤에 반드시 주름이 잡히는 법인데, 이것은 없으니 그 뜻을 크게 잃었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물건이 되었다.
 
또 옛날 그림으로 묘필(妙筆)을 일컬은 것이 있었다. 늙은이가 손주를 안고 숟가락으로 밥을 떠 먹이는 모습을 그렸는데, 신채가 살아있는 듯 하였다. 세종대왕께서 이를 보고 말씀하시기를, "이 그림이 비록 좋긴 하다만, 무릇 사람이 어린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는 반드시 그 입이 절로 벌어지는 법인데, 이는 다물고 있으니 크게 실격이 된다"고 하였다. 이로부터 마침내 버린 그림이 되었다.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다. 두 그림 모두 기교로 보아서는 이미 정점에 도달해 있었다. 다만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도 있는 목 뒤의 주름과 자기도 모르게 벌어진 입에 대한 관찰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정작 화가가 놓친 것이 낙락한 소나무의 기상을 우러르는 선비의 마음과, 손주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고 보니, 그것은 결코 사소한 실수라 할 수 없다. 호리의 차이가 천리의 현격한 거리를 낳는다. 위 예화는 기교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속에 예리한 관찰과 예술가의 정신이 없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교훈을 전달한다. 유몽인은 이 예화를 소개한 뒤, "대저 그림과 문장이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번 본의를 벗어나면, 비록 금장수구(錦章繡句)라 하더라도 식자는 취하지 않는다. 오직 안목 갖춘 자만이 능히 이를 알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예술을 감상하는 일은 바로 이 호리의 차이를 변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
 
송 휘종황제가 용덕궁(龍德宮)을 완공한 후 어원의 화가를 불러 궁중 각처에 벽화를 그리게 한 일이 있었다. 완성되어 황제가 직접 둘러 보았으나 하나도 칭찬하는 바가 없었다. 다만 전각 앞 주랑에 그린 월계화(月季花) 그림을 가리키며 누가 그린 것이냐고 물었다. 신출내기 소년 화가가 앞으로 나왔다. 황제는 크게 상을 내렸다. 사람들은 까닭을 몰라 의아해 하였다. 황제는 "월계화는 잘 그리는 자가 드물다. 대개 사계절 아침 저녁으로 꽃술과 잎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 그림은 봄 날 정오의 것인데 터럭 만큼의 차이도 없다. 그래서 후하게 상을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동춘의 《화계》란 책에 보이는 일화다.
 
《몽계필담(夢溪筆談)》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구양수(歐陽修)가 한 떨기 모란꽃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을 얻었다. 잘 된 그림인지 어떤지를 알 수 없어 다른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은 그림을 가만히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꽃이 활짝 피고 색이 말라 있는 걸 보니 이것은 해가 중천에 있을 때의 모란이다. 고양이 눈의 검은 눈동자가 실낱같이 가느니 이 또한 정오의 고양이 눈이다." 예술 작품의 진가는 이렇듯 알아보는 안목 앞에서만 빛나는 법이다.
 
또 황전(黃筌)이란 화가가 나는 새를 그렸는데 목과 다리를 모두 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새는 목을 움츠리면 다리를 펴고, 다리를 움츠리면 목을 펴지 둘 다 펴는 법은 없다"고 지적하였다. 알아 보았더니 실제로 그러하였다. 이 또한 예리한 관찰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준다. 가짜와 진짜는 종이 한장의 차이도 없다. 가짜일수록 오히려 더 진짜같이 보이는 법이다. 관념화된 그림, 진정을 상실한 그림은 좋은 그림이 아니다. 정신은 간 데 없이 손 끝이 기교만으로 그리려 드니, 난초를 그린다는 것이 파가 되고, 대나무를 그렸는데 갈대가 되고 만다.
 
화가가 형상을 핍진하게 묘사하거나, 시인이 대상을 방불하게 묘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거기에 정신을 담는 일이다. 그래서 宋나라 진욱(陳郁)은 《설부(說 )》에서 "대개 그 형상을 그리는 데는 반드시 그 정신을 전해야 하고, 그 정신을 전하는 데는 반드시 그 마음을 그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군자와 소인이 모습은 같지만 마음은 다른데, 귀하고 천하며 충성스럽고 사악한 것이 어찌 스스로 구별되겠으며, 형상이 비록 닮았다 하더라도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을 그리기가 오직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고개지(顧愷之)가 "손으로 오현을 타는 것은 그리기 쉽지만, 돌아가는 기러기를 눈으로 보내는 것은 그리기 어렵다. 手揮五絃易, 目送歸鴻難"고 한 것도 다 같은 뜻에서 나온 말이다.
 
