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여행 2일 차 — 2025.10.14 화
비행기 아래로 내려다본 카트만두의 밤은 낯설고도 아름다웠다.
서울처럼 빽빽한 빌딩의 숲도, 눈부신 네온의 강물도 없었다.
대신 구릉진 숲이 부드럽게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흩어진 불빛들이 반딧불이 무리처럼 반짝였다.
산의 굴곡을 따라 집집마다 불빛이 살아 있었고, 그것들이 계곡과 능선을 따라 물결치듯 이어지며 은은한 리듬을 이루었다. 도시라기보다 별이 내려앉은 대지 같았다. 능선을 타고 흐르는 빛들이 모여 전체가 꿈틀거리듯 장관을 이루는 모습은 실로 이국적이었다.
그 빛의 도시를 내려다보며 문득 생각했다. 카트만두의 밤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인트라망 같았다. 교차점마다 하나의 빛이 반짝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에 공동체를 이룬다. 혼자는 외롭고 불안하지만, 함께일 때 우리는 안정과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그 속에서 개인의 존엄과 개성은 종종 희미해진다.
각자가 자신의 빛을 지키며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까.
공동체이면서도 개인이고, 개인이면서도 공동체인 세계 — 그 가능성을 나는 카트만두의 밤빛 속에서 생각해 본다.
아내는 콜택시 요금에 눈길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로밍으로 택시 앱을 설치할 수 없어, 결국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우린 로밍으로 해서 이심이 필요없지만 아내는 10일간의 요금 차이를 걱정했다. 나는 그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며 편하게 여행을 즐기자고 말했다.
첫날 아침, 호텔 조식 식당은 놀랄 만큼 깨끗했다. 음식도 이상하게 입맛을 거스르지 않았다. 아내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프론트에서 근처 이심을 끼울 편의점을 물으니, 걸어서 5분 거리에 전화국이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도심을 처음 걸었다. 날씨는 맑았지만, 오토바이 무리로 공기는 매캐했고 공해가 심했다. 오토바이 매연이 매캐하게 코끝을 찔렀고, 끊임없이 울리는 경적 소리에 귀가 무뎌졌다. 김혜영님이 마스크를 준비하라 했지만, 나는 깜빡 잊고 호텔에 두고 나왔다. 아내는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아 매캐하고 탁한 공기를 막으며 걸었다.
전화국은 붉은 벽돌의 이층 건물이었다. 안은 낡고 단순했지만, 어딘가 정겹고 70~80년대 한국을 떠올리게 했다. 시멘트 벽, 낡은 책상과 의자, 허름하지만 깔끔히 정리된 공간. 실내는 오래된 나무 냄새와 먼지 섞인 공기가 느릿하게 흘렀다. 손끝으로 만지는 책상 표면엔 세월의 끈적한 감촉이 남아 있었다.
관공서 답개 이심을 끼우기 위해 우리는 여러 창구를 오갔다. 직원은 친절하게 안내했지만, 내 휴대폰이 한국어 전용이라 진행이 어려웠다. 한국어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이미 포기했지만, 아내의 끈기가 이상하게 든든했다. 아내는 작은 불편에도 끝까지 실마리를 찾아내려 했다. 그 집중력이 가끔 피곤하면서도, 왠지 믿음직스러웠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허비되고 여행에 많은 애너지를 빼았겼다.
오늘은 타멜 근처 라마나야 호텔로 옮긴다. 체크인 후 박물관과 시내를 둘러볼 계획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아내는 눈 밝게 호텔 앞의 낡은 경차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체크아웃 후 탈 차를 미리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택시를 타자마자 아내는 당황하며 전화기가 먹통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기사에게전화국에 들러 20분 기다려 주면 300루피를 추가로 주기로 하고 다시 전화국으로 갔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카톡 통화로 연결이 되니 일단 괜찮다며 아내를 안심시켰고, 우리는 무사히 라마나야 호텔에 체크인했다.
전화국 해프닝으로 박물관은 내일로 미루고, 타멜 시내로 나섰다.
카트만두의 중심 거리 타멜은 남대문보다 훨씬 복잡했다. 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있었지만, 운전자들의 솜씨는 놀라웠다. 골목마다 가게와 카페, 식당이 줄지어 있어 활기가 넘쳤다.
우리는 마당이 넓고 탁자가 놓인 식당에 들어가 네팔 요리와 만두를 주문했다. 한 청년이 한국어를 조금 하며 말을 걸어왔다. 23살, 한국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3층 테라스가 보여 올라가 보니, 복잡한 골목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들어왔다. 잠시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지만, 흡연 공간이라 오래 머물지 못했다.
좁은 골목길을 걷다 갤러리에서 김동연 화백의 그림과 닮은 히말라야 풍경화를 보았다.
그림을 구경하던 아내가 김동연 화백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느냐 물었다. 놀랍게도 주인은 그를 잘 안다고 했다. 우리가 친구라고 하자 반갑게 웃으며 맞아주었다.
타멜에서 환전도 하고, 아내는 과감히 핀을 빌려 이심을 빼고 이전 유심으로 갈아 치웠다. 여기 택사기사들도 환전소 주인도 모두 착하고 친절했다.
얼 마 후 전화가 예전처럼 살아났다. 아내가 무척 안심하며 환히 웃음을 지었다.
밤에 호텔 방에서 아내에게 물었다.
“잘 안되면 그만하지, 왜 한 시간 넘게 붙잡고 있었어?”
아내는 “전화국 직원이 문제없다고 했고, 챗GPT도 알려줘서 될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조금 해보다 안 되면 포기도 할 줄 알아야지. 택시비 조금 아끼겠다고 하다가 결국 전화도 데이터도 다 끊겼잖아.” 그리고 한 군데 가지도 못했고.
카트만두에서는 한국인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대부분 트레킹을 선호하고 집중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이심 문제를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아내에겐 그 3,000원의 이심이 아쉬운 듯했다.
아내와 나는 흐름이 다르고, 생각의 방향도 다르다. 공통점도 많지만, 집중하는 지점이 다르다.
아내는 작은 것 하나에도 세심하게 집중하고, 나는 전체를 바라본다.
나는 망원경처럼 멀리 보고, 아내는 현미경처럼 가까이 들여다본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아내는 뒤에서 체계를 다져야 한다.
이런 차이는 함께할 때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시야를 가리기도 한다.
‘너는 내 마음을 알겠지’ 하다가 실망하기도 하고, ‘나는 너와 다르지 않다’고 믿다가 빗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다름 속에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 카트만두의 밤빛 속에서 새삼 느낀다.
첫댓글 현미경과 망원경 둘 다 있으니 세상 보는데 최상의 협력관계시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