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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안 보충자료 IV.
선교에 있어서 문화인류학의 중요성
(2002, Come Mission의 Journal에 기고)
1. 좋은 선교사는 항상 좋은 문화인류학자였다.
주님의 지상명령인 선교의 당위성은 거론의 여지가 없는 성경적 메시지이다. 문제는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선교는 복음전도자가 자신의 문화권을 벗어나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다는 특수성을 갖는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복음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전제하므로, 선교사가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의미들(cultural meanings)”을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선교의 기본이 된다. 즉, 선교사가 자신이 일하는 선교지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지역의 문화의 상징(symbol)과 의미(meaning)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문화”라고 하는 실재(reality)가 복음전도의 현실적인 수단과 방편이 된다는 것이다. 선교지의 문화라고 하는 방편을 통하지 않고서는 복음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현지의 문화적 의미 체계로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거나 현지 문화에서 통용되는 의사소통(communication) 관습과는 너무 동떨어진 방식으로 다가갈 때에 기독교는 또 하나의 외래 종교로 전락하기가 십상이다. 선교지의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에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 지역의 언어와 문화적 관습들과 또 문화의 기저(基底)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관을 잘 이해해야 하며, 이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복음의 의미를 전달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능한 선교사란 자신의 삶을 선교지 사람들의 삶 속에 집어넣어 그들의 문화적 의미들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성경번역 선교의 대가이자 선교학계의 원로인 유진 니다(Eugine Nida)가 “좋은 선교사는 항상 좋은 문화인류학자이었다(Good missionaries have always been good ‘anthropologists.’)”라고 한 말을 우리는 깊이 명심해야할 필요가 있다.15)
2. 문화인류학은 어떠한 학문인가?
통념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용어 중 하나가 "문화"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와 교양을 분별하지 않고 쓰는 것을 본다.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다정한 사람들과 차를 나눌 수 있는 여유를 문화적인 삶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문맹의 반대 개념으로 문화를 지칭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문화라는 말은 무엇인가 수준이 있어 보이는 그러한 여유로운 삶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화인류학이라는 전문적인 입장에서 정의하는 문화는 이러한 통념과는 거리가 멀며, 선교사는 특별히 문화를 다루는 사람들로서 통념적인 문화 개념을 가져서는 성경적인 선교 수행이 불가능하다.
문화란 일반적으로 어떤 공동체가 주변의 환경들을 극복하면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나가는 삶의 총체를 가리킨다. 자연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그리고 영적인 환경 등을 이해하고 극복하고자 할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그것들을 재해석하고 다스리고자 하는 본능을 모든 인간은 지니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삶은 그 사회가 처한 환경에 다름을 인하여, 생존하는 방식과 행복을 추구하는 목표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삶의 환경들과 그것들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름을 인하여 “문화”라고 하는 것은 사회마다 다른 것이다.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또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문화적 의미가 다른 것을 뜻한다. 이러한 문화적 의미들 가운데 생각의 가장 깊은 곳에 거의 무의식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진 믿음들 혹은 전제들(assumptions)을 가리켜 “세계관(worldview)”이라고 한다. 환경과 이에 대한 적응의 방법이 다름으로 인하여 결국 문화권마다 세계관이 다르게 된다. 이러한 문화의 형성과 그 변화 과정, 그리고 그 기저에 있는 세계관의 전제들을 다루는 학문이 문화인류학이다. 문화인류학은 특별히 타문화권에서 복음의 의미를 전달해야만 하는 선교사들에게는 필수적인 준비 과정이 된다. 다음에는 문화인류학이 선교에 어떠한 기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3. 왜 문화인류학이 선교에 필요한가?
