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치운 식탁 위의 차 한 잔
아침을 먹고 상을 물린 식탁입니다. 창가의 나무 식탁에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옵니다.
조금 전까지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와 반찬 접시가 놓여 있던 자리가 말끔히 치워졌습니다. 그로부터 30분. 식탁 위에는 딱 하나, 김이 오르는 진한 갈색의 탕약 한 잔이 놓입니다. 작은 잔에 110cc 남짓.
무엇을 더 놓은 식탁이 아닙니다. 무엇을 치운 식탁입니다.
지난 호에서 못된 습성은 단번에 잘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잘라 낸 다음에는 씻어야 합니다. 그 씻는 일이 이 식탁에서 시작됩니다.
책은 그 마음을 이렇게 적습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관념을 떠나, 사흘만이라도 다른 세상에 왔다는 생각으로.
어디로 떠나라는 것이 아닙니다. 늘 앉던 식탁, 늘 살던 집 그대로입니다. 다만 사흘 동안은 낯선 곳에 막 도착한 사람처럼, 익숙한 것들을 잠시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내가 이루고자 하던 것과, 나에게 유익한 것을 얻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절차를 따라 행하는 것을 청결심법이라 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차 한 잔으로 시작하는가.
책은 우리가 자신을 닦아, 가라앉아 버린 스스로 살아나는 힘을 되살리려는 마음조차 잊은 채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무언가의 힘을 빌려서라도 먼저 몸과 마음을 깨끗이 준비시켜야 합니다.
그때 차가 쓰입니다. 책은 차를 이렇게 부릅니다. 나 밖에 있으면서, 나와 함께 생리가 되어 있는 음식. 먹는 것은 본래 따로 구해 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 된 생리입니다.
"차나 약의 이치와 같은 삼자적인 힘이라도 빌려서 나를 일단 심신간에 깨끗이 준비시키고 금식에 들어가기 위해 취하게 되는 청결심법의 첫 수순으로 청결심차를 마신다."
식탁 위의 그 한 잔이 청결심차입니다.
청결심법의 사흘 동안 밥은 그대로 먹습니다. 다만 아침과 저녁, 식사를 마치고 30분이 지나면 이 한 잔을 마십니다. 상을 물리고, 그다음에 한 잔을 놓습니다. 굶는 것은 그다음 사흘, 금식의 차례입니다.
금식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금식이라고 하면 흔히 굶는 것을 떠올립니다. 책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금식은 굶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식을 하기 위해 행하는 기식으로서 더 참된 식사를 하기 위한 것이다."
진식(眞食), 참된 식사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책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금식은 잊어버린 의식을 찾는 숭고한 마음으로, 먹는 법의 참뜻을 찾아 온전한 식사의 의식을 되찾는 일이라고.
굶어서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잊었던 것을 되찾는 것입니다.
다시 그 식탁으로 돌아갑니다.
밥상을 물린 뒤 차 한 잔만 놓인 아침. 그것은 굶어야 하는 시련의 자리가 아니라 더 참된 식사를 준비하는 첫 자리였습니다. 사흘만 다른 세상에 왔다고 생각하는 마음 하나가 식탁을 비웠고, 그 비움이 다음 며칠의 문을 엽니다.
그 사흘을 무엇으로 채우는지는 다음 호에서 이어집니다. 물과 차, 쓰임이 다른 두 가지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