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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사사기 후반부에 있는 두 개의 에피소드 중 하나인 미가의 신상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사기는 사사들의 기록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였지만, 후반부에 위치한 두 개의 에피소드 즉 미가의 신상과 레위인 첩의 사건은 시간적 배열이 아닌 사사 초기 시대의 타락상을 보여줌으로서 사사 시대의 영적 상태를 고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문학 구조입니다.
먼저 미가의 신상 에피소드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종교적 영적 타락상을 보여준다면, 그 다음 하나인 레위인의 첩에 관한 에피소드는 이스라엘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두 에피소드는 시간적으로 볼 때는 사사 시대 초기에 일어났던 사건들로 두 에피소드 속에 기록된 단 지파의 이주 문제나, 또 이스라엘 지파 동맹체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20장 28절에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이는 사사 시대 초기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 입성 후 얼마지 않아 그토록 빨리 타락했다는 것은 인간의 부패성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두 에피소드 중 한 가지, 미가의 신상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고 찾아가길 바랍니다.
미가의 신상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어머니가 은 천백 개를 잃어버립니다. 은 천백 개는 상당히 큰 액수의 돈입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이 들릴라에게 삼손의 힘 근원을 밝혀낼 때 약속한 금액이 은 천백이었습니다. 미가가 레위인을 고용할 때 일년에 은 십을 준다고 약속한 것을 보더라도, 그 금액이 얼마나 큰 가치인지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지금처럼 은행이 없었기에 은화나 금화 등의 재물은 집 안 안전한 곳에 보관해 두었을 것입니다. 근데 그 어머니의 재산이 도둑 맞게 된 것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훔친 자를 저주를 합니다. 이 ‘저주하다’는 뜻은 입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거나 한탄하다는 것이 아니라, ‘맹세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훔쳐 간 자에게 저주가 임하도록 여호와께 맹세를 했다는 것이지요. 어머니의 은을 훔친 미가는 그 저주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 양심에 두려움이 생깁니다. 어머니가 한 맹세의 저주가 자신에게 임할 것이란 공포가 엄습한 것입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은을 훔칠 정도로 비윤리적이만 또한 매우 미신적이고 기복적입니다. 어머니의 저주 맹세 때문에 훔친 돈을 어머니께 돌려드립니다. 이는 회개가 아니라, 저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 기인한 것이었습니다.
은을 돌려 받은 어머니는 자신이 한 저주 맹세를 무마하려는 듯, 생뚱맞게 갑자기 아들을 축복합니다. 저주 맹세를 하고, 또 축복을 선언하는데 그 모든 영적 상태가 바른 믿음에 기인한 하나님께 있기보다, 자기 소견에 있습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여호와를 섬깁니다. 그녀는 돈의 일부로(은200)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께서 드립니다. ‘거룩히’ 드렸다는 말은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다는 뜻입니다. 가증한 신상을 만들어서 하나님께 드렸고 또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 제 2계명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출20: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미가의 어머니는 하나님께서 금지한 우상을 만들어 미워하는 그 우상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열심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미워하는 일을 하면서도 간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것, 열심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간절함, 진심, 열심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합일할 때만 칭찬받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릇된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했습니다. 그후 자신의 그릇된 열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회개했습니다(빌3:6). 그는 로마 성도들에게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에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계했습니다(롬10:2). 이는 잘못된 지식이 얼마나 큰 죄를 범하는가를 삶을 통해 체득한 것이었습니다.
