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解 王
一 然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은 南解王(南解次次雄. 新羅의 제2대왕. 在位 4~24年)時에 駕洛國海中에 有船來泊이라 其國首露王이 與臣民으로 鼓譟而迎하여 將欲留之로되 而舡乃飛走하여 至於雞林東下西知村의 阿珍浦(今有上西知‧下西知 村名)라 時에 浦邊有一嫗하니 名阿珍義先으로 乃赫居王之海尺之母라
탈해치질금(脫解齒叱今)(一作 토해니사금(吐解尼師今)이라고도 한다.)은 남해왕(南解王) 때에 가락국(駕洛國)의 바다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그 나라의 수로왕(首露王)이 신하 및 백성들과 더불어 북을 치고 환호하며 맞이해 장차 가락국에 머무르게 하려 하였으되 배가 급히 나는 듯이 달려 계림(鷄林)의 동쪽 하서지촌(下西知村)의 아진포(阿珍浦)에 이르렀다.(지금도 상서지(上西知)와 하서지(下西知)라는 촌명이 있다.) 당시 포구의 해변에 한 할멈(嫗)이 있었으니 이름은 아진의선(阿珍義先)이라 하였는데, 이가 바로 혁거세왕(赫居世王) 때의 고기잡이(海尺)의 어머니였다.
* 수로왕(首露王): 삼국시대 金官伽倻의 제1대 왕. 재위 42∼199년.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김씨의 시조이다. 42년(신라 유리왕 19) 금관가야 9부족의 추장인 9간(干)이 김해구지봉(龜旨峰)에 모였을 때 붉은 보자기에 싸여 하늘로부터 내려온 금합(金盒) 안에서 해처럼 둥근 황금알 여섯 개를 얻었다. 반나절 만에 여섯 개의 알은 모두 사람으로 화하였는데 수로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키가 9자[尺]이고 팔자 눈썹이며 얼굴은 용과 같이 생겼는데, 처음으로 사람으로 화했기 때문에 '수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 달 보름에 9간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으며,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을 비로 삼았다.
* 해척(海尺):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를 업(業)으로 하는 사람.
望之謂曰 此海中엔 元無石嵓이온 何因鵲集而鳴가하고 拏舡尋之하니 鵲集一舡上이라 舡中有一櫃子한데 長二十尺이요 廣十三尺이라 曳其船하여 置於一樹林下하고 而未知凶乎吉乎하여 向天而誓爾라
배를 바라보며 말하기를 “본시 이 바다 가운데에 바위(石嵓)가 없는데 어찌해서 까치(鵲)가 모여서 울고 있는가?” 하고 배(舡)를 끌어당겨 살펴보니 까치가 배(舡) 위로 모여들고 배(舡) 안에 상자(樻)하나가 있었는데, 길이는 20尺이고 넓이는 13尺였다. 그 배를 끌어다가 나무숲 아래에 매어두고 이것이 흉(兇)한 일인지 길(吉)한 일인지를 몰라 하늘을 향해 고하였다.
俄而乃開見하니 有端正男子한데 幷七寶‧奴婢滿載其中이라 供給七日하니 迺言曰 我本龍城國人(亦云 正明國, 或云 琓夏國, 琓夏或作花厦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이니 我國에 嘗有二十八龍王하여 從人胎而生하며 自五歲六歲로 繼登王位하여 敎萬民修正性命이요 而有八品姓骨이라 然이나 無揀擇히 皆登大位라
잠시 후 궤를 열어보니 단정히 생긴 사내아이가 있고, 또 일곱 가지 보물(七寶)과 노비(奴婢)가 그 속에 가득하였다. 7일 동안 잘 대접하였더니, 이에 말하기를 “나는 본시 용성국(龍城國) 사람이오, (또 이르기를 정명국(正明國) 혹은 완하국(琓夏國)이라고도 한다. 완하(琓夏)는 혹 화하국(花廈國)이라고도 한다. 용성(龍城)은 왜(倭)의 동북 일천리에 있다.) 우리나라에 일찍이 이십팔 용왕(二十八龍王)이 있는데, 모두 다 사람의 태(胎)에서 태어나 5~6세 때부터 왕위(王位)에 올라 만민(萬民)을 가르치고 성명(性命)을 닦아서 바루었습니다. 그리고 팔품(八品)의 성골(姓骨)이 있지만 선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王位)에 올랐습니다.
