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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현실을 이기는 주제어, 존중과 공동체의식
발행일2023.09.20필자김민소속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
|| 암울한 현실 : 위기의 오늘, 사라지는 미래
청소년을 일러 미래라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 그리고 현실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둡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둠의 첫 꼭지엔 청소년의 자살통계가 자리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 청소년(10-24세) 사망원인 1위는 단연 ‘고의적 자해’, 곧 자살이다. 여성가족부(2023)에 따르면 연 985명(남 538명, 여 447명)의 아이들이 자살을 통해 삶을 마감한다. 하루에 2.7명의 아까운 목숨이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사라진다. 통계상 자살이 청소년 사망원인 1위로 잡힌 것은 2007년부터이다. 이후 내내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다. 사망원인 2위인 질병(607명)이나 운수사고(197명)와 비교하면 한 해 동안 자살하는 아동과 청소년의 인구가 너무 많다.
이런 경향은 학령기인 아동과 청소년은 물론이고, 청년 연령에서도 확산·증가추세다. 통계청(2022)의 자료를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회원국 간 연령표준화 자살률(OECD 표준인구 10만 명 당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1)에서 한국은 23.6명을 기록해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이는 OECD 평균 11.1명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연령표준화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자살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제외하면 해당 통계에서 20명이 넘는 나라는 리투아니아(20.3명, 2020년 기준)가 유일하다. 특히 전년 대비 증가율을 보인 연령대는 10대(10.1%)와 20대(8.5%)였다. 청소년과 청년층의 자살률만 증가추세였고 그 외의 연령대는 감소추세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아동과 청소년이 행복하지 않다는 말은 너무나 식상할 정도다. 올해도 역시 우리나라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질’과 ‘만족도’는 OECD 주요국(30개국) 중 27위를, OECD 평균 7.6에 비해 6.6으로 나타나 최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통계청, 2023a). 올해 초 실시된 초록우산어린이재단(2023)의 조사에서도 응답한 아동의 86.9%가 본인의 행복지수를 ‘하’라고 응답했다. 여성가족부(2023)가 발표한 청소년의 주관적 건강상태2)는 2015년(47.9%) 대비 2020년 48.5%로 소폭 올랐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2022년 기준 프랑스(92.9%), 독일(90.5%), 스웨덴(86.7%)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작다. 스스로를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 중 절반이 넘고, 이런 아이들의 응답 비율이 프랑스나 독일의 절반에 간신히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2023b)이 올해 2월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3)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는 OECD 평균(1.59명, 2020년 기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OECD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0 미만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나 사회가 현재의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0.78명이란 수치는, 이 합계출산율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나라는 사라진다는 얘기다. 실제로 인구학의 권위자인 데이비드 콜먼(영국 옥스퍼드대 인구학과 명예교수)은 2006년 유엔인구포럼에서 심각한 저출산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인구소멸로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올해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2023)이 주최한 심포지엄에 참여해 지금의 초저출산율이 유지된다면 한국은 2750년경 소멸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 그래도 희망은 있다
자못 마음이 불편하다. 내내 어두운 현실에, 미래는 아예 사라진다니 누구라도 맘 편하지는 못할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직면한 문제이기에 현실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
세계적으로 청소년정책이 국가정책의 한 분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유엔(UN)이 1985년을 세계 청소년의 해로 정하고 각 회원국에 정부 차원의 청소년정책을 권고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1990년대부터 청소년 관련 법령을 제정하고, 주관부처를 두었으며,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고등교육기관에 청소년관련학과를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세계 198개 국가들 중 우리나라를 포함해 국가정책으로 청소년정책을 추진 중인 곳은 122개 국가에 이른다(Youthpolicy, 2023).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개입과 지원이 가능한 토대는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부처 간의 연계와 협력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교육부를 비롯해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성장세대를 대상으로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청년까지 포함하면 부처는 더 나뉘게 된다. 이렇게 성장세대를 연령으로 나눠 부처별로 분담하는 국가는 그리 흔치 않다. 반면 연계와 협력은 낮은 수준이다. 이를 총괄하는 조정기능을 가진 부처나 위원회는 있지만 실질적 유효성은 높지 않다. 성장세대를 위한 정책의 종합적인 조정기능을 개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하지만,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73.4%)는 결코 낮지 않다(여성가족부, 통계청, 2021).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소 낮아졌지만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교사와의 관계에서도 70%가 넘는 아이들이 만족한다는 응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자료(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에 따르면 학생들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더욱 높아 88.3%였고 초등학생(90.9%)이 중고등학생(86.8%)에 비해 만족도가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도 아이들의 자살원인은 학업 스트레스와 진학실패가 많다. 학교생활은 재밌는데, 진로와 관련한 자살위기는 매우 높다. 아이러니다.
