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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이들과 불쌍한 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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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선언 | 6,20ㄴ-23 | (Q, 마태 5,3-12) |
세례자의 질문에 답변하시다 | 7,18-23 | (Q, 마태 11,2-6) |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 13,33-34 | (Q. 마태 6,19-21) |
불쌍한 사람들을 초대하라 | 14,12-14 | (특수자료) |
큰 잔치 비유 | 14,15-24 | (마태 22,1-10) |
부자와 라자로 예화 | 16,19-31 | (특수자료) |
부자가 추종을 거부하다 | 18,18-23 | (마르 10,17-22) |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 | 19,1-10 | (특수자료) |
가난한 과부의 헌금 | 21,1-4 | (마르 12,41-44) |
㉡ 여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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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다 | 1,39-45 | (특수자료) |
마리아의 노래 | 1,46-55 | (특수자료) |
예언녀 안나 | 2,36-38 | (특수자료) |
나인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다 | 7,11-17 | (특수자료) |
죄녀를 용서하시다 | 7,36-50 | (특수자료) |
부인들이 예수의 시중을 들다 | 8,1-3 | (특수자료) |
마르타와 마리아 | 10,38-42 | (특수자료) |
한 부인의 성모 칭송 | 11,27-28 | (특수자료) |
안식일에 곱사등이 부인을 고치시다 | 13,10-17 | (특수자료) |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15,8-10 | (특수자료) | |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재판관 비유 | 18,1-8 | (특수자료) |
가난한 과부의 헌금 | 21,1-4 | (마르 12,41-44) |
예루살렘 부인들에게 말씀하시다 | 23,27-31 | (특수자료) |
부인들이 예수의 임종을 지켜보다 | 23,44-49 | (마르 15,33-41) |
부인들이 예수의 장례를 지켜보다 | 23,50-56 | (마르 15,42-47) |
부인들이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하다 | 24,1-12 | (마르 16,1-8) |
㉢ 죄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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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를 부르고 세관원들과 식사하시다 5,27-32 | (마르 2,13-17) | |
세관원들과 죄인들의 친구 | 7,34 | (Q, 마태 11,19) |
죄녀를 용서하시다 | 7,36-50 | (특수자료) |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 | 13,1-5 | (특수자료) |
잃은 양을 되찾고 기뻐하는 목자 비유 15.4-7 | (Q, 마태 18,12-14) | |
잃은 은전을 되찾고 기뻐하는 부인 비유 15,8-10 | (특수자료) | |
잃은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 비유 15,11-32 | (특수자료) | |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 | 19,1-10 | (특수자료) |
세 번 배반한 베드로를 쳐다보시다 | 22,61-62 | (마르 14,72) |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 22,34 | (특수자료) |
함께 처형된 두 악인 | 23,39-43 | (특수자료) |
5. 재물관
루카 복음사가는 부자와 빈자, 소유와 포기 문제에 관해 남달리 큰 관심을 쏟았다. 금력은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마력으로 둔갑한다(16,13). 따라서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18,24-27; 참조 12,16-21; 16,19-31). 빈자들과 불구자들을 식사에 초대할 것이며(14,12-14) 또한 그런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이다(11,41; 12,21.23; 16,9; 18,22; 19,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발탁할 때는 재산·가족·집을 포기하라 하시고(5,11.28; 9,57-62; 14,33; 18,22.28), 그들을 파견할 때는 여장을 마련하지 말라고 하신다(9,3; 10,4). 또한 음식과 의복 따위를 걱정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라고 타이르신다(12,22-31). 그런가하면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의 이런 생활상을 예루살렘 교회에 투사하여 그 교회를 소유 공동체로 묘사한다(사도 2,44-45; 4,32-37).
재물관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락은 다음과 같다 :
불행선언 | 6,24-26 | (특수자료) |
집과 가족을 포기하라 | 9,57-62 | (Q, 마태 8,19-22) |
상속 시비 | 12,13-15 | (특수자료) |
어리석은 부자 예화 | 12,16-21 | (특수사료) |
걱정하지 말라 | 12,22-31 | (Q, 마태 6,25-33) |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 12,33-34 | (Q, 마태 6,19-21) |
불쌍한 사람들을 초대하라 | 14,12-14 | (특수자료) |
큰 잔치 비유 | 14,15-24 | (Q, 마태 22,1-10) |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 14,33 | (특수자료) |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 16,9 | (특수자료) |
재물을 성실히 다루어라 | 16,10-12 | (특수자료) |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 16,13 | (Q, 마태 6,24) |
부자와 라자로 예화 | 16,19-31 | (특수자료) |
부자가 추종을 거부하다 | 18,18-23 | (마르 10,17-22) |
부자는 구원받기 어렵다 | 18,24-27 | (마르 10,23-27) |
추종과 보상 | 18,28-30 | (마르 10,28-30) |
자캐오의 집에 묵으시다 | 19,1-10 | (특수자료) |
가난한 과부의 헌금 | 21,1-4 | (마르 12,41-44) |
6. 기도
루카 복음사가는 공관복음 작가 가운데 기도에 관한 말씀과 이야기를 가장 많이 수록했다. 예수님 친히 기도하셨다고도 하고(3,21; 5,16; 6,12; 9,18.28-29; 10,21; 11,1ㄱ; 22,32.41-45; 23,34.46), 또한 제자들에게 기도를 권장하셨다고 한다(6,28; 11,1ㄴ -13; 18,1; 21,34-36; 22,40.46). 이 가운데 상당수는 루카 복음사가의 가필이거나 개작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믿음을 보존하고(22,32) 유혹을 이기며(22,40.46) 장차 재림하실 인자를 맞으려면(18,1.8ㄴ; 21,36) 늘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자신을 처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23,34) 제자들도 자신들을 헐뜯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6,28).