미가 가정은 매우 신심은 깊었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정은 여호와의 말씀에 무지했기에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을 신앙합니다(얼마나 이런 사람들이 많은지요!). 이런 영적 무지는 더 많은 죄를 생산합니다. 무지는 하나님을 섬기나 그릇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방식으로 섬기게 합니다. 미가는 신상을 만들어 자기 집 경내의 신당에 모셔두고, 아론 계열의 자손 밖에 될 수 없는 제사장을 자기 아들 중에 하나에서 삼습니다. 그토록 여호와께 헌신적이고 열심인데 모두 엉터리입니다. 성경은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며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17:6)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레위인의 타락과 실패
유다 가족에 속한 베들레헴에 우거한 레위인이 거주할 곳을 찾기 위해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까지 오게 됩니다. 레위인은 약속의 땅을 분배 받지 않는 대신 이스라엘 각 지파에 흩어져 그 안에 거하며 제사장을 보조하고, 율법을 교육하고 신앙을 보전하고, 재판과 판결 및 신앙 업무에 봉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레위인의 생계는 11 지파의 십일조를 통해 책임져야 했습니다.(민18:21)
베들레헴은 레위 지파가 분배 받은 48개의 거주 성읍 중 하나가 아닙니다(수21). 이는 이 레위인이 원래 베들레헴 사람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그는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생계가 망막해지자 베들레헴까지 와서 체류하며 살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베들레헴에서도 여전히 생계가 망막하자 다시 살 곳을 찾아 다니던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까지 흘러 온 것입니다. 미가는 그가 레위인임을 알게 되자, 자신의 신당의 제사장에 되어 줄 것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숙식 보장과 은 십을 매년 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생계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살던 그는 이 제안을 흔쾌히 승낙합니다. 그로 레위 청년은 개인의 가정에 있는 사설 신당의 제사장이 되고, 미가는 자기 집 신당에 레위인이 제사장이 생겼기에 이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모두 자기 소견대로 하고, 잘 될 줄 또 스스로 믿습니다!)
레위인이 생계 때문에 유랑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레위인로서 옳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레위인이 직무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직무는 율법을 가르치고 신앙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당시 실로에 공식 여호와의 제단이 있음에도 미가는 사설 신당을 만들어 그곳에 신상을 두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율법이 금하는 우상숭배이며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레위인은 그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제사장은 오직 아론 계열에서만 될 수 있는 것임에도 레위인(모세의 손자)은 제사장 직분을 수락했습니다. 레위인이라면 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그는 거부 하지도 않고 침묵하고 동조합니다. 우상 숭배를 막아야 할 레위인이 도리어 미가의 행동에 적극적 지원자요 공범이 되었습니다.
성직의 타락된 모습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법을 가르치고 바른 신앙을 전수하고 보전하기 보다는, 자기에게 먹을 것과 잘 곳, 돈을 주는 자에게 순응합니다. 그에게 고용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참된 신앙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말하기 보다, 자신을 고용한 사람의 종이 됩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길 포기하고, 사람의 종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더 나은 조건과 혜택을 위해 언제든지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삯꾼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단 지파가 왔을 때 기뻐하며 그들을 따라갑니다. 레위인의 타락은 개인 문제도 있지만 동시에 외적 상황도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11지파들의 레위인에 대한 무책임은 타락을 부추깁니다.
성직의 무한 책임
제사장은 삯으로 고용되는 직무가 아닙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입니다. 목사도 돈으로 고용되는 직업이 아닙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세운 직분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고용’하지 않고 ‘청빙’을 한다고 합니다. ‘청빙’이란 ‘예를 갖추어 초청하여 그 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입니다. 반면 고용이란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고 사람을 채용하고 일을 시키는 계약’을 말합니다. 고용된 일꾼은 고용한 사람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고용하지 않고 청빙하는 것입니다. 목사직은 그 성도들이 무한책임져야 할 직분입니다. 책임이라고 함을 꼭 생계의 의무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수행하도록 기도와 돌봄과 말씀에 순종으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좋은 토양에서 좋은 나무와 열매가 자라듯, 좋은 성도들 품에서 좋은 목사가 생겨납니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입니다. 훌륭한 목회자 아래 훌륭한 성도들이 있고, 좋은 교회 안에 좋은 목사가 있습니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단 지파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삿18:1)
본래 단 지파는 유다와 에브라임 및 베냐민 지파 사이에 위치한 땅과 해안 평야 지역을 분배 받았습니다(수19:40~48). 그러나 그 땅에 거주하고 있던 아모리 족속의 완강한 저항에 의해 그 땅의 확보에 실패하고 오히려 산지로 쫓겨나 평지 지역에는 내려오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단 지파 가족이 번성하고 더 넓은 거주지가 필요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땅을 찾기 위해서 정탐꾼을 보낼 결정을 합니다. 다섯 명의 정탐꾼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삼손의 고향)에서 출발하여 북으로 향하다 우연히 미가의 집에서 유숙을 하게 됩니다. 미가는 자신의 넉넉한 주택에서 다섯 명의 나그네를 접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호의가 장차 자신에게는 도리어 화(?)가 될지는 아마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우상과 레위인을 빼앗기는..)
