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입추다. 산들바람은 어디에 있지? 그늘속은 어디서 온지는 몰라도 산들바람이 느껴진다. 햇볕은 여전히 그야말로 찌는듯 하다. 그럼에도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날 준비를 하고있을게다. 계절은 틀림이 없이 가고 오고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엔 지나간다는 말은 사실이다. 청춘이 지나갔듯이 노년도 지나가리라. 세월의 빠름에 비하여 더딘것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까 조금 더 기다린들 어떠랴. 기다리자. 더디오는것 같지만 정확하게 오고있을게다. 내가 초조해 할일은 아닌것같다!
애들 밥걱정을 하고, 불편한 심기를 어찌할수가 없었는데, 불필요한 감정소모였다. 애들 어쩌고 저쩌고 하는 스케줄에 나는 1시쯤에나 가면 된단다. 10시 무렵부터 이제나 저제나 전화벨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제 큰애 한테서 연락이 온것은 12시가 지나서였다. 지엄마 폰이었다. 이 시간까지 출근안했다면 이건 '출근이 아니라 외출'이라는 완고한 편견이 작동했다. 이러고서 들어오는 시간은 언제지? 하는, 욕지꺼리도 나왔지만 내가 참견할일은 아니다. 울 며늘 말고도 많은 여자들이 엄마 노릇도, 주부노릇도 안하고도 잘들 사는 모양이다. 뭔가를 한답시고 아이들이나 남편을 방치를 넘어서 희생을 강요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는 여자가 모든것을 희생하고 감수해왔다. 여전히 그래야한다고는 생각 안한다. 그렇지만 내가 싫은일을 다른 가족에게 떠 넘기며 우쭐거리는 꼴도 정말 싫다. 가족은 서로가 배려하고 협력해야지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이 강요된다면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힘든다. 배려 협력은 쉬운게 아니다. 사랑이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한다. 결국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 사랑은, 사람이기도 한데. 사람이기가 쉽지않다.
잼버리 대회 참가비가 6-700이나 된단다. 어느나라 예긴지는 모르겠지만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새만금 갯벌에서의 대회는 실패로 끝나고 전국 도시로 흩어지게 되었나보다. 서울 큰 호탤에 어느나라 회원들이 들어오게되고,,, 호탤 문화에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열악한 야영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19세기도 아니고 난민 대피소도 아닌데 간과한게 너무도 많았던 탓이라는 생각이다. '페인트'라는 청소년 소설을 읽었다. 청소년? 이런 장르도 있나보다. 부모를 선택한다는 좀 색다른 소제여서 흥미를 갖고 읽었다. 고아란 명칭대신 '국가의 아이'란 표현도 그럴싸하고,,, 우리는 어쩌면 그런 시스탬에 속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이들 대부분이 어린이집에서 식판에 음식을 담아 먹여 길려진다.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는 시대도 아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울때도 어린이집이 있었으면, 혹은 도시락 대신 학교 급식이 있었으면 나도, 그리고 아이들도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들을 홀로두고 일하려 가는게 쉬운일은 아니었으니까. 아이들을 방치하고 일하려 나가면 아이들은 끼니를 스스로 챙겨야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할짓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해야했으니 분노가 치솟지 않을수가 없다. 사는게 지금이나 그때나 힘들기는 마찬가지 겠지만 아니, 요즈음이 더 행복하지 않는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때는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으니까. 그게 개천들의 희망이기도 했고. 요즈음엔 개천에서 용 안난다. 희망의 싹이 잘린것이다. 요즈음 개천엔 미꾸라지도 살기 힘들단다. 붕어는 어떨까. 송사리때는 건재할까? 아, 우리 우이천에는 커다란 잉어때들이 살고있다. 얼마나 살이 쩠는지, 큰 냄비에 가득찰것 같은데 보골보골 한냄비 가득 끓여 맛있게 냠냠. 물이 맑은것도 아닌데도 ,,, 아, 맑은물이 아니어서 잉어들이 저렇게 잘 살고있는 것인가?. 폭우가 내리고 큰 물쌀이 거셀때 물고기들은 어쩌고 있는지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그자리에 있는것 같으니까 말이다. 아직은 볕이 구름에 가려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