이러한 점은 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정을 머금어 이를 펴고, 경물을 대하여 마음을 움직이며, 물상을 그려냄에 그 정신을 얻게 된다면, 저절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정신의 향기 없이 표현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성정의 천진함은 어느 새 사라져 버리고 말아 어떠한 생동감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청나라 원매(袁枚)는 그의 《속시품(續詩品)》에서 이렇게 말한다. "용모에 부족함이 있어서 분을 바르고 연지를 칠한다. 재주에 부족함이 있으면 전고를 끌어다 쓰고 책에서 찾게 된다. 옛 사람 문장이라 하여서 다 잘 된 것은 아니니, 거짓으로 웃고 거짓으로 슬퍼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의 광대가 된 것이다. 이에 미인을 그려도 사랑스럽지 않고, 난초를 그려도 향기가 없게 된다. 그 연유를 헤아려 보면 진정 나타내려는 것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이호민(李好閔)이 어느날 소낙비가 창문을 두드리자 갑자기 시 한 구절을 얻었는데,
 
산 비가 창문에 떨어짐이 많구나   

山雨落窓多
 
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를 이어 다시 짓기를,
 
시냇물은 대 숲 뚫고 졸졸 흘러가네.   
 
磵流穿竹細
 
라 하고, 마침내 시 한편을 이루어 이산해(李山海)에게 보였다. 그러자 그는 `산우낙창다(山雨落窓多)`에만 비점을 찍어 돌려 보냈다. 이호민이 그 까닭을 묻자 이산해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이 실제 경물과 만나 먼저 이 구절을 얻었을 것이다. 나머지 구절은 그 다음에 만든 것이다. 시 전편의 참된 뜻이 모두 이 귀절에 있기 때문에 거기에만 비점을 쳤다." 비록 속인들을 속일 수는 있어도, 안목 있는 사람 앞에서 진짜와 가짜는 금새 판별되고 마는 법이다.
 
다음은 강희맹(姜希孟)의 〈임풍루(臨風樓)〉란 시의 일련이다.
 
제비가 짝져 날아 버들가지 날리는데   
청개구리 개굴개굴 비 기운에 어둑한 산.   
 

紫燕交飛風拂柳   靑蛙亂叫雨昏山
 
김류는 〈객중(客中)〉시에서 이를 변용시켜 다음의 일련을 얻었다.
 
먼 산 비 기운 띠자 연못 개구리 어지럽고  
버드나무 바람 머금어 제비는 비스듬 나네.  

遙山帶雨池蛙亂   高柳含風海燕斜
 
한시는 7언의 경우 넉 자 석 자, 5언의 경우 두 자 세 자로 끊어 읽는다. 또 각구는 허사와 실사로 이루어진다. `자연(紫燕)`과 `청와(靑蛙)`에서 `자(紫)`와 `청(靑)`이 허사라면, `연(燕)`과 `와(蛙)`는 실사이다. 자! 이제 두 구절을 비교해 보자. 앞 시의 실사는 `연(燕).풍(風).류(柳).와(蛙).우(雨).산(山)`의 여섯 글자다. 이 여섯 글자를 표시해 두고, 뒤의 시에서 어떤 위치로 옮겨 가 있는지 살펴 보자. 김류의 시는 강희맹의 시와 비교하여 볼 때 우선 아래 위가 바뀌었고, 앞 뒤의 순서도 바뀌었으며, 다만 허사를 교체한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시의 의경을 비교해 보자. 둘 다 봄날 비 올 무렵의 경물을 묘사하고 있다. 강희맹의 시를 보면, 제비가 짝져 날아 그 활발한 날개짓이 바람을 일으켜 버들가지를 하늘거리게 하고,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울어대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먼 데 산이 빗기운에 어둑해지더라고 했다. 봄날의 약동하는 흥취가 제비의 경쾌한 날개짓과 청개구리의 울음소리 속에 물씬하다. 뿐만 아니라 제비와 청개구리의 행동은 무정물인 버드나무 및 산과 상호 교감하고 있다. 그런데 김류의 시는 어떠한가. 그저 먼 산이 빗기운을 띠자 개구리도 그걸 보고 시끄럽게 울고, 버드나무 사이로 부는 세찬 바람에 제비의 날개짓도 비스듬하다는 것이니, 단어와 단어 사이의 탄력은 없고 여운도 적다. 어음(語音) 면에서도 음악미가 부족하다. 강희맹이 봄날의 경치와 직접 마주하여 떠오른 흥취를 노래했다면, 김류의 시는 강희맹의 구절을 가공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의 사용이 거의 같음에도 불구하고 시의 격은 크게 달라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하나는 진짜고 하나는 가짜다. 그런데 그 차이는 종이 한 장 밖에는 되지 않는다.
 
