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자유혼과 창조적 책임 / 구중서
자유의 정신
현대 그리스 최고의 작가요 시인인 카잔차키스가 태어났고 묻혀
있는 크레타 섬에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서 있다. 바람 부는 지중해 크레타 섬 언덕 위에 호젓이 자리한 네모의 석조 무덤에 역시 네모의 비석이
얹혀 있고, 거기에 카잔차키스의 말이 세 줄의 비명으로 새겨져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니까.”
무덤 앞에는 아무 가공이 없는 나무 십자가가 가난해 보이지만 숙연하게 서 있다.
카잔차키스는
자유인으로 자처했지만 실제로 그가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사회가 그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지 않았으니 그는 괴로움 속에
떠도는 일생을 살았다.
자유의 문제에 대해 김수영이 쓴 시가 〈푸른 하늘을〉이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이 시는 사람들이 고독해지기 위해 혁명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혁명은 자유를 얻기 위해 하는
것이다. 자유의 참뜻을 더 생각하면 그것은 ‘정신의 평화’이다. 그리고 또 평화의 참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일시적
휴전의 상태도 아니다. ‘정의’가 이루어진 상태 그것이 바로 진정한 평화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자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양심이라는 보편적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양심에 따라 자유를 추구하는 정신 자세가 변하거나 포기되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유와 정의를
추구하는 일은 힘들고 고독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감당하기를 각오해야 한다는 것을 김수영의 시가 말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
현실에서 역사의 발전이 어처구니없게 낭패를 거듭하는 속에서 이제는 누가 누구의 탓을 하기보다 잘못되어가는 결과에 대해 나와 우리가 우리의 문학이
함께 반성해야 할 상황이다.
1960년의 4·19 민주혁명이 1년 후에 5·16 군사 쿠데타에 의해 실패로 끝나는 속에서 김수영은
혁명의 고독을 시로 썼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김수영이 새로이 성취한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이른바 1950년대 모더니즘에서 벗어나 참여시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같은 시기에 모더니즘 시를 쓰던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에 대비해 생각해 보게 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박인환이 시 〈자본가에게〉에서 “허물어진 인간의 광장”을 말하긴 했지만, 그에게 정신의 어떤 출구가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수영은 혁명에서 피 냄새가 나고, 혁명은 마땅히 고독한 때도 있을 수 있다는 순결한 이상의 정신을 강조한다. 이것은 감상의 차원과는 다른
리얼리즘의 정신이다.
1987년 6월 시민항쟁이 대통령 직선제를 되찾는 승리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안이한 낙관을 경계한 시가 있다.
그것이 정희성의 〈만세후〉이다.
“민주화가 된다는데/ 이제는 무엇을 할 거냐고/ 이형이 묻는 말을 귓전에 흘리며/ 나는 말없이
술잔을 건넬 뿐// 자유라는 말이 언젠가는/ 우리를 구속하겠지// 무서운 예감이여/ 얼마나 외롭고 긴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과연 되찾은 직선제의 첫 선거에서 민주화 추진 선두의 동지인 양김이 분열했다. 그 결과로 37%의 득표를 한 노태우 후보가
당선했다. 군사통치 계열의 정권이 5년을 더 연장하게 되었다. 양김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책임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역사 발전 과정의 이러한 차질을 통해 뒷날 우리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 여러 가지 혼선과 부작용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대의를 보지 못하고 소리에 치우쳐 정대한 뜻을 내세워 함께 가는 사람들 속에서도 계속 분열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문학과 정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물이거나 탈선인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명망 있는 한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만나는 사람의 대다수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시인으로서 큰 손해를 보는
일이라고 한다. 과연 이러한 통념들이 옳은 것일까.
원래 정치는 나쁜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의 아름다운 질서에 봉사하는 필요하고도 좋은
일이다. 옛날에 공자가 어디에 가다가 한 마을에 들렀는데 인심이 좋은 걸 느꼈다. 마을 인심이 온유돈후(溫柔敦厚)했다. 사람들이 따뜻하고
부드럽고 두텁고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가 말했다. “필경 어느 시인이 이 마을에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무사(思無邪,
거짓이 없는 마음)’뿐 아니라 ‘온유돈후’는 공자가 시의 원리로 제시하는 말이다.
