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0년
장현숙
‘에헤헤 까르르’
그 소리가 좋아서 10년 전 이 아파트로 이사 왔다. 햇살 가득한 아파트에 아이들의 웃음이, 젊음의 이야기가 넘실대서 여기로 이사 왔다.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 잔을 들고 베란다 창가에 서서 발아래를 내려다본다. 보도블록으로 흙을 뒤덮어버린 딱딱한 통로가 내 발바닥을 움츠려 들게 한다. 고개를 돌린다. 주황 노랑 파랑 녹색 우레탄으로 엮어 만든 둥근 세상이 활기를 불러 모은다. 놀이터다. 미끄럼틀, 시소, 정글짐, 회전무대가 꿈틀대고 그네가 춤춘다. 놀이터 옆에는 미니 운동장이 있다. 기저귀를 찬 채 뒤뚱거리는 공주님부터 꽤 달음박질을 치는 오빠까지 운동장은 넘실댄다. 아이들은 그렇게 자랐다. 옆집 희준이도 그 속에서 그렇게 자랐다.
복도가 시끌벅적하여 현관문을 열었다. 희준이가 씩씩거리고 있었다. 미니 운동장을 빨간 노끈으로 에둘러놓고 ‘공놀이 금지’ 팻말이 붙었다고 한다.
“에잇, 우리는 놀지도 못하냐?”
야구 글러브를 내팽개치며 희준이가 소리를 질러댔다.
며칠 전이었다. 미니 운동장에서 고만고만한 사내아이들이 야구공으로 투수와 캐치 연습을 했다. 내가 이사 올 때만 해도 아이들로 벅적거리던 놀이터와 미니 운동장이 근래에는 한산하다. 어쩌다 학원 차에서 내린 애들이 책가방을 벤치에 던져놓고 야구 연습 하는 게 고작이다. 그 많던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아니 그들에 이어서 같이 놀아야 할 동생들은 왜 없는 걸까?
그날도 희준이는 친구들과 야구놀이에 푹 빠져있었다. 제2의 박찬호를 꿈꾸는 성호가 공을 던졌고 희준이는 그 공을 받아내지 못했다. 공은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통행로를 넘어 날아갔다.
맞은편 쉼터 마루엔 할머니들이 나른한 오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그녀들의 인생사를 풀어놓으며 한나절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떼구루루 성호의 공이 거기까지 굴러갔다. 다행인 것은 공이 할머니들이 벗어놓은 신발 언저리에서 멈췄다. 그 후 미니 운동장은 ‘공놀이 금지’ 팻말이 붙었고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미니 운동장에서 노는 아이들보다 쉼터를 사용하는 할머니들이 훨씬 많다는 이유였다.
요즘 아이들은 참 똑똑하다. 엘리베이터에 희준이와 그 친구들이 우르르 탔다. 아파트 관리 사무실로 간단다. 그들은 키득거리며 그들의 염원이 적힌 마분지를 두 손으로 들어 보이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다.
어린이는 즐거워야 한다」어린이는 건강해야 한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한다」
그 아이들에게 마음껏 야구를 할 수 있게 해주면, 즐겁고 건강하고 행복할 것이다. 그보다 야구를 하려는 아이조차 없어지는 현실이 더 걱정이다. 저 아이들조차 다 커버리면 10년 후 우리 아파트는 어떻게 될까?
20년 30년 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