기도에 관한 중요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주님의 기도 | 11,2-4 | (Q, 마태 6,9-13) |
친구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 비유 | 11,5-8 | (특수자료) |
청하면 들어주신다 | 11,940 | (Q, 마태 7,7-8) |
아들의 청을 들어주는 아버지 비유 | 11,11-13 | (Q, 마태 7,9-11) |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재판관 비유 | 18,1-8 | (특수자료) |
바리사이와 세관원 예화 | 18,944 | (특수자료) |
깨어 기도하라 | 21,34-36 | (마르 13,33-37) |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시다 | 22,31-32 | (특수자료) |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 | 22,39-46 | (마르 14,32-42) |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소서 | 23,34 | (특수자료, 일부시본) |
아버지, 내 영을 맡기나이다 | 23,46 | (특수자료, 마르15,34 개작) |
7. 시청각 교육 방법
루카 복음사가는 일찍이 시청각 교육의 효과를 터득하여 내면적 사건을 외형적 사건처럼 서술하곤 했다. 곧, 신앙체험을 드라마로 꾸몄다.
㉠ 예수 세례사화 : “…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에게 내려왔다”(마르 1,10)를 고쳐 “성령이 형체를 취하여 비둘기처럼 당신 위에 내려왔다”(루카 3,22)고 한다.
㉡ 발현사화 : 루카 복음사가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승의 존재가 아니심을 잘 알면서도 마치 여느 사람인 것처럼 이야기 한다: “‘내 손과 내 발을 보시오. 바로 나입니다. 나를 만져 보시오.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습니다…’ 그들은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는데 ‘여기에 먹을 것이 있습니까?’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분에게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렸더니 받아서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24,39-43).
㉢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순간에 이승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하시는 하느님께로 가셨다. 역사적 존재가 신적 존재로 탈바꿈한 것이다. 초창기 신조나 신약성서 필자들은 이 사건을 일컬어 상승上昇,고양高揚, 영광榮光 또는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심(聖父右便坐定)이라 했다. 이는 오관으로 포착할 수 없는 초감각적 사건이다. 따라서 신조나 신약성서 필자들은 이 사건을 가시적인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루카 복음사가만은 비가시적 사건을 극화하여 예수 승천기를 꾸몄다 : “그들을〔밖으로]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 당신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해 주셨다. 그분은 그들을 축복하시면서 그들을 떠나가시게 되었다”(24,50-51). 사도 1,1-11에서는, 부활하신 지 40일 만에 가시적으로 승천하셨다고 하면서 예수 승천을 더욱 더 극적으로 묘사했다.
㉣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작용을 생생히 체험했다. 그 작용이 소위 카리스마인데(1코린 12-14장; 로마 12,6-8), 이는 밖으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주로 내적 체험이었다. 루카 복음사가는 성령의 내림을 극화하여 사도 2,1-13을 엮었다.
㉤ 바오로는 36년경 다마스커스 교회를 박해하러 가던 도중에 갑자기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바오로는 자신의 개심사건을 간결하게 회상하곤 했는데(갈라 1,15-16; 1코린 9,1; 15,8; 필리 3,12; 2코린 4,6), 그의 개심은 내적 체험에서 비롯했을 공산이 크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세 번에 걸쳐 바오로의 개심기를 엮었는데(사도 9,1-19; 22,3-21; 26,9-18), 바오로 자신의 증언과는 달리 극적인 요소를 많이 덧붙였다. 그리고 세 차례 개심기의 핵심은 같지만 세부적 요소는 서로 다른데, 루카 복음사가는 극적인 효과를 노려 일부러 상이한 각본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8. 예수의 정체
루카복음에는 열세 번에 걸쳐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하느님의) 아들”이라 한다(1,32.35; 3,22; 4,3.9.41; 8,28; 9,35; 10,22 세 번; 20,13; 22,70; 참조: 2,49). “그리스도” 존칭은 열 두 차례 나온다(2,11.26; 3,15; 4,41; 9,20; 20,41; 22,67; 23,2.35.39; 24,26.46). “인자” 존칭은 스물다섯 차례 나타난다(5,24; 5,5.22; 7,34: 9,22.26.44.58; 11,30; 12,8.10.40; 17,22.24.26.30; 18,8.31; 19,10; 21,27.36; 22,22.48.69; 24,7). 위의 세 가지 존칭 용법은 마르코의 용법과 큰 차이가 없다. 루카복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존칭은 “주님”(퀴리오스)으로 무려 마흔두 번이나 예수님을 주님이라 한다. 그 가운데 호격이 열여덟 번(5,8.12; 6,46 두 번: 7,6; 9,54.61; 10,17.40; 11,1; 12,41; 13,23; 17,37; 18,41; 19,8; 22,33.38.49), 다른 격이 스물네 번이다(1,43; 2,11; 6,5; 7,13.19; 10,1.39.41; 11,39; 12,42; 13,15; 16,8; 17,5.6; 18,6; 19,8.31.34; 20,42.44; 22,61 두 번: 24,3.34). 이 존칭의 용법을 대별하면 예수는 메시아 임금(1,43; 2,11; 19,31.34), 구원자(2,11; 7,13.19; 13,15; 19,8; 22,61), 부활하신 분(24,3.34), 교회의 스승(10,1.39.41; 11,39; 12,42; 17,5.6; 18,6)이란 뜻으로 주님이시다.