 
 
마음에서 얻어 뜻으로 깨달으니
 
 
구양수(歐陽修)의 《육일시화(六一詩話)》에 보면, 매요신(梅堯臣)과 시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매요신은 "반드시 능히 묘사하기 어려운 경치를 형상화하여 ?이 눈 앞에 있는 것 같이 하고,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어 말 밖에 드러나게 한 뒤라야 시가 지극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구양수는 묘사하기 어려운 경물을 형상화 하여 다하지 않는 뜻을 머금는다는 것은 어떤 시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매요신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짓는 사람은 마음에서 얻고, 보는 이는 뜻으로 깨달으니, 말로써 무어라고 꼬집어 진술하기는 어렵다. 비록 그렇기는 해도 또한 그 방불함을 대략 말할 수는 있다. 온정균(溫庭筠)의 "주막집 달빛에 닭은 울고, 판교(板橋)의 서리 위엔 사람 발자국. 鷄聲茅店月, 人迹板橋霜" 같은 것이나, 가도(賈島)의 "괴이한 새 광야에서 우짖어, 지는 해 나그네를 두렵게 한다. 怪禽啼曠野 落日恐行人"와 같은 것은 길 가는 괴로움과 나그네의 근심이 말 밖에 드러나 있지 않은가?
 
온정균의 시를 좀더 살펴 보자. 주막집 달과 닭 울음 소리는 이른 새벽녘임을 말해준다. 판교는 널판지로 만든 다리이다. 다리 위엔 밤새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그 서리를 밟고 가는 사람. 그 뒤로 발자국이 또렷이 찍힌다. 걸을 때마다 삐걸거리는 판자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른 새벽, 서리를 밟으며 나그네는 어디로 걸음을 재촉하는가. 서리 내린 새벽의 뼈에 저미는 추위는 또 어떠한가. 이 모든 상황이 단지 이 열 글자 안에 농축되어 있다.
정몽주가 일본에 사신 갔을 때 지은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매화 창가에 봄 빛 이른데   
판자 집에 빗소리가 요란하구나
.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매화가 막 피는 계절이니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판자 지붕 위에는 빗소리가 자못 요란하다. 대개 우리나라에서는 겪지 못한 섬나라의 기후와 풍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정작 이 시의 묘처는 `판옥(板屋)`이란 표현에서 찾아진다. 판옥 즉 판자로 엮은 집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낯선 풍물로 읽는 이에게 이국정서를 촉발시킨다. 동시에, 판자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의 경쾌한 울림은 창 밖으로 매화를 바라보는 시인의 설레이는 마음까지를 담아 상쾌한 음향으로 독자의 정서 속으로 파고 든다. 또 떠나올 때는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해를 넘겨 이역만리 타국 땅 여관에서 봄비 소리를 듣는 시인의 마음 속에는 절로 떠오르는 아련한 고향 생각이 묻어 있다. 이것이 이 시구가 일본의 절창으로 두고 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연유이다. 이색(李穡)은 그의 〈부벽루(浮碧樓)〉에서,
 
성은 비었고 달만 한 조각    
돌은 늙어도 구름은 천 년.   
 

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
 
이라고 노래하였다. 텅 빈 성과 조각달, 바위와 구름의 대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참으로 많은 생각에 젖게 한다. 예전 번성했던 성엔 이제 사람의 자취는 찾을 길 없고 조각달만 옛 기억처럼 희미하게 떠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달마저 얼마 안 있어 그믐의 암흑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닌가. 바위에는 세월이 할퀴고 간 흔적만이 남았다. 그 위로 또 무심한 구름은 천년 세월을 덧없이 흘러갔다. 그 세월 동안 인간 세상의 영고성쇠는 또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이렇듯 각 구절의 사이에는 말하지 않고 남겨 둔 여운이 길고도 깊다.
또 김종직(金宗直)은 〈불국사여세번화(佛國寺與世蕃話)〉에서
 
푸른 산 반 쪽에선 비가 내리고    
해지는 상방에선 종이 울린다.   
  

