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1944년 7월 31일 오전 8시 30분, 코르시카섬(나폴레옹이 태어난곳), 미 공군기지를 이륙한 생텍쥐페리가 정찰기와 함께 실종된 날이랍니다. 1935년 1월 30일에 파리-사이공 간 비행시간 신기록을 수립하던 중 리비아의 사막에 추락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던 생텍쥐페리가 실종하다니. 2차 대전 중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에도 그는 <전투 조종사>(1942),<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1943), <어린 왕자>(1943) 등의 작품을 꾸준히 집필하였다. 1944년 7월31일 오전, 유년의 고향을 우회한 후 예정된 고도보다 낮게 정찰비행을 하던 중 에 독일군에게 공격을 받고, 니스와 모나코 사이에 있는 해안가에 추락하여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하였다.
조종사출신인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인이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자랑하는 로맨틱하고 유려한 필체로 우리 나라에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지요. 그의 작품 남방우편,야간비행과 어린왕자에는 비행기가 빠질 수 없을 정도로 캄캄한 밤하늘을 날으는 비행 사의 고독과 넓은 하늘, 아니 우주를 껴안으며 우리에게 속삭이듯 다가오는 잊어버렸던 한 휴머니스트를 불현듯 기억해내고는 잠시 이렇게 더운 여름밤에 올려다 보던 밤 하늘의 은하수를 추억해 봅니다.
은하수, 망망대해에 펼쳐진 안개꽃처럼 신비한 어린 날의 꿈을 기억하시지요? 아무래도 이쯔음에서 잠시 끝내야 할거같애요, 뭐야 감질나게...하시겠지만 이렇게 정오에 펼쳐보던 중앙 일보, 역사속의 오늘을 읽다가 생텍쥐페리와 어린왕자 그리고 아련한 은하수 이야기를 떠 올리기긴 했지 만 무드가 영 아니잖아요? 여름밤에 은하수가 펼쳐지지도 않은 서울 하늘이래도 무드가 살아나는 밤에 이 야기를 다시 하도록 하지요. 괜찮겠지요?
* * * *
이제 이야기를 계속할까봐요 왜냐구요? 하루 밤이 지났거든요, 뭐 서울 하늘이 별건가요,
밤 12시가 넘어도 운동하느라 땀을 흠뻑흘리면서 운동장을 개미 채바퀴 돌듯이 돌고있는 아주머니, 아가 씨와 저같이 똥배나온 아저씨 몇사람으로 분주한 동네 운동장에 나와 앉아서 별하나 보이지 않는 여름 밤하늘 을 올려다봅니다.
아! 눈부신 은하수와 은하수를 저어가던 돛단배는 어디에 있나요? 모기불의 매캐한 내음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올려다보던 여름밤, 밤바다를 헤쳐가던 은하수의 외로운 뱃사공이 지금 어디갔나요? 늙어 은퇴했다구요? 그럼 외동딸 처녀뱃사공이라도 있을법한데....
* * *
이렇게 캄캄하기만한 밤하늘에 흐미하지만 먼데서 무슨 소리인가 들려오고 있었다. 흡사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모터소리인가?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소리가 비행기에서 나온 소리라는걸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맙소사 흡사가 아니라 구식 쌍발기 날개가 쇳소리를 내며 구닥다리 정찰기 한 대를 보다니... 코쟁이 프랑스 조종사가 씨익 미소를 짓는것까지 보일정도로 다가오는데, 문득 영원히 사라져버린 생텍쥐페리가 붉은 머플러를 멋스레 나풀거리며 알 수 없는 머언 하늘을 향해 야간 비행을 하는게 아닌지 몰라. 영원한 휴머니스트가 날아가고자 하는 그곳은 어디일까, 아직도 이리도 깊은 밤하늘을 정처없이 날아가고 있을까?
깊은 어둠속에 깜박이는 계기판을 노려보는 단조로운 야간 비행중에 조종석위로 펼쳐진 은하수에 홀려 그만 길을 잃어버린 외로운 로맨티스트가 이곳까지 날아왔나보네.
"왜 술을 마셔요?" 어린 왕자가 물었다.
"잊기 위해서지." 술꾼이 대답했다.
"무엇을 잊기 위해서요?" 어린 왕자는 술꾼이 불쌍해져서 물었다.
"부끄럽다는 걸 잊기 위해서지." 머리를 숙이며 비밀을 고백하듯 술꾼이 대답했다.
"뭐가 부끄럽다는 거지요?" 술꾼을 위로해 줄 생각으로 어린 왕자가 다시 물었다.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이렇게 말하고 술꾼은 침묵을 지켰다.
오늘도 건너편 대림상가의 골든벨에는 술을 마시는 게 부끄러워 술을 마시는 주당들이 있겠지? 생떽쥐페리를 기억 하다가 별생각을 다 하는군...그래, 어린왕자를 처음으로 만나던 때는 아마 시답잖게 연애하던 때였을까?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하지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을 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참 좋은 시절이었지, 2층에 자리한 다방에 앉아서 성냥쌓기를 하며 기다리던 그 때, 삐걱거리며 올라오던 발자욱소리, 다방문을 밀치며 들어서는 인기척마다 고개를 돌려 보다가 종내에는 번잡한 큰 길을 건너오는 사람들의 수근거림, 또각 또각 소리를 내며 다가오던 하이힐소리에도 목을 스윽 내밀며 조마조마하던 내 심 장의 고동을 어찌 잊을까! 그땐 모든 게 다 예쁘게만 보이던 시절이었지,
애타게 그 사람을 마음에 담았던 "그리움"과 "기다림"이 이처럼 나를 키운 셈이고 또한 달콤한 추억으로 데려온 걸거야.
* * * *
후덥지근한 한 낮의 더위를 식히는 선들바람이 불어오는 깊은 밤에 추억 속에 자리한 알싸했던 첫 사랑 과 어린 왕자를 떠올리며 불현듯 부끄러운 내 잃어버린 순수가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하네요. 생떽쥐페리가 조종하는 비행기는 저만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홀로 남은 깊은 밤, 내꿈과 순수를 일 깨운 탓에 씁쓸해 하는 중년의 사내만 남았습니다.
"넌 네삶에 지쳐있는것 같아, 그런데도 용캐 이곳까지 끌고 왔구나, 이리도 힘들게 너를 버티게 한 그 무엇이 무언지...넌 아니?"
희망도 꿈도 왠지 아득하기만한 내게 다가와 어린왕자가 한 말은 바로 이 말이었지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