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짓는 늙은이(황순원)
독 짖는 송 염감은 늙은 몸에 병까지 깊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는 7살난 어린 아들마저 팽개치고 젊은 조수와 눈이 맞아 도망가 버린다.
송 염감은 노여움과 심약함으로 도망간 마누라를 호령하며 마누라는 잠꼬대를 하다가 아들의 울먹이는 소리에 잠을 깬다. 울먹이는 당손이를 달래다가, 마지막 가마에 넣으려고 조수가 혼자서 만들다시피한 독들이 달빛에 비치자 조수의 그림자처럼 느껴져 모조리 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아들 당손이와 둘이서 겨울을 보낼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는다.
다음 날부터 송 염감은 머리를 감싸고 독을 짓기 시작한다. 한 가마를 채워야 한디는 생각에 최선을다하였으나 손놀림도 예전과 같지 않고 신열까지 겹쳐 쓰러지고야 만다. 방물 장수 앵두나무집 할머니가 가져왔다는 미음을 아들을 의해서 억지로 입술에 바르고 다음날부터 다시 독짓기를 한다. 그렇지만 쓰러지기를 거듭 할 따름이다.
날이 갈수록 송 영감은 독짓기보다 쓰러지는 횟수가 잦았다. 미처 한 가마를 채우지 못하고 독을 내어 조수가 빗은 독하고 나란히 놓았다. 마치 조수와 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드디어 가마에 불을 지피기 시작하였다. 불질하는 것을 지키고 있는 송 영감의 두 눈도 타고 있었다. 송 영감이 '이제 조금만 더'하고 속을 죄고 있을 때 뚜왕! 뚜왕! 독 튀는 소리가 울려 나왔다. 자기가 빗은 독들이 튀는 것을 알고 송 영감은 그만 쓰러지고 만다.
다음날 정신을 차린 송 영감은 자기자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앵두나무집 할머니에게 당손이를 부탁한다. 마침내 그 할머니의 손을 잡은 채 아이는 떠나고, 송 영감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 줄기가 흘러내린다. 그러는 송 영감의 눈에 독가마가 떠올랐다. 송 영감은 독가마 속으로 계속 기어 들어갔다. 터져 나간 자기의 독을 대신이나 하려는 듯 송 영감은 흩어진 독 조각들 앞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어느 가을 송 영감의 집과가마
성격 : 순수 소설
문체 : 간결체
표현 : 대화에 의한 장면 제시가 거의 없음. 서술자가 직접 인물과 사건의 정황을 해설. 내면 심리의 분석적 제시
주제 : 노인의 본연적인 삶에 대한 집념과 좌절을 통해 현대 사회에서 파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 인간상 제시.장인(匠人)으로서의 집념
등장 인물
송영감 : 주인공. 조수와 달아난 젊은 아내를 원망. 어린 자식을 향한 부성애. 장인 정신
당손이 : 송영감의 아들
앵두나무집 할머니 : 방물장수. 인정 많음. 당손이를 어느 집에 소개시킴
이해와 감상1
[독 짓는 늙은이]는 1950년 4월 [문예] 9호에 발표되었으나 1944년에 씌진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독짓는 늙은이'의 장인다운 고고한 정신과 의지, 그리고 예술혼들이 때로는 가마 속의 열강처럼 때로는 눈물겹도록 펼쳐지는데, 그것에 낱낱이 시선을 분배하는 사실주의 기법을 외면하고, 가장 핵심적인 면 즉, 인물의 개성을 함축적으로 뚜렷이 보여 줄 수 있는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다시 말하자면 작가 황순원은 인물을 에워싼 세세한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그 핵심적 이미지에 직접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 소설들을 인간에 대한 궁극적 흥미란 시간과 공간의 조건들이 미칠 수 없는 보다 근원적인 인간의 속성에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이 작품[독 짓는 늙은이]에서도 시대적 역사적 조건 속에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그러한 외적 조건들이 생략된 채 완전히 추상화된 인간의 숙명 자체에 보다 깊은 흥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는 젊음을 상실한, 모든 것을 빼앗긴 송영감의 비탄과 분노를 민족 항일기 말기의 암담한 현실을 연상시켜 주고, 그러한 암담한 현실에서도 마지막 생명의 불꽃까지 태우려는 고집스런 장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다. 이것은 예술가의 정열이며 삶의 의지요, 암울한 시기를 살아온 작가적 자세의 반영이며, 또한 이 작품의 가치이기도 하다. 송 영감이 어린 자식과 독에 대하여 가지는 애착, 고통을 이겨나가는 생명력, 외로움 들은 존재의 아름다움에 대한 섬세한 가작으로서 황순원의 초기 단편들의 미학과 결부된다.
이해와 감상2
1950년에 발표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소설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 세계에 자리잡고 있는 삶에 대한 애착과, 급변하는 사회에서 전통적 가치 체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우리의 전통에 대한 집념을 그려 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가치 체계의 붕괴를 겪는 세태에 대항하려고 하는 한 노인의 집념과 좌절을 보여 줌으로써, 격변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재현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일차적으로 설명되는 갈등은 젊은 아내의 배신에 따른 노인의 분노와 상실감으로 나타난다. 노인은 독 짓는 일에 몰두함으로써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 그러나 노쇠한 체력과 흐트러진 정신으로 인해 독 짓는 일도 실패함으로써 노인의 좌절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러한 갈등을 이 작품에서는 서사적 전달 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통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기보다 어느 단적인 인상을 집어내는 데 주력하면서 절제된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또한 대화에 의한 장면의 제시가 없이 설명적 진술과 서사적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