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칼럼은 한국교육개발원의 ‘학생의 심리·정서 현황 분석 및 교육안전망 구축 방안’(안해정 외, 2022)의 내용을 바탕으로 함.
||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는 개인의 문제인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학생 성장과 회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견인해 왔던 기존의 개인적, 사회적 장치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따라 학생의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특히, 타인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의 제약은 학생들의 인지역량뿐만이 아니라 사회성 및 심리정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정서행동 문제를 보이는 아이들이 증가함에 따라 학부모도 교사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우려를 표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때에 교육부가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특히, 개인의 문제로 취급되어 왔던 학생의 사회·정서 문제에 대응하고, 학생의 사회·정서 역량 강화를 위해 ‘(가칭)학생 사회·정서 지원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학생의 사회·정서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 차원이 아닌 우리 사회가 다 함께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묻지마 폭행’의 가해자들이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제한된 채 고립된 생활을 해왔으며, 오랜 시간 심리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개인의 심리정서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개입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심리정서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심리정서적 문제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의 심리정서 상태(기쁨, 분노, 불안, 우울 등)는 매우 주관적이며 개인적이지만, 심리정서 상태에 영향을 주는 요인과 이의 결과는 지극히 사회적인 성격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또래와의 갈등(사회적 관계 요인)으로 인해 고립감이나 불안감(개인적 심리정서 상태)을 느낄 수 있으며, 개인이 경험하는 이러한 부정적인 심리정서 상태는 공격적인 행동이나 태도로 표출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고, 나아가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사회적 영향)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를 학생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영향 요인, 심리정서 상태, 영향력 등을 모두 고려하여 개인-가정-학교-사회를 연계하는 통합적 관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우리 교육은 어떻게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지원하고 있는가?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학생 성장에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교육은 학생의 인지적 성장에 더 많이 집중해 왔으며,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활동이 시행되고 있으나 여전히 우리의 교과 교육과정과 이에 대한 평가는 인지적 영역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제시하고 있는 6개의 핵심역량(자기관리, 지식정보처리, 창의적 사고, 심미적 감성, 협력적 소통, 공동체 역량) 중 ‘자기관리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협력적 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이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과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교육은 어떻게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지원하고 있는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자면 우리 교육이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잘 지원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생의 심리정서 지원과 관련되어 있는 교육활동의 대부분은 학생의 심리정서에 대해 ‘성장’의 관점이 아닌 문제 예방과 처치에 집중하는 ‘문제’ 중심적 관점에서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가 심각한 이 시기에 문제 예방과 처치에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교육은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2022년에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학생의 심리정서 현황 분석 및 교육안전망 구축 방안」 연구에서는 전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직원 2,869명을 대상으로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와 지원 현황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교직원들은 코로나19 이후 다양한 심리정서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이 크게 증가하였으며, 특히 ‘충동·감정 조절이 안 되는 학생들’과 ‘무기력한 학생들’을 교육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학생의 심리정서 문제에 대한 지도 효능감은 평균 3.79점(5점 만점)으로 나타났다. 경력 3년 미만의 교직원들의 효능감(3.59점)이 가장 낮게 나타났으며, 직종별로는 전문상담교사(4.10점)나 교육복지사(3.88점)에 비해 담임교사(3.71점)의 지도 효능감이 더 낮았다.
대부분의 교직원들은 학생의 심리정서 지원을 위한 정보를 자신과 동일한 직종에 있는 동료 교직원에게 얻고 있었다. 전문상담교사나 교육복지사의 경우 동료 교직원 이외에도 연수나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었지만, 교사의 경우에는 학생의 심리정서에 대한 지도 효능감이 상대적으로 낮음에도 전문기관을 통해 정보를 얻기보다는 대부분 동료교사나 교내 전문상담교사에게 정보를 얻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심리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 대한 지원은 주로 학교 내 전문인력(전문상담교사, 교육복지사 등)과 협력하거나 학부모와의 상담, 그리고 동료 교사와의 협력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문상담교사와 교육복지사의 응답을 종합하면 가장 보편적인 지원 방식은 학생들의 심리정서적 문제를 가까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교사가 학교 내 전문인력(전문상담교사, 교육복지사 등)에게 협력을 요청하고, 교내 전문인력은 이러한 학생들을 외부 전문기관과 연계하는 방식이었다.
