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본질 꿰뚫기
모든 사물에는 본질이 있다. 그리고 그 본질을 알려면 대충 얼핏 살펴서는 알지 못한다. 겉모습에는 전혀 본질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문제가 있다면 그 해결방법은 본질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예컨대 사물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느 정도 본질에 가깝게 이해했는가가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논술 시험 역시 이러한 이해도를 측정하고자 함이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정도가 본질을 파악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을까? 불가에서 말하는 깨달음 역시 본질을 꿰뚫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현장경험: 필자의 학교 초등학교 6학년들도 -중학교 바람이 불었는지- 수업 중에 일부러 소란을 피워서 수업을 방해하는 경향이 생겼다. 교사가 학생 마음에 불쾌감을 조금이라도 주었다면, 부모님께 얘기하고, 부모님의 동의가 있으면 대놓고 수업 을 방해한다. -부모님들의 묵시가 없으면 대놓고 수업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수업 중 00학생 옆에 앉은 학생이 떠들었는데 필자가 보기에 00학생이 떠든 듯 보여서 조용히 하라고 이름을 부른 적이 있었다. 00이는 아니라고 했으나 수업이 진행 중이라 그냥 넘어갔다. 시간은 흘렀고, 00학생 부모님이 학교에 오셨는데-다른 사건에 연루됨- 그 일을 말하면서 필자 얘기를 했다고 담임이 알려주었다. 조심하라는 약간의 경고이다.
그 당시 아이의 이름은 불렀지만 상처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는데, 부모님은 아이의 말에 대해서 반응을 크게 한 듯하였다. 바로 말하면 아이의 역성을 들어준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00가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교사의 말에 참견하고 수업을 방해한다. 00이 어머니가 학교에 오시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수업을 진행하지 못할 정도다 필자가 그러지 말라고 여러번 주의를 주었지만 00이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오하려 더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수업이 재미없고 진행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화장실, 보건실에 간다고 많이 나간다. 필자는 모두 다녀오라고 하였고, 6명 정도가 일어서 나가자 어쩔수 없이 조용히 핸드폰을 켜서 녹음버튼을 눌렀다.
이 모습을 본 한 아이가 녹음버튼을 눌렀다고 눈치를 하자, 00가 갑자기 입에다 쟈크를 닫는 시늉을 하면서 입을 다문다.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하였고, 오랜만에 참으로 재미있는 수업이 이루어졌다. 발표도 많이 나오는 등 아이들도 만족하였고, 필자도 수업이 즐거웠다.
필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두개이다.
첫째, 아이가 일부러 수업을 방해하면 자신의 의식의 흐름이 망가진다는 것이고, 부모님이 역성을 들면 교사의 학습지도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아이는 점점 학습을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될 것이다. 예컨대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비유를 했다. 축구선수가 자기 골문에 골을 찬다라고, 일명 '자살골'이다.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져야 학습이 이루어지는데 스스로 그 흐름을 망가뜨리니 당연히 자살골이다. 사물의 본질은 의식의 흐름이 올바르게 이루어지는 상태에서만 깨달을 수 있다.
이론적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루돌프 슈타이너의 이론에 근거한다.
불가에서 연기란 모든 사물은 서로 관계를 맺고 있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내가 알려고 하는 사물과도 관계되어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무의식에 모든 사물이 서로 같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비약하면 그 사물과 내가 같은 본질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본질이므로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사물에서 같은 본질이란 그 사물이 움직이는 근간, 예컨대 사고하고 움직이는 근본이 같다는 의미이다. 구체적으로 생명을 영위하는 행위, 동식물, 불가에서는 무생물도 같이 취급하여 본질이 같다고 한다. 이러한 본질이 무의식에 내재하는 같은 본질이다.
