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도가 운을 행하여 만물을 낳아 기른다.
나의 만트라로 늘 외우는 문장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만족을 알자' 이다. 도덕적으로 인격이 높은 덕망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잣대로 오만(傲慢)에 빠지거나 자만(自慢)하지 않고, 크고 작은 일을 나 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삶의 아름다운 향기가 풍긴다. 이렇듯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욕심을 버리고 만족할 줄 아는 삶이야 말로 '멋진' 삶이 아닐까?
‘안분지족’은 노자 <<도덕경>> 제 44장의 다음 문장을 소환한다. "知足不辱(지족불욕) 知止不殆(지지불태) 可以長久(가이장구)" 이 말은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치욕을 당하지 않고, 적당할 때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당하지 않으니 오래 오래 삶을 누리게 된다'이다.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구절이다.
만족(足)을 알고 그치는(知) 것이 내 몸을 살리고, 내 정신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해답이라는 거다. 이 구절을 가지고 노자의 철학이 소극적이고 허무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의 주체는 성공한 귀족이거나 권력자이다. 이미 성공이라는 문턱에 다다른 사람에게 하는 경고이다. 자신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큰 탐욕을 보일 때 벌어지는 참사에 대한 경고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이 세상에 좋기만 한 것은 없고, 좋은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니까 1000년을 넘게 사는 나무 같은 '기립지물'은 천 년의 삶이지만 무정한 삶이다. ;신기지물;인 사람은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만 대신 유정한 삶을 산다. 기껏 100년을 살지만 대신 진하게 사는 것이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으로 사는 것은 커다란 축복일 수도 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 유정한 사람, 섬세한 사람일수록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더욱 진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건 선택의 문제이다.
이런 강한 사람의 운보다 더 강한 운을 지닌 것이 사람을 낳은 대우주, 곧 하늘의 운이다. 하늘은 운을 행해서 만물을 낳아 기르고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운이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예정대로 달성하는 힘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하늘은 '만물을 낳아 기른다'는 목적을 언제나 예정대로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계절이 말해준다.
-3847.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6년 10월 14일)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