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서 레위인을 만납니다. 그가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묻게 되는데 레위인(요나단)은 자신이 미가에게 고용되어 사설 신당의 제사장으로 있음을 말해줍니다. 단 지파 정탐꾼들은 이 레위 청년 제사장에서 자신들의 길흉을 묻고 복을 빌어달라고 합니다. 그는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이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라고 화답합니다.
다섯 정탐꾼은 미가의 집을 떠나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라이스에 도달하게 되는 데 그곳에서 평화롭고 한가로이 사는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그 땅은 부족함이 없고 부하고 또 시돈 사람들과도 떨어져 있어 외부와도 단절된 곳임을 알게 됩니다.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온 정탐꾼들은 라이스를 침략하여 이주하자고 제안합니다. 단 지파는 육 백명의 군사와 그들의 가족, 가축을 데리고 라이스를 향해 떠납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라이스는 단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이 아닙니다.
단 지파에게 분배 된 땅은 가나안 해안 평야지역입니다. 하지만 아모리 족속의 완강한 저항에 눌려 그 분배 받은 약속은 땅은 포기하고, 북쪽 끝에 땅, 평화롭고 안전하게 사는 백성들을 침략하여 자기 유업으로 삼습니다. 강한 자의 땅을 믿음으로 승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의 땅을 힘과 폭력으로 약탈하여 뺐습니다.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래 전 가나안의 첫 성인 여리고는 강하고 견고한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단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강한 자를 이기고 승리하였는데 지금 단 지파는 그 영적 공식에서 벗어났습니다. 불의합니다.
단 지파의 불의한 모습은 이주 도중에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다섯 정탐꾼들은 자신을 선대했던 미가의 집을 찾아가 그곳에 있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약탈하고, 함께 거하던 레위 제사장까지 데리고 갑니다. 젊은 레위 제사장은 단 지파가 제안한 더 나은 보상과 영예를 위해 미가를 단번에 버립니다. 미가는 사람들을 모아 단 지파를 쫓아갔지만, 그들의 무력 앞에 당할 수 없음을 깨닫고 되돌아갑니다. 단 지파는 라이스로 가서 평화롭고 한가로이 사는 백성들을 살육하고 마을을 불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자기의 조상 이름을 따서 그곳을 단이라고 부릅니다. 단에 미가의 신상을 세우고, 요나단(모세의 손자)을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아 음란히 우상 숭배를 합니다. 사사기 18장 31절에서는 실로에 있던 중앙 성소를 언급하는데, 이는 실로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 중심지였을 동안에도 단 지파의 우상 숭배가 계속되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단의 우상숭배 기원은 이후 북 이스라엘 시대, 여로보암 왕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단에 둠으로써 대표적 우상의 진원지가 됩니다. 한 개인의 우상 숭배가, 한 지파의 우상숭배로 확장되고, 나중에 이스라엘 전체의 우상숭배로 오염되는 것을 볼 때, 작은 누룩과 같은 무지의 죄가 결국 이스라엘 전체의 우상숭배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단 지파는 이처럼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배교와 우상 숭배 세력으로 존재한 원인 탓인지, 요한계시록에서는 인침 받은 144,000명에서 유일하게 제외된 지파가 되었습니다(계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