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건축 기행-13 도시속의 미술관 : 클로어 갤러리
<영국적인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
전통과 현대, 보수주의와 실험정신, 고전과 하이테크 등이 영국의 국가적 이미지와 함께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James Striling)의 건축적인 성향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일 것이다. 그는 영국의 풍토주의적 건축가이면서도 하이테크 건축의 선두주자이기도 하며, 신고전주의와 포스트모던 게열을 넘나들면서 영국 내에서보다 유럽, 또는 미국에서 20세기말 최고의 건축가라는 칭호를 듣는 건축가이다.
작년 6월, 66세를 일기로 타계한 그는 뒤늦게 영국 정부로부터 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이트(Kninght)작위를 수여받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으나, 불과 12일 후 급작스런 서거를 맞고 말아 한창 자유분방한 창작을 할 시기에 명멸한 큰 별이기에 건축계로서는 큰 손실이 아닐수 없다.
그의 건축작품은 항상 찬탄과 조소라는 극단적인 세평을 수반하였다. 충격과 새로운 조형세계를 자유로이 방황하며 시대를 초월한는 웅대하며 진정한 건축가적 기질을 항상 내보이는 등 유희정신에 가득찬 자유주의자 이면서도, 합리주의적 사고의 소유자였다.
「Ham Commom Apt」,「레스터 대학 공학동」,「캠브리지대학 역사학동」,「클로어 갤러리」,「쉬투트가르트 미술관」등의 대표작들은 건축텍스트에 영원히 오르내릴 것이며 견학의 발길이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프로젝트 모드가 성공작은 아니다.
몇개의 실패작으로 인해 10여년 동안 사무실이 폐쇄 위기에까지 몰렸으나 해외 국제현상설계에서의 성공으로 지금의 명성을 얻게 되었고 독일이나 미국등의 해외에서 미술관, 문화시설을 계속 설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알바 알토상>, <RIBA골드 메달>, <Pritzker상> 등의 국제적으로 영예로운 건축상을 거의 수상한 행운의 건축가이기도 하다.
그의 특출한 재능은 프로젝트를 표현하는 특이한 기법의 엑소노 메트릭(등각 투상도)에서 잘 나타난다.
건축철학, 데테일, 공간감, 조형성, 기능, 구조의 모든 것을 나타내는 그의 그림 속에는 미련스럽게 보이는 후줄근한 양복의 뚱보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의 엑스트라가 자주 나타난다. 스털링 자신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속에 등장시키는 유머가 있으며, 때로는 파트너 건축가의 뒤통수를 등장시키기도 한다. - 영화감독이 자신의 모습을 영화의 한 장면에 슬쩍 내 보이듯-.
비틀즈의 활동무대지로 친숙한 이름의 도시, 리버풀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산업혁명 이후의 상공업 항구도시의 환경적 분위기와 선박조선기사의 부친을 두었던 가정환경이 후일 그의 출세작 「레스터 대학 공학동」 이미지와 관련있다고 비평가들은 이야기 한다.
이 건물은 후일 하이테크 건축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조우하지 못하고, 7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전향한(?) 이후의 대표작품인 런던 도심속의 미술관 「클로어 갤러리」를 기행한다.
초기의 거친 공업주의와는 완전 상반되는 현대적 의미에서 절충주의적 성향의 합리성과, 도시적 컨텍스트에 충실한 맥락주의라고 느껴보며 건축 실무에 아주 유익한 참고서를 섭렵하는 기분으로 기행한다.
<클로어 갤러리>
템즈강변 근처의 파란 잔디와 아름드리 나무사이로 나타나는 웅장한 석조건물인 기존의 「테이트 미술관」곁에 증축되어 지어진 미술관은 잔디가 깔린 바닥 지면에서 비추는 나트륨 조명빛에 의해 가상적인 무대세트로 보일만큼 화사한 벽면을 우선적으로 드러낸다.
