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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그만두고, 방송과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저자의 저서이다. ‘전면 개정’을 내걸었으니, 당연히 이전에 나왔던 책이라는 뜻이다. 원본인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은 이미 독서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 책이지만, 이전까지는 굳이 찾아 읽지는 않았다. 초판을 냈던 시절에는 그 내용 자체로도 시사적인 의미를 획득했으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는 그 내용도 시각도 ‘시사성’이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초판본을 보지 않고 ‘전면 개정판’만을 읽은 독후기이다.
역사는 단순히 연대기적으로 사건을 나열하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들은 모두 개별적인 ‘사실’이지만, 그 안에 숨은 ‘진실’을 탐구하고 해석해내는 일이 진짜 역사를 영ㄴ구해야 하는 이유라고 하겠다. 예컨대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또 한번은 비극으로.’라는 격언에 숨은 뜻을 보자면, 특정한 사건의 경과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희극’ 혹은 ‘비극’으로 해석되는 상황의 파악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세계사의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의 성격을 띤 이 책이야말로 일단 역사서로서의 존재 의미를 상기시키고 있다고 여겨진다.
처음 책을 출판했을 때 저자는 ‘냉전 시대’를 살고 있었고, 그 시대에 ‘관제 역사’가 주류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역사를 ‘거꾸로 보는’ 시각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독재자가 국정교과서와 신문 방송을 동원해 주입한 역사 해석과 싸우려고’ 초판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에는 ‘관제 역사’에 맞서 그것과 달리 역사를 ‘거꾸로 읽는’ 독법이 필요했던 까닭이라고 하겠다. 출간되자 그 책이 베스트셀러의 지위를 오랫동안 유지했던 것도 아마도 당시의 ‘관제 역사’에 대항하는 논리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전면 개정판’인 이 책에서 초판의 ‘거꾸로 읽는 자세를 전부 버리지는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독자인 나로서는 이 책의 내용들이 ‘거꾸로 읽는’ 역사가 아닌 ‘사실의 단순 나열이 아닌 진실을 탐구하는 자세’로 집필했다고 이해했다.
초판을 읽지 않았기에 서로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이 책에 수록된 11개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만으로도 20세기의 세계사를 어느 정도 훑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모두 11개의 사건을 연대순으로 배치하여, 해당 사건의 경과와 의미 등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저자의 서문에 이어, 예컨대 지식인의 사회 참여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하는 ‘드레퓌스 사건’이 ‘20세기의 개막’이라는 부제와 함께 서술되고 있다.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신문 기고문으로 촉발된 왜곡된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들이 당사자들에 의해 거센 저항을 받았으나, 결국 훗날 그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자신의 소신도 쉽게 내팽개치고 비난했던 정치세력에 투항하는 인간들의 작태가 자행되는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진실을 찾기 위해 항거했던 에밀 졸라의 행동이 빛나는 이유라고 하겠다.
1차대전을 촉발했던 ‘사라예보 사건’이나 ‘러시아혁명’, 그리고 1930년대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대공황’ 등에 대한 소개와 그 역사적 의미 등이 저자의 시각에서 조망되고 있다.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이끌었던 모택동의 ‘대장정’과 게르만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2차대전의 원인을 제공했던 ‘히틀러’, 그리고 여전히 미해결의 상태로 전쟁 상태에 놓여있는 ‘팔레스타인’ 등의 주제가 다뤄지고 있다. 거대한 제국주의 미국을 상대로 유일하게 승리했다고 평가되는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설명하고, 미국의 인종 갈등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말컴 엑스’와 이후의 상황에 대한 진단도 내려지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이 어떻게 오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핵무기’가 제시되고, 마지막으로 20세기 끝자락에 펼쳐졌던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이르는 세계사의 주요 국면들이 저자의 시각에 의해 서술되고 있다.
저자는 ‘교과서와 언론이 소홀하게 취급하는 몇몇 사건을 비중 있게 다뤘고 어떤 사건은 다른 시각으로 서술’했기에, ‘책 제목을 바꾸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적어도 ‘전면 개정’으로 출간된 이 책은 그 내용만으로 따진다면, 지금의 관점에서는 ‘거꾸로 읽는’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충실한 자료의 섭렵과 저자의 탄탄한 시각과 논리를 통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뚜렷하게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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