靑山半邊雨   落日上房鍾
 
이라 하였다. 시인은 청산의 반쪽에 비가 온다고 말하여 다른 한 쪽에는 비가 내리지 않음을 보였다. 이편에는 비가 오는데 저편에서는 해가 진다. 떨어지는 해가 못내 아쉬운 듯 절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푸른 산과 붉은 해, 서늘한 비와 맑은 종소리. 경물과 마주하고 선 시인의 맑고 쇄락한 정신이 이러한 이미지들의 결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차천로(車天輅)는 〈영고안(詠孤雁)〉에서,
 
산하엔 외로운 그림자 없어지고    
천지에 한 소리만 비장하더라.    

山河孤影沒   天地一聲悲
 
라 했다. 날아가던 기러기의 외로운 그림자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도 아직 시인의 귀에는 천지를 가득 메운 기러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기러기야 무슨 외롭고 말고 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깊은 밤 까닭 모를 근심에 겨워 잠 못 이루고 뜨락을 서성이던 시인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기러기라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개 이러한 것이 경물과 시인의 정신이 만나 결합되는 양상들이다. 이렇듯 한 편의 훌륭한 시는 겉으로는 덤덤한 듯 하지만 하나하나 음미해 보면 그 행간에 감춰진 함의가 무궁하여 `말은 다함이 있어도 뜻은 다함이 없는 언유진이의무궁(言有盡而意無窮)`의 경계를 맛보게 해 준다. 시인의 진실한 느낌이 없는 시는 아무리 아름다운 표현으로 휘갑되었다 하더라도 독자의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맹자는 아무리 아름다운 서시(西施)와 같은 미인이라 하더라도 오물을 뒤집어 쓰면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이를 지나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뜻을 담았다 하더라도 올바른 표현을 얻지 못한다면 읽는 이들은 외면하여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시는 본 바탕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덕지덕지 분을 바른 여인의 분내를 경멸한다.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는 글씨를 쓰다 남은 먹이 버리기 아까와 그린듯한 갈필의 거친 선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대교약졸(大巧若拙)`, 정말 큰 기교는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 졸렬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시인의 덤덤한 듯, 툭 내뱉듯이 던지는 한 마디는 촌철살인의 예리한 비수가 되어 독자의 의식을 헤집는다. 좋은 시는 독자에게 방심하고 있다가 느닷 없이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준다. 이에 반해 화가의 정신이 들어가 있지 않은 어떤 그림도 이발소 그림, 목욕탕 벽화에 지나지 않는다. 사진과 똑같이 그려진 영화관의 간판은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가끔 그 기교가 우리를 감탄시킬 수 있을 뿐이다.


 

 

 

3.언어의 감옥: 立象盡意論
 
 싱거운 편지
 
함경도 안변 땅에 벼슬 살러 가 있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이 서울에 있던 백광훈白光勳에게 편지를 보내 왔다. 반가운 마음에 겉봉을 뜯어보니,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 밝은 달과 마음으로 친히 지내고 있소.

三千里外, 心親一片雲間明月
 
 
라는, 딱 열 두 자 한 줄의 사연이다. 이만 사연 전하자고 천리 길에 편지를 띄웠더란 말인가. 그러나 음미할수록 새록새록 정감이 넘나는 뭉클한 사연이다. 한 조각 구름 속에 밝은 달이라 했으니, 달은 달이로되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달이다. `心親`이라 하여 그밖에 다른 것에는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있음을 보였다. `月印天江`이랬거니, 달은 나 있는 안변이나 너 있는 한양이나 가뭇없이 비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널 보듯이 달을 보고, 달 보듯이 너를 생각는다는 사연이다. 그나마도 그 모습은 보일듯 구름 사이로 숨기 일쑤이니 이 아니 안타까운가. 단지 열 두자의 편지가 심금을 울린다.
 
노산의 시조에 "진달래 피었다는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란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라고 한 것이 있지만, 야릇할 손 봉래의 편지여! 삼천리 밖에서 한 조각 구름 사이로 얼굴을 빠꼼이 내민 달과 친하다니 말이다. 그리움을, 보고 싶단 말을 이리 말하는 마음. 삼천리 밖에서 보낸 편지 치고는 싱거워서 뭉클한 사연이다.
 
