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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듯이 인문학(人文學)은 인간과 인간의 삶의 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 분야라 할 수 있다. ‘희망의 인문학 강좌’라는 명칭으로 고려대의 문과대학 교수들이 구치소에 수감된 이들을 위해 마련한 강좌 가운데 일부의 원고를 엮어 만든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모두 10개의 강좌로 구성된 이 책의 내용은 다양한 전공 분야를 포괄하고 있어, 책의 성격을 하나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아마도 그래서 제목도 <모두의 인문학>이라 붙였을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에 수록된 내용 가운데 하나 정도는 좋아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반면에 바로 그러한 성격 때문에 책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국문학과 역사학, 중국문학과 독일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전공들, 철학과 한문학을 비롯하여 각 필자의 전공 영역이 두루 포괄되어 있다. 특정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논한 글이 있는가 하면, 철학의 보편적인 주제를 놓고 개략적으로 설명한 글도 엇섞여 있다. 아마도 글이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 청중들은 나름대로 만족감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강의가 아닌, 그 내용을 글로 썼을 때 보다 깊은 지식을 원하는 독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특면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인문학 강좌를 책으로 엮었을 때, 드러나는 한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을 보자면, 동양적 지식의 척도로 간주되었던 ‘유학’(1강)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로부터 시작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동양의 전통 속에서 유학의 가치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21세기에는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정의론’(2강)을 요약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글이 이슈가 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의 문제를 촉발시킨 바 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의’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특히 ‘정의’를 ‘공적주의 정의론’과 ‘운평등주의 정의론’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방식은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어서 영화 <친구>와 박지원의 ‘우정론’을 비교하여 ‘우정’(3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른바 ‘조폭’의 우정을 아름답게 그렸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영화 <친구>와는 달리,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우정관은 자신의 이익에 매몰되지 않는 측면을 지녔다고 설명된다. 또한 러시아의 동포를 지칭하는 ‘고려사람’(4강)이 처한 역사적 상황과 작금의 현실 문제에 대해서 환기시키는 내용도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5강에서 다루는 ‘중국공산당’의 연원을 다룬 주제는 그것을 통해 중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내세우는 ‘중국몽’이라는 표어나, ‘동북공정’ 등을 통해 소수민족들의 역사까지도 무리하게 포섭하려는 시도들이 결국은 중국인들의 ‘대국 지향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다음으로 한글전용의 시대를 살고 있는 이 시점에 ‘한자와 한문’(6강)의 중요성을 논하는 주제는 다소 뜬금없이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그저 전공자로서의 희망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두 사람의 현대 시인의 시집들을 비교한 7강의 내용은 인문학 강의라기보다는 문학비평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느껴졌다. 오히려 현대시에 나타난 특정 주제들을 중심으로 시인들의 시 창작이 지니는 의미와 독자로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더라면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남는 주제였다. 이러한 아쉬움은 ‘독일 서정시’를 다룬 8강에서도 동일하게 느꼈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 두 개의 주제는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으나, 보다 보편적인 주제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다만 중국의 '사대기서'를 소개하면서 그것을 ‘충의’의 관점에서 읽어내는 9강의 내용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알찬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또한 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멜빌의 소설인 <백경>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한 10강의 내용도 문학을 전공하는 나에게, 작품을 바라보는 참신한 시각을 안겨주었다. 이상으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와 분야들을 열거했을 때,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문학’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한 권의 책을 통하여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상 인간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방향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러한 요구에 적당하게 부응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쉬운 가운데서도 나름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의 가치를 새삼 생각해보도록 하는 기회였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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