비영리단체인 Demokratie & Dialog e.V가 2010년에 설립해 유엔 및 유엔 산하 전문기구 대상 청소년정책 개발을 옹호하고 집행결과를 분석하는 청소년정책 글로벌 싱크탱크인 청소년정책연구소(Youth policy LAB)란 곳이 있다. 여기서 국제청소년재단(International Youth Foundation)과 힐튼(Hilton)이 공동으로 연구해 발표한 청소년 웰빙지수(Youth Wellbeing Index, YWI)가 있는데, 선정된 30개국 중 우리나라는 2017년 상위 8개국의 하나로 자리를 점하고 있다.
<표 1> YWI 상위 8개 국가
순위 2014 2017 1 호주 스웨덴 2 스웨덴 호주 3 한국 영국 4 영국 독일 5 독일 미국 6 미국 스페인 7 일본 일본 8 스페인 한국
2014년과 2017년 상위국들을 살펴보면 호주는 순위가 한 단계 내려갔고 스웨덴은 1위를 차지했으며, 한국은 3위에서 8위로 가장 많이 떨어졌고, 스페인은 8위에서 6위로 향상되었다. 상위국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소득수준이 높은 국가들로, 이는 청소년복지 향상에 대한 투입요소가 자원집약적(교육, 의료, 기술)이란 점에서 1인당 GDP와 청소년복지 수준 간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 우리나라 청소년의 삶의 질이 2014년에 비해 떨어진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교육통계지표(학교등록 및 상급학교 진학 등)와 교육환경·사회여건, 디지털 리터러시는 매우 높은 편이나 학업 스트레스, 사회적 존중, 양성평등, 사회참여와 자원봉사 등의 지표 점수는 상대적으로 낮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는 청소년의 부적 사회현상에 대해 근원적 접근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처벌 위주의 접근 방식을 택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올해 들어 우리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 신생아 및 영아 유기 등 출생미등록 아동, 아동학대, 학교폭력 등의 사건·사고에 대한 문제해결 접근방식은 출생신고제 강화, 영유아(사망) 유기부모에 대한 처벌, 학교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등 처벌 위주의 접근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회적 편견, 청소년의 주도적 선택과 참여기회의 부재, 적절하고 적극적인 지원책 홍보와 교육의 미비, 예방 교육의 실효성 부족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긍정적이고 순기능적인 해결방안을 최대한 활용하되, 부적 처벌행위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교육적 입장이다.
앞서 청소년자살을 언급했다. 청소년의 삶의 질과 만족도도 언급했고, 초저출산 현상에 따른 인구소멸의 위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어쩌면 이는 학교 교육과정이나 상급학교 진학에서 성공보다는 실패의 경험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그만큼 배려가 부족한 사회란 증거가 아닐까? 결혼을 앞둔 이들에게는 양육과 생계 모두를 일찌감치 포기하게 하는, 그래서 어느 하나만 선택하게 하는 사회가 아닐까?
||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며: 존중과 공동체의식
여기 세 명의 아이가 서 있다. 두 명은 운동화를, 한 아이는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있다. 100m 달리기다. “차렷, 땅!” 출발신호가 울리고 아이들이 뜀박질을 한다. 물론 고무신을 신은 아이가 불리할 테다. 하지만 100m다. 잘 뛰는 아이가 잘 뛸 거란 예상을, 기대를 할 수 있다. 그런데 100m가 아니고 42.195km를 뛰는 마라톤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도중에 작은 개천도 지나야 하고, 조그만 언덕도, 자갈밭도 넘어야 한다. 확실히 찢어진 고무신을 신은 아이가 불리하다. 교육은 아이가 무슨 신발을 신었든 간에 잘 뛸 수 있도록 조력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자. A는 뛰지는 못하지만, 노래를 잘한다. 자신의 감정을 담아 남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잘 부르고 또 잘 짓는다. B는 뛰지는 못하지만,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남들과 화합의 몸짓을 만드는 재주가 있다. C는 뛰지는 못하지만,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통해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 다양한 ‘신의 수’를 제공하며 인기가 높다. 뛰는 걸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이들 세 명은 언제나 소수자다.
