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월과 고(故) 윤정희
배우 윤정희(尹靜姬)가 며칠 전 파리에서 쓸쓸히 별세하였다. 향년 79세.
지난 1960~70년대는 그야말로 한국영화의 전성시대. 그 당시 문희·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끈 주역으로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은막(銀幕)의 스타 윤정희. 무려 3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 한 시대를 풍미한 한국의 대표적인 배우 윤정희.
그러던 중, 갑자기 1973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가 인생 2막을 여는가 싶었는데, 그곳에서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하여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았던 윤정희. 10여 년 전부터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며 설상가상으로 형제 자매들과 소송문제로 갈등을 겪는 등... 별로 달갑지 않은 기사를 보며 말년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은 와중에 별세 소식을 접하니 더욱 안타까움과 더불어 삶의 허무함을 느낀다.
윤정희는 명월 사춘기 때 두근두근 가슴을 설레게 한 여인이었다. 나의 고교시절(1970년대 초) 톱스타인 그녀는 나의 우상(偶像)이요 선망의 대상 그 자체였다. 가끔 꿈속에도 나타날 정도였으니까~~ 청소년기 명월의 가슴을 뛰게 하고 열병의 가슴앓이를 하게 했던 백학처럼 예쁜 윤정희.
컴퓨터·휴대폰은 물론 텔레비전도 귀한 시대. 오로지 영화 보는 일이 유일한 낙(樂)이요, 최상의 즐거움이었던 그 시절. 그녀 윤정희가 꼭 우리 고장 출신(조선대학교 출신으로 미스 전남에 뽑혀 배우가 된 걸로 알고 있음)이라서가 아니라 세 트로이카 중에서도 가장 우아하며 인기 절정이고, 정서적 분위기가 딱 들어맞아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이었다. 그녀 상대 배역으로는 주로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으로 기억된다.
빛고을 광주(光州)에서의 학창 시절, 당시 윤정희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무작정,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거의 다 보았다. ‘사랑의 조건’, ‘분례기’, ‘두 아들’, '독 짓는 늙은이', ‘만무방’, ‘비에 젖은 여인’ 등등. 극장 입장료는 60원. 두 편을 ‘동시상영’하는 한일극장, 태평극장을 주로 이용하였다. 입장료 조달은 부모형제가 준 용돈, 자취하는 안집 중학생 가르쳐주고 받은 용돈, 그도 저도 없을 땐 쌀을 몰래 팔아(그때 자취하였음) 극장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고2 여름방학 때쯤 일로 기억된다. 윤정희 나오는 영화 <황홀> 포스터를 보니 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이다.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튿날 표를 사서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뿔싸! 표를 받는 기도 아저씨가 “야, 학생은 안 돼! 입장할 수 없다.”고 한다. 두 편 중, 그녀 나오는 영화는 ‘연소자 입장불가’, 또 다른 무협영화는 입장이 가능하다. 교복(반팔 하복)을 입고 학교 모자를 쓴 상태, 영화는 엄청 보고 싶은데 입장은 안 되는 상황~~ 난감하네. 참으로 난감하다.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근처 구멍가게로 달려가 껌을 한 통 사면서 “아줌마! 제가 급한 사정이 있는데요, 제 교복과 모자 좀 맡아주세요.” 상의와 모자를 벗어 맡기고 급히 극장으로 뛰어가 표를 내미니 조금 전의 기도 아저씨는 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씨~익 웃으며 그대로 입장시킨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했던가. 노력 끝에 성공! 까까머리에 런닝 복장 차림에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윤정희 출연 영화를 기어이 본 것이다. 끝날 때까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해 가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우습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까마득한 추억의 한 장면이다. 아, 옛날이여~~
그녀의 마지막 출연 영화는 2010년 작 <시>로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인공 ‘미자’역으로 나온다. 나는 이 영화를 학교 퇴직하기 전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 영화가 주는 내용과 메시지도 훌륭하지만, 솔직히 내가 흠모하는 그녀 윤정희가 더욱 좋아서였으리라.
이 영화에선 시인 김용택이 직접 출연하여 어느 문화원에서 ‘시 창작법’을 강의하는데, 알츠하이머를 앓는 미자(윤정희 실제 본명)가 그 강의를 열심히 듣고 시 공부하며 시를 열심히 쓰기도 한다. 영화 <시> 작품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함축적(含蓄的)으로 잘 보여준다. 이혼 가정, 노년의 성(性), 치매(癡呆), 청소년의 성폭행, 컴퓨터 게임중독 등 인간 내면의 예술적 본능까지 다루고 있다.
윤정희가 연기한 할머니역 미자는 죽은 여중생을 위한 헌시(獻詩)를 온갖 정성과 영혼을 다해 쓴다.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손자를 대신해 시(詩)를 바침으로써 용서를 빈 것이다. 아름다움을 꿈꾸는 도덕적 양심을 가진 여자가 바로 미자였다. 윤정희의 아름답고 우아한 삶의 이미지와 고스란히 닮아있는 듯한 영화 작품이다.
* 영화 <시> 감상 https://youtu.be/cHRKxgZNggs
장례는 30일 파리에서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른다 한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영화 ‘시’처럼 아련하게 그리고 안타깝게 별세한 고인(故人)의 명복을 빌고 빈다
첫댓글 윤정희는 신성일과 짝으로 영화에
잘 나왔지요. 그래서 신성일이 너무
너무 부러웠답니다. 달력에 사진이라도
나오면 한참을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했었지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버들님 역시 나처럼 가슴앓이를 하셨군.
아마 그 당시 모든 남자들이
그녀 윤정희를 연인처럼 좋아했나니~~
아하 그 때 그랬구만요 얼마나 설렜을까 생각하니 ..
보고파라 보고파~
가고파라 가고파~
두근두근 가슴 설레는
그때 그 시절로~♪♬
남정님 문희 윤정희 정말 그시절 최고의
여배우였지요,
너무나 일찍 떠나셨습니다 윤정희씨 사모했던
만큼 고인의 명복을 빌고 빌어봅니다
"미인박명"인가 봅니다. ☆
I'm touched!
but it's make up story.
슬프네요.
역사를 만들뻔 했는데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