時에 我父王含達婆ㅣ 娉積女國王女하여 爲妃한데 久無子胤하여 禱祀求息하여 七年後에 産一大卵이라 於是에 大王ㅣ 會問群臣을 人而生卵은 古今未有니 殆非吉祥이라하고 乃造櫃置我하고 幷七寶‧奴婢 載於舡中하고 浮海而祝曰 任到有緣之地하여 立國成家라하니 便有赤龍이 護舡而至此矣라
이때 우리 부왕(父王) 함달파(含達婆)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王女)를 맞이하여 왕비(王妃)로 삼았는데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자식 구하기를 기도하여 7년 만에 커다란 알(卵) 한 개를 낳았습니다. 이에 대왕(大王)이 군신(羣臣)들을 불러 모아 말하기를 ‘사람이 알(卵)을 낳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古今)까지 없었던 일이니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하고 궤(樻)를 만들어 나를 넣고 더불어 일곱 가지 보물(七寶)과 노비(奴婢)들을 함께 배 안에 실은 후, 바다에 띄워놓고 축언하여 이르기를, ‘인연이 있는 곳에 닿는 대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라’, 하니 붉은 용(赤龍)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하였다.
言訖에 其童子ㅣ 曳杖率二奴하고 登吐含山上하여 作石塚하고 留七日하며 望城中可居之地라가 見一峰如三日月한데 勢可久之地라 乃下尋之하니 卽瓠公宅也라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며 두 종을 데리고 토함산(吐含山)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칠일 동안 머물렀다. 성(城) 안에 살만한 곳을 살펴보니 마치 초사흘달(三日月)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하나 보이는데 지세가 오래 머물만한 땅이었다. 이내 내려와 그 곳을 찾으니 바로 호공(瓠公)의 집이었다.
* 호공(瓠公):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본래 왜인으로 신라에 건너와서 혁거세 38년(기원전 20) 마한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탈해왕 2년(58)에는 대보(大輔)가 되었다.
乃設詭計하여 潛埋礪炭於其側하고 詰朝에 至門云 此是吾祖代家屋이라하니 瓠公云 否라하여 爭訟不決하여 乃告于官이라 官曰 以何驗是汝家아 童曰 我本冶匠(대장장이)이러니 乍出隣鄕에 而人取居之니 請掘地撿看하소서 從之하니 果得礪炭하여 乃取而居爲라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새벽 아침에 문 앞에 가서 “이 집은 조상 때부터 우리 집입니다.”라고 말했다. 호공(瓠公)이 “그렇지 않다.” 하여 서로 다투었으나 시비(是非)를 가리지 못하였다. 이에 관가에 고하자 관가에서 묻기를 “그 집이 너의 집임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하자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는데 얼마 전 이웃 고을에 간 사이에 그 집을 다른 사람이 빼앗아 살고 있으니 청컨대 땅을 파서 조사하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따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으므로 이에 그 집을 취하여 살게 하였다.
時에 南解王은 知脫解是智人하고 以長公主로 妻之하니 是爲阿尼夫人이라
이때 남해왕(南解王)은 그 어린이, 즉 탈해(脫解)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맏 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었는데 이가 바로 아니부인(阿尼夫人)이다.
一日 吐解ㅣ 登東岳이라가 廻程次에 令白衣索水飮之라 白衣汲水라가 中路先嘗而進한데 其角盃ㅣ 貼於口하여 不解라 因而嘖之하니 白衣誓曰 爾後론 若近遙에 不敢先嘗이라하니 然後乃解라 自此로 白衣ㅣ 讋服不敢欺罔이라 今東岳中有一井한데 俗云 遙乃井이 是也라
하루는 탈해(吐解)가 동악(東岳)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백의(白衣)를 시켜 물을 떠 오게 하였다. 백의(白衣)는 물을 떠 오다가 중도에서 자기가 먼저 마시고 올리려 하였는데, 물그릇 한쪽이 입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그를 꾸짖자 백의(白衣)가 맹세하기를 “이후로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감히 먼저 맛보지 않겠습니다.”라 하니 이후에 떨어졌다. 이후로 백의(白衣)는 탈해(脫解)를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못했다. 지금 동악(東岳) 속에 우물 하나가 있어 세상 사람들이 요내정(遙乃井)이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우물이다.
