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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기행
아! 민족이여 그리움이여
정문화
나는 땅 끝 해남에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땅의 시작이 어디인지 알고 싶고 가고 싶었다. 옛 선인들이 풍류하며 이 골짝 저 능선을 쉬엄쉬엄 거닐며 지나쳤던, 추억으로 감싸 안았던 아기자기 펼쳐진 우리의 금수강산을 번개처럼 지나쳐 스쳐갔지만 땅끝에서 속초까지 가는 산야는 그래도 참 아름다웠다. 더 이상 갈 수 없어 도착한 곳이 속초항, 내일 소련 지르노비항으로 갈 동춘호를 설레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허름한 숙소에 하룻밤을 묵었다.
비 온 뒤 속초항 아침, 영랑호에서 바라본 외설악 한계령이 산수화처럼 보이고 울산바위의 기암괴석은 깎아 만든 수석 같았고 영랑호 주위 숲속 통나무집은 달력에서 본 스위스 풍경처럼 아름답고 한가하였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찾아본 곳이 해변을 철책으로 둘러친 곳에 월송정이라, 지난 시간 어디쯤에 욕심 없이 대통령을 지냈던 최규하님의 현판을 보면서 가까운 옛날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고 세월은 변하여 서슬 퍼런 해변의 군 초소도 이젠 빛바랜 군복처럼 보이는 것이 아마 통일이 가까워오고 속초항 아닌 육로로 백두산을 갈 날이 오고 있는 것인가도 생각하였다.
오후 2시, 거선(巨船)의 기관소리가 커지면서 속초항은 점점 멀어져가고, 동쪽 큰 바다 속으로 내가 탄 거선은 물에 빠진 개미처럼 허우적거리며 동으로 향하더니 이젠 북으로 가고 있었다. 아마도 북녘 해수역을 침범할 수 없어서 공해 상으로 운행을 위하여 일 것이다.
8월 말, 여름 동해바다는 선풍기 없이도 견딜 만 하게 시원했다. 검푸른 아니 검은 색 바다는 무서움 기(氣)는 추상된 깊이와 수압으로 나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었다. 수심이 2000m이상 이면 수압이 200기압 넘고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데, 그 깊이이면 나의 존재는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 거선 배가 정말 개미보다 더 작게 생각되었고 나 자신 개미에 붙어 운행한다 하니 나의 초라한 존재를 아무 말 없이 있는 그대로, 검은 바다 동해는 단지 바다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한참을 북으로 오르면서 점점 8월의 태양은 냉한 기운에 위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서서히 서쪽으로부터 석양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멀리는 아마도 북녘 원산은 벌써 지났을 것 같고 함흥정도 되려는지 여름 육지의 열기와 동해의 냉기가 합쳐서 구름이 많이 피어있었고. 그 구름 위에서 태양이 노을을 황홀한 색으로 붉게 물들이니 동해의 검은 바다는 이젠 검은 색이 아니고 황금물결이 넘실대고 그 지평선이 수평으로 거울을 만드니 다시 바다에 또 하나의 태양이 있었다. 처음에는 원래 태양과 수면에 비추인 태양이 멀리 사이를 두더니 배가 북으로 오를수록 진태양과 물에 비추인 가태양의 간격은 좁아지고 황금 노을 색은 더 진하여 지고 옥색 파란 하늘과 갖가지의 붉은 계열의 색의 연출은 백두산 여행을 이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 동해에서의 석양도 약 30분 정도 연출하더니 이젠 배 주위 모든 환경이 어두어 지고 보이는 것은 하늘에 별, 배 잔등 전구만 빛을 발하고 숙소 안에 몇 명이서 고도리도 친 것 같고 노래방에 노랫소리도 나는 것 같더니 깊은 밤과 함께 거선의 기관소리만이 아주 규칙적으로 나고 동해의 밤은 깊어간다.
선실 내에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을 깨어 보니 옆에 잠잤던 우리의 일행 초등학생 수진이는 배꼽을 내놓고 곤한 잠을 자고 있는데 어느새 지구는 한바퀴 돌아 어제 저녁 노을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그 자리에 이젠 아침을 내 놓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왼쪽 먼발치에 보이는 육지가 있어 기관실에 가서 혹시 북녘 우리의 땅이 아니냐고 새끼 선장에게 물어보니 러시아 땅이란다. 러시아 일제 강점기에 우리 선조님 들이 피난하여 손바닥이 갈라지게 일구었던 땅이 있었던 곳 또 이곳에서 어디론가 집단 이주를 시켰다는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땅을 점해보고자 들어와서 둘로 나누어지게 동란(動亂)을 일으켜 고착화 만들었던 곳 한참을 철의 장막이라 하여 우리는 들어갈 수 없었던 이곳 러시아, 지르노비항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버스로 지나면서 부러운 것은 바다처럼 넓은 땅 사람이 거의 없는 이 땅이 무엇이 부족하여 우리의 조그마한 북녘을 욕심내었을까? 그곳에도 꽃은 피고 벌을 치는 농부의 손길이 바쁘게 벌통을 손질하고 있었으며 개발하지 않아도 골프장 수열 개는 만들 정도의 거대한 땅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러시아였다.
