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상대방의 마음을 울리는 편지를 쓸 수 있게 됩니다'라는 것이 이 회사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입회자는 입회비와 월 회비를 내고, 한 달에 네 통의 편지를 '펜 소사이어티' 앞으로 쓴다. 그것에 대해 우리 '펜 마스터(지도교사)'가 첨삭을 하고 앞의 예와 같은 감상과 지도 편지를 쓰는 것이다.
여성 회원에게는 남성이, 남성 회원에게는 여성이 '펜 마스터'로 붙는다. 내가 맡은 회원은 연간 스물네 명으로, 연령층은 아래로는 열 네살부터 위로는 쉰세 살까지였고, 중심은 스물다섯 살부터 서른다섯 살까지의 여성이었다. 즉 대부분의 회원이 나보다 연상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 달가량,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회원들 대부분은 나보다 훨씬 더 글을 잘 썼으며, 훨씬 더 편지 쓰기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 말하자면 그때까지 제대로 된 편지는 거의 써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처음 1개월을 어찌어찌 보냈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나도 나의 문장력에 불만을 토로하는 회원은 누구 한 사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나에 대한 평판이 올라가고 있다고 회사 사람이 내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3개월 후에는 나의 '지도'에 의해 회원들의 문장력도 향상되고 있는 듯한 생각조차 들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녀들은 마음속으로부터 나를 교사로서 신뢰하고 있는 듯했다.
그 당시 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들은 모두 쓸쓸했던 것이 틀림없다. 단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써 보내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틀림없이 서로가 서로의 소통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한 상태로 스물한 살의 겨울부터 스물두 살의 봄까지를, 절름발이 물개처럼 편지의 하렘 속에서 지냈다. 회원들은 실로 갖가지 편지를 내 앞으로 보냈다. 지루한 편지가 있었는가 하면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편지가 있었고, 슬픈 편지도 있었다. 그 1년 동안 나는 뭐랄까 2,3년쯤은 제대로 나이를 먹은 듯한 느낌이 든다.
사정이 있어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로 했을 때 내가 지도하고 있던 회원들은 모두 아쉬워했다. 나도 어떤 의미에서는 유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그토록 정직해질 수 있는 기회란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