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학기행 - 소설가 김원일의 고향 김해 진영
'문학혼 깨운 이념의 상처, 분단의 비극'
소설가 김원일(61)의 고향이 김해 진영이다. 그가 1973년 1월 발표한 초기 단편으로 고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어둠의 혼’과 장편 ‘노을’ 그리고 장장 18년에 걸려 97년 완성한 대작 ‘불의 제전’의 무대가 모두 진영이다. 이들 작품은 해방 후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과 6·25전쟁를 다룬, 이른바 분단소설의 수작들이다.
진영 문학기행을 17차까지 미룬 것은 순전히 독자들의 ‘기행’ 기분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는 것 때문이었다. 진영은 부산에서 엎어지면 코닿는 거리에 있는데다 별다른 구경거리가 없다. 진영 문학기행에 나선 지난 20일 오전에는 하필이면 비까지 제법 세차게 내렸다.
기행팀의 우려는 막상 버스가 진영에 도착하자 말끔히 사라졌다. 거짓말 같이 비가 그치자 봄날 초록의 산과 들은 싱그럽기 그지없었다.
기행팀을 태운 버스가 진영역 앞에 도착, 일행은 잠시 기다렸다. 곧 저만치 역광장을 가로질러 작가가 흰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어왔다. 힘찬 걸음걸이었다. 작가는 대구의 문우들과 함께 전날 내려와 술을 마시며 작품 얘기, 고향 얘기로 밤을 샜다고 한다. 그가 이번 문학기행을 각별하게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작가와 기행팀은 곧바로 작품의 핵심 무대인 진영읍 장터로 걸어갔다. 그가 장터마당 입구에서 몇 걸음 더 가 걸음을 멈추었다. ‘만성고추참기름집’ 앞이다. 이곳이 바로 그가 초등학교때 얹혀 살았던 ‘감나무집’이란 술집이다. ‘불의 제전’에 등장하는 ‘감나무집’이 바로 그 집이다. 그는 장터 주변을 둘러보며 기행팀에게 작품배경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그는 때로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때로는 작품 속에 몰입된 듯했다. 일행들도 어느듯 소설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둠의 혼’은 해방 직후 첨예한 이데올로기 갈등과 대립을 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어린아이 갑해의 눈으로 그리고 있다.
갑해의 아버지는 일본 유학을 한 좌익 지식인이다. ‘아버지가 잡혔다는 소문이 온 장터마을에 쫙 깔렸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한 가족의 상처와 비극을 리얼하게 형상화한다.
어둠의 혼, 노을, 불의 제전 등 분단소설의 수작들의 작품 배경이 된 진영 평야를 작가 김원일 (가운데 손든이)씨와 독자들이 선달바우산 중턱에서 바라보고 있다.
장편 ‘노을’은 ‘어둠의 혼’의 심화 확대판이다. 출판사 중견 간부인 주인공이 29년 전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인데, 주요 내용은 ‘어둠의 혼’과 맥을 같이한다. 백정 출신의 아버지가 좌익이 되어 폭력과 광기의 화신이 됐다가 처형되고, 그로 인해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주인공을 비롯한 가족의 얘기다.
이 두 작품이 분단의 문제를 한 가족의 입장에서 다루었다면 ‘불의 제전’은 우리 민족 전체로 확대한 대하소설이다. 이 소설은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주인공인 갑해가 좌익인 아버지를 따라 진영에서 서울로 갔다가 다시 진영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다루고 있다.
갑해의 눈에 비친 것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전쟁으로 인한 폭력과 광기가 만연된 현실이다.
이 세 작품은 다른 형태를 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한 작품으로 융합한다면 그것은 ‘불의 제전’이다. 1권 책머리에 실린 작가의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되짚어 보면 이 소설을 기고하기가 20대 초반이고 ‘어둠의 혼’ 외 두어 작품도 300여 매 써둔 초고에서 발췌하여 발표를 했으니, 내 문학의 그리 길지 않은 족적 속에서도 이 소재는 나의 고통스런 환부를 헤집으며, 또한 행복한 상상력으로 끊임없이 내 문학의 혼을 일깨워온 셈이다. 장편 ‘노을’을 끝내고 그 일인칭 소설의 여러 약점을 보완한 새 장편을 쓰기로 작심했을 때 이 이야기를 엮다 보면 내가 문학청년 시절의 바람이었던 한 작가로서의 몫도 대충 마무리짓게 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들 분단소설은 이데올로기 자체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사람들의 모습과 그 후유증의 치유방식을 다루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중요한 코드 중 하나다. 특히 ‘노을’에 집약돼 있듯이 그가 보여 주고자 한 것은 어떤 이데올로기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이데올로기가 인간을 끔찍한 공포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인 것이다.