현대에도 아프리카 세네갈의 시인 셍고르는 훌륭한
대통령이었고, 케냐의 소설가 케냐타는 존경받는 국부였다. 문학인은 전인적(全人的) 인격자로서 사회의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조성하는 작업자가 될 수
있다. 창조적 예술가의 직분과 통하는 일이다.
오늘날 세계 판도의 전체를 보더라도 보편적 가치관으로 보아 존중할 만한 인물이 드물다.
미국과 러시아 같은 큰 나라의 대통령도 국가이기주의와 패권적 세력 다툼에 얽매여 있다.
더욱 끝없는 물질적 생산 경쟁과 ‘진보’를 외치는
소리에 의심을 보내며 멈추어 서서 생각을 해야 한다. 진보(進步)가 무엇인가. 사람들이 계속 어디로 향해 달려 나아가야 하는
것인가.
진보가 발전을 뜻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이념과 제도를 관장하는 이는 인간이기 때문에 먼저 진보해야 할 것은 인간다운 ‘인격’의
진보이다. 이러한 진보는 발전이라기보다 인간 다음의 ‘완성’이어야 한다. 진보사관보다 ‘완성사관’이라 부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세계에서 진리와 지성에 의거한 성찰로 로마클럽이 채택한 보고서가 있다.
“사회는 ‘진보’라는 것을 바람직한 그 무엇으로 여기기를
그만두어야 한다. ‘영원한 진보’라는 것은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신화에 불과하다. 추구해야 할 것은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경제가 아니라 ‘제로성장
경제’ 즉 안정된 경제인 것이다. 경제성장은 불필요한 것일 뿐 아니라 파괴적인 것이다. 국가의 자원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존시키는
데에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제 기술의 주목적은 지금까지 기술이 빚은 서글픈 결과물들을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 서양문명의 치명적인 행로를
따르지 않고 있는 제3세계는 육체노동을 감소시키기보다 증대시키며, 자기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는 자원에만 관계되는 소규모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살아가는 최선의 길이다.”
러시아의 소설가 솔제니친은 1973년에 로마클럽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구소련의 정권 담당자들에게
비밀편지를 보냈다. 소련의 물질주의 통제 정치가 동맥경화를 일으켜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문제와, 더 먼 날 러시아와 중국의 충돌까지
우려하는 내용이었다. 솔제니친은 소설 《수용소군도》를 발표해 국외로 추방까지 당했지만, 구소련은 솔제니친이 경고한 대로 정치 체제의 붕괴를
겪었다. 이 일도 문학인 솔제니친의 자유정신과 표현의 용기였다.
톨스토이와 투르게네프의 소설이 러시아의 농노해방에 크게 이바지했다.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 〈약〉 등이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신해혁명보다도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일본의 센다이 의학전문학교에 유학했다가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깨달아 문학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문학의 공리주의적 일탈이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창조적 정신의
대표적 구현이 바로 문학예술이다.
문학은 언어의 순화와 승화를 통한 형상화 차원에서 인간의 삶을 재창조하는 자유를 이루어낸다. 일제
강점기에 정치적으로는 나라가 없었지만 언어와 문자의 작업으로 한국의 역사를 지속시킨 문학이 있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으로 겨레가
살아 있었다. 이것이 1920년대의 문학인데 30년대 모더니즘의 문학은 어떠했던가.
“어느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 〈설야〉)
아름답지만 감수성 그 자체이다.
“문을열어주려하나문은안으로만고리가걸린것이아니라밖으로도너는모르게잠겨있으니안에서만열어주면무엇을하느냐”(이상 〈정식〉 Ⅳ)
이것은 언어의 세련된 밀도 그 자체이다.