3.1. 문화인류학을 통하여 선교사는 자신이 사역하는 선교지의 사람들의 생각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문화인류학이라고 하는 학문은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행하며 생각하는 가를 다룬다. 즉, 인간 삶의 전체적인 “실재”(reality)를 연구하는 것이다. 어떤 특수층의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보통 사람들의 삶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들이 누구이며 무슨 말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무엇을 행하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어떠한 행사를 하는가, 즉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거꾸로 말해서 세계는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듣는 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에게만 잘 이해가 되는 내용들을 선교사가 전하게 될 때에는 생각지 않았던 일들이나 부작용들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돈 리차드슨(Don Richardson) 선교사의 “평화의 아이(Peace Child)”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좋은 일례가 될 것이다. 선교사는 십자가에서 죽게 된 예수의 사랑과 겸손함을 설명하였지만, 겸손한 것이 덕목이 되지 못해 왔던 문화권에서 예수는 오히려 거절되고 가룟 유다가 환영을 받는, 웃지 못할 장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복음이 전달되기 위하여 선교사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종류의 생각들을 고려하여야 한다.
하나는 성경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복음적 사건들을 실제로 직접 경험하고 있는 성경의 인물들이 어떠한 생각들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은 어떠한 의미들을 발견하였으며, 저들의 삶은 또 어떠한 방향으로 바뀌었는가 하는 점에 선교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선교사 자신의 생각이다. 자신이 복음을 이해하는 폭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점이다. 즉, 성경의 복음의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분명히 선교사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관습과 문화적 환경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복음의 내용 자체를, 복음이 전달된 매개체 및 복음이 표현된 방식이나 수단과,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전문적인 훈련을 필요로 하므로 독자들은 이에 관련된 선교문화인류학의 참고도서들을 숙독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 Paul Hiebert, Sherwood Lingenfelter, Daniel Shaw, Charles Kraft 등과 같은 선교문화인류학자들의 책들을 추천한다.)
때로는 복음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간증들이 복음 자체와 구별되기가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복음을 표현하는 말의 숙어들이나 감정의 표현 등은 다분히 문화적인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과 그에 대한 신앙의 표현들을 어느 정도 구별하는 훈련이 선교사들에게는 필요하다. 선교사가 선교지의 새로운 회심자들에게 자기 식으로 신앙을 표현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내면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은 현지 회심자들이 선교사들을 흉내내는 데에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그 결과 선교사는 그들의 외적인 변화에 만족해 버리고 마는 불행한 사태가 생기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셋째로, 선교사는 선교지 사람들의 생각을 깊이 이해하여야 한다. 언어 표현과 행동 양식 뒤에 있는 문화적 의미의 체계를 발견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행동이, 혹은 이러이러한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러할 때는 어떻게 표현하여야 전달자의 의미가 있는 그대로 이해될 수 있는가, 감정들의 표현과 또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의미 혹은 의도들은 무엇인가, 하는 내용의 질문들을 갖고 선교사는 먼저 선교지 사람들의 의미의 세계를 잘 관찰하고 이해하고자 애써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문화인류학은 가장 적절하고 유용한 학문적 이론과 방법론을 제공하여 준다.
3.2. 문화인류학은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의 성향을 절제시켜 줌으로써 성육신적 선교를 더욱 구체화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지난 선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선교지의 사람들의 생각이나 삶의 의미들을 깊이 이해하기 전에 그들의 삶의 표면적인 면만을 보고 판단하고, 또 그렇게 판단되고 이해된 지식에 근거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오늘날 피선교지에서의 기독교는 사람들의 삶의 깊은 부분을 다루어주기보다는 표면적인 필요만을 채워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더 심각하게는 기독교가 외래 종교로 인식되면서 피선교지의 전통문화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지탄을 받고 기독교의 본질이 크게 오해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그 동안 서구의 교회가 선교를 하면서 복음과 문화를 구별하지 못한 까닭에 발생한 후유증의 하나이기도 하다.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또 기독교를 표현한 서구의 문화를 서구 선교사들은 복음 그 자체와 동일시하여, 복음과 함께 서구의 문화를 그대로 전하고 심지어 강요하기도 하였다. 문화가 무엇인지 또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이해가 부족하였던 서구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절대적인 것처럼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18세기말과 19세기 전반에 걸쳐 서구 지성인들을 지배하였던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에 서구 교회가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기의 문화를 다른 문화에 비교하여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성향을 가리켜서 “자민족중심주의”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자민족중심주의는 서구인들만 갖고 있는 성향은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는 사회 역시 갖고 있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죄성이다.)