 
서울 봄날 한 통의 편지를 받아드니                     
글 속엔 다만 `심친心親`이란 말 뿐이라.                    
그리는 맘, 구름 달을 오히려 부렀구나                  
삼천리 밖 사람에게 나누어 비칠테니.  
   
              
一紙書來漢口春  書中有語只心親
相思却羨雲間月  分照三千里外人
 
앞 편지를 받고 쓴 백광훈의 시이다. 편지를 손에 들고 그 역시 그리움에 두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했을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백광훈의 시를 다시 한 수 더 감상해 보기로 하자.
 
 
뜬 인생 백년 간을 괴로워 하며                       
웃는 얼굴로 식구를 달래었지.                        
금릉성 아래 와서 올려다 보니                        
흰 구름 아직도 구봉산에 걸렸구나
  
  
              
浮生自苦百年間  說與妻兒各好顔
却到金陵城下望  白雲猶在九峯山
 
 
제목은 〈별가別家〉이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부생浮生`을 탄식하며 `자고自苦`한다 했으니, 떠나는 사연이야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그는 젊은 날 실의와 곤궁 속에 처가에서 더부살이 하는 처지였었다. 이후로도 실의와 좌절은 평생을 두고 따라 다녔지만, 한미한 집안의 선비로 기약 없는 청운의 길을 찾아, 처자식을 처가에 맡겨 두고 길 떠나는 참담함이 1.2구 안에 눈물처럼 배여 있다. 좋은 낯빛으로 떠난다는 말이 그래서 더 안스럽다.
 
집을 떠나 재를 건너고 뫼를 넘어, 금릉성 아래 께까지 와서 참고 참다 집 쪽을 돌아보았다. 산 마루가 가로 놓여 있으니 보일 리 없다. 그러나 구봉산엔 흰 구름이 그대로 걸려 있구나. 집을 나설 때 암담하게 막아서던 구봉산. 그 때 그 묏부리 위에 걸려 있던 그 구름이 여태도 그곳에 머물러 있다. 1구의 `부생`과 4구의 `백운`이 여기서 다시 만난다. 정처 없이 떠돌아도 좋은 날은 오지 않는데, 저 산 마루 위 구름은 `공자망空自忙`의 부생浮生을 비웃기나 하는 듯이, 제가 무슨 바위 인양 꿈쩍 않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 웃는 얼굴로 헤어졌지만 가슴을 에이는 씁쓸한 느낌, 금릉성을 내려와 구봉산 돌아 보니, 올라 올 적 흰 구름이 그대로 걸려 있네. 아직도 가족 생각에 애잔한 내 마음처럼. 백광훈은 다정다감한 시인이다. 이런 그이고 보니, 봉래의 앞서의 편지가 있음직도 했겠다. 그의 시를 가만이 읽고 있노라면, 필자는  웬지 그 잔잔한 슬픔에 감염되어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곤 한다.

 

 

 

왜 사냐건 웃지요
 
 
옛 사람의 글에는 야단스러움이 없다. 간결하게 할 말만 하고, 때로 아무 말도 않기도 한다. 그래도 마음은 글자 사이로 흘러, 행간에 고여 넘친다. 예전 중국의 곽휘원郭暉遠이란 이가 먼데로 벼슬 나가 있다가 집에 편지를 보냈는데, 착각하여 백지를 넣고 봉하였다. 그 아내가 오랜 만에 온 남편의 편지를 꺼내 보니 달랑 백지 한 장 뿐이었다. 답시를 보냈다.
 
 
푸른 깁창 아래서 봉함을 뜯어보니                  
편지지엔 아무 것도 써 있질 않더이다.              
아하! 우리 님 이별의 한 품으시고                  
말 없는 가운데 그리는 맘 담으셨네.
                
碧紗窓下啓緘封  尺紙終頭徹尾空
應是仙郞懷別恨  憶人全在不言中
 
 
청나라 원매袁枚의 《수원시화隨園詩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아내의 난데 없는 답장을 받아든 곽휘원은 아마 그때까지도 무슨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꿈 보다 해몽이 더 좋은 경우이긴 하지만, 일껏 편지를 써 놓고 백지를 봉해 부치는 곽휘원의 약간 모자란듯한 멍청함이 오히려 매력적이다. 정작 원매도 쓰다달다 말 없이 단지 그녀의 답장만을 실어 놓고 말을 멎고 말았다. 정말 마음이 통하는 사람 사이에 언어란 원래 불필요한 것이다.
 