* 토해(吐解): 신라 4대왕(재위 57~80년). 탈해니사금(脫解尼師今)이라고도 한다. 성(姓)은 석씨(昔氏). 비(妃)는 아효부인(阿孝夫人)이다. 본시 다파나국(多婆那國) 출생이다. 국왕이 여국왕(女國王)의 딸을 데려와 아내를 삼았는데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왕이 상서롭지 않다고 버리라고 했는데 그 아내는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진한(辰韓)의 아진포구(阿珍浦口=영일(迎日))에 이르니 한 노파가 데려다가 길렀다. 자라매 키가 9척이고 인물이 동탕하고 지식이 뛰어났다. 처음 궤짝이 와 닿을 때까지 까치 한 마리가 따라 다녔으므로 작(鵲)의 한 쪽인 석(昔)을 성으로 삼았다. 궤짝을 풀고 나왔으므로 탈해(脫解)라고도 하였다. 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의 사위가 되고 대보(大輔) 벼슬을 하였는데 3대 유리니사금(儒理尼師今)이 돌아갈 때 유언으로 탈해에게 위(位)를 전하라고 해서 왕에 즉위하였다.
* 백의(白衣): 불교에서 재가신도를 이르는 말이다. 불교 발생 초기 인도 수행승들은 색깔 있는 옷을 입었으며, 세인들은 흰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습 탓에 흰옷은 세속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본문에서 白衣라는 것은 일반 백성 혹은 평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及弩禮王崩하여 以光虎帝中元二年丁巳六月에 乃登王位라 以昔是吾家取他人家故로 因姓昔氏라 或云 因鵲開櫃故로 去鳥字하여 姓昔氏라하고 解櫃脫卵而生故로 因名脫解라
노례왕(弩禮王)이 세상을 떠나자 광호제(光虎帝) 중원(中元) 2년 정사(丁巳) 6월에 왕위에 올랐다. 옛날에 자기 집이라 하여 남의 집을 빼앗은 까닭에 성을 석(昔)씨로 하였다. 혹은 까치(鵲) 덕분에 상자(樻)를 열 수 있었기 때문에 새 조(鳥)를 떼고 성을 석(昔)씨로 삼았다고도 한다. 그리고 궤(樻)를 열어서 알을 깨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름을 탈해(脫解)라 했다고 한다.
* 光虎帝: 고려 2대 임금인 혜종(惠宗)의 이름인 武를 피휘하기 위하여 호(虎)로 썼다.
* 中元: 후한 光武帝의 연호로 56~57년에 사용하였다.
在位二十三年인 建初四年己卯(79年)崩하여 葬䟽川丘中한데 後에 有神詔愼埋葬我骨이라하다 其髑髏周ㅣ 三尺二寸이요 身骨長은 九尺七寸이라 齒凝如一하고 骨節은 皆連瑣하니 所謂天下無敵力士之骨이라 碎爲塑像하여 安闕內하니 神又報云 我骨을 置於東岳하라 故로 令安之라(一云, 崩後二十七世文虎王代, 調露二年庚辰三月十五日辛酉, 夜見夢於太宗, 有老人貌甚威猛, 曰 我是脫解也. 拔我骨於䟽川丘, 塑像安於土含山. 王從其言, 故至今國祀不絶, 卽東岳神也云.)
재위 23년만인 건초(建初) 4년 기묘(己卯)에 세상을 떠났다. 소천의 언덕에 장사를 지냈는데 그 후 신(神)이 명령하기를 “내 뼈를 조심스럽게 묻어라.” 했다. 그 두개골의 둘레는 3척 2촌이고 몸 뼈의 길이는 9척 7촌이나 되었다. 치아(齒)는 서로 붙어 마치 하나가 된 듯하고 뼈마디 사이는 모두 이어져 있었다. 이는 소위 천하에 당할 자 없는 역사의 골격이었다. 부수어서 소상(塑像)을 만들어 궐 안에 안치하자 신(神)이 다시 말하기를, “내 뼈를 동악(東岳)에 안치하라.” 하였다. 그런 까닭에 영을 내려 그 곳에 모시게 하였다. (일설에 이르기를 ‘돌아가신 후 제27세 문호왕(文虎王)대인 조로(調露) 2년 경진(庚辰) 3월 15일 신유(辛酉) 밤에 태종(太宗)의 꿈에 외모가 매우 위엄 있고 용맹한 노인이 나타나 “ ‘내가 바로 탈해(脫解)다.’ 라고 하며 소천구(疏川丘)에서 내 유골을 파내어 소상(塑像)을 만들어 토함산(吐含山)에 안치해 달라!” 하니 왕(王)이 그 말을 따랐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 국가 제사가 끊이지 않으며 바로 동악신(東岳神)이라 부른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