중국 훈춘으로 접어들면서 붉은 글씨를 유난히 좋아하는 중국, 이곳이 우리의 땅이구나 하고 생각되는 것은 거기에 사는 사람이 모두 우리말을 쓰고 있었다. 내가 나의 미래를 모르듯이 우리의 선조님들이 지금 우리가 이렇게 넓은 국토를 갈망하는 것을 알았더라면 우리 조상님네들은 이 땅을 버리지 않았을 것인데 먼 옛날에 중국에서 버려진 변방인 이 땅, 우리가 차지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을 것인데 광개토왕의 비석도 진흥왕 경계비도 엄연히 존재하는데 우리가 차지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못났기 때문일 것이다.
훈춘을 지나 이젠 두만강을 지나간다. 바로 강 건너가 북녘 땅이다. 이렇게 조용할 수가 없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움직임이 없다. 개간한 산에는 옥수수가 산 능선을 만들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것이 북녘이었다. “21세기의 위대한 태양 김정일”이라면 태양이 되어 따뜻한 햇볕을 북녘에 비추어 활발한 우리 형제가 되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두만강을 지나간다. 도문! 북녘으로 통하는 관문 한국 사람만은 통과하지 못하는 곳.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이해가 되지 않으면 아무 말 하지 말고 눈을 감아야 되는가? 너무 이해가 되지 않으면 말 않고 눈을 감고 세월을 기다리면 언젠가는 자기도 이해하겠지.
도문 지나 용정! 소설 토지의 배경지 “운수좋은 날”의 우리 할머니의 갈증 등... 선조님들이 이국의 서러움을 가장 많이 느끼고 조국을 그리워하였던 곳. 그리고 근대 소설의 배경지로 지금 생각나는 ‘감자’ ‘토지의 중반부’ 등등 선조님의 애틋한 나라에 대한 짝사랑은 어디로 가 버리고 새로 피어나는 나는 봄꽃인양 지난겨울을 잊어버린 듯 나 역시 봄꽃인가 지난겨울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이기주의인가도 생각했다.
밤이다. 백두산 호텔에 도착했다. 이곳 깊은 밤 숲 속은 무서웠다. 너무나 주변이 어둡고 밖에 나갈 수가 없다. 약 14시간을 버스로 이동해 왔으니 피곤도 하고 나는 좀처럼 무서움을 타지 않는데 이곳은 스산하고 무서웠다. 그런데 방에 따뜻한 물도 나오지 않고 물은 차가웠다. 대충 싯고 그냥 잤다.
백두산이란다. 멀리 보이는 큰 흙덩이가 2000m 올라와있으니 하기야 개마고원이 그 높이이니 여기서 백두산은 700m 과히 높지는 않게 느끼지만 뒤를 보니 수해(樹海)! 내 발치 아래 나무의 물결이 능선 따라 출렁거릴 때 백두산 천지는 에머랄드 빛을 하고 있더이다, 천지에 백두산 또 하늘이 들어있고 천지 위에 백두산 그리고 하늘. 이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땅의 시작이었구나.
갓난 아기의 이마가 태초에는 벌거숭이 듯이 이곳도 분명 태초인 듯 벌거숭이였다. 천지가 창조되는 이 느낌을 사진에 담아가져간들 무엇을 담으려고! 아쉬워 바라 본 곳이 우리의 북녘이었다.
높은 곳에 물이 스스로 오르는 것이 창조이기 때문에 천지이고 천지에서 흐르는 물이 장백폭포란다. 이 물의 시작은 압록강이 아니고 송화강 발원이라니 우리의 땅은 분명 장백산맥을 포함한 만주 일원이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해란강 일송정 뒤로하고 윤동주시인 독립투사의 청산리 전투지를 지나 다시 용정으로 그리고 연길로 아쉬움 뒤로 하고 다시 도착한 곳이 속초항. 신혼 초 먼 길 갔다 돌아온 신랑이 신부 보듯 아름답고 그리운 우리의 강산이여.
2003. 8월에
정문화 씀
첫댓글 선생님의 섬세한 묘사와 감동이 여행을 가자고 설렘을 던져주는 듯합니다. 요즘 본 글들과 살짝 달라 보여서 읽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글쓴이를 확인하였는데 끄트머리 와서야 알았습니다. 오래 전 글이라 문체가 달라 보였다는 걸. 감동하며 잘 읽었습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글에 박수를 칩니다.
15년전의 느낌을 고스란히 올려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러시아를 통해 들여다본 백두산은 아픔과 감동이 컸으리라 여겨집니다.
지금은 채 두시간의 비행도 걸리지않는 연길로 간답니다.
100일후쯤에 있을 백두산천지 여행에 참고가 됐으며 더욱더 기대가됩니다.
글을 통해 갓 오십이었을 젊은 샘을 그려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그러게요. 백두산 기행을 꿈 꾸는 하하 님들에게 더 큰 기대, 용기에 감동을 얹어 줍니다.50대의 정문화 샘에게 아름다운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