“구원자”(소테르)라는 존칭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퍽 늦게 그리스도교계에 도입되었을 뿐더러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었다. 바오로는 55년경에 집필한 필리 3,20에서 딱 한 번, 재림하실 예수님을 구원자라 한다. 그런가 하면 마르코나 마태오는 이 존칭을 모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1,47), 태어나신 예수님(2,11), 부활하신 예수님(사도 5,31; 13,23)을 구원자라 한다. 그리고 공관복음 작가 가운데 루카 복음사가만이 “구원”이란 낱말을 사용한 점도 특기할 만하다. 구원을 뜻하는 소테리아는 1,69.71.77; 19,9에, 소테리온은 2,30; 3,6에 나온다. 위의 대목들을 살펴보면, 루카 복음사가는 이승의 예수님, 특히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았다 하겠다. 그리스도교계에서 구원자라는 존칭을 어디서 따왔는지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느님을 구원자라고 하는 구약성서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황제를 구원자라고 하는 그리스 문화권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존칭이 유다계 그리스도교보다는 이방계 그리스도교에서 더 자주 사용된 것만은 틀림없다. 루카 복음사가는 다른 복음사가들보다 자주 예수님을 “예언자”(프로페테스)라고도 했다. 끝으로, 신약성서 가운데 오직 루카복음에만 “스승님”(호격 에피스타타)이란 호칭이 여섯 번 나온다.
9. 성령
루카복음에는 열일곱 번 하느님의 능력인 영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1,15.35.41.67.80; 2,25.26.27; 3,16.22; 4,1 두 번. 14,18; 10,21 ; 11,13; 12,10.12). 사도행전에는 무려 쉰일곱 번, 그것도 1-16장에 집중적으로 마흔다섯 번이나 나온다. 또한 영을 “아버지의 약속”이라고도 한다(24,49; 사도 1,4). 이스라엘 시대 말기에 영이 요한 세례자(1,15), 엘리사벳(1,41), 즈카르야(1,67),시므온(2,25.27), 특히 마리아에게(1,35) 내린다. 그리고 예수시대가 도래하자 그분은 영을 듬뿍 받아 영검하신 분, 신통하신 분으로 구원을 이룩하신다. 마지막으로 교회시대에 이르러 영은 하느님의 영일 뿐더러(사도 5,9; 8,39)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하다(사도 16,7). 이 영이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내려(사도 2,1-13) 하느님의 백성이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창립 된다. 이제 그들은 영의 도우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중해 각지에 전한다(사도8,29.39; 11,12; 16,7-8).
부록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공관복음이 아니지만 루카 복음사가의 두 번째 작품이므로 공관복음 주해서의 부록으로 여기에 넣어서 공부하고자 한다. 신약성서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루카 복음사가의 두 저서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연구는 예수님의 삶과 인격과 가르침 뿐 아니라. 그분의 가르침을 실생활에 적용하려 했던 초대교회의 체험도 함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더구나 루카 복음사가의 저서는 문학적으로 풍부한 어휘와 신학적으로 깊고 폭넓은 사상을 내포하고 있어서 수세기를 두고 수많은 성서학자들과 일반 독자들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차지해 왔다.
I. 필 자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전하는 네 복음서처럼 사도행전도 그 저자의 이름이 감추어져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편의상 루카라고 부르는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 밝혀 주는 확실한 문헌을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제3 복음서의 저자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두 책의 서문이 이를 증언할 뿐 아니라 두 책의 문체와 사상이 같기 때문이다. 한편 “루카에 의한 복음”이라는 제3복음서의 제목은 이 책의 가장 오래된 필사본 보드머 파피루스 XIV(P75 175-225년)에 최초로 등장한다. 이즈음에 다른 복음서들에도 저자의 이름이 부여되었던 것 같다. 전통적 견해로는 이 저자가 “바오로의 협조자”(필레 1,24; 콜로 4,14; 2티모 4,11)인 “의사 루카”(콜로 4,14)라고 한다. 18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무라토리 경전목록」과 2세기 후반에 활약했던 리옹의 주교 이레네우스의「이단반박」(3,1,1)이 이 사실을 최초로 증언했다. 최근에 이 사실을 강력히 뒷받침하기 위해 “만일 열두 사도의 그룹에 끼지도 못한 평범한 이름의 루카가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실제 저자가 아니었다면 초세기의 교부들이 어떻게 그토록 한 결 같이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체하지 않고 보전하고 증언해 줄 수 있었겠는가?” 하는 그럴듯한 이론도 제기되었다(J.M. 크리드). 그러나 네 복음서의 저자 중에는 마태오나 요한처럼 열두 사도와 관련된 저자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루카 외에도 마르코처럼 열두 사도와 무관한 이름의 소유자도 있다. 그리고 130년 파피아스가 처음으로 증언한 마르코복음의 저자를 베드로의 통역자요 바오로의 협력자로 보는 전통적 견해도 성서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루카나 마르코와 같은 평범한 인물이 초기 문헌들에 의해 증언되는 현상 그 자체가 그들의 친저성(親著性)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될 수는 없다.
