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하며 산다는 일 (라디오코리아 닷컴)
최근에 우리 집에는 다른 사람을 찾는 전화로 다소 성가신 일이 있었다. 한인이 다수 살고 있는 남가주 지역인지라 같은 성(姓)을 가진 사람이 많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름 가운데 한 글자는 분명히 달라 찾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고 일러 줬는데도 곧이듣지 않고 막무가내로 전화를 걸어온다.
할 수 없이 생년월일까지 이야기 해주며 동명이인(同名異人)인 것을 겨우 납득을 시켜 놓자 이번에는 아내의 이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져 여러 날 동안 입씨름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전화 하는 곳이 은행이라고 하니 요즘 은행들의 급박한 사정도 이해는 가지만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만 봐도 무조건 채무자로 족쇄를 씌우고 싶어 하는 살벌한 세상임을 느끼게 한다.
‘이름 값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름에 걸 맞는 실력과 명성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이 알려진데 비해 내용이나 실상이 그렇지 못하면 ‘이름값도 못한다.’ 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역사에 큰 획을 남긴 선현들이나 지도자 외에 이름값을 제대로 하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우리들 속인(俗人)들에게야 ‘이름값’ 이란 말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젊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하고 자기만이 갖고 있는 전문성을 고양해 나가야 할 일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이름을 도둑질 당하지나 않고 잘 지켜 나가면서 자기 이름 속에 지니고 살아온 ‘퍼스널 브랜드’ 라고 할런지, 그 고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살아 갈수 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름 지키기’ 또는 ‘이름대로 살아가기’ 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것도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을 안다. 누구하면 ‘아, 그 분!’ 이 떠오를 정도로 평생을 좋은 이미지의 이름으로 살아가던 사람이 막판에 욕심을 부리거나 또는 한 순간에 저지른 실수로 해서 본래의 이름과는 너무 다른 인상을 남기는 경우를 종종 보아 온다.
그것은 어디 개인의 삶에서 만이랴, 조직 속에 들어가 봉사단체장을 맡아 있으면서 남에 대한 봉사는 제쳐두고 ‘자기 봉사’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슨 연합체에 속한 사람들이 연합은 커녕 분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거나, 통일이니 평화니 하는 좋은 이름을 붙여 놓은 단체가 그와는 전혀 다른 일만 하는 것을 보면 ‘이름대로 살아가기’ 캠페인이라도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보금자리’ 라는 단어는 사전에 ‘살기에 편안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요즘 서울에서는 언제 부터인지 보통명사인 이 단어를 고유명사로 바꾸어 ‘어느 지역에 보금자리 주택 몇 동’ 식으로 보도해 그것이 서민에게 공급하는 값싸고 양질의 주택이란 걸 짐작은 하게 하지만 무언지 어색하다. 정말 없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 역할이나 해주면서 그러는 것인지---
서울의 아파트 이름이 이상하게 바뀌고 있는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타워 팰리스’ 만 해도 고전이고 요즘에는 ‘미켈 쉐르빌’ ‘롯데 캐슬 모닝’ ‘힐스 테이트’ ‘아카데미 스위트’ 등의 요란한 이름이 많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힘들게 며느리들이 그런 이름의 아파트를 선호한다는 이야기야 지어낸 말이겠지만 그렇게 해서소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그 높은 아파트의 값을 더 올리려는 서울 사람들의 욕심은 어디까지인지 끝이 없어 보인다.
브렌드 가치를 위해서는 이름과 내용이 일치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이던 자기만 갖고 있는 가치가 있을 때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다. 올해도 그 날이 되면 또 어김없이 많이 듣게 될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이란 노래가 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이 용씨는 분명 자기 브랜드 가치에 성공한 사람일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