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관한 단상
얼마 전부터 한국에서는 노래를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이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모 방송극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불린 노래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무명의 신인을 발굴하는 어느 케이블 방송의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은 매년 참가자의 수나 시청률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한 현상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노래에 대한 열정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방송에서 불린 노래는 금새 인기곡 순위의 상위에 오르고, 또한 대중들이 방송에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를 일부러 찾아서 듣기도 한다. 누가 탈락하고, 또 누가 새로 합류할 것인가가 중요한 뉴스 가치를 지닌 기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5학년인 내 아들도 인터넷을 통해서 그 방송을 보고, 또 그 프로그램에 나온 노래들을 다운로드 받아서 즐겨 들을 정도의 '마니아(Mania)'가 되었다.
물론 노래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은 최근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옛 중국의 역사서를 보면,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 선조들의 특징으로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좋아한다’라는 내용이 빠지지 않는다. 그러한 기록을 보면, 아마도 술과 더불어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민족성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노래방 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한국이 아니던가. 일본의 ‘가라오케 문화’가 한국에 상륙하여, 원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노래방 문화’로 정착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회식 이후에 2차 혹은 3차로 노래방에 가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잘 부르는 노래 하나쯤은 애창곡으로 내세우곤 하는 것이다. 노래를 잘 부르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 마이크를 잡고 목청껏 노래를 하다보면,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곤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지식인이었던 신흠(申欽:1566~1628)은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조로 노래의 효용을 지적하였다.
노래 삼긴 사람 시름도 하도 할샤
일러 다 못 일러 불러나 풀었던가
진실로 풀릴 것이면 나도 불러 보리라.
‘삼기다’는 ‘생기게 하다’는 뜻이니, 초장의 내용은 노래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아마도 시름이 많기도 많았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아마도 ‘노래는 곧 사람들의 시름을 풀기 위한 것’이라고 작자는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 그 시름을 말로는 다 이르지 못 하니, 노래를 불러 풀었을 것이라는 것이 중장의 내용이다. 작품에서는 세상 사람들의 노래에 대한 생각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작가 자신의 노래에 대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노래를 불러 마음속에 맺힌 시름을 풀어낼 수만 있다면, 작자 자신도 노래를 불러 시름을 풀어내겠다고 하며 작품의 마무리를 짓고 있다.
이것은 비단 노래에 대한 신흠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며, 조선시대 사람들은 노래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맺힌 시름을 풀어내는 수단으로 인식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민중들 역시 생활 속에서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나무꾼들은 산속에서 하루 종일 지내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독감과 피곤함을 달랬을 것이고, 목동들 역시 피리를 불고 노래를 부르며 지루함을 잊었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품앗이를 하는 와중에도 노래는 노동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지금도 당시 민중들의 노래는 우리의 민요가락 속에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우리에게 노래란 무엇인가? 울적할 때면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래고, 때로는 누군가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흥겨움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에게 노래가 없는 삶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노래는 우리의 삶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러분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노래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밴쿠버 중앙일보(2011년 9월 23일자)에 기고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