이상의 문헌적 고찰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겠다. 2세기에 신약성서 안에 산발적으로 제시된 빈약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복음서의 저자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상황에서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에게도 바오로계의 문헌을 근거로 “루카”라는 이름을 주었고, 이후 신약성서의 기록들을 비판적인 눈으로 대하지 않던 교부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결론은 바오로 자신이 소개하는 바오로상과 사도행전에 소개된 바오로상이 판이한 점으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① 율법에 대해 철저하게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던 바오로가 사도행전에서는 나지르의 예식을 치르고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풀기도 한다(16,3).
② 연설가나 웅변가로서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2코린 10,10) 바오로에 대해 루카는 광분하는 유다인들, 이방인들, 로마의 총독과 그리스 철학자들을 모두 설득시킬 수 있는 뛰어난 연설가로 묘사한다.
③ 바오로의 회심이 그의 서간에서는 내적 체험으로 간단하게 소개된 반면(갈라 1,15-16; 1코린 9,1; 15,8; 필리 3,12), 사도행전에서는 극적인 외부사건으로 묘사된다(9,1-19; 22,3-21; 26,9-18).
사도행전과 루카복음의 저자가, 바오로가 증언하는 의사 루카가 아니라면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단지 그가 바오로의 협력자라기보다는 바오로 이후 시대 사람으로서, 사도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자기가 얻어낸 자료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서술하고자 애썼던 인물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가 팔레스티나 지리에 어둡고 유다인들의 관습이나 풍물에 대해서도 착각하고 있는 점들로 미루어 이방계 그리스도인이라고만 확인할 뿐이다.
II. 독 자
성서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사도행전과 루카복음의 저자가 마음에 둔 독자는 이방계 그리스도인 또는 이방계 그리스도교 공동체였다고 인정한다. 이 견해의 근거로 우선 루카 복음사가의 문학적 기법이 당대에 풍미하던 그리스-로마 문학 전통을 따른다는 점이 지적된다. 사도행전과 루카복음의 서문에서 집필 대상과 동기를 밝히는 헌정사가 발견되는데, 이는 당대 그리스 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문학적 관습이다. 이 헌정사에 나오는 후원자는 테오필로스(“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다. 이 이름은 3세기경부터 그리스인과 로마인과 유다인이 흔히 사용하던 인명이다. 테오필로스를 그리스도인 독자를 상징하는 가상적 인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 이름에 대한 상징적 해석은 3세기의 오리게네스 이후에나 발견되기 때문에 루카복음의 서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테오필로스가 실재 인물이라고 본다면, 당대 관습대로 그에게는 루카 복음사가에게서 헌정 받은 이 작품을 필경사들의 노고를 빌려 복사하고 판매할 책임이 주어졌을 것이다. 루카복음의 서문이 뜻하는 바로는 그의 신분이 아직 예비자이거나 갓 입교한 신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도행전과 루카복음의 명시적인 독자가 테오필로스라 할지라도 저자가 정작 염두에 둔 독자는 테오필로스와 같은 처지에 있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루카복음 자체에서 그런 증거를 풍부하게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요 사료인 마르코복음과 가상적「예수 어록」(Q) 에서 유다적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는 부분들을 과감히 삭제하곤 했다. 유다교의 정결예식과 신심에 관한 기록의 삭제, 정淨과 부정不淨에 관한 논쟁의 삭제(마르 7,1-23), 반명제에 나오는 율법적 요소 대부분의 누락(마태 5,21-48) 등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때로는 팔레스티나의 전통이 루카 복음사가의 편집을 통해 그리스적 상황에 맞게 변형되기도 하고(마르 2,4에 대한 루카 5,19; 마태 7,24-27에 대한 루카 6,48-49),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이름들이 그리스식으로 바뀌어 소개 된다. 곧, 랍비와 랍보니가 “스승님”(에피스타테스: 루카 9,33과 마르 9,5 비교)과 “주님”(퀴리오스: 루카 18,41과 마르 10,51 비교)으로, 카나나이오스가 “열혈당원”(젤로테스: 루카 6,15; 사도 1,13과 마르 3,18 비교)으로, 그리고 골고타가 “해골”(크라니온: 루카 23,33과 마르 15,22 비교)로 고쳐진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오 복음에서와 달리 다윗과 아브라함에게서 그치지 않고 아담과 하느님에게까지 소급된다. 루카 복음사가가 인용하는 구약성서도 그리스어 역본인「칠십인 역」(LXX)이다. 루카 복음사가가 “유다”라는 이름을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키는 광의로도 사용한다는 사실은(루카 1,5; 4,44; 6,17; 7,17; 23,5; 사도 2,9;10,37) 그가 팔레스티나 밖에 있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루카 복음사가 당대의 그리스-로마 문헌에 보면 유다를 이처럼 광의로도 해석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도행전과 루카복음 전체에 일관된 사상인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은 유다교의 울타리를 넘어 만민에게 전해진다”(10,36 참조)는 구원의 보편주의가 루카 복음사가의 집필 대상을 이방계 그리스도인들로 명백하게 규정해 준다.
