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디카시집 『돋아라, 싹』
-보살피는 자연과 시의 축복에서 방금 핀-
주문을 외우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의식과 무의식이 그러하게끔 방향으로 쏠리고 온 힘을 다해 전진하는 것이다. 새싹을 밀어 올리듯이. 사람의 그림자가 한 몸에서 비롯되니 말이다. 당신이 바라거나 믿는 바를 말할 때마다, 그것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은 당신이니깐.
몸을 낮출수록
너의 세상은 아름답다
우리 사는 일도 그러할까
_ 「꽃의 세상」 전문
땅에 낮게 핀 꽃을 디지털카메라에 담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엎드렸을 시인은 진실된 자화상의 고백을 꽃 입술에 살포시 포개고 있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노랫말 가사로 꽃이 발산하는 순백의 세상으로 다가선다. 야생에서 피어나는 꽃이기에 발견하는 기쁨은 마음에 몸에 반기는 환호 속 폭죽이지 않을까. 그야말로 축복이다. ‘우리 사는 일도 그러할까’를 강한 어조로 읊조려 본다. 살아가는 것은 살아내는 일이며 인생의 살림꾼으로 자신을 혹은 세상을 꾸려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야생의 땅을 밟는 이 순간, 시인은 작게 피어난 꽃이 품은 겸손함을 렌즈를 통해 알리고 싶은 게다. 또 그런 겸손은 이미 시인에게 있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베푸니 행복하다. 새로운 거울은 새롭기 때문에 바라보며 그런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기에 한층 더 마음에 풍요를 준다.
내 마음과 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
아무리 꽉 잡고 있어도
내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아
마음 다치지 않길 바라
_「詩의 말」 전문
말하는 AI가 있고 시 쓰는 쳇GPT가 유행하는 시대에서 인간은 로봇에게 마음을 다치고 있고 다른 한쪽은 개의치 않고 앞다투어 입맛 다시고 있다. 시인을 벼랑 끝에 몰아세우고 있어 머리를 맡대고 고민할 때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음 다치지 않길 바라”로 위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구애하는 나비의 말에도 “내 마음은 쉽게 향하지 않아”라고 얄밉게 미소만 짓는 꽃이 곧 詩의 말이요 고요하되 말씀인 까닭이다.
생명을 키우고 있는
깨진 그릇
황량한 내 안에도
실낱 목숨 꿈틀댄다
_ 「돋아라, 싹」 전문
억세지 못해 상황이 그러하다면 순응하여 느리게 살아 있는 모습은 생명의 위대함을 넘어 거대한 자연이 건재하다는 메시지이자 참된 감사이다. “오늘 누군가가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이유는 오래전에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라는 워런 버핏이 미래지향적 투자를 권유한다. ‘실낱 목숨’이 힘주어 내달리는 싹튼 마음으로 한걸음, 한마디로 “꿈틀”대는 시인, 즉 역경쯤이야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용기는 계속 될 듯싶다. 자신의 의지를 담보로 하고 그로 인해 얻는 디카시야말로 진정 고수만이 선택한다.
바람과 햇볕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
자신을 지우며 치열하게 키워온
누군가의 빛이 되어 주는
깊어질 대로 깊어져 있는
_「아름다운 그늘」 전문
햇빛이 다녀가다가 바다색에 취해 그대로 누워 한 몸이 된 이미지는 흡사 부부를 연상케 한다. ‘자신을 지우며’ 무언의 책임감에 엄마로 동시에 아내의 역할을 해내기란 쉬운 게 아니다. 가정은 지혜로 지어지고, 이해로 견고해지기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깊어질 대로’ 내버려 두지 못하는지 주름살이 어느새 ‘깊어져 있는’내리사랑이 된다. 보여지는 벽면도 비가 내려 수위가 높아지면 ‘사투를 벌이는’것이 시간뿐이 아니라 그 물살로 인해 점점 벽이 깎아져 무너지지 않으려고 ‘치열하게’살아가는 현실도 있음이다.
하강하는 나뭇잎 하나
툭, 던지는 한마디
세상은 모두 순간이라고
_「늦가을」 전문
뉴스N제주 신춘문예 디카시부문 당선작이다. 당선 소감으로 말한 “디카시라는 새로운 문학장르를 만난 것은 저에게 행운입니다”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땅에 닿지 않은 나뭇잎 하나가 주는 메타포는 다양하게 다가온다. ‘하나’, ‘ 한마디’는 ‘순간’을 자극하여 ‘하강하는’ 눈물샘을 쏟아붓게 한다. 또 다른 세계로의 이동 중이라고 숨죽여 말한다. 순간에 웃고 순간에 죽을 수 있는 순간. 사는 동안 영혼을 갖고 결코 잃지 말라, 그리고 좌절하지 말라고 ‘툭, 던지는’희망가를 용기 내어 불러 내어보자. 한편으로는 가만히 있던 우리를 ‘툭’하고 건드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하고 언젠가 그 무엇이 되어 있을 순간을 가지는 기쁨을 맞이해본다. 디카시를 향해 한층 더 바삐 움직이는 당신을 축복한다.
가슴에 맺혀 있는
수많은 저 눈물
나를 키워 준
_「성장 일기」 전문
시인은 비를 맞으며 한기를 느끼는 상황에서도 디카시를 건져내기 위해 인내심을 쌓고 버팀을 요구하는 체력을 기르는 동안에 정신력이 한층 단단해졌을 것이다. 나뭇가지에 빗물이 떨어져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어 주는 것과 같이 ‘수많은 저 눈물’마저 없었더라면 메마른 대지도 갈라지고 세상살이가 어렵고 사라지는 것이 늘어날 게 뻔하다. 디카시가 울음과 웃음과 환희를 자아내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은 분명하다.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핀다.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맑은 샘은 솟는다. 불에 탄 흙에서도 새싹은 난다. 우리는 늘 사랑과 빛이 가득 찬 이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자”라는 조지 고든 바이런의 애정 어린 말을 감사히 받아 황량한 마음을 적시어 자연에게 받은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최희강 시인
2006년 《시사사》로 시 등단
2022년도 《한국디카시학》으로 디카시 등단
시집 『키스의 잔액』
이형기기념사업회 간사
첫댓글 최희강 선생님 애쓰셨습니다.
덕분에 부족한 디카시에 생기가 돕니다.
감사히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