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고 삶 쓰기 (3) 14
우리 동네 구자명씨(고정희)
맞벌이부부 우리 동네 구자명씨
일곱 달 된 아기엄마 구자명씨는
출근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아침 햇살 속에서 졸기 시작한다
경기도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경적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옆으로 앞으로 꾸벅꾸벅 존다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꼭
부처님처럼 졸고 있는 구자명씨,
그래 저 십 분은
간밤 아기에게 젖물린 시간이고
또 저 십분은
간밤 시어머니 약시중 든 시간이고
그래그래 저 십 분은
새벽녘 만취해서 돌아온 남편을 위하여 버린 시간일 거야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잠속에 흔들리는 팬지꽃 아픔
식탁에 놓인 안개꽃 멍에
그러나 부엌문이 여닫기는 지붕마다
여자가 받쳐든 한 식구의 안식이
아무도 모르게
죽음의 잠을 향하여
거부의 화살을 당기고 있다
14. 우리 동네 구자명씨(고정희)
핵심 정리
성격 : 서정적, 현실 비판적
표현
- 여성의 힘든 삶에 연민을 담은 목소리. 영화의 오버랩 기법처럼 시상을 전개함.
- 출근버스 속에서 여성이 처한 삶의 고단함을 상상적으로 유추함.
제재 :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과 희생
주제 : 여성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고단한 삶에 대한 연민
특징
① 시상이 전환되면서 의미가 확대됨
② 구체적 인물을 설정하여 보편적 현실을 드러냄
시상의 흐름(짜임)
1연 : 출근 버스에서 졸고 있는 구자명 씨
2연 : 구자명 씨의 고단한 일상에 대한 추측
3연 :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
이해와 감상1
‘여성사 연구·5’라는 부제(副題)로 미루어 이 작품은 독자의 관심을 여성 문제로 유도하여 여성을 억압하는 삶의 조건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밝히려는 문학적 시도로 보인다. 시적 자아는 ‘출근 버스에 오르기가 무섭게’ ‘졸기 시작’하는 구자명 씨를 관찰하는 사람이다. 구자명씨가 조는 이유는 ‘아기’ 양육에, ‘시어머니’ 봉양에, ‘남편’까지 돌보느라 수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3연에서 구자명 씨는 ‘한 식구의 안식’을 ‘받쳐 든’ ‘여자’로 바뀐다.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구자명 씨의 삶이 한 개인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를 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문제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기혼 여성에게 가사와 경제 활동을 모두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이해와 감상2
이 작품은 가사 노동과 직장 생활이라는 두 가지 일에 시달리는 어느 여성의 고된 하루 일과를 그린 시이다. 아침 일찍 먼 곳으로 출근하면서 출근 버스 안에서 졸고 있는 모습, 퇴근 후에도 쉴새 없이 일하는 '구자명 씨'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집안 일과 직장 일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 여성의 모습이다. 그러한 여성을 고통을 '잠'이라는 소재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남성 중심의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이중으로 고통 받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자명 씨는 7개월 된 아이가 있는 맞벌이 주부로 그녀는 날마다 안산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는 직장 여성이면서 가정의 일도 돌보느라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래서 그녀는 차창 밖으론 사계절이 흐르고 진달래 피고 밤꽃 흐드러져도 버스 안에서 졸고만 있다. 졸고 있는 동안의 십분, 십분이 '간밤에 시어머니 약시중'을 들거나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남편을 위해 버린 시간이다. 때문에 이 시에서 나오는 '아침'은 구자명 씨가 피곤에 지쳐 졸고 있는 시간으로서 부정적인 의미이다. 또한 여기서 남성은 무책임하고 비생산적인 존재, 방해하고 귀찮으며 돌봐주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으며, '고단한 하루의 시작과 끝'이란 시어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쉴 새 없이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한 가정을 책임지고 있다. '안개꽃 멍에'란 작지만 무수한 꽃을 피우는 안개꽃과 멍에를 동일시하며 구자명 씨의 고통 상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