III. 집필 장소, 연대 및 동기
1. 집필 장소
사도행전과 루카복음의 집필 장소로 카이사리아·데카폴리스·안티오키아·아카이아·로마 등 여러 곳이 지적되지만, 한마디로 팔레스티나 밖이라는 사실 외에는 구체적 장소를 신빙성 있게 제시할 수 없다.
2. 집필 연대
집필 연대는 루카복음의 경우 로마군의 예루살렘 침공을 비교적 분명하게 암시하는 듯한 기록으로 보아(루카 21,20-24) 70년 이후가 확실하다. 그리고 루카 복음사가의 기록들이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풀라비우스의 저서(93년경)와 무관한 점은 사도행전과 더불어 루카복음의 집필 연대를 최소한 90년대 초반 이전으로 앞당겨 잡게 한다. 루카복음의 출간 후 사도행전의 집필을 위해 저자에게 주어졌을 시간적 여유를 고려하면 루카복음의 집필 연대는 80년 전후로 잡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사도행전의 경우 바오로의 순교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70년 네로 황제(54~68년)의 박해 이전으로 집필 연대를 앞당기는 학자도 있으나 바오로의 순교 기록의 유무로 사도행전의 집필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두 가지 논거를 제시하겠다 : ① 바오로의 로마 도착으로 사도행전이 끝나는 것은 “복음이 유다이즘의 중심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의 중심인 로마에까지 전파된다”는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적 구도에서 볼 때 조금도 이상 할 것이 없다. ② 루카 복음사가는 묵시문학의 저자와 달리 로마 황제의 박해 앞에서 순교하는 것만을 최대의 미덕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정치적 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위험한 종교가 아님을 역설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에 바오로의 순교를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루카 복음사가가 비록 바오로의 순교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다 하더라도 일단 복음이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이상 사도행전이 바오로의 전기가 아닐진대 바오로의 순교에 대해 반드시 기록할 의무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든가 건강이나 아니면 파피루스 두루마리 지면의 길이가 저자에게 더 이상의 기록을 용납지 않았기 때문 등, 어떤 이유에서든 사도행전의 끝부분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채 끝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 자체가 사도행전의 중대한 문학적 결함으로까지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루카 복음사가는 바오로의 로마 전도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자신의 신학적 구도를 충분히 작품에 반영시켰고 이로써 애초의 집필 목적이 완성된 셈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집필 연대를 70년 이전으로 보는 또 다른 논거는 사도행전의 저자가 묘사하는 교회가 교계제도와 성사제도가 확립된 “가톨릭주의”(제도로서 정착된 교회)를 표방하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에 소개된 교회는 분명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원로들을 중심으로 제도적인 꼴을 갖추었고 세례·안수·성찬 등 원초적 성사제도를 지니고 있다. 다만 교회의 이 제도적 모습이 루카 복음사가의 신학적 전망 때문에 부각되지 않을 뿐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예정된 계획에 따라 성령의 인도를 받아 만민에게 복음을 힘차게 전하는 교회의 선교 활동을 강조하고자 부심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제도적 모습이 성령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교회의 역동적 모습에 의해 가려진 셈이다. 실제로 본격적 가톨릭주의는 2세기에 들어와서야 교회 안에 정착되었다. 이 사실을 감안할 때 루카 복음사가가 보여주는 교회의 모습은 오히려 초세기 말엽의 교회상을 충실히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사도행전의 집필 연대를 더 구체적으로 추정할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가 앞에서 루카복음의 집필 연대를 70년 이후 80년 전·후반으로 잡은 만큼, 첫 번째 책에 이어(사도 1,1) 테오필로스에게 바치는 두 번째 책은 80년에서 95년 사이에 기록된 것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하한 연대를 95년으로 잡는 이유는 앞에서 밝힌 대로 루카의 두 저서에 당대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문헌(93년)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연대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도미티아누스 황제 치세(81~96년)와 맞물려 있는데 사도행전과 루카복음 곳곳에 이 박해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사도행전에서 대표적 예를 든다면 이상적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린 2,42-47과 4,32-37이다. 루카 복음사가의 공동체 안에 박해로 인해 재산이 거덜난 가난한 신도가 늘어나고, 그들과 새로 입교해서 들어오는 이방인 신도 사이에 빈부 격차가 심해지자 그는 자신의 공동체를 진정한 친교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스승 예수의 가르침에 입각한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나눔 공동체상을 제시한 것이다.
3. 집필 동기
집필 동기는 저자의 편집 의도와 신학적 전망에 필연적으로 연결되겠지만, 여기서는 루카 복음사가가 책을 펴내게 된 직접적 집필 의도만을 밝히고자 한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신의 집필 동기를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헌정사에서 분명히 밝힌다. 루카복음의 헌정사에서 루카 복음사가가 밝힌 집필 동기를 요약하면, 그는 나자렛 예수의 목격 증인이었다가 말씀의 시종이 된 사람들의 대열, 소위 “복음의 제 1 세대”와 자신을 구별하고 선임자들(마르코복음과 Q의 저자들)의 모범을 따라 예수 사건을 다루되 “모든 일을 그 시초부터 정확하게” 순서대로 정리하여 기록했다고 보고한다. 이 표현은 루카 복음사가가 자기 작품에 바친 세 가지 노력, 즉 온전성과 철저함과 정확성을 각각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루카 복음사가는 테오필로스가 이미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나 교리를 기본적으로 들어 알고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가 전해들은 지식이 올바른 전승, 곧 신뢰 할 수 있는 목격증인들의 증언에 근거한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두 권의 책을 쓴 것이다.