서구 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이러한 서구인들의 문화 이해에 대한 부족과 선교에 있어서 자민족중심주의의 병폐를 통감하고 20세기 중반에 이미 선교의 전략에 커다란 수정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문화는 다른 것이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시각이 열리면서, 선교학과 선교 신학을 수행하는 데에 문화인류학이라고 하는 학문의 필요가 절실하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선교학뿐만 아니라 선교실무 수행에 있어서도 이 분야를 크게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대표적인 선교 단체나 기관이 Wycliffe Bible Translator나 New Tribe Mission 등이 있고, 기타 역사성이 있는 대부분의 선교전문기관들도 선교사 훈련에 문화인류학 과목을 필수로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문화인류학은 선교사가 자민족중심주의에 빠져서 주님의 황금률을 깨뜨리지 않도록, 그리고 타문화권에 성육신적인 자세로 헌신할 수 있도록 (제국주의적인 자세가 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선교사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되면 선교지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훨씬 더 쉬워지기 때문에, 문화인류학 자체는 성경이나 신학 과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선교사의 영성에도 큰 도움을 준다.
3.3. 문화인류학은 문화의 형식과 의미를 구별해줌으로써 효과적으로 복음의 의미를 명확히 전달하게 도와준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선교사는 선교지의 문화의 상징들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징들을 통하여 선교사가 전하기 원하는 의미들을 듣는이의 마음 속에 도출해내야 된다. 그러므로 선교사는 의미를 전달해주는 문화 형식들 혹은 상징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또 서로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고 그 결과 선교지 사람들의 의미체계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선교사는 문화인류학적인 통찰력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특별히 복음의 의미가 잘 전달되기 위하여 선교지의 문화 가운데 어떤 상징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에 어떤 상징들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구별을 하기 위해서 선교사는 현지 문화의 여러 상징들과 그 이면에 있는 의미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할 것은, 의미라고 하는 것은 그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있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상징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의미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상징 그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상징 혹은 형식은 그 의미가 이미 부여된 이후라 할지라도 그 의미를 사람이 바꾸어 놓으면 또 그 상징의 의미는 바뀌게 된다. 그러나 이미 그 의미를 바꾸기에는 너무도 종교화되었거나 그 상징과 의미를 더 이상 분리하기가 어려울 때도 있음을 선교사는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문화인류학은 바로 이렇게 복잡하고 미묘한 문화적 의미들의 상관관계를 볼 수 있는 안목과 그 의미들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여 준다.
3.4. 문화인류학은 선교사들의 현장 이해에 도움이 되는 현장연구방법론에 지대한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문화인류학의 꽃은 현장조사이다. 현장 조사 없이 문화인류학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선교사는 훌륭한 문화인류학자가 아닐 수 없다. 현지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문화 속에 침잠한 사람이 바로 진정한 문화인류학자이다. 예수님은 이 시각으로 본다면 최고의 문화인류학자이셨다. 불행히도 상당수의 선교사들이 다른 문화권에 침잠하여 함께 현지인들과 살지만, 교차문화적(cross-cultural)인 시각을 갖지 못함으로써 현지 문화의 의미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또 복음도 문화적인 상황을 고려함 없이 탈문화적으로 전하여 불필요한 어려움들이 생기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문화인류학은 연구대상인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도록 어떻게 조사할 것인가 하는 현장조사법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타문화권 선교사들은 이 부분에 있어서 전문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단지 성경번역 선교사들의 경우만이 아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다른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모든 선교사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훈련이다.
4. 결어
복음이 들어가면 어떤 문화든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복음과 함께 복음 전달자의 문화도 수입되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복음을 받은 사회의 문화가 전달자의 문화적 영향으로 인하여 붕괴되지 않고 건강하게 복음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서도 문화인류학은 필요하다.
문화에 대한 개념 이해가 선교수행에 있어서 왜 그토록 중요한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선교에 관심있는 독자들과 선교사 후보생, 그리고 심지어 현재 선교를 수행하고 있는 선교사 제위께서도 다시 한번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점검하여 보고, 우리가 사역하거나 사역하고자 하는 선교지에 어떠한 자세로 다가가야 할 것인가를 더 깊이 진지하게 생각하여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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