본래 동양의 예술 정신은 다변과 요설을 싫어한다. 긴장을 머금은 함축을 소중히 여긴다. 진晋나라 때 환이桓伊란 사람은 피리를 잘 불기로 유명했다.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가 시내가에 배를 대고 있는데, 환이가 언덕 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때까지 서로 인사가 없던 터였다. 왕휘지가 사람을 보내 말했다. "듣자니 그대가 피리를 잘 분다는데, 나를 위해 한 곡 연주해 주겠는가." 환이는 당시 높은 신분이었는데, 그 또한 평소 왕휘지의 명망을 듣고 있었다. 두 말 없이 수레에서 내린 그는 호상胡床에 걸터 앉아 그를 위해 세 곡의 노래를 연주하였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말 없이 다시 수레에 올라 그 자리를 떠나갔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 마디의 말도 직접 오가지 않았다.
 
예전 카알라일과 에머슨이 처음 만나 30분 가량을 아무 말 않고 앉았다가는 오늘은 퍽 재미나게 놀았다며 악수하고 헤어졌다는 싱겁고도 이상한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어는 부질 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어찌하여 푸른 산에 사냐 묻길래                   
웃고 대답 아니해도 마음 절로 한가롭네.           
복사꽃 흐르는 물 아득히 떠 가거니                
또 다른 세상일래, 인간이 아니로세. 
       
        
問余何事棲碧山  笑而不答心自閒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다. 산 속에 묻혀 사는 나에게, 왜 답답하게 산 속에 사느냐고 묻는다. 묵묵부답, 싱긋이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말한다고 한들 그가 내 마음을 어이 헤아릴 것이랴. 또 낸들 무슨 뾰족한 대답이 있을 리 없다. 그저 "산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나, "왜 사냐건 웃지요" 밖에는. 복사꽃이 물 위로 떠 가니, 상류 어디엔가 무릉의 도원이 있지나 않을런지.
 
다음은 고려 때 최유청崔惟淸의 〈잡흥雜興〉 시 연작 가운데 한 수이다.
 
봄풀 어느덧 저리 푸르러                             
동산 가득 나비가 날아다닌다.                        
봄바람 잠든 나를 속여 깨우려                        
침상 위 옷깃을 불어 흔드네.                         
깨고 보면 고요히 아무 일 없고                       
숲 밖엔 저녁 해만 비치고 있다.                      
난간에 기대어 탄식하려다                            
고요히 이미 기심機心 잊었네. 

春草忽已綠  滿園蝴蝶飛
東風欺人垂  吹起床上衣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연초록 푸르른 동산에 나비 떼들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꿈 같은 봄날의 스케치이다. 감미로운 햇살에 곤한 봄잠이 깊어 있던 그를, 짖궂은 봄 바람은 자꾸만 일어나라고 옷자락을 흔든다. 이 아름다운 봄날을 잠으로만 보내서야 되겠느냐는 점잖은 충고다. 무슨 일인가 싶어 부시시 일어나보면, 여전히 나비 떼는 날아다니고, 동산은 싱그럽고, 어느덧 햇살만이 뉘엿해 있을 뿐이다. 기운 햇살의 빗긴 볕을 받아 반짝이는 물상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시인은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탄식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입술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입안을 맴돌다 고요히 사라지고, 어느덧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잊고 말았다는 것이다.
 
시인이 보여주는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 새 시인 대신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선잠을 깨어 바라보는 봄날 해질 녘 광경의 황홀함 속에서 그가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느낌조차 무화無化시켜 버리고, 기심機心 즉 분별하고 헤아리는 마음마저 앗아가 버린 것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 시는 이렇듯 모든 것이 기화해 버리고 남은, 순수한 결정의 세계를 노래한다. 그래서 내가 봄동산이 되고, 그 동산의 나비가 되어 봄날의 석양 속으로 훨훨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노래한다. 필설로 옮기려 하는 순간 증발해 버리듯 사라져 버린 기심, 사물과의 순간적인 만남이 가져다 주는 이러한 생취生趣를 설명적 언어로 옮기려는 시도는 얼마나 허망한가. 그러고 보면 언어는 참으로 무력하기 짝이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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