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막약국 앞 송광선 내과 (외 1편)
김 남 권
문막파출소 앞 송광선 내과를 나서는
할머니 세 분, 저승길 연장증명서를 들고
건너편 문막약국 문을 밀고 들어선다
코발트색 짧은 치마를 입은 서른 중반의 여자가
마대로 바닥 청소를 하다가 고개를 쳐들고
반가운 척 손을 잡는다
할머니가 들어서자마자 따끈한 쌍화탕 한 병씩 건네는
약사의 구멍 숭숭 뚫린 머릿결이 을씨년스럽다
문막약국 앞 금강사우나에서 방금 나온
마흔 중반의 여자는 세은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젖은 머리를 드라이하고 화장을 마친 여자가
불법 주차해 놓은 아이보리색 세단을 향해 주파수를
발사하고 부론방면으로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송광선 내과에서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나온다
할아버지는 안 보인다
할머니들은 송광선 내과를 다녀와야 하루가 시작된다
밥맛도 생기고 자식들 볼 면목도 생긴다
건너편 농협 주유소에서 무심하게
기름만 넣고 가는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할머니가 아침마다 송광선 내과에서 기름을 넣고 나오는 것을
문막의 크리스마스는 8월에도 온다는 것을,
사천항
사천항 등대에 불빛이 켜지면
바다는 눕는다
캄캄할수록 잘 보이는 별빛의 지표를
비추는 동안 멀리서 온 파도는 옷을 벗는다
처얼썩 처얼썩 숨죽여 물고기의 침묵을
깨뜨리고 풍만한 어깨를 드러내어 웃는다
고독한 불빛들이 모여서 등대가 되고
고독한 그림자가 모여서 항구가 된다
사천항은 언제나 어부들의 심장 소리로 분주하다
아버지를 잃고 아버지를 기다려 온 바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 파도의 무늬를 그려 놓고
뒤척이는 순긋*에서 사천까지
해송의 어깨가 들썩이고 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던가
강물이 바다와 섞이고도 민물인 채로
등대의 불빛을 삼키는 것은
집어등의 축제를 위한 마지막 전야제인 것을
사천항에서 배 한 채 지어 놓고
온종일 바다의 눈물을 바라다보는 동안
게으른 등대는 사내의 등 뒤에서 졸고 있고
아버지의 하늘은 열린다
하늘과 한 몸인 채로 어머니의
하얀 등대가 푸르게 젖고 있다
*순긋 : 사천항에서 경포대 사이에 있는 작은 해변마을.
-시인정신 2014년 가을호
김남권 : 1994년 동인지 하얀 목련을 위한 기다림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바람 속에 점을 찍는다 외 4권. 저서 시낭송의 감동과 힐링 현재, 시인정신 사무국장. 시 낭송가, 영월 청령초등, 연당초등, 마차초등학교 등에서 동시와 시낭송을 지도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