첫 번째 책에서 테오필로스와 그 밖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께 관한 모든 일을 순서대로 남김없이 보고한 루카 복음사가는 이제 교회의 이야기를 전하는 두 번째 책을 시작하면서 첫 권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 : “테오필로스님,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그분이 성령으로 뽑으신 사도들에게 명을 내리시고 승천하신 그 날까지의 일입니다"(1,1-2).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의 이야기를 비교적 상세히 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첫 번째 책의 끝에 두 번째 책의 처음을 연결시킨다. 아마도 루카복음을 쓴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다음 사도행전을 썼기 때문에, 지각있는 저자로서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절차의 필요성을 당연히 느꼈으리라.
앞에서 언급한 대로 루카 복음사가의 집필 의도는 물론 테오필로스 한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고 테오필로스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모든 그리스도교 입문자나 아직 확고한 신앙을 갖지 못한 갓 입교한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이 방대한 양의 두 저서가 한 개인만을 위한 보고서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IV. 사 료
다른 복음서들과의 대조 연구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편집과 사료의 요소들을 가려낼 수 있는 루카복음의 경우와는 달리, 사도행전에 있어서는 저자가 어디에서 사료를 수집했고 그 사료가 어떤 종류였는지 분명하게 밝 힐 수 없다. 19세기 초반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갖가지 사료 가설은 세월과 더불어 퇴색하거나 순수한 가설로만 남아 주석서에서 지나치며 언급될 뿐이다.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심심치 않게 몇몇 학자 사이에서 거론되는 가설로는 아람어 번역설과 여행일지설이 있다.
1. 아람어 사료 가설
아람어 가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사도행전의 문체(특히 전반부의 문체)가 아람어 어법을 닮았다고 가정하면서, 적어도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루카 복음사가가 이미 아람어로 작성된 문헌을 번역한 것이고 후반부에서도 이곳저곳 번역한 흔적이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루카 복음사가의 그리스어와 칠십인역의 그리스어를 자세히 비교 연구한 학자들은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아람어적 요소들이 오래된 전승 자료의 이용을 가리키기보다는 복고풍을 좋아하는 저자의 편집 작업에 기인한 것임을 밝혀냈다. 열두 사도의 주관 하에 펼쳐지는 초대 교회의 선교 활동을 다루는 대목들에서 사도행전의 저자는 그리스말을 사용하는 유다인들의 성서인 칠십인역을 전형적 모델로 채택한다. 그리하여 루카 복음사가는 칠십인역에서 성서 구절을 직접적으로 또는 암시적으로 인용할 뿐 아니라 문체와 용어까지도 본받는다. 이렇게 고풍의 문헌을 본뜨는 문학 기법은 루카 복음사가 당대의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이 흔히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칠십인역의 모방은 앞으로 다루게 될 설교의 핵심 내용인 케리그마의 고풍화와 더불어 사도행전의 기록들이 교회 초기의 전승을 참신하게 반영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저자의 의도를 드러내는 데 기여한다. 칠십인역의 모방과 인용은 열두 사도가 무대에서 사라지는 15장 이후 현저히 줄어든다. 그럴지라도 루카 복음사가가 사용한 그리스말 어휘 가운데 70%는 칠십인역에 등장하는 것들이다.
2. 여행일지 가설
둘째 가설인 여행일지 기록설은 사도행전의 “우리 대목”(16,10-17; 20,5-15; 21,1-18; 27,1-28,16)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데에서 생겨난다. 이 대목들에서 사도행전 저자는 항해 이야기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뜻으로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을 갑자기 주어로 넣었다가 이야기 중간에서 갑자기 증발시킨다. 여기서 “우리 대목”의 바탕이 되는 여행일지는 추측컨대, 루카 복음사가가 바오로와 여행을 같이하면서 틈틈이 적어 놓은 것일 수도 있고 바오로가 작성하여 루카 복음사가에게 넘겨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고 있던 바오로가 이런 여행일지를 기록해 놓았을 리 만무하다. 이것은 바오로의 동반자로서 그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루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언제 파선 당할지도 모를 바다에서의 여행 도중에 값비싼 두루마리들을 사들고 다닐 수 있었겠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루카는 자신들이 바다 가운데서 태풍을 만나 화물뿐 아니라 배의 장비까지도 다 내던졌다고 보고한다(27,13-20). 어떻든 이 여행일지설은 바오로의 동반자 루카가 제3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보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매력적인 가설이겠으나 개연성이 희박한 이론이다.
“우리 대목”의 문체가 사도행전 다른 부분의 문체와 동일한 점으로 미루어, 복수 1인칭 주어의 갑작스런 출현은 저자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여행담을 좀 더 박진감 있게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위한 단순한 문학적 기교일 가능성이 높다. 루카 복음사가가 말하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이 포함된 “바오로와 그의 동료들”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바오로가 “우리”에서 분리되기도 한다(16,17; 21,18). 이 같은 모순은 저자가 1인칭 주어의 사용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런 문학적 기법을 사용한 저자는 루카 복음사가만이 아니다. 그에 앞서 구약성서 느헤미야의 저자는 단수 1인칭,복수 1인칭, 다른 3인칭 주어들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바빌론 귀양 이후 예루살렘이 어떻게 재건되었는지를 전한다.
