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1486)에서 신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너에게는어떤 한계도 없으며, 오직 너만이 자신을 위해 자연의 한계를 정할 뿐이다. 나는 너를 세계의 중심에 놓았으며, 너는 거기서 네 뜻대로 세계를 둘러보고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너를 천상의 존재로도 지상의 존재로도 가사적 존재로도 불사적 존재로도만들지 않았다. 너는 영예롭게 지명된 재판관으로서 스스로의 틀을 짜고 제작하는 존재다. 너는 네가 원하는 모습으로 너 자신 조각하면 된다."
김기현, 인간다움 중에서 (p148)
루터는 1520년에 쓴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독교인은 모든 사람의 가장 자유로운 군왕이요, 아무의 신하도 아니다. 그는 만인의 가장 충성된 하인이요, 모든 사람에게 종속한다." 루터를 포함해 당시 종교개혁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신조는 다음의 다섯 강령으로 요악된다.
솔라 스크립투라soa sompiuina(오직 성경), 솔라 그라티아soa cratia(오직 은혜),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iswus (오직 그리스도), 솔라 피데soa Fide(오직 믿음), 솔리 데오 글로리아sli Deo dloria (오직 여호와께 영광)가 그것이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항목 하나하나는 신앙인 개인이 갓추어야 할 덕목이다. 결국 나의 구원은 나와 절대자 사이의 일대일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된다. 이로서 교회 공동체는 개인이 구원으로 가는 길에 도움을 주되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닌 위치로 내려선다.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는 본래의 기독교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이러한 흐름은 고대 기독교로의 회귀다. 개인의 양심과 결단을 구윈의 조건으로 삼음으로써 제도권의 힘을 약화시쳤고, 성직자와 중교를 둘러싼 계급주의 전통을 모조리 부수있다. 신앙에 있어 개인주의가 새로이 도래한 것이다. 이제 이 시대를 지배한 개인주의는 신앙을 거쳐 사회 전 영역으로 확대된다. (p153~154)
르네상스의 확산과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른 화두는 개인주의, 개인의 자율, 개인의 권리이다. 이는 철학자들의 사상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개인의 평등, 자유, 존엄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봇물터지듯 생산된다. (p155)
개인을 세계의 중심에 놓는 움직임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잠는다. 먼저 개인적 감각과 정서의 영역에 대한 열린 태도가 마련되었다. 거기서 인간다움을 찾는 것으로시작해(르네상스), 절대자와의 관계 수정으로 진행되며(종교개혁), 자연세계의 진리와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에 대한이해(큰대의 인식론)로 확장되었다. 개인을 중심에 두고 진리와 지식을 탐구하고 구성하려는 철학의 개인주의 움직임은 이후 더욱 확장되어 인간의 도덕과 규범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p158)
욕망과 쾌락
-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
- 마틴 루터의 죄의식에서의 회심: 로마서 1장 17절 "믿음으로 의로워진다." 이후 루터는 "세상은 '쾌락의 정원'이 되어야 하며, 모든 슬픔은 사탄에게서 온다"라고 했다."
-로크의 『인간오성론』 "배고플 때 먹고, 목마를 때 마시며, 음악과 예술을 창조하는 것 등은 모두 거기에 동반하는 쾌감의 증대와 고통의 감소라는 요소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쾌락과 고통의 느낌이 없다면 우리는 특정한 생각 또는 행위를 다른 것에 비해 선호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
- Hume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는 성향의 인간의 마음이 '정념(passion)'이고 이 정념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다. 이성은 정념이 가리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계산해내서 정념에 봉사하는 역할을 한다.
- 공리주의자 벤담은 정념에 따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다고 말한다.
"자연은 인간을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군주의 통치 아래 두었다. 고통과 쾌락만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가리키고, 또한 우리가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한다. 한편으로는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른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그들의 왕좌에 묶여 있다. 그들은 우리가 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를 지배한다. 우리가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를 더욱 입증하고 증명할 뿐이다. 인간이 그들의 왕국을 말로는 부인하는 척해도 결국 그들에게 종속된다. 유용성의 원리는 이러한 복종을 인정하고 사회 체제의 근간으로 가정한다. 사회 체제의 목적은 이성과 법의 손으로 행복의 천을 짜는 것이다."
- 정념의 시대에 윤리 '공감'
흄은 정념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지만, 정념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회피하는 욕구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도 있기 때문이다. 흄은 공감과 연민의 정서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빠지는 것을 막고, 인간의 윤리와 그것을 구성하는 도덕적 감정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에서 슬픔이나 기쁨을 느끼는 주체와 그를 관망하는 제삼자 사이의 공감, 그리고 서로를 의식한 공감의 조율을 도덕의 출발로 생각했다. 이러한 조율이 결과 불편 부당한 관망자가 정서적 느낌에 공감하면, 그 느낌은 정당하게 승인받아 도덕적 규범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 스미스의 생각이었다.
- 공리주의 또한 주변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 즉, 공동체에 쾌락을 증진하는 것이 선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 이기주의와 쾌락주의는 다른다.
"혼히 쾌락을 추구하는 것과 이기적인 것이 함께 연상되지만, 쾌락주의와 이기주의는 다른 개념이다. 쾌락을 수용 하면서도 충분히 이타적일 수 있다. 오히려 남의 쾌락을 나의 쾌락보다 더 중시하는 것도 가능하다. 계몽주의 시대의 철학자들은 이기주의를 옹호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교회 제도를 비판적으로 보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들이 사는세상은 기녹교적 영항 아래 있었. 평등과 사랑이라는 가치가 녹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은 이기적 쾌락주의로 흐르지 않았다." (p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