요컨대 사물의 본질에 접근할려면 무의식에 내재한 나와 대상이 같다는 의식 -이것이 무의식의 속성이다- 에 이르러야 한다. 문제를 풀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해야지만 문제를 풀 방법이 나온다라고 가볍게 얘기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업이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여 자신의 생각을 깨닫는 것이다. 즉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방법, 의식의 흐름을 연결시키는 작업이다. 수업이란 교사가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고, 아이가 교사의 -연결된- 무의식에 접근하여 자신의 무의식에 연결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집중이란 바로 이러한 작업이다. 그런데 아이는 교사의 무의식에 연결을 거부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아이가 노력하여 교사의 무의식에 접근하고자 해도 어려운 작업인데 일부러 거부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의식의 흐름을 무의식에 연결하는 작업이므로 연결한다고 해도 되는 것도 아니다. 열번 백번을 하다가 한번 되는 경우도 쉽지 않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란 단어가 원래 '어리석다'라는 의미를 내포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부모님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수업을 하면서 내내 아이가 안타까웠던 감정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아이가 이렇게 까지 할려면 자신의 마음 속에서 여러 번 말-반박하는-을 되풀이 해보았을 것이다. 그러한 작업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아이는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부모님은 '무지하다'라고 생각된다. 물론 부모님은 이러한 상황을 모르고 아이의 역성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부모님들은 당연히 내 아이가 예쁘니, 그 감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의식의 흐름은 깨어있는 의식에서 꿈꾸는 의식, 그리고 무의식까지 한 바퀴를 도는 순환작업이다. 따라서 한꺼번에 완성되지 않고 아주 조금씩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아이가 -거듭 이야기 하지만- 자신의 의식을 망가뜨리면서 까지 그렇게 하는 행동을 필자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긍정적인 아이가 좋은 이유는 긍정적이면 위에 쓴 내용과 같은 것들은 그냥 넘기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이 완성되는 데에 매우 좋은 성품이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의식의 흐름 관점에서 본 사물의 본질 꿰뚫기이고, 다음부터는 영혼의 활동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영혼의 활동에는 공감과 반감이 있는데, 그 중에서 공감이 이루어져야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다. 사전에서 공감이란 '남의 주장이나 감정, 생각 따위에 찬성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이라고 나와 있지만, 영혼의 활동에서 공감은 대상과 온전하게 하나가 되는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은 곧 무의식의 감정과 같다. 내가 무의식의 감정을 가지니 당연히 대상과 연결된다. 당연히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한계란 인간이 몸을 가지고 있기때문에 대상과 나를 같은 존재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숙명을 몸을 가진 것에서 부터 비롯된다고 하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이란 눈을 뜨는 순간 대상을 나와 다른 존재로 본다.
구체적으로 인간의 영혼이 공감하는 경우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진다. 공감이 무의식과 같은 감정이므로 무의식에 당연히 연결되어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져 한 바퀴 돈다. 물론 조금이고 순간적이기는 하다. 또 영혼의 공감과 반감은 호흡과 같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감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기는 하다.
이상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하면 긍정적인 감정이다.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면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학교-수업-에서 교사와 의식이 하나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대상-영혼의 활동 중에서 반감이다- 으로 보고 교사를 부정-말대꾸와 수업 방해-하는 것은 아이에게 매우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영혼이 공감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물의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반면 꿰뚫을려면 굉장히 많은 노력과 시간-성찰-이 들지만 가까이 보면, 자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학습을 하는 데에 자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서 아이는 곧 흥미를 잃어버린다. 자신의 생각을 자꾸 찾아야 점점 호기심으로 발전, 결과 의식의 흐름이 완성되는 것이다.
현장에서 보면, 부정적인 아이들이 점점 학습에 흥미를 잃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학습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이 자신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식의 흐름이 보이지 않으므로 매우 당연하고 어쩔 수 없기는 하다. 교사들은 교과서에 있는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라고 지식으로 알려주고는 있다.
부모님들이 아이의 말을 듣는 경우 -아이는 자신의 수준에서 교사를 해석하기때문에- 아이의 말에 동의를 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더 많다. 친구와의 싸움에서도 부모님들은 아이의 의견에 동조를 하지말고, 아이의 감정에 동의를 하는 것으로 끝나야 한다. 많이 아팠겠구나 등. 그리고 교사가 개입되면 대부분 교사의 행동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 아이의 의식의 흐름에 도움이 된다. 아이가 부모님에게 말씀드렸지만 '자신의 생각이 틀렸구나'라고 생각하면, 그 다음 부터는 교사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한다. 교사의 말을 경청하면 의식의 흐름이 서서히 이루어진다.
현장에서 보면 이러한 아이들이 많은데,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그렇게 망가져도 교사에게는 문제가 크게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안타깝지만, 일부러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은 모든 아이들은 원래 천재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이 자신을 망가뜨려서 서서히 학습은 물론 자신의 일도 어렵게 만든다. - 의식의 흐름이 완성되면 천재가 된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