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 도로 안전 책임지는 모범운전자..."갈수록 사라질 것"
[부제]
오균창 모범운전자연합회 남양주북부 지회장 인터뷰
택시운전사 감소와 수입 영향 부담이 원인
도로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범운전자’가 도로에서 사라지고 있다.
모범운전자는 도로 교통법상 경찰관, 소방관, 군사경찰과 함께 도로에서 수신호를 할 수 있는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다. 이들은 2년 이상 사업용 자동차 운전에 종사하며 무사고인 자만이 신청할 수 있으며 심사를 거쳐 관할 소속 경찰서장에 의해 임명된다. 이때 면허 취소자, 전과자 등 결격사유가 있는 경우 제외된다.
하지만 이런 모범운전자들이 점차 도로에서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약 40년간 택시를 운행했고, 30여 년 전부터 모범운전자로 활동하며 도로의 안전을 책임져 온 오균창 모범운전자연합회 남양주북부 지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
오균창 지회장이 수십년동안 도로의 안전을 책임져온 데에는 활동 초창기, 한 시민으로부터 받은 응원이 있었다. 그가 설 명절 쯤 교통통제를 하고 있던 와중 한 시민이 다가와 “추운 날씨에 고생한다”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장갑을 손에 쥐어줬다. 오 지회장은 당시 일에 대해 “울컥하는 감정과 함께 큰 힘을 얻었다. 당시 좋은 기억이 지금까지 모범운전자를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가 모범운전자들에게는 따듯한 난로보다 고마운 존재”라며 시민들의 작은 관심이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모범운전자는 그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최소 한 달에 4번, 1회에 2시간 근무를 해야 한다. 경찰과 시가 근무지를 지정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자발적인 근무를 서는 경우도 대다수다. 오 지회장은 “영업을 하고 있다가도 신호등이 꺼지거나 사고가 나는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차를 구석에 몰고 교통 통제하는 모범운전자들이 많다. 다들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움직인 결과”라며 주변 모범운전자들을 독려했다. 오균창 지회장은 모범운전자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죠. 봉사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저를 위한 것입니다”라 말하며 남다른 봉사정신을 드러냈다.
모범운전자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오 지회장이지만 말 못할 사정도 있었다. 그는 “우리는 안전을 위해 교통을 통제하지만 종종 급한 시민들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교통 통제를 하는데 가는 길을 막는다고 욕설을 하거나, 화를 내는 시민과 마주할 때면 상당히 난처하다”며 모든 이들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인데 욕설이 들려올 때면 씁쓸함을 감출수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0월 10일 KBS의 <무시·욕설에 폭행까지…모범운전자 ‘수난시대’> 기사에 따르면 2010년 당시 서울 모범운전자들이 수신호나 지시를 무시당한 일은 2천2백여 건, 욕설을 들은 일은 천 6백여 건에 달했다. 운전자가 차로 밀며 위협한 경우도 6백 건이 넘었다.
이에 대해 오 지회장은 “실제로 교통 통제를 하다 차로 밀려 위협당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무섭기도 했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몸으로 차를 막아선 적이 있다”며 본인의 경험담을 밝혔다.
도로에서 사라지는 모범운전자들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보다 오 지회장이 더 걱정되는 것은 모범운전자의 인력난과 노령화에 있다. 그는 “이제 모범운전자는 갈수록 사라질 것 같다. 하려는 사람도 점차 줄어들고, 그나마 있는 회원도 점점 나이를 먹으며 은퇴하고 있다”며 모범운전자에 대한 비관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오 지회장에 따르면 모범운전자연합회 남양주북부 지회의 올해 신입 회원은 2명, 그마저도 모두 70대 후반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자료 넣기, 정보공개청구 과정에 있음. 정보공개 청구 시기가 늦어질 것에 대비해 일단 기존에 알려진 자료를 임시로 넣었습니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2만 5570명이던 모범운전자는 2022년 2만 4956명으로 감소가 시작돼 2024년 6월 기준으로 2만 1750명까지 줄어들었다. 2020년부터 약 4년간 3820명이 감소한 것이다.
오 지회장은 모범운전자 회원이 줄어드는 이유로 택시운전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기피를 꼽는다. 그는 “모범운전자 회원의 대부분은 택시운전사다. 버스운전사, 배송기사 등도 모범운전자이신 분이 있지만 일 자체가 시간에 쫒기기 때문에 시간을 내 봉사하기 힘들다”며 기본적으로 모범운전자로서 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택시운전사뿐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이어 그는 “결국 택시운전사가 있어야 모범운전자도 유지가 되는데 요즘 택시운전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며 근본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그는 “옛날 같으면 택시 운전만 해서 자녀들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역부족인 상황이다. 누가 택시 운전을 하고 싶어 하겠는가”라며 택시운전사를 기피하는 현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법인택시 운전사 수는 2018년 10만 4천여 명에서 지난 10월 7만1천여 명으로 약 3만명 이상 감소했다.
수입 감소도 한 요인이다. 오 지회장은 “택시는 돈을 벌겠다고 욕심을 부릴 수도 없다. 밤낮없이 일하다 보면 과로로 병원신세가 되기 십상”이라며 “아는 택시운전사도 3년간 열심히 하다가 과로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시간을 할애하는 모범운전자 봉사는 택시운전사들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오 지회장은 "시 등의 관공서에서 공사 등을 진행할때 시공사가 모범운전자들을 임시로 고용해 임금을 지급하는 유상근무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 수가 한정돼 있고, '봉사직'이라는 특성상 돈을 바라지는 않지만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범운전자들에게 가해지는 부담은 지방일수록 더 심각하다. 오씨는 “현재 남양주 북부 모범운전자는 총 67명이지만 서울의 경우 수백명에 달한다. 그에 반해 관할하는 지역 범위는 비슷하니 상대적으로 인원이 적은 지방 모범운전자들은 더욱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