김기림은 1939년에 평론 〈모더니즘의 역사적 위치〉에서 말했다. 문명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사라졌다. 시가 언어의 세련을 얻었지만, 언어의 말초화가 자기 소모적 파탄으로 끝났다고 했다. 서양에서도 같은 시대에
모더니즘의 한계를 깨달았다. 문학인들이 지식인연맹을 만들어 인류의 문제를 지성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파시즘의 대두를 맞아 문학인은 맨손의 허약한
모습일 뿐이었다. 천재라 여겨지던 에즈라 파운드도 파시스트 무솔리니의 친구로 지내는 타락을 범했다. 이것은 감각과 감수성의 문학이 끝내 맞이하게
되는 한계이다.
그러나 감수성의 한계를 넘어 정신의 문학, 영혼의 문학은 창조의 책임을 안고 지속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한 〈서시〉의 시인 윤동주가 일제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독립운동 죄목으로 악형에 쓰러진 것이 1945년 2월의 일이다.
바로 해방이 되던 그해까지 살았으니 시인 윤동주가 민족 역사의 지속을 담당한 것이다.
맨땅의 인문학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지도 벌써 70년이나 되었다. 일제하 36년이란 세월이 끔찍하게 길었는데 이보다 배에 가까워져 가는 국토 분단의 기간은
무엇인가.
현대 세계 양식(良識)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집권을 제도화하는 데에 몰입하고 ‘자유’의
제도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한 것이 없다고. 분단된 한국의 북쪽에 해당하는 말이다. 분단된 다른 한쪽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는 체제인데
때때로 독재정권이 군림해 자유를 위한 시민의 격렬한 투쟁이 일어나게 했다. 고통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투쟁이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것은 그나마
가능성이 열려 있는 여건이다.
희생을 치르면서도 한때나마 일단 성공을 거둔 사건들이 4·19와 광주의 5·18과 6 ·10 항쟁이었다.
인간관계의 작용은 상황만 가지고는 부족하고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인격을 담은 연대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안에 진정성이 담길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신의 차원에서 비로소 문학의 작품도 탄생한다.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고 최근에는 합동시집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가
발간되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의 문학에서 거둘 것은 풍요한 감동이 아니고 시 〈만세후〉가 우려한 대목 그것이다. “자유라는 말이 언젠가는/
우리를 구속하겠지// 얼마나 외롭고 긴 싸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 말을 거두어들이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에
작가회의 40주년 행사가 있었고 회고 인터뷰들도 있었다. 인터뷰에서 이은봉 시인이 물었다. “1950년대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이 작가회의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모더니즘이 다시 나와 리얼리즘에 반발을 하는 듯싶다. 이른바 미래파라는 것도 그런 흐름이 아닌가.” 했다. 이
질의에 대해 필자가 대답했다. “리얼리즘의 총체성·전형성·전망 세 요소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상력과 이상은 전망 안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엇나가고 파괴하고 싶어하는 어떤 개성적 자유는 다양성으로 보면 된다.”
필자의 견해는 원래 다양성
안의 일치를 인정하면서 보편적 가치가 다만 주류와 중심을 이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문제가 계속 심각해지는 것은 문학 내부의 원리적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과 역사적 현실 사이에 역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이 잘 소통되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이 시대
사회 현실의 운영이 자유와 민주주의에 잘 소통되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문제이다.
경기도 여주 남한강 가에 한 중견 시인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토종닭을 뒷동산에 놓아서 키우고 밭에서는 고구마를 수확한다. 이 시인의 집에서 불과 백 미터 앞에 있는 남한강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4대강 공사가 시작되었다. 강바닥을 깊게 파고 강가에는 자전거 도로라는 큰 둑을 만들었다. 공사장의 요란한 굉음과 날리는 흙먼지로 농가의
평화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시인은 4대강 공사를 처음부터 반대했다. 주민들은 정부의 공사 덕에 땅값이 오르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시인을
비판했다.
공사가 다 끝났는데 과연 강은 좋아졌는가. 강변의 명소이던 은모래밭이 사라지고 거대한 강둑에 자전거를 타는 청년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강의 깊은 바닥에 시멘트와 철근을 박아 만든 수중보로 인해 흐름이 지체되는 물에서 썩는 냄새가 나고 저녁나절이면 강가 하늘에
구름같이 큰 각다귀 떼가 날아 민가의 창을 열 수도 없다. 땅값이 오르지도 않는다. 4대강 죽이기 공사를 하면서 공사 당시에는 높은 널빤지 벽에
‘4대강 살리기’라고 공사명을 써서 내걸었었다. 결국 언론 지면들은 천문학적 재정 손실을 대서특필로 게재했다.
