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시
세 상에 반가운 일 사방에 널렸는데
인생에 고마운 일 천지에 숨었는데
받들고 믿어야 할 일 모르면서 살았넉
2024년 뙤약볕 그늘에서
정용국
눈물
동지 볕이 묻어나는 박오가리 속살에는
세상 근심 댓 말가웃 오종종 모여 산다
그 누가 돌보지 않아도 의젓하고 착하게
서둘러 지고 마는 겨울 해가 아쉬워도
발길이 끊어져서 마음이 허둥대도
비대면 불신의 시간도 다독여서 가야지
세모의 간절함이 상처로 뒹굴지만
그래도 너를 믿는
그래서 너를 참는
간절한 등불 하나씩 가슴속에 품고 산다
웃어라, 종
울어라 참지 말고 아직도 길은 멀다
상처를 짊어지고 천 리쯤 달려가서
묵은해 다 풀어내고 큰 소리로 울어라
누구의 가슴일까 두드려 속 시원한
길 없는 길을 갈 땐 귀도 활짝 열어놓고
너 하나 온 힘을 다해 사람 대신 울거라
울어서 풀어낼 일 어디 많이 있으랴
눈물도 웃음 되는 새 아침 위안처럼
미워도 활짝 웃거라 눈물 찔끔 흘려보자
외뿔
누구나 가슴 속에 뿔 하나 품고 살지
안차고 다라지게 참고 또 버티다가
절벽을 기어오르며 나를 향해 외친다
모두가 입으로는 발린 말 달고 살지
검은 속 갈피 아래 쓸개는 숨겨두고
뾰족한 외뿔의 고독 용을 한번 쓰는ㅇ게다
피하다 밀려나서 강으로 올라갔던
양쯔강 외뿔고래 바다 같던 그 힘줄
목숨을 내놓고 알았네 외고집의 흰 등뼈
자결
폭설의 무게였나 풍문에 놀라셨나
아름드리 소나무가 허리를 꺽으셨다
수백 년 지고 온 사초 한시름을 놓았다
무섭던 태풍에도 혹파리 난리에도
헛기침 한마디로 거뜬히 버텼는데
곧아서 무겁던 나날 곁가지가 겨웠나
도선사 공양간에 떠돌던 귀동냥을
산신각 바람결이 전해준 게 탈이었네
날마다 부끄럽다던 공양 서둘러 물리셨다
만세
두 팔을 위로 올리고
자, 만세! 해보세요
의사의 말씀대로
온 힘을 써보지만
탈이 난 오른쪽 어깨는
외마디로 악을 쓴다
그 잘난 직장에서
그나마 버티려고
청춘을 중뿔나게
남 오른팔 되려다가
만세를 누릴 시간이
비명으로 굳었다
시우
참았던 산의 열기 열불을 토해냈다
사람의 위무에도 말을 듣지 않으시고
악물고 소신공양한 해진 몸을 뉘었다
변종이 판을 치던 환난의 정점에서
마스크를 뚫고 나온 살벌한 공약들이
태백의 심장을 밟고 붉은 깃발 흔들었다
등뼈가 녹아내린 태고의 시간들을
뿔 돋친 후보들이 물고 뜯은 혈흔들을
봄비가 온몸을 던져 장엄하게 품었다
거인을 꿈꾸다
울분을 삭히기엔 겨울이 제격이지
단숨에 뛰어내린 기백의 품격보다
심호흡 까치발 아래 깊어가는 결기여
극한의 결이 모인 숙연한 결빙의 시간
흩어진 빈 화두도 발심은 곧추세워
무뎌진 백서의 갈피에 붉은 줄을 긋는 밤
절기가 돌아앉아 등뼈가 녹는 날까지
겹겹이 언 빙폭에 또 한 겹 꿈을 덧대
냉혹한 거인을 꿈꾸는 모진 밤이 푸르다
카페 게시글
회원신간
정용국 시조집《그래도 너를 믿는 그래서 너를 참는》책만드는 집 2024.08.20
김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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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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