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시리도록 푸른 남도의 바다, 두루마리구름 그물로 걸린 백사장이다 팔베개 빼낸 어린 누이 아주 잠깐 일어서서 게걸음 따라 뒤뚱뒤뚱 걷다가 가마니에 덮인 시체 만나던 그 찰나이다 발가락 위로 자르르 날개치던 파리떼 덫에 묶이던 누이의 눈빛 가려 음험한 배경 차단하던
오누이의 그 밤이 깊어가고 있다 웅크렸던 반딧불이 수백 마리 밤하늘로 빛깔 뿜으니 아직은 하염없이 행복하다 전장터 나간 아비의 답신 오지 않았으니 기다리는 만큼만 희망이다 딱 한 마리 남은 반딧불이 남매의 보금자리 동굴 벽에 붙어 반짝반짝 숨을 쉰다 그렇다 반딧불이는 ‘창문의 눈(目)’이다
공습경보, 그 굉음의 사이렌 울리는 순간 피난민의 역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야 한다 빈집털이 찬장의 음식 털어 소년범 배 채우더니 옷 보따리 지고 치달리는 중이다 아, 살았다 쏟아지는 포탄이나 양심 따위야 나는 모른다 세츠코를 위하여, 내 누이의 슬픈 공복을 채우기 위하여
무엇이 가장 먹고 싶으니?
마지막 사탕 한 알을 다 사라지면 물에 흔들고 또 부셔 마시던 온갖 단맛, 포성의 안마당에서 파낸 비상식량 이모네 집에 건네기 전에 살짝 씹어본 매실장아찌 신맛이 그립다 그런데 이상하다 싸대기 맞으면서 훔친 토마토까지 먹고 싶은 게 왜 슬프지 않을까
유령 열차 갈색의 화면으로 달리고 달리다 보면 만나게 될 거야 천황이라는 그 침략의 추종자들 없는 나라, 가랑이 사이로 ‘리틀 보이’하나 슬쩍 내리자마자 수백만 생명붙이 아비규환으로 쓰러지지 않는 나라
반딧불이 우박으로 쏟아지는 천국의 나라, 분수가 된 쿨피스 단맛으로 솟구치는 나라, 제발 그 나라에서 박하사탕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깔깔대며 꺼내 먹자구나
너를 껴안으면 안개꽃 내음, 네 어깨에 손 두르면 가문비나무 그늘로 편안하다 노고지리 우짖는 저 자유의 하늘에서 누이의 드롭스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다디달게 기다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