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오랜 기간 편집자로 활동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읽는 직업>을 선택한 이로 자처하는 저자의 책에 대한 생각들을 담고 있다. 나 역시 독서인으로 자처하면서 책을 읽는 것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여하고, 독서를 통해 책의 내용에 공감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된다. 여러 권의 책을 낸 저자의 한 사람으로, 나도 출간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편집자들과 함께 작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편집자의 입장을 잘 드러내고 있는 책의 내용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고, 때로는 그동안 잘 인지하지 못했던 편집자의 생각과 고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독자, 저자, 그리고 편집자의 삶’이란 부제에 걸맞게, 이 책의 저자는 저자와 독자 그리고 편집자로서의 위치를 모두 겪은 위치에 있다고 여겨진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거의 책대로 살게 된다’고 강조하면서, ‘15년 동안 편집의 세계에만 빠져 살’던 자신이 책을 출간하게 된 3가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이로서 저자의 입장에 공감하고 싶다는 이유가 그 하나이고, 편집자라는 존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것이 또 다른 이유의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책 만드는 과정과 그 역사를 짚어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하니, 적어도 이 책에서 저자가 의도한 목표는 도달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첫 번째가 ‘저자 관찰기’라는 제목으로 편집자로서 만난 저자들에 대한 생각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양한 부류의 저자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문득 나는 어떤 부류의 저자로 분류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책은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게 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저자로서의 홍보에 그다지 열을 올리지 않기에, 새로운 책을 출간하면서 항상 출판사에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다. 간혹 ‘출판 기념 강연’ 등의 기회가 만들어지면 저자로서의 몫을 하지만, 대체로는 내가 관여하는 몇 군데의 사이트에 소극적으로 알리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좋은 원고를 출간하면서 그에 걸맞은 판매고를 기대하고 있기에, 저자로서의 나의 역할에 그리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앞으로도 계속 독자와 저자로서 글을 쓰겠지만, 이러한 나의 생각과 철학은 결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 항목은 ‘편집자의 밤과 낮’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편집자로서 만난 다양한 원고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을 편집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고의 오류를 꼼꼼하게 검토하는 ‘팩트체커들의 세상’이라는 내용은 무척 흥미로웠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역사적 사실이나 연도 등의 사항을 체크하는 팩트체커가 출판사에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교정과 교열에 주어진 시간들이 짧아지고, 그것은 결국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도 독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현실에서 불가피할 것이라고 이해된다. 편집자로서 단순히 원고의 내용과 질만이 아니라, 저자와 관련된 사회적 논쟁으로 인해 출간을 포기하게 된다는 내용 역시 불기피한 조처일 것이다. 이러한 사항들을 모두 고려하여 출간을 기획하고 결정하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항목은 ‘독자와 책을 옹호하며’라는 제목으로, 편집자 이전에 독자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독서 편력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독서 시장이 위축되었다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메일 쏟아지는 방대한 출판물들이 조금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 가운데 일부는 시류를 타고 베스트셀러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물들은 초판을 판매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그런 과정에서 소위 잘 팔리는 일부 저자들의 책들이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논조만 바꿔 비슷한 내용의 책들을 양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는 독자의 입장에서 책을 구매하는 ‘독자는 앙상하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그 시절을 지나면 못 읽는 책들’에 대한 아쉬움과 그 목록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갈수록 책의 분량이 빈약해지고, 때로는 내용조차 가벼워지는 출판계의 현실에서 ‘두꺼운 책 옹호론’을 펼치는 저자의 논조는 충분히 공감되는 바가 있다. 내 경우에도 출간했던 책이 절판이 되어 아쉬움을 느낀 경험이 있지만, 저자는 ‘복간의 모험’을 감수하면서 다시 출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반가웠던 것은 책을 읽는 진지한 독자로서의 태도가 엿보이고, 그러한 취향이 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떤 성격의 글이든, 그 속에는 글쓴이의 철학과 삶의 태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독을 하면서도 책을 직접 읽어본 후에, 나의 독서 리스트에서 지워지는 저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연히 접한 책을 통해서, 열렬한 독자로서 새로운 독서 리스트에 오른 저자들도 생겨난다. 나로서는 가급적 책을 빌려 일기보다 직접 구입하여 읽는 것을 선호하고, 그로 인해서 도서 구입비로 적지 않은 비용을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 얼마나 사고 얼마나 읽어야 할까’라는 맺음말을 통해서, 편집자로서 애정을 품고 출간핸 책들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읽는 직업>으로서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