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의 어머니다.’ 저자의 서문에 기록된 구절이다. 신화를 전공하는 국문학자인 저자는 이미 <우리 신화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오래 전에 출간한 바 있다. 우리 신화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하고, 신화에 담긴 화소들이 지닌 비유와 상징을 우리네 삶과 연결시켜 풀어내고 있는 내용이다. 이 책 역시 전작의 연속선 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신화의 언어>라는 제목이 그렇고, 다루고 있는 내용도 우리의 신화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신화에 대한 상징과 의미를 찾는 이야기로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신화들이 적지 않았다.
이 책에 수록된 원고들은 이미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다듬어서 엮어낸 것이라고 한다. ‘통념의 전복, 신화에서 길어 올린 서른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모두 30개의 글을 크게 4개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배치되어 있다. 첫 번째 항목에는 ‘무의식과 역설’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8개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세상과 만물이 어떻게 처음 생겨났는가를 다루는 창세신화를 중심으로 소개되어 있다. 아시아 각국의 신화들과 비교를 하면서, 천지와 자연물의 창조 과정은 물론 탄생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이승을 관장하는 신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리하였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오히려 부조리함으로 가득차게 되었기에 그것을 역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연과 타자’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모두 7개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외부에서 온 ‘외래자 신화’가 지닌 의미를 부족의 이동과 문화 교섭이라는 측면에서 찾고 있다. 또한 좀더 발달된 새로운 문물로 무장한 외래자들이 존재들, 그들이 기존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연재해를 해결하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이 존재하는 원인, 무더위와 지진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설명, 그리고 서로 대립하는 부족들 사이의 갈등과 긴장의 상황을 신화의 화소들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즉 두려움의 대상인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또한 외부에서 도래한 존재 즉 타자들에 대한 신화적 이해인 셈이다. 특히 자연 현상과 관련된 신화의 모티프들을 통해 상상력이 넘치는 신화의 세계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항목은 ‘문화와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각 집단에 존재하는 문화가 신화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다. 어떤 화소는 부족의 토템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며, 각 집단이 신성시하는 문물의 유래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7개의 이야기들 가운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함흥 지역에서 전승되는 ‘바리데기’ 신화였는데, 그 내용이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와 전개를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승에서 구해온 약물로 아버지를 살리고 신으로 좌정하는 통상적인 '바리데기 신화'와는 달리, 저자는 함흥 전승본을 저주와 비극적인 결말로 귀결되는 내용을 저자는 ‘죽음의 향연’이라고 풀어내고 있다. 이밖에도 청보리술이나 문신 등에 나타나는 여러 집단의 문화적 의미를 짚어내고 있는 내용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이념과 권력’이라는 제목의 마지막 항목에서는 주로 각 집단의 건국신화를 중심으로, 모두 8개의 이야기 형식으로 그것이 후대에 어떻게 전승되고 또 활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신화의 내용을 후대의 권력자들이 활용하여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중국의 꿈’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밖에도 일본의 ‘천황’에 대한 이미지 만들기나 북한의 신화들이 세습정치에 활용되는 것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결국 신화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여 활용하는가의 문제라 할 것이다.
신화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원래 동일한 이야기일지라도 후대에 전승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것은 전승자들의 구연 능력이나 기억의 왜곡, 혹은 자신의 문화에 맞는 의도적인 개작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다양한 신화를 읽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여러 신화들을 비교하는 안목이 갖춰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에서 아시아 각국의 신화들을 소개하고, 그것들을 상호 비교하면서 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실제 이 책에서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신화가 소개되고 있지만, 나로서는 각각의 신화들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