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뒤척이는 밤이 있다. 같은 잠자리인데도 그렇다. 먹는것도 같고, 특별히 심적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 영 아니다 싶으면 일어나 불을 켜고 성경이나 소설을 읽게도 되지만, 엎드린 자세 때문에 불편해서 오래 견디지는 못한다. 눈도 편치않다. 사실 아들이나 딸의 상황을 재대로 알고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태평일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살아오는 네네 마음 편한적이 없었다고 할만끔 삶이 고단했다. 일을 그만두고 손주 육아로 전환했을 당시에도 두려움이 있었다. 잘 할수 있을까. 도중에 포기하고 싶다고 그만둘수도 없는데,,,. 그랬다. 다른일은 도중에 그만둘수도 있다. 자의도 있었고 타의도 있었지만 그랬다. 그런데 손주육아는 중도 포기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지 나도 모르겠다. 밖에 나가서 남의 일을 하는 것 보다는 내새끼를 성심껏 키우는 일이 더 소중하고 더 유익하다는 생각도 깔려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남들보다 10년이나 늦었는데, 너무나 기다렸던 일이라는 생각도 있었을게다. 맞다. 좋아서, 기쁨으로 시작했다. 잘 할수있을지 두려움도 있기는 했지만, 설래임도 컸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다보니 지치고 무너지게 된것 아닌가 싶다. 아들이 결혼한다고 했을때 좋아하고 감사했다. 결혼대상으로 최악의 조건임에도 아들을 선택해준 며늘에 대해 무한 고마운 마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난한 과부의 외아들, 거기에 특출난게 있을리없는 아들, 대체 뭘 보고 결혼을 결심했을까. 궁금했음에도 한번도 물어보진 못했다. 어떤 대답을 듣게될지 두려워서다. 첫 손주를 낳았을때, 세상에 나만 손주를 본 느낌이었다. 두렵고 떨리면서도 다 얻은듯 기뻣다. 이 기억만으로도 끝까지 갈수 있을것 같았다. 손주가 둘이 되었을때는 더 바랄게 없다는 충만함도 맛보앗다. 출산 병원에서 아이가 큰 병원 인퀴베타로 이송되엇을때도, 무사히 건강한 몸으로 집에 돌아오기만 기도했다. 그 기도 들어주셔서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나는 가끔, 아니, 단호하게, 하나님은 한번도 내 기도를 들어주신적 없다고 불평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안들어주신적이 없다는 생각을 안할수가 없다. 사실 내게 필요한 모든것을 미리 공급하고 계셨음에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지금 유유자작이 어디서 왔을까. 당연한 것인가. 아니다. 걱정없는 무탈의 일상이 당연한게 아니다. 내 노력으로 된것은 더욱 아니다. 나는, 젊어서 열심히 일했어도 통장은 늘 간당거렸다. LH에서 처음지은 아파트 하나를 구입했지만 그것도 어머니 도움이엇고, 겨우 5년만에 남편이 날렸다. 지금 반지하라고 비하하고있는 이 집도 친정의 유산이 아니었으면 못 샀을태고, 그러면 지금도 누군가의 셋방을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앗찔했던 수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이먹으면, 할일 없으면 성경이나 읽고 TV나 보면서 유유자작하고 살았으면 좋겟다는 희망사항이 이루어졌으니 뭘 더 바라랴. 그럼에도 인간은 지난날의 간구를 자꾸 잊고 딴소리를 한다. 하나님은 얼마나 귀가 따가우실까. 싸대기를 갈기고 싶어하시지는 않을련지,,, 감사하자. 첫 마음을 잊지말자. 울아들 지금까지 장가도 못가고 이집 방하나를 차지하고 있다면 어떨지를 상상해보면 다른것은 아무것도 문제될게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않을까. 건강하고 어여쁜 손자 둘을 뭐하고 견줄수 있겠는가. 설령 돈을주고 살수있더라도 나는 돈도 없지않는가. 그냥 감사하자. 감사만 해도 부족한데, 무슨 불평을 그리 하는지,,, 내가 지금 누리는 여유마저 며늘이 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할말이 있을까. 귀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탓하고 원망하고 더 바라는게 많다면 하나님께서 더는 안참으실게다. 나는 미약해서 작은 바람에도 요동한다. 뿌리체 뽑혀 끝모를 곳으로 날려가기전에 각성하고 첫 마음으로 돌이키자. 주님, 제 끝이 아름답게 마무리짓게 도우소서.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