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쉬고, 하루는 놀고
차를 정비하기 위해 카센터에 갔다. 기다리느라 무료하게 서 있는데 사장님이 다가와 말을 거신다. 내가 퇴직한 사실을 알고 계시기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신가 보다.
“그냥 하루는 쉬고 하루는 놉니다.”라고 편하게 대답했다. 크게 이루려는 목표 없이 느긋하게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잘하는 일이라신다.
자기 친구들 퇴직하고 무언가 해보겠다고 나섰다가 다들 퇴직금 날리고 쫄딱 망했단다. 그래서 지금은 퇴직하는 친구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말이 돈 벌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란다.
“저는 퇴직연금으로 살기 때문에 투자할 돈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없어서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능력이나 재주에 비추어 볼 때 돈이 있었다면 나 역시 쫄딱 망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많이 번다고 하루 여러 끼 먹는 것도 아니고. 죽을 때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이 나이에 많이 벌면 뭐합니까?”
맞다 하신다.
오백만원만 있으면 된단다.
“무슨 말씀이세요?”
장례비용이 오백만원이라신다.
‘오백만원은 머리맡에 두고 떠나야 하는구나. 나의 마지막 삶이 남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글머리에서의 사장님 물음처럼 퇴직한 사람들이 반드시 받게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이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나의 대답은 항상 같다.
“하루는 쉬고, 하루는 놉니다.”이다.
다들 껄껄 웃고 말지만 일 없이 하루는 쉬고 하루는 노는 것이 카센터 사장님의 말씀처럼 ‘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라는 말이 있다. '일 없음이 오히려 일을 이룬다.'는 뜻으로 근대의 선승 경허 선사께서 하신 말씀이다. 이는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그 일에서 자유로워지면 오히려 일을 쉽게 이룰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절로 잡힌 깨달음’이라는 우화가 있다.
「산 속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 나무꾼 가까이에 낯선 동물 한 마리가 다가왔다. 처음 보는 동물이기에 기이하게 여긴 나무꾼이 물었다.
“이봐 너는 이름이 뭐지?”
“음, 나는 깨달음이라고 하지.”
‘으응? 깨달음이라니, 내가 그토록 얻고 싶어 했던 것이 아닌가? 오늘 꼭 너를 잡아 손에 넣고야 말겠다.’
그러자 깨달음이라는 동물이 말했다.
“그대는 지금 나를 잡으려 하고 있군.”
나무꾼은 깜짝 놀랐다. 깨달음이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무꾼은 또 속으로 생각했다.
‘쉽게 잡힐 놈이 아니군. 아닌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가 이 놈이 방심하는 틈을 타 도끼로 찍어 잡아야겠다.’
나무꾼은 딴 짓을 하는 척 하다가 재빨리 도끼로 깨달음을 찍었다.
“방심하는 틈을 타 도끼로 찍어 잡겠다고? 어림없지,”
나무꾼은 어쩔 수 없이 하던 나무나 열심히 하기로 했다.
“잘 생각했지. 날도 저무는데 나무나 빨리 해야지,”
격려인지 비아냥거림인지 깨달음이 한 마디 했다.
나무꾼은 나무를 하기 위해 도끼를 들어 나무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너무 세게 내리친 탓일까?’
도끼는 나무꾼의 손에서 벗어나 저만치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가떨어진 도끼날에 깨달음이라는 놈이 콱 찍혀 버둥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깨달음을 뜻밖의 일로 잡게 된 것이다. 잡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은 나무꾼에게 깨달음이 절로 잡힌 것이다.」
‘하루는 쉬고 하루는 논다,’는 말이 얼핏 들으면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는 말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일에 빠져들지 않고 그 일을 즐긴다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중국어나 글쓰기는 돈을 벌거나 취업을 위해서 하는 공부가 아니다. 아침마다 하는 수영 역시 수영선수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공부하고 운동하는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고 즐길 뿐이다. 잘하면 좋고 못해도 그만인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배운 중국어로 통역 봉사활동을 하게 될지도, 늦게 시작한 글쓰기 공부지만 문단에 등단하게 될지도, 노익장 수영대회가 있어 선수로 출전해서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그렇다 하더라도 그건 그 때의 일일뿐 지금의 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은 즐겁게 공부하고 운동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거기에 무슨 거창한 의미를 두면 즐거움은 사라지고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중압감이 가슴을 누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순간의 있음이다. 이 순간순간의 삶에 충실하면 그 뿐, 인연이 있다면 애타게 바라지 않더라도 일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질 수도 있으리라.
무사유성사無事猶成事, 일 없음이 일을 이룬다.
뭔가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보다는 즐겁게, 급하게 보다는 느긋하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일이 아닐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고, 안 하지만 않으면 일은 되는 것이다.
100세 시대를 맞아 짧지 않을 앞으로의 나의 삶이, 하루는 쉬고 하루는 노는 일 없음의 일로 날마다 좋은 날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2016년 7월 어느 새벽
세찬 장마비 소리를 들으며 석원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