3. 기타 사료
특별한 사료의 제시가 실패로 끝났다고 해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아무런 사료 없이 그 책을 집필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본고가 “우리 대목”에 관한 고찰에서 복수 1인칭의 사용이 루카 복음사가의 문학적 기법임을 밝혔지만 루카 복음사가가 이 대목을 집필하면서 여러 가지 자료를 이용했을 가능성은 그대로 남는다. 제3복음서의 헌정사에서 스스로 증언하듯 루카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기록 전승이든 구두 전승이든 사료를 모으는 데 힘썼을 것이다. 다만 루카 복음사가의 기술적 편집 작업 때문에 그가 수집한 사료들을 가려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루카복음과 공관복음 전승의 비교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만일 마르코 복음이나 마태오 복음이 없었던들 루카복음 안에서 어느 부분이 사료에 속하고 어느 부분이 그의 편집 작업에 의해 생겨난 것인지 과연 분간해 낼 수 있을까? 결론은 회의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 있게 확인하고 규명할 수 있는 요소들은 루카 복음사가가 채택한 구약성서 칠십인 그리스어 역본(LXX)의 직접 또는 간접 인용문들, 그리고 주로 사도행전의 설교들 안에 반복되는 루카복음의 용어와 신학적 사상들이다. 설교에 대해서는 아래에 따로 다루겠다. 한 마디로 루카복음과 칠십인역 외의 사료들에 대해서는 그 성격을 명확하게 규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V. 설 교
지난 두 세기 동안 사도행전 연구가들은 이 책의 4분의 1 정도까지를 차지하는 설교들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설교들에서 사도행전의 문학 특성과 핵심 메시지가 뚜렷이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법론들을 동원하여 그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 세 가지 방향으로 갈라진다 :
① 사도행전의 설교들은 초대교회가 간직해 온 사도들의 설교들이나 초대교회의 원초적인 전승들을 충실히 전달 또는 반영한다.
② 이 설교들은 사도행전 저자가 전승과는 전혀 관계없이 자기 의도를 표출하기 위해 꾸며낸 창작품이다.
③ 이 설교들은 전승과 편집이 함께 어우러진 기록으로서, 초대교회의 전통을 충실히 살다간 루카 복음사가의 원숙한 신학적 사상과 문학적 기량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 세 가지 방향 중 어느 것을 취하든지, 사도행전 연구가들은 설교들이 그 기본 구조와 내용에 있어 상호 연관성을 지니면서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사상과 문학적 특성을 대변한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위의 세 가지 결론 중 셋째 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받아들인다. 설교들의 형식과 내용을, 언어학과 성서신학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우선 루카 복음사가의 문체와 문학 기법을 연구한 학자들은 누구나 그가 신약 성서의 저자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문장가였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어휘와 표현이 풍부하고 사건들을 자신의 신학 구도에 따라 순서에 맞게 논리적으로 전개시킨다. 루카 복음사가의 문학 역량은 크게 두 가지 문헌. 당시의 그리스-로마 역사문헌과 칠십인 역에서 영향을 받아 발전된 것이다.
1. 그리스-로마 역사문헌의 연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가들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제로 일어난 과거 사건들을 수집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고 이 사건들의 더 깊은 의미를 밝히는 일에 더 주력했다. 이로써 그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사건들에 얽혀 있는 역사적 진실을 더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도왔다. 이 때 그들은 사건들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데, 사건의 주역들로 하여금 연설을 하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연설 속에 그가 보고하는 사건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반영시킨다.
사건을 기록하는 저자가 연설의 원래 내용을 알 필요는 없다. 연설문이 입수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원문 그대로 충실하게 자신의 작품 속에 끼워 넣을 의무를 느끼지는 않는다. 여기서 연설은 저자의 집필 의도와 목적을 전달하는 도구가 된다. 연설을 통해 역사가는 독자와 더불어 역사적 사건에 얽힌 깊은 의미와 상황 전체를 꿰뚫어보는 통찰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 때 역사적 사건의 깊은 의미는 역사적 실제를 뛰어넘는다. 역사가는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이야기의 어느 대목에라도 연설을 끼워넣는다.
그러면 사도행전의 저자가 이런 그리스-로마 역사가들의 문학적 기법을 따랐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있는가? 신약성서의 다른 저자들은 이런 식의 문학적 기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공관복음 안에서 예수의 강화(講話)들은 일 반적으로 말씀의 수집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강화들은 당대의 역사 문헌에 소개된 연설의 범주에 속할 수 없다. 요한복음의 강화들도 고대 역사문헌의 연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질문과 대답, 역설과 대당(對當) 개념들을 동원한 동양 문학에서의 설법(說法)과 비슷하다. 바오로 서간의 경우에도 수사학적 변증법은 있을망정 역사 문헌에 등장하는 본격적 의미의 연설은 찾아볼 수 없다.