이제는 4대강 공사를
반대하던 시인이 옳았다고 말하며 지난날의 시비를 뉘우친다고 한다. 지방 관청도 태도를 바꾸어 이 시인을 모범 영농자라고 표창을 했다.
민주화 운동권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한때 대사회 발언을 하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이른바 원탁 회견은 왜 열리지 않고 있는가.
문단의 작가회의는 세월호 유족들의 광화문 캠프에 계속 동참하고 있지만, 유족들이 외롭듯이 작가회의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비정하고 비인간적인
이 시대 시민 대중의 속마음은 과연 무엇인가.
정치인도 시민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여기에는 어떤 원리적 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심성이 메말라 있다는 데에 있다. 이 현상을 다른 말로 하면 사람들 속에 ‘인문학’이 없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키워야 하는
대학들은 졸업생의 취업이 잘 안된다고 문예창작과를 폐과시킨다. 사회에서 인간성에 목마른 심정들이 자생적으로 인문학 운동을 일으킨다.
국토의
남단 순천에 사는 여성 시인 이민숙은 샘뿔인문학연구소를 운영한다. ‘샘뿔’은 샘이 깊은 물과 뿌리 깊은 나무를 줄인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시에서 세월호의 젊음을 끌어안았다. 국토의 곳곳에서 이만한 정신 작업들이 있으면 문화의 나라이다.
덴마크의 시인 안데르센 넥쇠는 맨땅
흙바닥에 앉아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시를 썼다. 이 넥쇠 시인을 황금 의자에 앉아 시를 쓰는 이에 견주며 브레히트가 시 〈문학은
성찰되리라〉를 썼다. 맨땅에 앉아 시를 쓴 넥쇠에 대한 칭송이다.
사회적 지도자도 정치인도 좀처럼 대중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문학인들이 이 사회의 인간화를 위해 맨땅에라도 내려앉아 동석하는 정신 자세를 갖는 일이 소중할 것 같다.
관념적
거대담론, 부르주아 진보 지식인들이 이 사회의 비인간화를 방관하고 있다. 인간다움을 위한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기보다 성취해야 할 책임이 있다.
구중서 / 문학평론가. 1963년 《신사조》에 문학평론 발표로 등단. 저서 《한국문학과 역사의식》 《자연과 리얼리즘》 등과 시조집
《불면의 좋은 시간》 《세족례》 가 있음. 요산문학상, 한국문학평론상, 팔봉비평문학상 등 수상.
첫댓글 과연 시대의 어른이요.진정한 문학인의 발언이네요.
다시 읽어도 가슴 벅차오르는 글입니다.
샘 잘 지내시지요? 시상에 혼자 섬엘 댕게오시게 허고 난 무에 그리 바쁜척허고 사는지.
저렇게 멋진 어른께 거론됨을 받다니 참 지금 생각해도 황송하네요. 하지만 살아온만큼은 부끄러워하지 말 것! 내 소신이니....
하화도는 여전히 잘 있고~~올해 마지막 구절초 향기 맡고 오니 흡족하네요~! 우리 항꾸네는 또 다가오는 계절에...미자씨 건필~!!
그렇게 소중한 사람과
우리가 함께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맨땅에서라도
만나고 또 만나야지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살아온 만큼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 샘뿔의 일원인것을 기뻐하며~^^♥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들을 구중서 선생님께서 잘 펼쳐놓으셨네요.
문학인으로 자유할 수 있을까?
구중서 선생님의 고민은 사회적 삶과 리얼리즘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학의 확장성~ 개인의 사상이 필요한 건, 개인적 삶을 뛰어넘을 때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 샘뿔이 지향하는 인문학도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선생님은 멀리 오지의 '순천 이민숙(여수)을 주목하신 거구요....
스스로....알아주지 않더라도....꿋꿋하게....자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