우리 사회는 그 아이가 무슨 신발을 신었든 간에 자신의 능력껏 잘 뛰도록 도와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적이 있다. 그것이 교육불평등이든 교육복지이든 간에 그런 믿음으로 교육현장에 섰었다. 나아가 지금은 뛰는 걸로만 아이들을 평가하기보다는 그 아이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역량을 가치 있게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런 외침을 좀 더 크게 그리고 강하게 외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경로가 있음을 알려주고 각자의 삶에서 꿈과 희망을 세우고 이를 하나씩 실현하며 삶의 만족을 느끼도록 지지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존중과 공동체의식은 교육현장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존중이란 인간 그 자체로 존귀한 것이라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는 단순히 이념이나 가치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실천해야 하는 성격을 갖는 것으로 행위자의 의도와 행동에 의해 그 수준이 드러나는 특징을 갖는다. 존중은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정서, 행동을 보여주며 호의적인 관계를 형성하려는 자세를 의미한다. 특히 존중은 자기주도성의 핵심이다. 봉사정신과 사회참여의 근간이다.
공동체는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와 함께 공동체 발전에 참여하는 구성원을 기대한다. 사리사욕이 아닌 공존공생을 추구한다. 남을 밟고 일어서는 개인의 성취가 아닌, 다 함께 이루고자 하는 공동의 성취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공동체의식은 구성원으로서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수용·실천하는 능력, 지역·국가·세계 이슈에 관심을 갖고 문제해결에 적극 참여하려는 능력,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갖는 사람들을 배려하며 이들과 협업·상호작용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실 이는 교육부가 일찍이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강조했던 역량이다(교육부, 2021).
존중과 공동체의식, 암울한 현실을 타개하고 미래를 예비하는 주제어다. 아이에게 스스로를 그리고 타인을 존중하도록 하고, 나아가 나와 너, 우리라는 공동체의식을 함양할 수 있도록 우리 교육현장부터 실천을 하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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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령표준화 자살률은 국가 간 비교를 위해 OECD 기준인구로 연령구조 차이를 제거한 표준화 사망률을 뜻함
2) 본인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응답하는 비율
3) 합계출산율은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를 뜻함.
<참고문헌>
교육부(2021).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시안). 교육부.
여성가족부(2023). 2022 청소년백서.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 통계청(2021). 2021 청소년통계. 통계청
초록우산어린이재단(2023). 2023 아동행복지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통계청(2022). 2021 사망원인통계. 통계청.
통계청(2023a). 한국인의 사회동향 2022. 통계청.
통계청(2023b). 2022년 인구동향조사 출생·사망통계(잠정). 통계청.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21). 한눈에 보는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의 삶의 질 2020. 세종: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2023). 저출산 위기와 한국의 미래: 국제적 시각에서 살펴보는 현실과 전망. David Coleman 초청 학술행사: 국가소멸을 부르는 한국의 초저출산, 세계적 석학에게 묻는다(2023.5.17.).
Youthpolicy.org(2014). The state of youth policy in 2014. https://www.youthpolicy.org/library/wp-content/uploads/library/2014_Special_Edition_State_Youth_Policy_ENG.pdf(2023.8.20.인출)
Youthpolicy.org(2018.05.01.). The Youth Wellbeing Index Returns, with a Range of Methodological changes and Cautious Optimism. https://www.youthpolicy.org/blog/youth-policy-reviews-evaluations/the-return-of-the-ywi/(2023.8.20. 인출)
원고는 집필자의 전문적 시각으로 작성된 것으로
교육정책네트워크 및 한국교육개발원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민 교수는 현재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교육불평등을 화두로 삼아 국내에선 ‘교육복지’에, 해외에선 ‘국제개발교육협력’에 진력하고 있다. 순천향대 청소년연구센터 소장과 한국청소년복지학회장을 역임했다. 지금은 순천향대 창의라이프대학 학장이며, 아동권리보장원과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비상임이사, 유니세프세계위원회 Technical Advisory Group(TAG)의 member, 국무총리 소속 아동정책조정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