||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관점의 전환: ‘문제’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심리정서는 학생의 긍정적 자기인식, 부정적 정서조절, 사회적 관계 형성 및 인식, 책임감 있는 의사결정 등 자신과 타인의 관계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태도와 기술로 정의된다(안해정 외, 2022). 다시 말해서 심리정서적 성장은 학생 성장의 기초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교과교육에서 심리정서적 성장을 직접적으로, 또 핵심적인 내용으로 다루고 있지 않으며, 학생의 심리정서적 발달과 관련된 교육활동은 문제 예방과 처치에 중심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실시되고 있는 ‘학생 정서행동특성 검사’나 ‘위(Wee)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심리정서적 ‘문제’를 예방하거나 발생한 문제에 대한 대처 중심의 활동들이다.
이제 교육과정에서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이 보다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은 자기이해, 감정조절,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기술 습득과 적용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이러한 기술 습득과 적용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인지 발달 과정에 맞추어 교과교육의 내용을 개발하여 적용하고 있는 것처럼 심리정서적 성장에 필요한 태도와 기술도 학생의 발달 과정에 따라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교과교육으로 다루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학생의 건강한 심리정서의 중요성이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와 교과교육의 방향성에 반영되는 것을 넘어 심리정서적 성장을 위한 태도와 기술에 대한 내용을 정규 교과교육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2.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위한 통합 지원 체계 구축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위해서는 가정-학교-지역사회를 유기적으로 연계하는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며,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도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학생들은 심리정서적으로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가정, 학교, 지역사회 등 학생을 둘러싼 환경과 학생과의 긍정적인 관계는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상생활에서 학생들은 자기자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파악하고 서로 연대함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이때 학생과 가족, 또래, 학교, 지역사회 등 학생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환경 간의 관계 즉, 가족-또래-학교-지역사회 간의 관계도 중요하므로 환경 간의 관계 설정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가정, 학교, 지역사회 모두가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언제나 학생을 둘러싼 모든 환경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가정-학교-지역사회를 연계하는 통합 지원 체계를 구축 운영함으로써 학생을 둘러싼 환경들이 서로 보완재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3. 교내 전문인력 확충 및 교사의 심리정서 관리 역량 강화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학교에 보다 많은 전문인력을 배치할 필요가 있다. 모든 학생의 건강한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내에 학생의 심리정서적 성장을 전문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인력 확충이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심리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심리정서 문제의 종류가 다양해짐과 동시에, 정도도 심각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보다 세밀하고,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모든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또는 전문상담사)와 교육복지사를 배치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교실에서 학생들의 심리정서 상태와 기본적인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담임교사와 교과교사의 심리정서 관리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생의 심리정서에 대한 교사의 이해 수준을 높이고, 심리정서적 이슈를 잘 다룰 수 있는 교사의 효능감과 역량 강화를 위해 힘써야 한다. 급격한 학생 수 감소에 따라 학생 한명 한명의 건강한 성장이 더욱더 중요한 때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감소하는 학생 수에 맞춰 교사 수도 감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제는 이전에 비해 학생 한명 한명에 대한 교육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교사 수를 감축하기보다는 교사의 심리정서 관리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교사의 역할 확대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교육부(2023). 모든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공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
안해정, 김현진, 이선영, 이성회, 최예슬, 김명섭, 이현주(2022). 학생의 심리정서 현황 분석 및 교육안전망 구축 방안. 충북: 한국교육개발원.
정익중, 이수진, 정수정, 유다영(2021). 2021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행복지수. 서울: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안해정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학위(교육심리전공)를 받았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복지연구실에 근무하며, ‘학생의 심리정서 현황 분석 및 교육안전망 구축 방안’ 등의 연구를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