루카 복음사가의 경우 첫 저서에서는 선임자들, 마르코나 Q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랐다. 그러나 두 번째 저서인 사도행전을 집필할 때는 모델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문학적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저자는 수집된 자료들을 선택하고 축소시키거나 덧붙이며 때로는 서로 다른 대목을 연결시키기 위해 창작해 넣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고대 역사가들의 특별한 기법, 곧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 설화 중간에 연설을 끼워넣는 방법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아마도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의 설교를 작성해 넣을 때 사도시대에 일어난 사건들보다 자신의 시대와 공동체 안에 발생한 문제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경우 삽입된 설교는 이야기의 실제 상황에 부합하지 않게 된다. 사도행전의 선교 설교들은 대부분 사건들의 전개와 관계없이 책 전체의 기본 주제인 구원의 보편주의를 반영하는 데 이바지한다. 물론 이야기의 맥락에 맞춰 설교의 도입부와 결론 부분과 기본 내용을 조금씩 변형시키기는 하지만,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민에게 전달된다”는 구원의 보편주의는 그대로 견지한다.
설교의 첨부 외에 루카 복음사가가 고대 역사문헌에서 본뜬 또 다른 문학기법은 앞에 보고한 사건을 거듭 언급함으로써 자신의 특별한 관심과 의향을 독자에게 주지시키는 것이다. 고대 역사문헌에서 이 반복 수법은 주로 영웅담에서 자주 발견된다. 그 좋은 예로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보고되는 바오로의 개종 이야기(9,1-19ㄱ; 22,6-16; 26,12-18)와 코르넬리우스를 거듭 설명하는 베드로의 예루살렘 설교(11,1-18)를 들 수 있다.
2. 구약성서의 영향
저자의 의향과 집필 목적을 부각시키기 위한 연설의 첨부는 고대 그리스-로마 역사가들만의 문학기법은 아니다. 우리는 구약성서,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신명기적 저서들과 역대기 상권과 마카베오 후서 등에서 이 기법 을 쉽게 발견한다. 루카 복음사가의 어휘와 표현이 70% 정도 칠십인역과 일치함을 감안하면 그가 연설의 첨부에 있어서 칠십인역의 사용을 통해 구약성서 저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3. 사도행전 설교들의 내용
고대 역사문헌들과 구약성서를 본받아 설화의 진행에 설교를 도입하여 저자의 사상을 피력하는 것은 루카 복음사가의 문학기법과 편집 작업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가 설교 안에서 전달하는 메시지와 사상의 기반은 전승에 뿌리를 내린다. 특히 사도행전 전반부의 선교 설교들은 루카복음 24장에 나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설교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 예수님의 설교는 물론 루카 복음사가가 초대교회의 전승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사도행전에서 설교의 배분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가 여덟 개(1,16-22; 2,14-40; 3,12-26; 4,8-12; 5,29-32; 10,34-43; 11,5-17; 15,7-11), 바오로의 설교가 아홉 개(13,16-41; 14,15-17; 17,22-31; 20,18-35; 22,1-21; 24,10-21; 26,2-23; 27,21-26; 28,17-20), 그리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설교 일곱 개, 곧 가말리엘의 설교(5,35-39), 스테파노의 설교(7,2-53), 야고보의 설교(15,13-21), 데메트리오스의 설교(19,25-27), 에페소 시청 서기관의 설교(19,5-40), 테르틸로스의 설교(24,2-8), 페스도의 설교(25,24-27)로 되어 있다. 이 가운데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2; 3; 5; 10장에 나오는 베드로의 선교설교와 13장에 나오는 바오로의 선교설교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 설교들은 루카복음 24장의 부활하신 예수님의 설교에 바탕을 두며 기본요소를 공통적으로 갖추고 있다. 아래에 도표로 기본요소와 해당 성서구절을 소개한다.
설 교 | 2,14-40 | 3,12-26 | 5,29-32 | 10,34-43 | 13,16-41 |
상황과 연결 | 14-21 | 12 | 29 | 34-35 | 17-22 |
예수의 생애 | 22-24 | - | - | 37-38 | 23-26 |
예수의 죽음 | 23 | 13-15 | 30 | 39 | 28 |
예수의 부활 | 24 | 13.15 | 30 | 40 | 30.33-37 |
제자의 증언 | 32 | 15 | 32 | 39.41 | 31 |
성서의 증언 | 25-31.34-35 | 22-26 | (31) | 43 | 32-37 |
참회와 용서 | 38-40 | 17-20 | 31 | 43 | 38-41 |
최고의회에서의 베드로의 설교(4,8-12)에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과 하느님의 역할이 강조된다. 한편 바오로의 다른 두 개의 선교설교(14장과 17장)는 이방인들을 겨냥하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를 소개하는 대신 이방인들의 다신교를 비판하고 유일신교의 타당성을 강조하는 데 역점을 둔다. 스테파노의 순교설교를 제외한 그 외의 설교는 바오로의 체포와 재판에 관련된 설교다.
이상의 고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사도행전의 설교들이 그 형식과 문학 기법에서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역사문헌을 모방했고 그 내용과 어휘 및 표현에 있어서는 칠십인역과 루카복음에 의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설교들은 실제로 당사자들이 발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구세사관을 피력할 목적으로 루카 복음사가가 편집하여 이야기에 첨부시킨 것이지만 그 세부 내용에서는 칠십인역과 루카복음을 태동시킨 유다-그리스도교적 전승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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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성경통독 아카데미
가톨릭 영성수련 아카데미
공관 복음서 주해
마르코 복음서
마태오 복음서
루카 복음서
(사도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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