작가는 이 연장선상에서 이데올로기의 어느 한 쪽을 미화하거나 증오하는 태도를 지양한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노을’은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로부터 반공주의 소설이라는 부당한 딱지를 받기도 했다. 작가는 또 6·25전쟁은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으로 파악한다. 이는 ‘불의 제전’의 대단원인 제7권 끝 부분에 닭싸움이란 비유로 제시돼 있다.
‘사람도 그렇지 머예. 에미 뱃속에서 같이 나와도 따로 키아보이소. 다음에 커서 만내도 성제간인 줄 알아보겠습니껴. 저늠들도 주인이 다르이까 그저 주인 시키는 대로 충성심을 보이겠다고 저래 죽도록 피를 뿌리지예’.
작가의 이들 작품을 읽는 또 다른 코드는 인물의 실존적 선택이다. 대개 문학작품에서 드러나는 출신 성분에 따른 인물 결정성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거의 부정된다. ‘노을’에서 아버지는 백정의 신분을 벗고 떵떵거리며 살아 보기 위해 현실적 선택을 한다. ‘불의 제전’에서 지주집안 출신인 배종두가 강직한 공산주의자로 나오는 것도 그 한 예다.
작가는 설명을 하면서 그때 그 감나무집, 지금의 참기름집 안으로 들어가 보기도 했다. 감나무는 베어지고 집을 약간 개축했을 뿐 그 위치나 형태가 전혀 변함없다고 말했다. 작가는 실제로 ‘불의 제전’에서 그렸 듯이 1950년 10월 서울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한 54년 2월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당시 마음씨 좋은 울산댁이 나를 거뒀지요. 심부름을 하거나 불목하니로 지내며 밥은 굶지 않았어요. 또 동네 아버지 친구분들이 좌익 아들이라 내놓고 도와 주지는 못해도 몰래 학비도 주었지요.”
작가는 “작품무대 진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저기 선달바우산에 올라가봐야 한다”며 앞장을 섰다. 선달바우산은 진영읍을 안고 있는 야트막한 야산이다. 산 중턱에 오르자 진영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저기가 수산다리고 여기까지 8㎞예요. 저 오른쪽이 유등이고 바로 앞이 물통걸, 저쪽 휘어진 낙동강변에 마을이 보이죠, 저긴 아치골입니다.” 작가는 독자들과 지명 알아맞히기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열성이다.
“좌우익의 대립과 갈등이 심했던 데는 진영의 역사적 지리적 조건과 큰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진영은 대체로 일제시대와 함께 형성된 비농비도(非農非都) 성격이 짙다. 게다가 5천 정보에 이르는 넓은 평야를 7, 8명의 지주가 소유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 지주들로부터 소작을 했는데, 착취를 많이 당했다는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지주로부터 착취당한 소작인들은 지주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으며 자연히 공산주의에 쉽게 빠져드는 경우가 많았다.
작가와 일행은 선달바우산을 내려와 작가가 다녔던 진영 대창초등학교를 잠시 들렀다. 그가 작품 속에서 묘사한 버즘나무(플라타너스)와 히말라야삼나무가 웅장한 자태로 서 있었다.
한 독자가 작가에게 묻는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 학교에 다녔다고 하던데, 선생님은 혹시 학생 때 노 대통령 만났거나 기억하십니까?”
“노 대통령이 나의 4년 후배이긴 한데 전혀 기억이 없어요. 졸업하고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한 작가는 조금 뒤 설창리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면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장편 ‘노을’을 발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겁니다. 진영 출신의 변호사라면서 ‘노을’ 잘 읽었다고 하더군요. 진영 출신의 변호사가 몇 안되니 아마 그 변호사가 노 대통령 아닌가 생각합니다.”
일행은 쥐나리(주호리)를 지나 봉화리로 갔다. 이곳은 노대통령 생가인 봉하마을과 봉화산이 있는데, 봉화산은 ‘불의 제전’에서 빨치산과 군경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으로 등장한다. 작가와 독자들은 봉화산을 오른 후 마을 공터에 새로 생긴 간이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격의없는 문학토론을 벌였다.
한 독자가 물었다. “선생님 소설의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계속 성장하는데, 선생님이 최종적으로 그리려 하는 인물상은 무엇입니까?”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어둠의 혼’과 ‘불의 제전’에서 어린 주인공 갑해는 어느덧 부쩍 커버린 자신을 발견하는 대목이 나온다. ‘늘 푸른 소나무’의 석주율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소설의 모든 것은 사실 인물입니다. 그 인물이야말로 작가 자신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나는 모든 작가들은 신에 근접한 인물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고 봐요. 그 신에 근접한 인물은 영혼의 매혹자라 할 수 있는 완성된 예술가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