기존 배치상황이나 역사적 건물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하여 설계되었음을 느끼며 작은 모서리 땅에 증축 개념의 의도를 읽게된다.
고전과 현대가 상면하는 앞마당은 장방형 연못을 배치하여 대립되는 파사드를 투영시켜 놓았으며, 중간 연결된 벽면은 휴게 파고라, 벤취를 생략적 기법으로 단아하게 장치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조화를 그려놓는다.
지극히 소박하고도 절제된 외부 재료나 색상을 사용하였다. 콘크리트 사각형 패턴의 골격에다 벽면은 붉은 벽돌, 연노랑의 페인트, 주출입구의 초록색 출입문 등. 그것으로만 외부조형을 표현하는데 만족하고 있다. 기존 석조건물의 아치 형태의
디테일을 새 건물의 입구 상부에 형상화 함으로써 신․구 문맥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기존에 있던 「테이트 미술관」의 석조건물을 칙칙한 바바리코트의 남성적인 우수에 비유한다면 새로 신축된 스털링의 「클로어 갤러리」는 노란 레인코트를 걸친 청순한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퇴근시간 이후의 시민들이 도심가까이 있는 미술관을 여유롭게 드나들고 있다. 그래서인지 밤을 맞은 미술관의 밝은 불빛이 생소하고 더욱 이국적이다.
「클로어 갤러리」는 19세기 영국의 대표적 화가 윌리암 터너(William Turner)의 작품을 전시․소장하는 전용 미술관이며, 강당․도서관․회의실․서클룸이 계획되어 있어 전시뿐 아니라 소규모의 시민 문화공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훨씬 작은 내부공간과 그래서 유독 체구가 큰 영국인들로 북적거려 보이는 입구의 카운터에는 터너의 도록과 나란히 스털링의 건축작품집이 판매되어 터너의 명작을 감상하는 관람객 만큼이나 스털링의 건축물을 감상하려는 고객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낮고 작은 공간과 2층 계단의 높은 트임, 천창의 요소등은 흔히 느낄 수 있는 친근감일 뿐 커다란 감흥은 없다. 다만 외부의 황색조가 내부 공간에도 그대로 배어있는 일치감과 부드러움, 악센트로 표현된 핑크색의 핸드레일과 철물 디테일, 출입문틀의 과감한 보라색의 경쾌함은 무겁고 참담하기만하고 텅빈듯한 우리의 전시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로비, 벽, 복도 등 전시장의 모든 조명장치는 간접조도로 연출되어 안온함을 더하며, 각 실 입구부분에 강조된 디자인과 조명에서 석조 디테일의 과장을 읽을 수 있다.
인상파 계열의 선구자이기도 한 영국의 자연 풍토주의 화가 윌리엄 터너의 끝없는 안개, 무겁고 뿌연 태양광선, 수평선 없는 부유의 바다는 가장 영국을 잘 표현했다고 읽은 기억을 새삼 확인 할수 있었다.
대표작 「국회의사당의 화재」가 그려진 ‘1835년’릉 템즈강변의 낭만주의 건축의 표본인 찰스바리경이 설계한 국회의사당이 세워지기 전 역사적 화재 사건의 기록이라는 점도 건축역사와 무관치 않음을 알게된다. 마감시간, 네온이 명멸하는 시가지를 향하면서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스털링의 건축물을 카메라에 담으며 생각해 본다.
거창하거나 고급스럽지도 않은 미술관, 넓은 부지를 찾아 발걸음이 닿지도 않은 외곽으로만 나갈것이 아니라 도심지도 좋고 주택가라면 더욱 좋겠다. 작은 땅에 작은 건축 시설물, 일과시간 이후에도 전시장의 문은 밝게 열려 있고, 시민들과 청소년들이 들락거리며 독서도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굳이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 시설의 별도 구분이 필요할까?
그 장소와 시설들을 자랑스럽고 가치있는 건축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사회성과 예술성을 지닌 건축가들의 탄생도 많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