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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인정되고 달라지지만, 남자는 여자에 대하여 그렇지가 않다. 여자는 우발적인 존재이다. 여자는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비본질적인 것이다. 남자는 ‘주체(主體)’이다. 남자는 ‘절대’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자(他者)’이다.”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수록된 이 표현은, 20세기 중반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사회활동을 제약당하며 살아야 했던 여성들의 위상을 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20세기 중반 무렵에는 사회활동이 오로지 남성들의 몫이었고, 여성들은 남성의 활동을 돕는 역할에 한정하고 있었다. 예컨대 우리의 경우 ‘여자의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안 된다.’라든지, ‘여필종부(女必從夫)’와 같은 구태의연한 표현에서 전통 시대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양상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여전히 일부에서 미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도 역시 여성을 주체가 아닌 ‘타자’로 여기는 대표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말에는 여성은 남성들이 보호해야 하는 존재이며,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그저 수동적인 역할만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21세기의 시점에서, 위에 인용한 보부아르의 표현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이 불과 한 세기를 넘어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남성 중심의 지배적인 문화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야만 했던 여성들의 현실을 소개하고, 그것이 ‘신화’와 ‘역사’를 통해서 장구한 세월 동안 어떻게 ‘숙명’처럼 여겨졌던가 하는 문제는 이미 ‘사실과 신화’라는 1부의 내용을 통해서 장황하게 서술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제1부의 내용은 이제 그 역할을 충분히 했으며, 연구사로서의 의미만을 지닌다고 하겠다. ‘체험’이라는 제목의 제2부에서는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소극적인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점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유년기’로부터 ‘젊은 처녀’를 거쳐 ‘성의 입문’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남성 중심 문화가 여성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수동적인 문화로 작동했는가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이어지는 ‘상황’이라는 제목의 항목에서는, ‘기혼 부인’과 ‘어머니’가 지닌 사회적 의미는 물론 여성들의 ‘사교 생활’의 현실을 서술하고 있다. 여기에 남성 중심 문화의 파생이라고 할 수 있는 ‘매춘부와 첨’이라는 주제가 서술되고 있는데, 형식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유독 남성에게만 너그러웠던 ‘성 문화’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결국 남성 중심 문화를 ‘정당화’시키는 다양한 요소들을 ‘나르시시즘의 여사’와 ‘연애하는 여자’ 그리고 ‘신비주의 여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세분화하여 살피고 있다. 저자를 포함하여 당대 여성들이 직접 ‘체험’했던 상황들을 제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방’으로 나서 주제로서 ‘독립한 여성’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하면서 마무리되고 있다. 그리하여 해당 항목의 마지막에 수록된 다음의 표현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자가 어느 정도까지 개별적인 것으로서 머무를 수 있는가, 그 개성이 어느 정도로 중요성을 간직하고 있을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매우 대담한 예상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는 여자의 가능성이 억압되고 있었으며, 인류를 위해 잃어버려졌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여자 자신을 위해서도,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도, 여자로 하여금 모든 기회를 잡게끔 허락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21세기에 접어든 시점에 이제 형식적으로는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그 내용과 더불어 실질을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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