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이 깊어지니 버섯은 또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여름내내 곰팡이로 얼룩지더니
그래서 저러다가 죽는거 아닌가 했는데
건조한 날이 이어지니 버섯이 많이 자랐다.
버섯장을 지은 영도는 없는데
세월은 말없이 술술 흐르고 있고
아무렇지 않다는듯 세상은 또
맞물려 돌아간다.
상렬이가 영도와 같이 매입한 땅과 명의변경 문제, 볼보 처리문제를 상의하러 온다기에
버섯을 좀 따와서 상렬이 가는 길에 엄마에게 드리라고 한 봉지 챙겨주었다.
우리 엄마가 멕시칸치킨 좋아하는거 알고는
저녁에 치킨 사가지고 들르겠다고 한다.
아들처럼 생각하시라고
언제든 누나랑 어머니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시라고 당부하고 돌아갔다.
영도 관속에 넣은 편지에도 그리 썼다고..
우선 교동의 땅은 엄마 명의로 돌리고
당분간 지켜보기로 한다..
2 ..내 직업은 농부 아니던가.
그에 걸맞게 감을 수확하고
장미봉숭아 씨앗을 채취하고
키 큰 해바라기 두 그루를 베어냈다.
어림잡아 2m50은 될 듯 하다.
해바라기 줄기를 끓여먹으면
암에 좋다는 얘기가 있는데..
영도에게 그것도 못 해먹이고 보냈다..
아주 긴 감따개가 있으니 유용하게 쓰인다.
김포프랜에게 따주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느라
먼저 한박스 채워 포장을 해두었다.
가야씨네 지금 장례 치르는 중이라는 얘길 듣자마자 저녁밥 먹다말고 부리나케 와준
김포 덤앤더머 친구들..
이번 주말의 시험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고,
감이 더 무르기 전에 주중에 전해야겠다.
3 ..인우의 생일.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없이 있었는데
아침에 눈 뜨며 생일임을 기억했다..
카카오페이로 돈을 부쳐주며
달콤케잌과 커피로 잠시 행복한 시간을 즐기라고 메시지를 띄웠다.
영도의 장례를 치를때
저러다가 애 혼절하는거 아닌가 싶게
울던 인우였다.
큰조카답게 삼촌이 자신을 많이 이뻐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고 그리도 울었던 인우다.
4...보영씨가 소주 몇병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저녁에 찾아왔다.
집에서는 석이오빠가 돈 내놓으라고 빈정거리고 있고하여 본인은
술먹고 자버리고 싶은데
제일 편한게 우리집이라 찾아온 것인데
그녀의 술버릇을 알기에 나는 그녀에게
우리집에서 술병 뜯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었다.
받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더이상 가엾다고 데리고 있다가는
우리집에서 술먹고 뻗을 기세였다.
내가 술을 많이 안마시니
상대방의 술버릇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지금 이 조용한 집에,
그것도 얼마전에 장례를 치른 우리집에
술꾼이 와 술판을 벌이는건
용납할 수가 없는 일.
그녀가 서운한다 해도 그건 잠시일뿐..
오랜 우정을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5 ..유홍씨가 카톡을 보내오길
그 너무 착한 친구 규철이를 기억하냐고 묻는다..
그친구가 조의금을 전해야겠다며
내 전번을 물었다기에
난 다 끝났고 지나간 일이니 괜찮다고 했다.
근데 알고보니 그는 나와 개인적인 문자를 주고받길 바란다는 눈치여서
유홍씨가 내게 먼저 의향을 물어온 것이다..
(아..미안해서 어쩌죠..
난 다른 의미로 김포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없을거에요.
전 아직 못잊은 사람이 있어서
누굴 개인적으로 만날 생각은 없어요.
유홍씨가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말해줘요.)
그친구들 6명이 만든 채팅방에 초대받아 가봤더니
규철씨가 지난 여름에 다같이 모여 황청포구 찻집에 갔을때
내 사진을 잔뜩 찍은걸 올렸다..
하...이게 뭔 일이래...
이거 그들과 다시는 못 어울리겠네..
6...누군가 곁에 있으면 덜 아프다!
그것은 또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면
더 아플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어느 심리학자의 글을 읽으며
다른 사람에 비해 회복이 늦고 너무도 아파했던 나는
그옛날 정말 혼자였고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던 날들이었던게 기억났다.
반면 영도는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진통제를 먹는 날이 그리 많지 않았고 패치는 붙이지도 않아 고스란히 다 남았다.
통증이 없냐고 물어봐도
암덩이 때문에 생기는 복부 통증은 없고
단지 부풀어오른 배 때문에 무겁고 불편함,
소화불량, 뼈밖에 안남아 배기고 아픈것.
기운 없음.
그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얼마나 따뜻한 가족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그들이 전해주는 온기에
어쩌면 영도도 심리학자의 말대로
좀 덜 아파하진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곁에 머물며
괜찮아?
어디 불편하진 않아?
라고 물어봐주는 것으로도 우린
얼마나 뭉클해지던가.
어쩌면 몸이 아프다는 얘기는
반은 마음이 아픈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오늘밤은 블루문이자
미니문이라고 떠들길래
얼마나 다른가 하여 보러 나갔다.
정말 내 새끼손톱 만하게 작고 하얀 보름달이다.
영도가 떠난 날 밤에 잠시 집에 들렀다
읍으로 가던중 그때 내가 봤던 달은
짙은 노랑으로 반달이었다.
너무도 크고 짙은 노란색이라
참 특이한 달이구나 하며
몇번이나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달구경 하던 중 집앞 검문소의 두 군인애들이 나누는 얘길 듣게 되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일 한 애가 말하길,
나중에 아들 낳으면 같이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며 살겠다고..
문득 호주에서 서핑을 즐기며 살았다던 그가 떠올랐다.
그도 별 사건없이 결혼하고 아들을 낳아 키웠다면
아마 그 아들에게도 바다에서의 즐거움을
가르쳤겠지 싶었다.
해운대 북극곰 축제에 꼭 참여하고 싶다는 얘길 했었는데..
그는 정말 그리 할 사람이다..
그 소망을 꼭 이루길 바란다..
그가 그토록 일만 하고 사는 것은
훗날 자신이 하고픈 일들을 맘껏 누리고자 함일테니..
마음맞는 사람과 함께
겨울날 해운대로 향하며 행복해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