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빈자리
어느 날 우연히 돌아가신 엄마랑 같은 구역에 계셨던 교회 권사님을 만났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해 늘 아쉬웠는데 정말 반가웠다. 난 권사님들께 점심을 사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날짜를 잡아 엄마 친구 권사님들을 만났다. 한분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셔서 권사님 두 분만 나오셨다. 같은 상무지구에 살고 있어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옛날 엄마집 근처에 가면 생각이 났었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 늘 마음속에 미안함이 있었는데 오늘 만나니 돌아가신 엄마를 만난 듯 정말 반가웠다. 앞자리에 나란히 앉아 계시는 권사님들을 보니 내 옆자리에 엄마가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기쁨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도 종종 우리는 그것을 때로는 귀찮아하기도 하고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엄마가 계실 때만 해도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무엇이 그리 힘들었는지 같이 밥 먹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엄마가 조금만 더 살아주셨더라면’
오늘 같은 날 너무 일찍 내 곁을 떠나버린 엄마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두 권사님은 혼자 남으신 아빠의 안부를 물으신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지냈을 때가 참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엄마랑 연세가 같으신 권사님의 모습에서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고 그 권사님의 미소 속에서 엄마의 모습이 느껴진다.
두 권사님을 댁에 모셔드리고 엄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 언니와 통화를 하고 홀로 계시는 아빠께 전화를 드렸다.
“언니……”
“아빠……”
언니 아빠한테 오늘 엄마 친구 권사님들과 점심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 드렸더니 아주 잘했다며 칭찬해주신다.
그리고 언니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전화를 자주 드리고 찾아뵙기로 약속하고 다음날 아빠를 만나러 서울행 기차를 탔다.
첫댓글 고등학교 때 이후로 가장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현재의 처지가 낙심이 될 때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 미처 깨닫지 못한 의미 중에는
훗날 부모님과의 이 시간을 매우 긍정적으로 볼 만한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들이 다녀가고 난 오늘 오후, 허전하고 안타까운 내마음을 부모님은 또 안타까워하는 기색을 감추며 살피십니다. 늘 짠하고 아픈 손가락.. 자식인가 봅니다.
부모님이 살아 숨 쉬고 따스한 온기를 우리들에게 소리없이 전해줄 땐 왜 모를까요.그 보석 같은 존재를 그때는 왜 왜 느끼지 못할까요.엄마의 숨소리,애정이 담뿍 담긴 목소리,그저 오로지 '짠'하게만 여겨질 자식들에 대한 무한한 연민,미소..아픈 자식 머리맡에서 발 동동 구르며 밤을 새우는 심정.철없는 자식 언제쯤이나 제 길을 찾을까 조바심으로 살아온 세월.먼 시간 속에 계신 엄마의 손짓,거친 손마디가 한없이 그립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는 아버님과 닮아가고 있답니다. 내 나이 때에 나의 아버님은 나와 꼭 같은 행동을 하였고요.
생각도 매우 비슷했구나 하거든요. 나의 아버님은 서푼어치도 되지 않는 지식으로 무언가 적어서 나에게 전했었지요.
그런데 나는 그것을 보면서 어느 유명한 사람 책이나 소개하지 뭔놈의 글을 써서 준다고 하고 아버님을 무시했거든요.
그래서 나는 내 책을 낼려고 안합니다. 너무 유명한 사람이 많으니 그 책이라도 읽어야지요. 참 건방진 생각
1년이 지난 후 아버님 내가 적어준것 집에 잘 간수하고 있냐? 그렇게 행동하냐? 그런데 나느 까마득히 잃어버렸거든요.
참 난망함. 나는 지금 나의 아버지 그때 삶을 지금 삷니
天夀(천수)를 누리고 가신들 그립지 않으리까요.며칠 후면 어버이날 입니다 그립고 아픈 마음들 어디서 위로 받을지...
어머니를 잃은지 벌써 사년이 되가는데도 여전히 그립고 눈물이 납니다.
내 욕심으로, 더 오래 사시도록 병원을 옮겨다녔던 일들이 잘한 일이 아니란걸 조금씩 느껴가요.
오늘도 엄마... 나직히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